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 진경산수를 개척한 우리나라 화성 ㅣ 새로 쓰는 화인열전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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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겸재 정선
작가 : 유홍준
출판사 : 창비
읽은기간 : 2026/04/28 -2026/05/07


취화선같은 영화로 보고, 간송미술관이나 역사책에서 미술작품으로만 봤던 겸재 정선에 대한 평전이다.

양반이었고, 꽤 많은 벼슬을 했고, 말년에는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던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역시 아는 듯 하지만 전문가들의 책을 보면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다.

정선의 그림을 여러 점 봤었지만 책에서 시대별로 설명해주니 훨씬 이해가 잘 됐다.

이해가 잘 됐다고 해서 그림을 잘 알게 됐다는 건 아니다.

유홍준 작가님의 설명중 상당수의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그림을 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아는게 없으니 설명을 들어도 마음에 확 와 닿으면서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그게 내 한계이긴 하지만 그림을 볼 때 봐야하는 방법을 하나 더 알게 됐다는 것으로도 만족한다.

다음책도 기대된다.


p25 금강전도는 이처럼 수직과 수평, 선과 점, 흰색과 검은색, 밝음과 어둠, 큰 것과 작으 ㄴ것 등이 대비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상의 이미지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변형과 과장, 필법의 강약, 광선의 대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보는 이의 눈과 가슴을 압도하는 화면을 창출해냈다.

p51 겸재가 섵불리 자기 개성을 드러내지 않고 이처럼 고전을 차근차근 방작하는 중년의 겸손과 성실성을 거쳤기 때문에 훗날 자신의 개성에 힘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p54 겸재의 득의산수에서는 바로 이 세 가지 요소가 한 화면 속에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화면 상단의 암봉과 먼 산은 인조,숙종 연간의 전통 산수화풍이고, 하단의 초가집과 안개 표현은 남종문인 화풍이며 버드나무, 전나무의 수지법과 냇가 암석의 표현에는 겸재가 진경산수에서 사용한 조선 산천의 분위기가 살아 있다.

p64 겸재 그림을 기년작 중심으로 볼 때 겸재다운 필치가 구사되는 것은 환갑 이후이다. 특히 64세때 그린 청풍계도와 65세 대 그린 서원소정도, 그리고 이 즈음 그린 경교명습첩에 이르러야 겸재다운 멋이 흔연히배어나며, 그의 노숙한 필치는 76세에 그린 인왕제색도에서 구사되었으니 그는 확실히 대기만성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p67 본래 정통 산수화론에 의하면 산수화를 그리면서 기피해야 할 점 16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길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있으니, 이를 모를 리 없는 겸재가 이와 같이 그렸다는 것은 지도의 구도를 참고하여 그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p77 신묘년 풍악도첩은 금강산을 사생한 첫 작품인 만큼 화가의 시각이 대상의 성격을 포착하는 데 주력하여 붓끝이 아직 풀리지 않은 인상을 준다. 이에 반하여 해악전신첩은 대상의 포착보다 회화적 재구성에 더욱 힘쓴 것을 확연히 볼 수 있다.

p81 정양사 앞에 일만이천 봉을 배치했다면 한 폭의 분경도에 불과했을 것이나 구름안개로 가려진 모습을 그려서 도리어 공계(허공의 세계)와 다르게 하였다.

p95 이 북원수회도는 훗날 단원 김홍도가 개성의 60세 이상 어른의 경로잔치를 그린 기로세련계도(일명 만월대계회도)의 선구로 삼을 만한 기념비적인 계회도이다

p108 조유수가 시중호만은 꼭 그려달라고 한 것으 ㄴ시중호가 흡곡현에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겸제는 결국 삼부연, 불정대, 삼일호, 시중대 4폭을 그려서 조유수에게 보내주었고, 이듬해 조유수는 흡곡현령을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이 그림을 받고는 너무도 기뻐서 그림마다 시를 지어 부친 것이 그의 문집 후계집에 전해지고 있다.

p128 겸재는 훗날 60대 때 인곡유거도를 그렸는데, 이 그림을 보면 초가 대문 안 마당에 고목이 두 그루 있고 겸재가 사랑채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이 있다.

p196 겸재의 진경산수는 인왕제색도에서 보이듯 짙은 먹을 사용한 웅혼한 필치의 작품이 많다. 그러나 그의 한강 그림들은 은은한 담채를 사용한 아주 부드러운 그림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겸재는 산을 그릴 땐 남성적, 강을 그릴 땐 여성적인 필치를 보여준다고 말하고 있다.

p214 능숙한 필묵법을 구사하여 60대와는 또 다른 화풍으로 원숙한 경지를 보여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니 겸재느 ㄴ그야말로 대기만성의 화가였다.

p224 겸재의 취성도는 화견이 극상품이어서 조금도 변색되지 않고 마치 엊그제 그린 것처럼 선명하고 영롱하다.

p240 이처럼 앞 시기와는 확연히 다른 겸재의 70대 이후 필법의 중요한 특징을 이동주는 우리나라의 옛그림에서 강한 필세, 겹쳐진 먹빛의 묵직한 중묵, 바위의 양감이라고 하였다. 이느 ㄴ겸재가 즐겨 그린 장동8경에 잘 나타나 있다.

p260 관아재 조영석은 겸재의 진정한 예술적 동반자이고, 예리한 비평가이고, 전폭적인 지지자였다.

p293 영조는 이날 승지들을 입시시깉 가운데 인사 발령 명단을 본 뒤 특별히 배려해야 될 사람이나 관심이 가는 인사들에 대해 궁금한 점을 점검하다가 겸재의 이름을 보고 몹시 반가웠던지 “정선이 아직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우부승지 한광조가 “나이가 거의 80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영조가 “요즈음도 아직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고 물으니, 우부승지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p301 영조는 이렇게 겸재를 중용한 것이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결국 이 일은 영조의 비호 속에 겸재는 살아나고 오히려 정술조는 다른 사건과 연계되어 파직되고 끝났다.

p315 이 말년작 장동8경첩은 앞의 두 화첩과는 필치가 완연히 다르다. 대상을 소략하게 표현했고, 필치는 스스럼없이 그어간 스케치풍으로 노필이 주는 간명함이 역력하다

p322 겸재가 이룩한 진경산수의 세계는 진실로 위대한 것이었다. 그는 조선적 산수화를 창시하고 완성했다. 그는 당대의 문화적 성숙에 힘입어 이를자신의 숙명적 과업으로 알고 신분을 떨쳐버리고, 남들이 천하다고 비웃는 소리에 괘념치않고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화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열정과 의지로 이와 같은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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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 미술 전문기자의 유럽 미술관 그랜드투어
김슬기 지음 / 마음산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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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작가 : 김슬기
출판사 : 마음산책
읽은기간 : 2026/04/20 -2026/04/26


제목이 멋들어져서 읽은 책..

