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서사의 영토 1 - 실사와 허구 사이, 한문단편소설
임형택 지음 / 태학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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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단편. 이야기들. 조선초 성현, <용재총화>부터 달린다. 그 중 <신수 스님>에 나온 얘기. 고기도 먹고 여자하고도 살며 거침없고 일흔이 되어도 ‘기운이 날아갈 듯 보’이는 그에게

“무슨 까닭으로 여자를 좋아하고 고기를 먹소?”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망령스럽게도 사욕을 일으켜 이해를 따져서 서로 빼앗기를 일삼지요. 혹은 마음속에 포악한 생각을 품고 있고, 혹은 번외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저 명색 출가를 했다는 사람들 또한 이와 같지요. 고기의 맛있는 냄새를 맡으면 줄줄 나오는 침을 삼키고,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간음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는데, 나는 이와 다릅니다. 고기를 보면 즉시 먹고 미색을 대하면 즉시 취하여 물이 콸콸 흘러가는 것 같고 흙이 저절로 무너지는 것 같아, 형세를 따라 딴마음이 없으매 조그만 사심도 모두 사라집니다. 내가 내세에 여래가 되지 못한다면 필시 나한은 되리다. 세상 사람들은 재물에 인색하여 모으기에 힘쓰지만 제 몸이 죽으면 즉시 남에게 넘어갈 터라, 생전에 좋은 음식 먹고 마음껏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지요. 무릇 자식 된 도리는 자기 아비를 섬김에 모름지기 큰 떡을 만들어 좋은 꿀 한 되에 담가 놓고서, 술을 거르고 고기를 썰어 아침저녁으로 봉양해야 할 것이오. 죽은 다음에 건어물, 마른 과일, 술 몇 잔, 식은 적 따위를 차려 놓고 관 앞에서 곡하며 올리면 과연 달게 자실 것이오? 당신은 비록 이와 같이 어버이를 섬기지 못했더라도 당신 자식으로 하여금 이와 같이 당신을 받들도록 한다면 좋을 것 아니오.” 31

조르바가 조선초에도 있었네.
카르페 디엠, 지금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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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 금요일엔 역사책 1
장지연 지음,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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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주제다.
04장에 따르면,
조선조 성리학하에서 지배층 남자 사인들은 한문, 지배층 여자들이나 피지배층은 한글을 전용했다는 것이 통념인데,
“다 같이 한글을 쓰더라도 그에 대한 태도와 방식이 달랐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더 깊고 길게 이어질 주제가 여럿인데
슬로슬로 잽잽으로 가볍게 넘어간다.
‘금요일엔 역사책’시리즈가 그렇게 하기로 한 제약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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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 문예중앙시선 23
장승리 지음 / 문예중앙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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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기를 부린다
묘기를 부리지 않고
남겨지는 법을 알지 못한다” 57

한국어라는 언어와 한글이라는 문자로 ‘묘기’를 부린다. 말 그대로 ‘묘기’를 부리지 않고 시를 쓰는 방법은 모르는 듯하다. 안타까운 것은 그 묘기를 부리는 자만 묘기로 생각할 뿐, 바라보는 자는 저게 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뭘 쓴 줄 알고 썼을까
출판사는 뭔 소린 줄 알고 책을 냈을까

애매도 모호도 없다. 애초에 의미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고, 남다른 형식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저 ‘방향 없는 진지함’으로 ‘악몽을 글로 옮겨 적’을 뿐이다.

한글로 지은 추상시라고나 할까. 작가와 평론가와 업자들끼리 안다 하고 좋아하는 추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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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78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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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한(아주 깊은) 절망(슬픔)
그저 베껴 쓸 수밖에

“비가 오는데, 내가 우냐고?
서정 시대는 끝났어.
서정 연습 시대가 있을 뿐이야.” 48

“나는 안다.
내가 언제나 나이듯
내가 언제나 나의 남이라는 것을.” 58

“비 온다,
비 간다.
사람 사는 골목 어디서나
흙 젖고 창틀 젖고
다시 마른다.
현재 미래 혹은 내세를 위해
어느 집에나 대문 있다.
어느 방에나 창문 있다.
••••••••••••
••••••••••••
말하기 싫다.
말하기 싫다는
말을 나는 말한다.

(희망은 감옥이다.)” 62

“불현듯 식욕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언가 골수에 사무친 것이다.
저 충정도 산간의 시래기 국을 못 잊듯,
저 도시 변두리의 라면을 못 잊듯.“ 66

”심연의 심연에서 까마귀가
이 밤의 골수를 후비고 있다.“ 69

”세계가 일평생이 상처였고
그 상처 안에 둥우리를 튼
나의 현재 또한 늘 상처였다.“ 82

”우리의 핏멍이 보이지 않는
행복한 번역체로,
그리운 그리운 제국주의의 번역체로,
다시 쓸까, 내 고백을 내 자서전을,
나의 성공한 실패들의 집적을,
내 무의미의 집대성의 神殿을.

아하, 그리하여 읊어볼까,
잘도 배운 식민지적 어법으로,
미지의 신비의 불가해한 불가항력의
뿌리칠 수 없는 대체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86 <삼십대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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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78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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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몸 눕히는 곳 어디서나
슬픔은 반짝인다.
하늘의 별처럼
地上의 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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