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등산 봉정사 - 안동문화를 찾아서 4
이효걸 지음 / 지식산업사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두고두고 종종 꺼내 보고픈 책이다.
절판이 아쉽다.

나는 우리 전통가옥에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의 하나가 이 툇마루라고 생각한다. 담장이나 울타리로 되어 있는 우리의 가옥은 외부에 대해서 어느 정도 폐쇄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부구조를 보면, 닫힌 공간으로서 방과 열린 공간으로서 마당으로 분리된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가옥은 휴면과 식생활, 생활용품의 보관과 저장, 주변환경의관망 등 가옥의 기능을 잘 살리기 위해 실내와 마당, 방과 방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잘 연결하는가에 대단히 치중하고 있으며, 그것을 구성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가옥 형태를 발전시켰다.
이 방과 마당, 방과 방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바로 마루다. 마루에는 대청마루를 비롯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툇마루는 전통가옥에 거의 다 있을 뿐 아니라 유용하게 활용된다. 마당에서 활동하다가 신발을 벗지 않고 툇마루에 걸터앉으면 방에 들어가지 않고도 적당한 휴식과 주변 관망이 가능하고 실내에 있는 사람도 신발을 신고 마당까지 반드시 내려서지 않아도 되어, 방에 있는 사람이나 마당에 있는 사람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다. 툇마루는 닫힌 공간인 방에 밀착되어 있는 열린 공간이다. 툇마루는 실내라고도 할 수 없고 바깥이라고도 할 수 없는 중간 공간인 것이다. 중간 공간이기 때문에 그 두 영역을 소통시킬 수 있고 각각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특별한 기능을 가진 툇마루야말로 여가를 일상화하는 공간으로서 우리 전통가옥의 독특한 문화가 아니겠는가!
사실 봉정사는 툇마루 절간이라 불러도 좋을 그런 사찰이다. 대응전에 툇마루가 있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극락전에도 1972년 해체 보수하기 전까지는 툇마루가 있었고, 고금당에도 1969년 보수 전까지는 툇마루가 있었다. 보수 전까지는 극락전 맞은편에 고금당과 화엄강당을 연결하는 7칸의 우화루와, 화엄강당과 무량해회를 연결하는 3칸의 진여문도 있었다. 만약 보수 전의 이와 같은 모습을 상면, 현재의 영산암과 같은 폐쇄적 분위기를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툇마루가 붙은 법당 건물과 기단을 한 단계 낮추어 강당 • 누각 • 요사채 등 법당 앞 건물들을 툇마루로 연결한 이러한 방식은 봉정사와 영산암이 같은 구조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영산암을 봉정사의 모형이라 부르기도 한다.
봉정사는 해체 보수를 거치면서 현재와 같은 개방구조를 갖게 되었으나, 영산암은 그대로 있기 때문에 적어도 조선시대의 봉정사 모습을 추측하는 데 이 영산암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현재도 영산암의 앞쪽 구조체가 모두 툇마루로 연결되어 있는 점을 생각하면 조선시대의 봉정사를 ’툇마루 사찰‘이라고 불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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