저자가 1년간 유럽에 살면서 방문했던 미술관 투어를 기록했다.

우선 방대한 미술관 수에 놀라고, 그렇게 많은 미술관에서 특별전시회가 끝없이 진행되고 있음에 놀랐다.

남의 유적을 많이 빼앗아 자신들의 교양을 넓혔던 유럽은 그 이후 많은 예술적 성취를 이뤄낸 것 같다.

덕분에 현대 예술의 다양한 사조를 만들고 예술세계를 이끌고 가는것 같다. 물론 지금은 미국에 좀 밀린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쌓아놓은 업력은 무시할 수 없다.

교과서에서 이름만 듣던 작가들의 작품을 대중교통으로 방문해서 감상할 수 있는 유럽의 미술관이 부러웠다.

책으 읽으면서 이 미술관 한번 방문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특별전시전이라 내가 갈 때는 작품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고, 특별 전시전으로 통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작가의 작품이 함께 모일 수 있었고 그 곳을 방문해서 감동과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는 걸 부러워했다.

역시 돈 벌어서 유럽에서 살고 싶다.


p73 브레라 미술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은 사실 따로 있다. 미술관 마지막 전시실에서 인사를 건네는 프라체스코 하예즈의 키스다

p92 엄혹했던 중세의 끝자락, 이 그림은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며 최초로 여인의 누드를 등장시켰다. 실물로 본 보티첼리의 작품은 눈을 비비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뽐냈다.

p104 15세기말 고대 로마의 시장터에서 발견된 이토르소는 많은 예술가의 영감의 원천이 됐다. 가장 유명한 이가 미켈란 젤로다.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벽화 최후의 심판 속 바돌로매 사도가 이 토르소와 같은 형태로 그려졌다.

p122 카라바조의 기법적인 특징으로는 명암 대비를 통해 입체감을 극대화시키는 키아로스쿠로와 후기작에서 도드라지는 테네브리즘이 꼽힌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이 기법은 등장인물을 단순화하고 배경을 칠흑 같은 검정으로 칠해 마치 연극 무대의 핀 조명 같은 효과를 만든다.

p145 당시 사람들은 이 풍경화를 매우 급진적이라고 생각했다.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이 그림은 영국 시골의 전통적인 이미지로 여겨진다. 세월은 모든 아방가르드를 평범하고 익숙하게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다

p154 반복해서 미술관을 찾으면 작은 변화들이 눈에 띈다. 그림이 교체되거나, 전시 방식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서 여러 번 찾을수록 더 좋은 곳이 미술관이다.

p175 아라크네는 제우스만 고발하지 않았다. 인간 여성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포세이든, 크로노스 등을 모두 단죄했다. 아라크네가 가부장제를 고발하는 강인하고 패기 넘치는 여성의 전형이라는 해석이 오늘날 얼마든지 가능한 이유다. 현실의 폭력에 입을 틀어막힌 채 실을 짓는 노동을 강요당해온 여성들은 모두 거미 여인의 후손, 즉 아라크네의 자식들이다.

p242 1897년 클림트는 빈 분리파를 창립하며 아카데믹한 회화 전통을 거부하고 장식적 접근 방식을 추구하는 예술가 그룹을 이끌었다. 그는 빈 대학 그레이트홀의 천장화 연작(철학, 의학, 법학)이 외설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이 사건으로 그의 명성이 위태롭게 되면서 초대 회장을 맡았던 빈 분리파에서 탈퇴한 직후에 키스를 완성했다.

p174 레오폴트 미술관은 레오폴트 부부의 컬렉션 덕분에 1900년대의 빈을 고스란히 재현할 수 있게 됐다. 그래픽아트에서 문학, 음악, 연극, 무용, 건축, 의학, 심리학, 철학을 경제학 등이 교류하고 충돌하며 혁신을 만들어내던 모더니즘의 봄을 한 미술관에서 만나는 건 무척 즐거운 경험이다.

p301 독일 미술사학자 한스 벨팅은 “라파엘로의 드레스덴 시스티나 마돈다는 독일인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고, 예술과 종교에 대한 논쟁에서 독일인들을 통합하거나 분열시켰다”라고 책에 쓰기도 했다.

p310 나에게는 춥고 쓸쓸한 북구의 예술가만 그릴 수 있을 법한 황량한 폐허의 풍경으로 각인된 작가다. 프리드리히의 작품 10여 점을 걸어놓은 홀은 겨울 광야에 홀로 선 수도승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숭고함이라는 단어가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작가는 없다.

p345 페르메이르는 열한 명의 아이를 거느린 대가족의 가장이었으면서도 부엌의 작은 구석, 소녀의 방 한쪽으로 자신의 시선을 가져가는 미스터리한 화가였다.

p356 나는 아침 9시 이전에 도착했음에도 100미터가 넘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다른 대형 미술관이 전시장별로 동선이 흩어지는 것과 달리 한 작가를 위한 이 미술관은 대부분의 관람객이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연대기 순으로 1층부터 꼭대기층가지 올라가는 일관된 동선을 따르기 때문인 것 같다.

p375 1999년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쓴 소설과 동명의 영화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성지순례의 인파가 부쩍 늘어났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도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는 특별했다. 소리 소문 없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 소설 속 한 화가의 삶에 대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묘사는 이 그림을 언젠가는 보고 말겠노라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p402 아르테미시아의 인생은 모든 면에서 선구적이었다. 20세기 이전에는 거의 볼 수 없던 성공한 여성 화가였다. 드로잉 예술 아카데미인 아카데미아 델레 아르티 델 디세뇨에 입학한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이었다. 일생에 걸쳐 후원자의 지원을 받고 그림으로 생계를 꾸리고 독립할 수 있었던 여성은 당시에는 그녀 외에 없었다.

p408 일반적으로 유명한 작품이 집중된 드농 윙으로 입장해, 동쪽, 북쪽으로 향하는게 지름길로 알려져 있다. 조각상 밀로의 비넛,와 승리의 여신 니케, 함무라비 법전, 안토니오 카노바의 프시케 조각 같은 대표작을 지름길로 가다 본 경험이 다들 있을 거다.

p417 3부작이 각각 런던 내셔널 갤러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나눠져 있는 파울로 우첼로의 산 로마노 전투를 만나며 회화관에 입장하게 된다.

