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최준영 지음 / 자연과인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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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책의 제목을 보면서, 난 내 인생에서 나를 살렸던 책들은 어떤것이 있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게 된다.
 
《성경》,《화》,《용서》라는 책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것을 보니 내가 가장 심적으로 어려웠을 때,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이겨내지 못해서 세상에 휩쓸리고 있을 때였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내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변상황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을 때 가장 큰 도움을 받았던 이 책들로 말미암아 마음이, 정신이 건강한 나로 다시 바로 설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나를 살린 책이지 싶다. 나의 경험처럼 많으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처지에, 상황에 맞춰 그 사람들의 인생을 바로 세워주는 그런 큰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책이었다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건만 다시한번 책의 그 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성프란시스대학과 관악인문대학등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인문학 강의에 참여하고 그 과정들에서 노숙인들을 살렸던 그 체험담들을 엮어놓은 글들을 하나 하나 읽어가노라니 그동안에 편견(?)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노숙인들에 대한 선입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못한것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단순히 게을러서 그런 삶을 가지게 된것도 아니건만 왠지 노숙인들을 대할때면 무척이나 게으르게 여겨지고 괜히 피하고 싶었던게 사실이었으니 이 글을 쓴 최준영님에게 나의 그러한 고정관념을 바꾸게 해준것에 대해 감사해야겠다. 열심히 산다고 살지만, 때로는 영악하지 못해서 때로는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싸우다가 노숙인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로이 깨달았으니 내가 그동안 가졌던 노숙인에 대한 죽은생각에서 산 생각으로 바꿔주는 힘을 발휘한 책이 또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최근 몇년전에 우연하게 접하게 된 국보건축기행에서 저자가 해준 말이 얼핏 떠오른다. '관악인문대학'이라고 들어보았느냐고 물어보던 그 저자는 인문학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고 말을 했다. 속으로 대답하기를 사람을 살리는 것이 왜 인문학이라고 하는걸까? 그런 의문을 가졌었고, 또한 '관악인문대학'은 도대체 어디에 있으며 어떤 것을 가르치는 곳일까? 잠깐 의문을 가졌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에 그 저자의 그 말들이 다시금 생각나게 해주는 최준영님의 사람을 살리는 책을 읽으면서 '관악인문대학'이라는 곳이 정말 사람들을 살리는 곳이었구나 깨닫게 되다니 이러한 인연의 끈이 놀랍고도 신기하기만하다.
 
삶에 있어서의 끄트머리에서 '희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 보이는 '노숙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최준영님같은 분들이 함께 하고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가 되리라는 기대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삶의 바닥까지 갔던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그 '희망'을 품고 그 '희망'안에서 다시금 일어서게 만드는 일
최준영님에게 인문학이 부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하는 신통한 분야라고 말을 하지만, 최준영님이 인문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품어왔던 많은 노숙자들에게 그는 또 다른 삶의 희망을 선물로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는 작은 보답으로 그의 부인에게 그리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이는 베짱과 멋있는 인품이 주어진게 아니었을까. 최준영님과 함께 사람을 살리는 인문학을 함께 실천해나가고 있는 여러분야의 천사들로 인해 그들의 작은 실천으로 인해 우리와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사회를 위해 노력해가고 있는 그들로 인해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들이 있었음을 돌이켜 찾아보고 감사함을 함께 표현하고싶다.
 
건강한 마음이 있기에 건강한 사회가 존재할 수 있으리라. 결국은 삶에 있어서의 건강한 생명을 줄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의 어느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어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감사함으로 느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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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 노희경 원작소설
노희경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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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책 하나를 붙들고 밤을 하얗게 지새면서 눈물콧물 범벅으로 글을 읽는지 엄마의 삶을 읽는지 구분을 못할 지경이었다.

 

