십현담 주해
한용운 지음, 서준섭 옮김 / 어의운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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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말고 한용운의 책은 예전 종로서적이 지상에 있을 때, 서가 깊숙한 데서 찾은, 서정주가 번역한 한시를 모은 것을 읽은 게 다다.
그러니 이 책은 금시초문이다. <십현담>을 한용운이 주해한 책이라고 한다. <십현담>은 10세기 중국의 조동종 선승 동안상찰이 선의 본체를 7언율시 10편으로 읊은 것이다. 김시습이 해석하고 주를 달아 <십현담 요해>를 펴내기도 했다고.
흥미가 동하는 거리가 많아 덥석 집어 찬찬히 읽는다.

1/10 마음을 다룬다. 한용운의 말이 이렇게 끝난다.

“山雨未晴 春事在邇” : “산에 오는 비는 개지 않는데 봄철 농사 일은 코앞에 닥쳤도다.”

무심은 세상 온갖 것에 대해 생각을 끊는 것이다. 대개 깨닫는 것의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대승에서는 그것이 소승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한용운도 “무심의 병이 오히려 유심의 병보다 심한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그러면 마음을 바로 보는 법은 “유심으로도 얻을 수 없고 무심으로도 구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가?” 그 답이 저 구절이다.
살짝 느껴질 뿐, 풀어낼 깜냥이 아직 내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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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와 저녁식사를 - 신현정 시선집
신현정 지음 / 북인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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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현정 시인은 이미 돌아가셨고, 네 권의 시집을 남겼다. 이 시집은 시선집이다. 두 번째 시집 <염소와 풀밭>을 아직 구하지 못해서, 여기 실린 시들이라도 보려고 구해 읽었다.

우선, 첫 번째 시집 <대립>에 대해서 슬쩍 말하고 가야겠다. 74년에 등단해 83년에 냈다.

“자기가 깨어지지 않으면 암흑이 깨어지는
둘중의 하나인 세계!에서
보라, 이제는
벌겋게 달군 고문!의 쇠도 먹을 수 있게
이마가 남는다.“ 105 대립

신현정 하면 ‘바보’처럼 순한 마음, 어리숙한 표현이 떠오르지만, 위와 같이 시대에 저항하는 강단도 있다.

온 지구가 이글거리는 이 꼴을 생전에 보았을까? 미리 보기도 한다 시인은.

“이제는 땅을 매질해 집을 짓는 수밖에 남아 있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땅은 묵묵하게 받아들일 것이고 우리는 더 많이
땅을 매질해 많은 집을 짓고 물을 얻고
그리고 우리가 이제 더 많이 신음하고 아파하며
고통에 떨 것도 알고 있습니다.” 101 집을 짓고 물을 얻고

두 번째 시집 <염소와 풀밭>에서 뽑힌 시들에는 뭇 생명과의 교감이 가득하다. 풀벌레들의 밀약을 듣고, 달팽이의 질주를 보고, 민들레를 불고, 염소의 세계를 묻고, 나무의 손아귀에 덥석 잡히고, 민들레에게 정처를 알려주고, 고운 단풍을 보며 덫에 치인 짐승의 울음을 듣는다.

이미 읽은 나머지 두 시집에서 뽑아 놓은 시들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얼마전에 읽은 듯한데, 초면 느낌이 많다.

최근 시집부터 옛 시집 순으로 편집했는데, 20여 년의 층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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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에서 청색지시선 3
고운기 지음 / 청색종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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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몸에 병을 얻자
나에게는 소주 올린 밥상 대신 한가한 시간이 찾아왔다” 31


짙은 쓸쓸함
“도화지 한 장만한 삶인 것이다
넓이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길 힘쓰면 그만이다
/33번 버스는 오지 않고
실은
지난 번 시장이 노선을 개편해 버렸다 한다
/시절은
한 사람의 생애는 그와 같은 것이다” 20

“나의 생애는
재미없는 일정으로 설계된 채 버리지 못한 계절” 33


그러나, 계속되는 것
“옛길은 새길에게 자리를 내주고 두렵지 않다
두렵다면 길이 아니다” 59

시작은 꽃


강릉 길 수로부인이
아니 부끄러워하며 받던

치히로가 아버지의 옛 마을로 갈 때
가슴에 살짝 품고 있던

시작은 꽃이다

그렇게 떠나는 길에 꽃이다
어떤 어려움이 반드시 닥칠 것이니
그럼
용궁에 잡혀가더라도, 귀신의 여관 아궁이에 불을 때더라도
두려움 없이 던져다오
네가 받은 꽃
지지 않고 살아날 꽃

시작하러 떠나는 길
우리는 무리로부터 떨어지는 법이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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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 깨닫는 유마경 강의 - 집착과 분별을 넘는 큰 가르침
성태용 지음 / 북튜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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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경전이다.
유마경.
“우리가 악하다, 더럽다, 잘못되었다 하는 것들에”서 출발하라고 한다.
욕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한다.
연꽃은 진흙 속이라야 피어난다고.

찬탄을 하고 환희심을 냅니다. 우리 사바세계의 저열한 욕망을 더럽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매개로 그 욕망이 덧없음을 드러내시며, 욕망을 매개로 한없는 불사를 일으키시는 부처님을!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받들어, 이 사바세계에서 향상심을 잃지 않고, 욕망의 물꼬를 서원으로 돌려 끝없는 불사를 일으키는 이들을… 물러나지 않는 대승의 큰마음을 낸 우리 속의 보살님들을!
바로 여러분이 그들입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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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에서 청색지시선 3
고운기 지음 / 청색종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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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5년 내 생존율 65%의 병에 걸려 큰 수술을 받았다.
아프니 고달프고 쓸쓸한 가운데
고운기 특유의 잔잔함이 깔리고
굳세고 따뜻한 것들과 잘 어울려 있어
더위를 잊을 정도로
빠져든다.

벌교 12


개펄 건너와
갈대밭에 불붙여 지른 석양이
하루를 넘겨주고
산 넘어 간다

마감에 이르러 사람도 이토록 거룩하기를•••

바람은 무슨 말인가 걸려다
서둘러 벌교초등학교 운동장 쓸겠다고
남은 아이들 발자국 찾아
방죽 따라 가고

철다리 아래 포구에서는 장도 막배가 내일 아침
해 싣고 오마 통통댄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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