p430 팔라초 바르베리니를 상징하는 그림은 이 미술관의 대표적 이미지로 사용되는 지네브라 칸토폴리의 터번을 쓴 여성이다. 베이트리체 첸치의 초상화로 알려진 터번을 쓴 여성은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이자 칸토폴리의 스승인 귀도 레니의 작업이라고 잘못 알려졌던 작품이다. 여성 화가 지네브라 칸토폴리는 뒤늦게 명예를 되찾았다.

p458 이 우연한 여행으로 나의 카라바조 순례는 막을 내렸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런던, 스페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관들이 1년 동안 경쟁적으로 카라바조의 특별 전시를 열어준 덕분에 가능한 여정이었다.

p461 지루하면 죽는다에서 뇌과학자 조나 레러가 말하길 “인간의 뇌는 늘 향후 예측을 시도하는 패턴 기계지만, 도파민을 가장 크게 자극하는 건 뜻밖의 놀라움과 미지의 무언가, 즉 미스터리”라고 했다. 계획 없는 여행만큼 뇌를 자극하는 게 있을까

p462 463 나는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장거리 트럭 운전사에서 미국 최고의 미술 평론가가 딘 입지 전적인 인물 제리 살츠가 예술가가 되는 법에서 한 조언을 좋아한다.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이 말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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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로 읽는 그리스 신화
김원익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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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브랜드로 읽는 그리스신화
작가 : 김원익
출판사 : 세창출판사
읽은기간 : 2026/07/07 -2026/04/28


표지가 재미있어서 사서 읽었다.

책이 두꺼운데 이야기체로 쓰여 있어서 읽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서 읽다보니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나 나오고, 그 신화에 얽힌 브랜드들을 소개를 해준다.

저자가 참 꼼꼼하게 조사를 했다. 큰 브랜드 뿐만이 아니라 동네 브랜드까지 나와서 가끔 저자의 성실함과 꼼꼼함에 놀라게 된다.

각 브랜드들이 그리스신화를 사용한 것을 보면 어떤 브랜드들은 실제 그리스신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광범위하게 스토리를 가져다 쓴 반면, 어떤 브랜드들은 이름만 가져다 쓰기도 했다. 성공한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그리스신화를 좀 더 광범위하게 스토리라인을 만들었으면 더 멋있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나중에 브랜드를 만들면 이런 책을 참고해서 멋진 네이밍을 해봐야겠다.

재미있었다.


p19 가이아는 태초에 카오스에서 다른 4명의 신들과 함께 동시에 태어났다. 사랑의 신 에로스, 지하에서 가장 깊은 곳의 신 타르타로스, 밤의 여신 닉스, 지하 세계의 암흑의 신 에레보스가 바로 그들이다. 카오스는 누구와 짝을 이루지도 않고 혼자서 5명이나 되는 신을 낳은 셈이다.

p26 올림포스 신족이란 정확하게 어떤 신들을 지칭하는 걸까? 그것은 바로 제우스 6남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올림포스산에 산성을 쌓고 크로노스에게 반기를 들었던 티탄 신들을 말한다. 또한 제우스가 여신이나 인간들과 관계를 맺어 낳아 대업을 맡긴 자식들도 모두 올림포스 신족에 속한다.

p30 타이탄은 미국의 오토바이 회사나 슈퍼컴퓨터 이름으로도 쓰이고 있는데, 그것은 그 제품들이 힘이나 규모에서 세게 최고라는 이미지를 불어일으키기 위한 인문학적인 발상일 것이다. 그래서 미국 텍사스주의 엘링턴에 있는 식스 플래그스 놀이공원에 세워진 세계 최대 규모의 롤러코스터 이름도 타이탄이다.

p35 페르세우스는 아틀라스의 냉대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힘으로는 그를 당할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재빨리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채, 갑자기 마법 자루에서 메두사의 머리를 꺼내 아틀라스의 눈앞에 쳐들었다. 아틀라스는 그 순간 정상이 구름 속에 가려진 엄청나게 높은 산맥으로 변했다. 그게 바로 오늘날의 아틀라스산맥이다.

p74 그리스로 하이마는 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티폰은 피를 흘리며 다시 시칠리아로 도망쳤지만, 제우스가 재빨리 다시 그를 향해 던진 시칠리아의 에트나산 밑에 깔리고 말았다. 고대인들은 활화산 에트나가 뿜어내는 불을 괴물 티폰이 토해 내는 숨결이라고 생각했다.

p88 헤르메스는 언변의 신이었기에 또한 도둑의 신이기도 했다. 예로부터 유능한 장사꾼만 말을 잘한 게 아니라, 사기꾼들도 대부분 달변이다.

p121 신전 동편 오른쪽에서 세번째 기둥 아래쪽을 살펴보면 그리스 독립을 위해 애쓰다 열병으로 죽은 영국 시인 바이런 경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1810년 아테네에 머물던 바이런은 수니온곶을 찾아왔다가 매우 감동한 나머지 신전 기둥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두었다고 하지만 그가 자신의 이름을 직접 새겨 넣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수니온곶 포세이돈 신전은 특히 석양 무렵이 아름답다. 석양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토리니의 이아 마을 못지않다.

p125 철학자 헤겔은 그리스 신 중 아테나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그는 법철학 초안의 서문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야 비로소 날갯짓을 시작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것은 어떤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은, 그 사건이 일어난 시점이 아니라 한참 시간이 지나야 생긴다는 뜻이다.

p132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포도주의 신이라면 어떻겠는가. 디오니소스는 헤라에 대한 원한을 씻은 지 오래였다. 그는 이미 소아시아를 거쳐 인도를 여행하며 헤라 때문에 생긴 마음의 앙금을 깨끗하게 털어 냈다.

p152 오래 전 아테네 근교에 여장을 풀었던 우리 신화 여행단 도반들이 밤늦게 바로 그 디오니소스 레스토랑에서 와인이나 맥주잔을 기울이며 바라보던 파르테논 신전의 야경이 너무 그리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집결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p175 에리크토니오스는 아테나의 보호 아래 아크로폴리스에서 헌헌장부로 장성한 뒤 암픽티온이라는 당시 아테네의 부정한 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에리크토니오스는 선정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고 명실상부한 아테네 시민들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아테나를 기리기 위해 판아테나이아 제전을 만들었고, 4마리의 마차가 끄는 마차를 발명했으며, 죽어서는 신으로 추대되어 아크로폴리스에 묻혔는데, 그곳이 바로 에레크테이온이다

p185 탄탈로스의 형벌이라는 관용구도 그가 받은 형벌에서 유래했다. 그것은 주변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의 애타는 상황을 넣고 하는 말이다.

