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서유기 - 철들고 다시 읽는, 원숭이 부처 되는 기똥찬 이야기
성태용 지음 / 정신세계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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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여섯 도둑도 함부로 때려죽이면 안 되는 거여

손오공이 삼장을 모시고 가다 여섯 도둑 물리쳐 죽인 것에 힐난 받자 튀어버린 대목.
’어찌어찌 바른 길로 돌아왔지만 차분하게 한길로 나가지 못하는 마음의 행태‘

우리의 감각기관인 눈, 귀, 코, 혀, 몸, 뜻이 우리의 마음을 훔쳐가고, 그렇게 훔쳐진 마음은 보고 듣고… 하는 데 빠져 거기에 휘둘리며 기뻐하고 성내고 애착하고… 그렇게 한세상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달려가다 죽음이란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이지요. 슬픈 인생 아닙니까? 이런 삶을 두고 "내가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여섯 도둑에 이끌려 삶을 당하고 있을 뿐이지요. - P172

그리고 이치로 보아서도 여섯 도둑을 다 때려죽이면 안 되는 일입니다. 왜냐구요? 여섯 도둑은 여섯 감각기관인데, 여러분은 감각기관 없이 살 수 있어요?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된다는 이야기와 그것을 죄악으로 보고 없애버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지요. 내가 주인이 되어서 그것들을 부릴 수 있으면 되지, 그것들은 나쁜 놈들이나 무조건 물리쳐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다르잖아요. 내가 잘못해서 그것들을 도둑으로 만들었으니까, 다시 내가 잘해서 그것들을 하인으로 부려야지요. 여섯 도둑보다 여섯 하인이 훨씬 좋지 않아요? - P174

불교에 대해, 불교의 수행에 대해 많은 오해가 있거든요. 그리고 수행을 시작하는 분들이 실제로 이 대목에서 많이 고생들 하세요. 잡생각과 망상, 감각에 들어오는 온갖 방해물과 씨름하느라 한세월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수행에 들어가 마음을 좀 집중하려 하면 오히려 번뇌망상, 잡념이 더 끓는 것 같지 않던가요? 저도 겪어봤고 고생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일반적으로 평상시의 우리는 번뇌망상의 흐름 속에서, 그것과 함께 떠내려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함께 떠내려가기에 그 흐름을 느끼지 못해요. 그런데 수행을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 순간, 그흐름에 함께 떠내려가지 않고 우뚝 서는 형세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거센 번뇌망사와 잡념의 흐름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지요. 그 흐름에 쓸려 몇 번 다시 넘어지는 것도 당연하구요. 하지만 걱정하지 말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계속 수행을 하다 보면 차츰 잡념이 줄고, 내 수행에 순수하게 집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의식하고, 그것들에 대항하고, 그것들을 없애려 하는 것 자체가 그것들에 마음을 뺏기는 일이요, 그것들에 지는 일입니다. 꿋꿋하게 내 갈 길을 가는 것, 서둘지 않고 뚜벅뚜벅 큰 길을 걸어나가는 것이 수행의 왕도라는 점을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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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양식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10
이성부 지음 / 민음사 / 197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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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의 정액이
내 아가씨의 육체와 치마폭을
늠름하게 적셨다 때려죽일 놈은 그 자식이 아니라
그 나라가 아니라
허약한 내 몸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나는 알았다 - P78

힘들의 창끝은 무디어진다. - P75

勝利 1


이른 새벽에 잠깨어 물마시고
담배를 한 대
벌판의 마른 마음 소리 들어보면
왜 저다지도 사람들은 춥다냐.

먼 불빛이
혼자만 떠는 아쉬움을 깨달아서
다른 불빛들을 찾아 나설 때,
다른 나라에서도 구해 올 수 없는
목마름을 보았을 때,

하나 남은 불빛은 씨앗처럼 죽어
보다 가까운 아침을 태어나게 한다.
걷어부친 팔뚝과 힘이 만드는
불빛의 장례, 피로 사랑하는
세계와의 만남, 그리하여 불빛은
누리의 밝음 속 그 어두움에
깊이깊이 파묻힌다.

사람의 춥고 가난함도
저 이른 새벽에 혼자 남은 불빛이 아니냐.
결코 사람들은 쓰러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크게 다른 얼굴로 일어서는 일••••••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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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철학:서양에서 바라본 예에 대한 새로운 이해
허버트 핑가레트 / 서광사 / 199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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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철학적 문제 의식이 갖는 첫번째 의미는 공자의 사상을 주희(朱熹)의 《논어집주》(論語集註)와 그에 근거한 기존의 해석들로부터 해방시킨 그의 현대적 해석의 혁명성에 있으며, 두번째 의미는 먼 옛날의 중국 고전에 나타난 철학적 통찰을 오늘날의 현대적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단히 매력적인 하나의 ‘새로운 대안’으로 재해석해 내놓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적 모델’이 현실상황에서 얼마만큼 실질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이미 기존의 전통들이 왜곡되고 뒤틀린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회(공동체)의 경우라면, 그리고 그러한 왜곡된 전통과의 역사적 연결선상에서 극심한 사회적 모순에 시달리는 비참한 중생들의 구체적 행위가 결코 진정하게 ‘인간적’이라고 볼 수 없는 그런 사회적 상황이라고 한다면, 이와 같은 보수적이고 개량적인 경향을 짙게 노정할 수밖에 없는 ‘전통 지향적‘ 해결 방식이 진정 사회와 인간의 문제를 얼마만큼 실질적으로 해결해 줄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 담겨진 바로 이와 같은 ‘새로운 대안‘의 참신성과 문제점 모두가 보여주는 특수성 때문에 나는 1992년 2학기 대학원 과정에서 핑가레트의 이 조그만, 그러나 많은 시사성을 담고 있는 저술을 독해하였고 이제 우리말로 옮겨 독자 여러분에게 선보이게 되었다. 참신성과 문제성을 아울러 안고 있는 그의 해석이 이제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 잔잔한 파문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요컨대 그의 야심적인 독해가 보여주는 공자의 모습과 그 철학적 통찰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비전’이 이 땅 독자들의 철학적 문제 의식 속에서진지하게 고려되고 비판적으로 이해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 P9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점점더 단계적으로 야심이 커나가는 세 가지 희망을 가졌었다.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나의 첫번째 희망은 서구인에게 공자의 철학적 통찰력을 알리고 그것을 제대로 평가해 보이려는 것이었다. 20세기의 서구의 철학자들은 공자의 사상을 인간의 본성과 인간 세계를 꿰뚫어볼 수 있는 철학적 통찰의 원천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그저 아득한 고대의 잘 이해되지 않는 역사적·문화적 재료로만 치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이 출판된 후 20년의 세월이 흘러오는 동안, 이러한 사고 경향이 눈에 띄게 달라졌음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P11