'참 묘하다. 살아서는 어머니가 그냥 어머니더니, 그 이상은 아니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녀 없이 세상이 살아지니 참 묘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작가 노희경씨가 밝혔듯이 픽션이다. 그 픽션을 읽으면서 '엄마'라는 존재가 책속에서의 그 '엄마'라는 존재가 어느샌가 나의 '엄마'가 되어서 내 가슴을 후벼판다. 책 속에서의 '엄마'가 자식들을 위해 모질게 참고 산 세월이 내 어머니의 삶이었고, 모진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바람막이도 못되어주는 아빠를 바라보면서 그래도 그냥 아이들 아빠려니, 아니 내 남편이려니 생각하며 그런 삶을 받아들이고 처절하리만큼 '엄마'라는 그 책임감과 모성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 아린 삶을 바라보면서 나의 엄마를 돌이켜본다. 돌아가신지 수년이 지났건만 노희경님의 삶처럼 나의 삶도 엄마라는 존재가 더 사무치게 그리워지고 날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그리움이 가슴에 박힌다. 살아서는 엄마이더니 돌아가시니깐 돌아가시고 나니깐 그 엄마라는 존재가 내 삶의 전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딸들이 그럴거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살아생전에 왜 철이 들지 못했을까? 허공에 물음표를 던지고서 주워담지 못하고 산지도 오래다. 내가 자식을 키우면서 나도 그냥 엄마처럼 살아가진다. 그러면서 항상 다짐하는 건, 내가 엄마에게 받은 사랑 만분의 일이라도 내 자식들에게 주고 있는가... 돌이켜보고 다짐하게 되고, 엄마에게 죄스런 마음과 미안한 마음들을 갚는길은 내 아이들에게 되돌려주는 일이라 내 멋대로 답을 내린다.

 

딸 연수, 아들 정수 그리고 목석같은 남편, 젊었을적엔 그리도 모질게 굴던 시어머니가 치매로 사람도 못알아보면서 왜 그리 힘은 장사가 되었는지 걸핏하면 엄마 머리채를 잡고 뒤흔들고 그런 시어머니를 욕하면서 정이 들은것일테지만 엄마라는 위치에서의 책임감을 회피하지 않고 살아준 덕분에 연수네 집이 온전한 가정을 유지했으리라. 이 세상 모든 엄마의 삶이 그렇듯이 있는듯 없는듯 하지만, 자리를 비우면 이 세상 전부가 허하게 느껴지는 엄마라는 그 존재감은 언제나 뒤늦게 후회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깨달으면 왜 항상 늦는걸까. 왜 엄마가 이 세상과 이별하려고 하는 때에 철이 들려고 하는걸까. 나도 엄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의 엄마를 떠나보냈을 때의 그 과정들속에서 깊은 회환과 몸서리쳐지는 후회속에 어쩌지 못함은 내가 엄마의 딸이었기 때문일지. 나의 자리가 나의 위치가 엄마에겐 그마만큼의 위치였었기때문일까. 왜 이 세상의 엄마들은 딸이, 자식이 철들어서 제대로 효 (孝)를 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으시는 걸까. 뭐가 그리 바빠서 그리 훌쩍 가버리고 나서야 이렇게 깊은 깨달음을 주시는지...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과 함께 사는 이들이 나를 비롯하여 이 책으로 인해 '엄마', 아니 '아빠'와 함께 부모라는 그 위치를 다시 돌이켜보고 그리고 그분들의 소중함을 제대로 깨우칠 것이라는 바램을 가져본다.

 

세상이 무섭다고 지레 겁먹지 마라.

너희 부모도 나도 즐거이 살아온 세상이다.

겁내지 마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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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순종하는 잘되는 자녀 -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로 키우는 9가지 양육법
밀레스 맥퍼슨 지음, 김창대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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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자녀양육!

부모가 되어 자녀를 양육할 수 있다는것도 하나의 크나큰 축복일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큰 축복 가운데서도 아이들과 언쟁하고 충돌하고 아이를 남과 비교하게 되거나 그러면 하루아침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도 되는 현실이 이 땅에 사는 부모들의 모습이 아닐까싶다. 태어나면 저절로 자라는 줄 알았던 나의 유년시절을 추억하면서 쓴 웃음을 지어보지만 현실앞에서는 수많은 자녀양육이라는 제목으로 수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으니 이왕이면 나의 아이들을 더 잘 키워야겠다는 신념아래 이러 저러한 자녀 양육서들을 많이도 읽어본다.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사회현상이나 때로는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나의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자녀 양육서들을 발견하기도 하면서 항상 느꼈던 것이 있다.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과정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건만 아이를 양육하는 지혜나 절대기준같은 것들이 없이 왜 항상 자녀양육이 이론적인 면이나 방법적인 면에서 항상 바뀌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서 자녀양육에 있어서 정말로 절대기준은 없는걸까....의문을 가져보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 목마름 속에서 다시 찾게 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잘되는 자녀]라는 이 책은 나름대로의 자녀양육에 있어서의 '절대 기준'을 찾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자녀 교육의 생각이나 방법의 차이로 인해서 같은 부부끼리도 자녀 양육의 문제로 의견충돌이 일어나기도 하는것은 아마도 자신들의 자녀양육방식이 옳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일것이고, 자신이 더 상대방보다 더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일종의 자기 과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자녀를 키우는 자들은 자녀가 비단 자신만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아들.딸들을 부모라는 이름의 우리들에게 맏기신 것은 부모라는 우리들을 통하여 아들 딸들에게 향하신 큰 꿈이 계시기 때문이다. 나의 자녀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가 나에게 키우도록 하신 나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자녀양육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들에게 주실 큰 복을 받을만한 그릇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일을 우리는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잘되는 자녀'가 되도록 양육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책에서는 크게 세 가지의 통찰력으로 알려준다. 첫째는 자녀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의 중요성이며, 둘째는 당신의 자녀가 인생의 경주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의 자유이다. 셋째로는 당신의

자녀를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양육하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용기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자녀들의 삶에서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할 수 잇을것이라고 알려준다.