p193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3가지 아주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첫째,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주었다. 둘째, 제우스가 대홍수를 일으켜 멸하려 한 인간을 구해주었다. 셋째,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보지 못하도록 했는데, 그러기 위해 인간의 마음속에 맹목적 희망을 심어주었다.

p225 현대의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토론만 할 뿐 고대 그리스의 와인으로 대변되는 술은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내 생각엔 고대 그리스의 의미에서 심포지엄은 그 뒤에 벌어지느 ㄴ뒤풀이로 비로소 완성된다. 아니다. 그 뒤풀이에서 술을 마시면서 하는 토론이 진짜 심포지엄이다

p247 켈수스 도서관이 4개의 여신상을 세운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4개의 여신상은 지혜, 덕성, 지성, 지식을 고루 갖춘 인물들을 육성하겠다는 켈수스 도서관의 교육이념의 상징일 것이다. 1970년-1978년에 재건된 현재 도서관 정면의 4개의 여신상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빈 미술사박물관 중 노이에 부르크의에페소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p248 아레테는 덕 혹은 탁월을 의미하는 그리스 철학의 핵심 개념의 하나이다. 아레테는 인간이나 사물이 각자 주어진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살아내는 즉 각자의 기능을 온전하게 수행하는 최선의 상태를 뜻한다.

p261 델피에는 또한 크로노스가 막내아들 제우스인 줄 알고 삼켰다가 게워 낸 또 다른 돌도 전시되어 숭배를 받았는데, 크기나 형태가 옴팔로스와 아주 비슷해서 사람들이 가끔 두 돌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p262 한반도의 배꼽은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이다. 그래서 한반도에서는 그곳의 기운이 가장 세다. 실제로 참성단의 자기장 수를 측정해 보니 65회나 되었다. 46회인 합천 해인사의 독성각이나 20회였던 운문사를 훨씬 상회하는 숫자이다. 기도발이 좋아 수능 철이 되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팔공산 갓바위도 16회에 불과한다. 단군왕검이 왜 마니산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울러 마니산 참성단이 한바도의 배꼽이라면 그 맞은 편 등줄기의 한가운데 지점은 바로 태백산 천제단이다

p263 파우사니아스에 의하면 옴팔로스는 온래 옷감으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밖에 있는 것이 옷감 안에 있던 원형에 가까운 모습이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은 옷감으로 덮은 옴팔로스를 복제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p269 이 메두사에 따르면 페이디아스는 메두사를 생명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그 얼굴을 보면 돌이 되지만,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미인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p280 이 관용구는 13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사르트르 성당의 남쪽 장미 창에 그려 있는 성화로도 시각화되어 있다. 이창에는 구약의 4명의 선지자인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이 거인의 모습으로 서 있고, 그들의 어깨위에는 각각 그들보다 훨씬 작은 모습으로 마치 난쟁이처럼 신약의 4대 복음서 저자인 마태, 누가, 마가, 요한이 올라서 있다.

p289 오리온자리의 앞에는 황소자리가 있어 마치 오리온이 황소를 사냥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 황소자리안에 플레이아데스성단이 들어 있어서 마치 오리온이 황소뿐 아니라 여전히 플레이아데스 7자매를 추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p304 알을 낳은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레다가 아니고, 또한 헬레네가 나중에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된 것은 그녀가 바로 불화의 여신 네메시스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p320 그리스 신화에서 페가소스는 시인에게 바쳐진 동물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시인에게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것은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는 것이기에 날개 달린 천마 페가소스가 시인의 상상력을 상징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페가소스는 9명의 예술의 여신 무사이(뮤즈)와 자주 함께 어울린다.

p355 소크라테스는 델피의 신탁이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지목한 것은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안다고 오만을 떨지만, 자신은 아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솔직하게 시인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p365 이곳에서 벌어진 숱한 전투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BC 480년 페르시아 전쟁 때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과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왕 사이에 벌어진 테르모필레 전투다

p375 동서남북 바람의 신 4남매를 총칭하는 아네모이의 로마식 이름인 벤티는 라틴어인데, 이탈리아어로는 숫자 20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에서는 20온스, 약 591ml의 커피 용량을 나타내는 단위로 쓰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커피 용량 벤티의 이름을 딴 더벤티라는 커피전문점이 있다.

p384 네메시스는 에리니에스와는 달리 혈연 관계가 아닌 인간들 사이의 복수를 담당했다

p389 주로 남자가 외모에 너무 강한 집착을 보여 자신보다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심한 열등감을 느끼며 극심한 우울감을 느끼는 것이다. 아도니스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완벽주의자인 데다 자존감이 무척 낮아 자신의 외모나 몸매에 전혀 만족하지 못한다.

p392 그러는 사이 아도니스의 시신이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며 그의 핏속에서 아네모네 한 송이가 피어났다. 그래서 그랬을까? 서양에서의 아네모네의 꽃말은 거절당한 사랑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병의 상징이고, 일본에서는 나쁜 소식의 상징이다.

p410 예로부터 핏줄은 속일 수 없다고 했던가. 부모로부터 예술가 유전자를 이어받은 오르페우스는 노래와 리라의 달인이었다. 그가 리라를 켜며 노래를 부르면 들짐승, 날짐승, 길짐승뿐 아니라 산천초목이 화답했다. 사자와 호랑이는 포악한 성정을 눅였다. 나무도 선율에 맞추어 춤을 추듯 가지를 흔들었다. 생명이 없는 바위나 돌조차도 기뻐 날뛸 정도였다.

p424 더 이상 사랑의 힘을 의심하지 마라. 나는 이 음습한 곳에서 너희들을 데리고 나갈 것이다. 이제부터 사랑의 기쁨을 만끽하라

p470 부조리한 삶은 종교나 형이상학이나 심지어 자살을 통해서도 초월하거나 회피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지프 신화는 긍정적인 두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정상을 향한 (시지프의) 투쟁은 인간의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지프를 행복한 사람으로 상상해야 합니다.