공자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가 무미 건조하고 답답한 도덕 군자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어록인 <논어>(論語)는 온통 구닥다리 냄새가나서 더 이상 현실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나중에 꼼꼼히 읽어 보면서 그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내가 아는 어떤 위대한 사상가와 마찬가지로 깊은 통찰력과 탁견을 가진 사상가로 다가오게 되었다. 공자가 오늘날 우리 현대인에게 스승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그는 이미 통용되고 있는 개념들에 단순히 색다른 조명을 해주는 그런 철학자가 아니라, 현대인을 깨우치는 진정한 큰 스승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는 이미 어딘가에 언급되어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말하고 있다.
그는 우리를 가르칠 새로운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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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에게 배우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37
맹문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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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오르며


흙과 멀어질수록
출세한다 국정교과서에 적혀 있고
텔레비전이 연일 보도하고
예고편 영화에서 대대적으로 알린다
흙을 버릴수록
돈을 번다 카피라이터는 이 원리로 카피를 쓰고
영화감독은 엑스트라의 옷을 벗긴다
흙을 무시할수록
사람다워진다 세련된 사랑을 할 줄 알고
합리적 관계로 매출액을 산출한다
재선을 노리는 정치인이나 국밥집 아주머니나
주저하지 않고 인정한다
흙을 멀리할수록
유용하다 지정된 층으로 예외 없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처럼
삶이 보장된다
먼지 하나 일지 않는 아파트 광장에서
차들이 클랙슨을 울리며 동감한다
흙에 무관심할수록
오래 산다 죽음이 겁나 봉분을 올리고 비석을 높인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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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등산 봉정사 - 안동문화를 찾아서 4
이효걸 지음 / 지식산업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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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두고 종종 꺼내 보고픈 책이다.
절판이 아쉽다.

나는 우리 전통가옥에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의 하나가 이 툇마루라고 생각한다. 담장이나 울타리로 되어 있는 우리의 가옥은 외부에 대해서 어느 정도 폐쇄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부구조를 보면, 닫힌 공간으로서 방과 열린 공간으로서 마당으로 분리된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가옥은 휴면과 식생활, 생활용품의 보관과 저장, 주변환경의관망 등 가옥의 기능을 잘 살리기 위해 실내와 마당, 방과 방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잘 연결하는가에 대단히 치중하고 있으며, 그것을 구성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가옥 형태를 발전시켰다.
이 방과 마당, 방과 방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바로 마루다. 마루에는 대청마루를 비롯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툇마루는 전통가옥에 거의 다 있을 뿐 아니라 유용하게 활용된다. 마당에서 활동하다가 신발을 벗지 않고 툇마루에 걸터앉으면 방에 들어가지 않고도 적당한 휴식과 주변 관망이 가능하고 실내에 있는 사람도 신발을 신고 마당까지 반드시 내려서지 않아도 되어, 방에 있는 사람이나 마당에 있는 사람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다. 툇마루는 닫힌 공간인 방에 밀착되어 있는 열린 공간이다. 툇마루는 실내라고도 할 수 없고 바깥이라고도 할 수 없는 중간 공간인 것이다. 중간 공간이기 때문에 그 두 영역을 소통시킬 수 있고 각각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특별한 기능을 가진 툇마루야말로 여가를 일상화하는 공간으로서 우리 전통가옥의 독특한 문화가 아니겠는가!
사실 봉정사는 툇마루 절간이라 불러도 좋을 그런 사찰이다. 대응전에 툇마루가 있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극락전에도 1972년 해체 보수하기 전까지는 툇마루가 있었고, 고금당에도 1969년 보수 전까지는 툇마루가 있었다. 보수 전까지는 극락전 맞은편에 고금당과 화엄강당을 연결하는 7칸의 우화루와, 화엄강당과 무량해회를 연결하는 3칸의 진여문도 있었다. 만약 보수 전의 이와 같은 모습을 상면, 현재의 영산암과 같은 폐쇄적 분위기를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툇마루가 붙은 법당 건물과 기단을 한 단계 낮추어 강당 • 누각 • 요사채 등 법당 앞 건물들을 툇마루로 연결한 이러한 방식은 봉정사와 영산암이 같은 구조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영산암을 봉정사의 모형이라 부르기도 한다.
봉정사는 해체 보수를 거치면서 현재와 같은 개방구조를 갖게 되었으나, 영산암은 그대로 있기 때문에 적어도 조선시대의 봉정사 모습을 추측하는 데 이 영산암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현재도 영산암의 앞쪽 구조체가 모두 툇마루로 연결되어 있는 점을 생각하면 조선시대의 봉정사를 ’툇마루 사찰‘이라고 불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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