 

이 책을 쓴 밀레스 맥퍼슨은 십대들을 복음화하기 위해 사역을 하고 계시는 분으로 흑인이다. 그가 하는 많은 사역들 가운데서 십대의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고 사역을 해왔던 여러가지 사례들을 모아서 그것들을 기초로 자녀들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잘되는 자녀로 키우기 위한 절대적인 가치기준에 근거하여 해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미국의 사례를 모아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세세함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 안에서의 자녀 양육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맏기신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부딪히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의 해결책과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부모가 먼저 순종하고 지혜를 구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자녀들의 자존감을 세워주는일 용기를 북돋워주는일들 그리고 때때로 실천에 옮기지 못하기도 했던 자녀들의 편에 당당히 서야 하는 일과 신뢰하고 응원자의 모습으로 자녀와 함께 하는 일과 더불어 하나님 안에서 자녀들의 꿈에 날개를 달아주고 꿈의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양육하는 일들에 대해 방법들을 알려준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로 나의 소유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나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대하게 되었던 모습들을 되돌아 보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지혜를 간구하는일에 게을리 하지 말며, 끝없는 신뢰와 함께 변함없는 응원자가 되어야 함을, 어떠한 부정적인 모습이 보인다고 하더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는일 그것들이 내가 자녀들에게 해야할 일이었다.

 

모든것을 바라며 (고전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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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첫 생각 - 잠든 나를 흔들어 깨우는
정우식 지음 / 다음생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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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머리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싸한 사람이 그럴싸한 말을 해야 그럴싸한 법인데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못된다. 알다시피 나는 그저 그런 촌놈이다." 난, 이 책의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저자가 너무나도 겸손한 모습이었음을 금새 알게 된다. 벌교 촌놈이라고 밝히는 저자가 밝히는 《 하루 첫 생각 》은 구름처럼 일어났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한 생각을 몇줄의 글로 드러내본 것이라고 하지만, 그 짧은 글귀들에서는 그냥 구름처럼 일어났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런 글귀가 절대로 아니었다. 그의 인생속에서 오랫동안 생각하고 몸으로 느꼈던 삶의 지혜들 그리고 삶의 방향들을 일목요연하게 나열을 하고 나 자신에게 읊조리듯이 하나의 태양아래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외치는 한줄기 햇빛같은 언어들이었다. '정우식의 토막생각'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매일 아침을 약 2,000여명의 지인들에게 토막생각들을 보냈다고 하는데 정우식님의 그 글들을 아침마다 접했던 그 분들은 얼만큼 큰 축복을 받은것인지 느꼈을것이다.

 

살아가노라면 밥과 고기만으로 살 수가 없음이니, 사람이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기초로 하여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잡고 그 삶의 모습들에서 만족을 얻으며 행복을 얻으며 꿈을 이루기 위해 더 부단한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지만, 그 근원적인 종착지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하나 세워두는 일은 어떠한 방법으로 어떠한 권세를 가지면서 살아가는 그 현재의 모습들보다도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일것이다. 사람 누구나가 나는 왜 태어났으며,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모습을 그리면서 살아가게 될것인지 적지 않은 고민속에서 참으로 많은 생각들로 고민하고 번뇌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러할 때에 정우식님의 자연에 거스리지 않은 한줄기 시원한 바람과 같은 새벽에 맞이하는 시원한 옹달샘을 마시는 그런 기분을 누릴 수 있음은 그가 인생을 사는 지혜나 생각들에 자연을 거스리지 아니하고 사람의 이치를 거스리지 아니하는 그러한 모습으로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60억 인구라는 어마어마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지금의 나는 어떠한 모습인가? 그리고 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이어야 더 행복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속에서 가끔은 현실에 안주해서 살아가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결국은 나 혼자여야 하는 나 자신의 생각들을 정립하기 위해 몸부림쳐보는 것이 비단 잠못이루는 밤의 기나긴 겨울밤의 끄트머리가 아니라도 어쩔 수 없이 거치게 되는 인생의 과정들이다.

 

나.

그리고 너.

그리고 나와 너가 같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방법들은.