p480 어떤 그림은 포르투나가 두 손으로 풍요의 뿔을 들고 그 속에 가득차 있는 보물들을 짐승들에게 쏟아붓는다. 부라는 것은 누가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포르투나 기분대로 아무에게나, 심지어 짐승들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p503 그런 퍼포먼스는 헤스티아 신전 앞에서 그녀의 여사제로 분장한 여인들이 해야 제격이다. 헤스티아가 바로 그리스 신화에서 화로를 담당했던 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번도 분쟁이나 스캔들을 일으킨 적이 없다. 제우스가 티탄 신족과 싸울 때도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와 함께 한쪽에 비켜서 있었다. 올림포스 궁전의 평화를위해 디오니소스에게 12주신 자리를 양보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녀는 평화와 화합을 사랑했으니 올림픽 정신에도 딱 부합되는 신이다

p514 그에 의하면 영웅은 (1) 일상적인 나날을 살아가다가 (2) 모험에의 소명을 부여받고 (3) 그 소명을 거부하다가 (4) 정신적 스승을 만나 (5) 첫 관문을 통과하여 모험의 세계로 들어서서 (6) 시험을 당하는 과정에서 협력자와 적대자를 만나고 (7) 두 번째 관문이자 괴물의 소굴인 동굴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8) 그 괴물과 싸우는 과정에서 시련을 극복한 뒤 (9) 그 보상을 받아 (10) 귀환의 길로 접어들어 (110 마치 사지에서 부활하는 것처럼 세 번째 관문인 또 한 번의 엄청난 시련을 극복한 다음 (12) 드디어 영약을 가지고 귀환한다

p547 문학 작품 속에 그려지는 메데이아의 모습은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자식 살해의 주제를 처음으로 작품에 도입한 그리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의 해석에 따라 메데이아를 그리스 신화 최고의 악녀로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메데이아에 대한 좀 더 오래된 기록들을 찾아 그녀를 가부장제의 희생양으로 복권시키려는 시도이다

p549 볼프는 여신이자 사제 그리고 치료사로서 전혀 부정적인 측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메데이아가 그리스 최고의 마녀나 악녀로 전락한 것은 바로 그사이 사회에서 무엇인가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볼프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모권제 사회에서 가부장제 사회로의 이행이다. 여신, 사제, 치료사에서 악녀로 추락한 메데이아는 모권제 사회에서 부권제 사회로의 이행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p554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는 갑자기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이 등장하여 벨로키랍토르 공룡에게 죽을 절제절명의 위기에 처한 주인공들을 구해준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서는 갑자기 거대한 독수리들이 등장하여 프로도아 샘와이즈를 모르도르로부터 구출해 낸다. 위에서 언급한 말 탄 사자, 티라노사우루스, 독수리들은 현대판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셈이다.

p582 캠벨은 전 세계 신화 속 영웅들은 여정은 똑같고 얼굴만 다른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p590 그때부터 아이게우스가 자살한 바다는 그의 이름을 따 아이가이온 펠라고스로 불렀다. 그것은 아이게우스의 바다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Aegean sea, 우리말로는 에개해라고 한다.

p595 그녀는 남편 테세우스가 잠깐 외출한 사이 머리카락을 산발하고 옷을 갈기갈기 찢었다. 고의로 손톱으로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도 냈다. 이어 히폴리토스가 혼자 있을 때 방으로 들어와 자신을 겁탈했다는 거짓 유언장을 하나 남긴 채 목을 맸다.

p603 다른 하나는 새어머니와의 사랑을 꿈꿀 정도로 자유분방한 알렉시스와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서 지극히 도덕적이었던 바흐를 대비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이 곡의 제목이 바흐를 원망하고 조롱하는 듯한 굿바이 존 세바스치안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선곡이 아닐 수 없다

p619 헬레네의 납치를 소재로 그림을 그린 후세의 화가들도 이것을 의식했는지 2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그래서 어떤 화가의 그림에서는 헬레네는 납치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이에 비해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 헬레네는 파리스의 손을 잡고 즐겁게 그를 따라간다

p622 트로이 전쟁은 파리스의 심판으로 인해 트로이에 납치당한 스파르타의 왕이 헬레네를 찾으러 간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벌어졌지만, 에우리페데스나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정작 헬레네는 트로이에 간 적이 없었거나 바람으로 빚은 가짜였고, 결국 애먼 트로이만 몰락시켰기 때문이다.

p636 괴테는 기행문을 쓸 만큼 이탈리아에는 오래 머물렀어도 그리스를 방문한 적이 없다. 다만 미스트라스에 관한 자료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아 그곳을 파우스트와 헬레네가 만나는 장소로 삼았다는 후문이다. 나는 그리스에 갈 때마다 거의 매번 미스트라스에 들러 여행 도반들에게 그곳에서의 파우스트의 행적을 설명해 주곤 한다

p706 프랑스의 대통령 궁 엘리제도 바로 엘리시온에서 나온 말이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샹젤리제는 엘리사온의 들판이라는 뜻이다

p723 슈베르트는 총 18연으로 이루어진 실러의 그리스 신들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맨 마지막 연 8행만을 가사로 활용했다. 어떤 행은 중복해서 사용했다. 슈베르트의 가곡 그리스 신들의 가사 전문을 소개한다. 슈베르트는 이 가곡을 성스러운 그리움을 품고 천천히 부르라고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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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클래식 - 모든 길에는 음악이 흐른다
진회숙 지음 / 상상스퀘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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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길 위의 클래식
작가 : 진회숙
출판사 : 상상스퀘어
읽은기간 : 2026/04/08 -2026/04/26


음악평론가 진회숙님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쓴 산문집..

여행지마다 그 지역에 대한 소개에 더하여 잘 어울리는 음악들을 소개해 준다.

덕분에 다녀온 지역은 추억과 함께 들어보고 싶은 음악리스트가 만들어졌고, 가보지 못한 곳은 그리움과 상상력이 더해져 더 가고 싶게 만든다.

글을 잘 쓰시는 분이라 재미있게 읽었고, 사진도 풍성해서 여행산문집으로 더할나위 없이 좋다.

'진회숙님이 썼고, 이정도의 내용이라면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몰라보고 안 읽었을리가 없는데..' 라는 생각을 했느데 출판사를 보고 바로 알았다.

내가 이 책을 왜 안 읽었는지...

출판사는 독서모임 같은 걸 만들어서 사람들을 모집한 후 자기네 책을 읽고 홍보글을 쓰게한다고 해서 악명이 자자하다는 소문을 들은 곳이었다.

사실이건 아니건 내가 꺼리는 출판사다 보니 이런 좋은 책도 나중에 읽게 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안좋다고 소문난 출판사 책을 홍보하거나 옹호할 생각이 없다.

