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장소 중 공생원이 가장 인상 깊다.“이 인연을 시작으로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텄고,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까지 하였다. 이후 한 남자는 거지 대장으로, 한 여인은 고아의 어머니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된다.” 277남자는 윤치호(평생 영어 일기 썼다는 사람과 동명이인), 여인은 타우치 치즈코(우리 이름은 윤학자)근현대의 상처가 고스란한 인연이다. 윤치호는 1951년에 고아원 식량을 구하러 광주에 갔다가 행방불명되었다.무안군의 작은 포구에서 개항과 더불어 도시로 성장했으니, 일제강점기의 유적이 많다. 침탈과 개발 말고도 저항의 흔적이 남은 것이 특이한 일이다. 아무래도 수도에 가까운 인천보다 개항 시기도 늦고 해서 한국 최초 타이틀은 거의 없고, 전남 최초의 것들은 많다.멈춰서 귀 기울이고 들여다보고 의미를 느낄 곳들이 많다. 괜찮은 길라잡이가 된다.
광주, 이미지, 걷기호기심이 인다.1장은 사진가가 만든 광주의 이미지를 다룬다.오종태와 강봉규의 대비. 일제강점기 시신들을 찍으며 사진을 시작한, 오종태의 무등산 사진에 주목한다. 제목을 <아우슈비츠>로 고친 것. 벤야민의 사진론을 언급하며 그 점을 높이 산다.언어가 매우 거칠다. 탄탄한 논거 없이 매우 선언적인 문장이 잦다.공공성 등의 주장은 싫지 않으니, 조금 쉬었다 2장 광주순환도로를 읽기로 한다.
2024년에도 아직 농촌에 살면서농촌을 읊는 시인이 있다.20세기에 농촌을 시의 대상으로 삼은, 남성 현대 시인들은 대개 인정과 해학, 자연, 성찰과 분노를 주로 담아 왔다.박경희는 그와는 결이 다르다.시인은 촌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동네 할머니들이야 뭐 오로지 가정을 이루는 것을 근본으로 알다 보니 “군청 다니는 조카 있는데 만나보라고 오십넘어 결혼하는 사람도 많다고 젊으니께 엄니 속 썩이지 말라고” 참견을 하지만, 시인은 그저 “막걸리가 딸꾹딸꾹 햇살을 먹고 있다”고 할 뿐 성내지 않는다.죽어버린, 죽어가는 농촌 사람들과 도시 빈민 노동자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붙잡아도 밤은 가고붙잡아도 밥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피 묻은 기계를 바꾸고야간작업을 하는 손들은 그저 묵묵할 뿐이다먹먹할 뿐이다” 71압사 사고가 난 현장에서 곧바로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황금 들녘 곳곳에서 농약 먹고, 목 매달고, 고독사한 사람들과 함께 산다. 한때 비구니 생활을 하다 관둔 듯한데, 그 쓸쓸한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하고픈 말은“내 걱정은 말고 너나 아프지 말아라” 13
이 편의 주인공은 문정왕후.그녀를 악랄하고 못된 여자로 보는 것이 당대의 평가.타당하게 반박한다.다만 필자도 인정한, 그녀의 패착은 측근정치.뒷부분에 부록처럼 들어 있는5장 <시대의 표상들>이 빼어나다.백성으로 살기, 임꺽정, 을묘왜변으로 이어지는 피폐한 시대 조망이 아주 훌륭. 임란 전에 조선이 구조적으로 망해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퇴계와 남명도 상세하게 잘 보여준다. 뒷 역사를 예고하면서.
인천을 읽고 바로 목포를 읽는다.토박이 사학자가 글쓴이라 기대를 한다.목포의 목이 한자는 나무 목을 쓰지만,건널목, 나들목 할 때 쓰는 목에서 왔다고 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목에 있는 항구.잘 읽다가 오류와 오타가 있어 적고 잠시 덮는다.유달산에 있는 마애 부동명왕상을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이라고 했는데, 마산에도 있다.일이나 행사는 치르는 것이지 치루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치뤄‘가 아니라 ’치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