그리고 후회없는 생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를 여는 생각과 행복을 여는 생각. 우리를 여는 생각. 세상을 여는 생각과 생명을 여는 생각들을 읽어가노라면 내가 부처가 되고 예수가 되어감을 벌교 촌놈이라 하는 사람 정우식님의 짧은 생각들속에서 나를 바로 세우며, 내가 어디를 바라봐야 하며 나의 걸음걸이가 어떠해야 하는지 정립되어감을 느끼게 된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그리하여

세상 한번 멋지게, 살아보겠다는 선언이다.

 

생각하나 바꾸는 일이 어느만큼 힘든일이며, 어느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지 살아본 사람들은 알것이다.

 

               행복은 느낌

그러므로 행복은 행복하다고 느낄 때 찾아온다.

               행복은 생각

그러므로 행복은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 찾아온다.

               행복은 마음

그러므로 행복은 행복하다는 마음을 낼 때 찾아온다.

 

삶에 있어서 행복은 우리의 모든 삶을 걸고서라도 꼭 누려야 할 중요한 것이기때문이다.

그 행복을 누리는 방법에 대해 이처럼 쉽게 이해되도록 알려준다.

 

진짜 진보는 가장 보수적이다.

진짜 보수는 가장 진보적이다.

 

나. 너 그리고 우리_라는 울타리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들을 하루 첫 생각으로 이렇게 시작한다.

지구가 둥글듯이 우리네 사람들의 마음도 둥글게 둥글게....

하루 첫 생각으로 다듬고 채우다 보면 더 반듯한 내가 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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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도시 사라진 아이들 - 1995년 뉴베리 아너 선정도서
낸시 파머 지음, 김경숙 옮김 / 살림Friends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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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무소로' 예의를 갖추는 말로서 '잘 먹겠습니다.'라는 뜻이었다. 텐다이가 리타와 쿠다 두 동생과 함께 자유를 찾아 집을 나섰다가 죽은자의 땅에서 벗어나 레스트헤이븐에서 접한 단어였다. 죽은자의 땅인 광산에서 발견하게 된 '은도로(산자와 죽은자를 연결해준다는 물건)'덕분에 영매일 수도 있다는 시각과 함께 튀긴 생쥐 이래로 가장 훌륭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다.
 
2194년의 짐바브웨에서 일어날 일을 1994년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책이 사라진 도시 사라진아이들이라는 이야기로 인해 우리는 어떠한 것들을 얻을 수 있을것인가 . 현대 기계 문명에 맞선 과거 영혼이 들려주는 지혜뿐만이 아니리라.
 
짐바브웨의 하엘라에 사는 마치카 장군의 세 아이인 텐다이 리타 그리고 쿠다는 마치카 장군의 철저한 보호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었다. 여러가지의 보호에 대한 필요성을 이유로... 군대식의 철저한 가정환경과 교육환경속에서 아이들은 단순한 자유만을 그리워했었던 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텐다이가 '구관조'의 철장을 풀어주고 '구관조'에게 자유를 주었던 던 자신들의 삶속에서 '자유'를 열망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찾아나선 자유속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죽은자의 땅과 레스트헤이븐계곡에서의 생활들을 통해서 그는 선조들의 생활을 경험해보고 레스트헤이븐에서의 므와리부족들의 생활을 경험한다. 14살의 어린 치포가 세 명의 산파가 필요할 정도로 부족장님의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의 쌍둥이는 불길하기때문에 두번째에 태어난 여자아이를 사산되었다고 해야하는 불공평한 멋드러지지 못한 규칙들에 진절머리를 내는 리타의 울부짖음에 그들은 반성 움막에 들어가게도 된다. 그들은 세상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레스트헤이븐에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안락한 마치카 장군의 집에서 누렸던 생활을 뒤로하고 나온 후에 맞보게 되는 현실이었다.
 
아프리카라는 곳. 그리고 짐바브웨라는 나라에서 그들의 선조들에 대한 이야기를 철저한 근거에 기반을 둔 소설을 접할 수 있었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 단순한 13살짜리 텐다이가 두 어린 동생들과 함께 자유를 찾아 떠났다가 겪게 되는 모험들과 그들을 찾아 떠나게 되는 마치카 장군의 의뢰를 받고 함께 합류하게 되는 밝은 귀와 멀리 보는 눈 그리고 긴 팔의 신선함들이 어우러져서 텐다이가 14살이 되기 전까지 다시 하엘라로 되돌아오기까지의 단순한 여행담이 아닌 텐다이 그리고 리타와 쿠다와 함께 했던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과거와 현재를 어우르는 글 속에서 더 큰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마음과 귀를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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