진회숙님이 다음번에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내시면 그때 별 많이 드리는 것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p21 노예 출신의 자유민 즉, 벼락부자들이 부상하면서 윤리의식도 무너졌다. 이는 폼페이의 건출물을 장식한 그림이나 모자이크, 조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주 에로틱한, 지그 ㅁ보아도낯 뜨거운 것들이 많다. 베티의 집 역시 이런 벼락부자의 몰취미를 보여준다. 이 집에는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한 그림, 심지어는 성폭행의 대상으로 묘사한 그림도 있다. 반면에 옷을 벗고 남근을 드러낸 남성을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자 집안의 수호자로 묘사한 것이 눈에 띈다

p25 폼페이 발굴 초기에는 너무 음란하고 선정적이어서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에로틱한 벽화의 대부분은 지금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의 비밀의 방에서 전시되고 있다. 고대 성인 스포츠의 다양한 자세를 학구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들은 참고하시라

p33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을 비롯해서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레오파르디, 독일의 문호 괴테, 영국의 시인 바이런, 셸리, 키츠, 스콧, 프랑스 작가 라마르틴, 뮈세, 미국 시인 롱펠로우 등 걸출한 문학의 거장들이 모두 이곳에 머물렀다.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페니코어 쿠퍼는 이 호텔에 머물며 소설 물의 마녀를 완성했고, 스토 부인은 소렌토의 아그네스의 영감을 얻었으며,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은 이곳에 6개월간 머물며 유령을 썼다.

p43 카루소가 묵었던 소렌토의 호텔에는 카루소 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카루소를 작곡했던 루치오 달라 룸도 있고, 마가렛 공주가 특히 사랑했다는 마가렛 룸도 있으며, 특히 루치아 달라가 작곡한 카루소를 세상 누구보다 잘 불렀던 파바로티 룸도 있다고 한다. 호텔이 아니라 말 그대로 노래의 전당인 셈이다.

p63 거대한 기마상을 제작하는 작업에 착수하자마자 갑자기 자동 대포발사기가 떠올라 하던 일을 멈추고 설계에 들어갔다가, 얼마 못 가 수직 이동이 가능한 헬리곱터에 꽂혀 대포발사기를 제쳐두는 식이었다. 다빈치가 오래 살았는데도 완성작이 별로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p71 단테를 존경했던 귀도 다 노벨로 플렌타는 자신의 고모뻘인 프란체스카가 시인의 역작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자기 가문 출신의 프란체스카를 비난하지 않고, 사랑에 희생된 가여운 여인으로 묘사한 데 고마움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p76 지은 지 1000년이 넘은 산 프란체스코 성당 역시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가라앉았고, 그러면서 지하실에 물이 차게 되었다. 그 바람에 제단 밑의 연못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이 생겼다.

p93 라파엘로는 이렇게 서로 만날 일이 없는 대학자들을 한데 모아 전무후무한 장면을 연출했다. 비록 상상화지만 세상에 이처럼 지적 에너지가 충만한 그림이 또 있을까 싶다.

p100 돌 위에 파인 사람의 발자국이 실제 베드로의 발자국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성 체칠리아의 손가락과 마찬가지로 베드로의 발자국 역시 믿음의 영역인 것을.

p113 양쪽에 발코니가 있는 산 마르코 대성당의 내부를 둘러보면서 나는 몬테베르디가 이 구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했을지 상상해보았다. 그는 발코니 곳곳에 성가대와 연주자를 배치해 사방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는 스테레오 효과를 구사했다. 그렇게 드라마틱한 발상과 색채적인 표현력으로 산 마르코 대성당을 아름답고 화려한 천상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p127 그레고리오 성가는 무미건조한 음악이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예술적 감동을 추구하지 않는다. 감각적인 것을 거부함으로써 이것이 인간의 음악이 아닌 신의 음악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이렇게 과도한 장식을 지양하고,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단순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노력은 결과적으로 그 안에 깃든 정신적 내용이 더욱 풍부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p146 정원일에 열정적이었던 모네는 그림을 그리면서 터득한 색의 조화와 화면 구성에 대한 지식을 정원을 만드는 데 십분 활용했다. 한쪽 꽃밭에는 온갖 종류의 꽃들을 심은 반면 다른 쪽에는 같은 종류, 같은 색깔의 꽃을 심었다. 마치 한 사람의 화가가 한 가지 물감을 칠해놓은 듯 말이다.

p148 모네의 그림을 음악으로 옮기면 바로 드뷔시의 음악이 된다. 모네의 그림은 눈으로 듣는 음악이고, 드뷔시의 음악은 귀로 보는 그림이다.

p178 현재 왕비의 극장은 베르사유 궁전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하지만 베르사유 궁전을 다녀 간 사람 중에 이 극장을 보았다는 사람은 드물다. 대개는 이런 극장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근처에 있는 프티 트리아농이나 그랑 트리아농만 보고 가기 때문이다

p179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녀는 의연히 최후를 맞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폭도들 앞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왕비로 품위 있게 죽는 것, 그리하여 왕족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는 것, 아마 그녀가 자신이 속한 계급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p200 루소의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와 로시니가 오페라로 만든 볼테르의 비극 세미라미스 사이에는 프랑스어로 쓰였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 루소가 소박한 민중의 삶을 그린 새로운 오페라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을 때에도 볼테르는 귀족 취향의 고전 비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p205 시내에 들어오니 거리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볼테르의 동상이 보였다. 동상 밑에 페르네의 대부라는 명패와 함께, 그가 페르네를 위해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우고, 분수와 우물을 만들고, 숲을 조성하고 , 늪지대를 메우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도로와 저수지, 인공 수로를 건설하는 등의 일을 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고 볼테르가 페르네라는 도시의 부흥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p210 서재를 가득 메웠던 7000여 권의 장서 역시 다른 사람에 팔렸다. 당시 이 방대한 장서를 사 간 인물은 계몽주의 신봉자로, 볼테르를 존경했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였다. 수십 대의 마차에 책을 싣고 가는 장면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러시아로 건너간 볼테르의 장서들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다가 지금은 러시아 국립 박물관의 볼테르 룸으로 옮겨진 상태다.

p233 생전에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왕으로 불렸는데, 이는 감자를 통해 기근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지금 상 수시에 있는 그의 무덤에 가면 참배객들이 놓고 간 감자를 볼 수 있다.

p280 전설에 나오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성 같은 건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다. 왕은 순전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저 재미로, 어린 시절의 판타지를 실현하기 위해 성을 지었다.

p282 왕조의 홀은 비잔틴 양식 특유의 화려한 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특히 짙은 푸른색과 보라색 기둥 그리고 나긋나긋한 아르누보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식물과 동물 모양의 바닥 모자이크가 아름답다

p289 린더호프 궁전에는 깜짝 놀랄 만한 곳이 있다. 산에 굴을 파서 만든 거대한 인공 동굴이다.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비너스 동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데, 보는 순간 미쳤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p297 내용이 형식을 지배하고, 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옛 귀족문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바이에른 국립극장의 화려한 위용과, 그 계단에 길게 깔린 레드 카펫, 그리고 한껏 잘 차려입고 그 위를 밟는 오페라 관객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형식에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풍성한 문화적 전통의 내용을 보았다.

p301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눈치작전이 필요하겠지만 여하튼 티켓을 사지 못한 사람은 매트와 담요 그리고 와인만 준비해 막스 요제프 광장으로 가면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와인을 마시고 웃고 떠들며 적당히 축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으니까.

p309 건물보다 높이 자란 가로수가 길게 늘어선 슈바빙 거리를 걷는 동안 내 나이 또래의 한국인 관광객을 여럿 만났다. 전혜린이 말한 회색빛 나의 거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리라. 그러나 그날의 슈바빙 거리에 회색빛 우울은 없었다. 날씨가 화창했기 대문일까. 우울은 커녕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 긍정의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p318 카이저라는 작곡가오 함께 음악이 있는 희극을 구상하기도 했는데, 이때 우연히 바이마르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카이저와 함께 구상했던 희극의 모든 것이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그대로,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차원 높은 형태로 구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괴테는 모차르트 오페라의 숭배자가 되었다.

p332 자유를 빼앗긴 사람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안다. 실러는 도피 생활을 하던 1785년에 그 유명한 환희의 송가를 썼다. 그런데 본래이 작품의 제목은 자유의 송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군주제가 굳건하던 곳에서 자유라는 말을 쓰면 검열에 걸릴 듯해 자유를 환희로 바꾸었다.

p340 이거 왜 이렇게 멀어? 투덜거리는 남편을 내가 점잖게 타일렀다. “21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저 멀리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로 이동하는 거잖아. 그 시공간의 간극을 건너뛰러면 이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어?”

p348 리틀 스파르타는 야생의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가 만나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 공간을 이해하려면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 정치, 철학, 사상, 문학, 신화, 전설, 음악, 미술, 예술 등 인류 문명의 모든 것을 담고 있으니 세상에 이렇게 유식한 정원이 또 있을까

p358 그대 어머니 마리 드 기즈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프랑스 궁전에서 자란 메리는 어머니인 마리 드 기즈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그러나 당시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미 개신교가 권력을 장악한 상태였다. 메리는 실질적인 개신교 국가에 유일한 카톨릭 신자로 왕위에 올랐다.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다. 메리는 개신교 지도자 존 녹스의 배려로 스코틀랜드에서 유일하게 카톨릭 미사에 참여할 특권을 갖게 되었지만, 개신교 신자들 눈에 곱게 보일리 만무했다.

p374 음탕하기 그지없는 앤 불린의 딸! 사생아에 불과한 주제에 감히 내 앞에서 도덕을 논해? 천박하고 음탕한 창녀 같으니! 내 저주가 네 머리 위에 떨ㄹ어질 것이다! 너같이 천한 사생아 때문에 잉글랜드 당이 더렵혀졌어! 뭐, 이정도면 그냥 날 죽여달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경악을 금치 못한 신하들이 “저 여자 미쳤나 봐”를 합창하는 가운데, 엘리자베스 역시 메리의 죽음을 예고하는 격정적인 아리아를 미친듯이 쏟아낸다.

p380 이 대목을 해설하는 오디오 가이드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마치 연극대사를 읊는 것처럼 실감 나게 상황을 묘사한다. 중간에 비명을 지르는 효과음까지 들어가니 내가 마치 그 살해의 현장에 있는 듯 등골이 오싹했다. 당시 메리는 임신중이었다. 임신한 몸으로 총애하던 시종이 눈앞에서 무참히 살해당하는 광경을 보았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p394 소년의 유령은 자넷 더글러스의 회색빛 유령, 악마와 카드놀이를 하는 비어드 백작의 유령과 함게 글래미스 성에서 가장 자주 목격되는 유령으로 꼽힌다.

p396 맥베스 부인은 남편의 마음이 약해질까 걱정한다. 그래서 자기의 사악하고 강한 정신을 남편의 귓속에 퍼부어주겠다고, 황금의 왕관을 방해하는 그 모든 것들을 혀의 힘으로 쫓아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여기서 소프라노가 구사하는 거친 목소리와 고집스럽게 상승하는 오케스트라 반주는 권력을 향한 맥메스 부인의 강렬한 의지를 상징한다.

p404 본격적인 식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로버트 번스가 지은 설커크 기도문을 낭독한다. 어떤 사람은 고기를 먹을 수 없고, 어떤 사람에게는 고기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겐 고기가 있고, 그것을 먹을 수 있으니 주여!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p409 해리포터의 촬영이 끝난 후 조개집은 철거되었지만 도비의 무덤은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도비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다. 평범한 바닷가였던 프레시워터 웨스트가 해리 포터 팬들의 성지가 된 것이다. 지금 무덤에는 방문객들이 갖다 놓은 자갈이 쌓여있다.

p419 최초의 이스테드보드는 1176년에 열였다. 웨일스 귀족과 리스 경이 카디건에 있는 자신의 성에서 웨일스 각지에서 온 시인과 음악가들의 실력을 겨루는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최고의 실력을 지닌 시인과 음악가에게는 리스 경의 의자를 상으로 수여했는데, 상으로 의자를 주는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p424 포트메리온에 있는 건물 중에는 마을을 조성하며 새로 지은 것도 있지만 옛날 건물을 옮겨 와 복원한 것도 있다. 애초에 엘리스 경이 내세운 슬로건이 과거를 보존하고 현재르 ㄹ꾸미며 미래를 건설한다였는데 이처럼 과거를 보존한 건물 중에 브리스톨 기둥이 있다.

p426 이번 영국 여행의 성과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웨일스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 웨일스가 이렇게 좋은지 미처 몰랐다. 그래서 일정을 사흘밖에 잡지 않은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 언제 기회가 되면 펨브로크셔 국립 해양공원 둘레길 전 구간을 걷고 싶다. 나중에 보니 웨일스 해안 먹거리 영상을 올린 그 아저씨가 투어도 한단다. 그 팀에 합류해 웨일스 해얀에 널려 있는 안주들을 초고추장, 소주와 함께 섭렵할 날을 기대해본다.

p443 증상이 나타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슈만은 또다시 천사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천사의 소리가 아니었다. 죽음을 부르는 소리, 뭉크의 그림처럼 기괴하고 섬뜩한 소리였다. 슈만은 한 해 전에 썼던 바이올린 협주곡의 주제를 가지고 변주곡을 작곡했다. 환청을 배경으로 작곡한 그 곡이 바로 유령 변주곡이다.

p445 이보다 더 압권인 것이 있다. 바로 절규 케이크다. 토핑으로 올린 초콜렛에 비명을 지르는 남자의 얼굴이 새겨진 케이크인데, 뭉크 미술관의 카페에서 이 케이크를 팔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있는 뭉크의 절규 앞에서 그림 속 남자돠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은 다음 카페에 와서 절규 케이크를 먹는다.

p454 그 산을 넘는다고 끝이 아니었다. 그 앞에 또 다른 산이 있었다. 그렇게 ‘이 산이 아닌가벼’를 반복하며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세 번, 드디어 비교적 평지에 가까운 고원지대에 이르렀다. 호모 사피엔스로서 평지에서 직립 보행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p458 쉐락볼튼도 그렇고 프레이케스톨렌도 그렇고, 노르웨이의 자연은 우선 그 거대한 사이즈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송 오브 노르웨이를 통해 노르웨이의 자연을 보기는 했지만 직접 모면 영화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감동이 밀려온다. 고요한 피오르의 푸른 물 밑에 엄청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듯 보였다.

p464 이 코스를 돌면서 폭포는 원도 한도 없이 본 것같다. 송 오브 노르웨이에도 나오는 쌍동이 폭포 라테 폭포를 비롯해서 노르웨이에서 제일 유명한 폭포인 뵈링 폭포와 스타인달스 폭포, 그리고 우리나라 같으면 분명히 관광 명소가 되고도 남을 법한 수많은 듣보잡 폭포를 보았다.

p472 콘서트가 끝나고 음악당 뒤로 난 길을 걸었다. 그리그가 생전에 걸었을 법한 길을 걷다 보니 호수가 보이는 바위 언덕이 나타났다. 거기에 그리그의 무덤이 있었다. 황혼 무렵에 친구와 낚시를 하던 그리그가 바위에 낙조가 비치는 장면을 보고, 죽으면 그 바위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말대로 그리그와 그의 아내 나나는 지금 이 바위 밑에 묻혀 있다.

p490 음향이 좋기로 소문난 암석 교회에서는 수시로 음악회가 열린다. 음악회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 독창회, 피아노 독주회, 실내악 연주회, 함창 공연 등 다양한데, 이 중에서 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를 가장 보고 싶었다. 파이프 오르간은 암석 교회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일핏 보면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데, 파이프가 무려 3001개라고 한다. 3001개의 파이프에서 나온소리가 천연 암석에 반사되어 울리는 소리가 어떨지 궁금했다.

p492 핀란디아는 핀란드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일종의 민족송가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세상에 이렇게 국뽕에 충만한 음악이 또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웅장해지고, 뭉클해진다. 핀란드 사람도 아닌 내가 이 정도니 핀란드 사람들은 어떨까.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가슴 벅찬 애국심을 느낄 것이다.

p498 예배당이라고 하지만 종교의식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따라서 일요일에도 예배가 없다. 결혼식 같은 사적인 행사도 가질 수 없다. 오로지 개인적인 평화와 고요함을 위한 공간인 것이다.

p504 핀란드 헬싱키에서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갈 때는 바이킹 라인이라는 페리를 이용했다. 저녁에 헬싱키를 출발해 아침에 스톡홀롬에 도착하는 심야 페리였는데, 이렇게 잠을 자면서 이동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밤바다 위에서의 낭만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p508 구스타프 6세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6년, 경주에 있는 서봉총의 발굴 작업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왕자 신분으로 일본을 국빈방문 중이었던 구스타프 6세는 일제의 요청으로 경주 고분 발굴 작업에 참여했다. 그 고분 이름이 서봉총인데, 여기서 서는 스웨덴을 가리키는 한자어다

p518 밀레의 피조물들은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신의 손가락 위에 서 있는 인간은 금방이라도 땅으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자세를 하고 있었고, 앞으로 팔을 힘껏 벋은 인간은 날개 달리 말 페가수스와 함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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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문명과 이스라엘 - 고대근동 3천 년
주원준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2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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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인류 최초의 문명과 이스라엘
작가 : 주원준
출판사 : 서울대학교 출판 문화원
읽은기간 : 2026/04/11 -2026/04/19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곳 메소포타미아..

세계사를 공부하면 항상 제일 먼저 나오는 곳이다.

그만큼 오래됐고, 역사적으로 꼭 알고 싶은 곳이다.

그런데 유적과 유물, 문자가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인지 세계사책에서는 몇 페이지 흝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이 고대문명과 역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한국책이 나왔다.

책을 읽다보니 내가 왜 헷갈려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같은 이름의 국가가 BC 3000년대에도, BC 2000년대에도, BC1000년대에도 있다보니 다 그나라가 그나라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편견과 달리 아시리아는 잔인하긴 하지만 상업의 나라였고, 금방 망한 나라가 아니라 오랫동안 영속했었다는 게 신기했다. 문화적으로 우월감을 가진 바빌로니아도 재미있었다.

수메르와 아카드의 땅이라는 별명도 멋졌다.

한국인이 쓴 책을 보니 정서가 맞아서 그런가 더 재미있었다.

올해의 책 후보다.


p19 고대근동학이 다루는 시대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제의 정복 이전, 곧 헬레니즘화 이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p22 스스로 더 세련되고 발전되었다고 생각하는 하이집트와 소박하고 전통적인 문화가 강했던 상이집트의 갈등과 협력은 7천년 이집트 역사를 관통한다. 고대 이집트는 하드웨어적인 면이나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 고대근동 세계의 전통적 강국이었다.

p23 태초의 시작은 남부였다. 기원전 3500년경 인류 최초의 수메르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남부 우르크를 중심으로 발생했고이들은 당시 북쪽의 아카드나 바빌론과 맞서 전쟁을 치렀다.

p24 다양한 민족과 교류를 맺었기에 북부의 문화는 비교적 개방적이고 세속적이고 지취적인 반면, 남부는 전통적이고 더 종교적이다. 아시리아 제국은 무력과 혁신을 앞세워 세계 최초의 제국주의를 이루었고, 기원전 1천 년기에 300년이나 강성했지만 남부의 바빌로니아는 아시리아의 통치술을 이어받았음에도 88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하지만 종교적, 문화적 정통성은 언제나 남부가 더 강했다.

p50 기원전 4천 년대와 3천 년대를 다루는 대목에서 줄잡아 50여 개 정도의 지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당시 지명을 안다. 지명이 확인된 곳에서 사람들이 어느 정도 큰 규모로 정착해 도시를 세우고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르크 이후에 또는 우르크와 함게 다른 도시들도 출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p54 최초의 도시 우르크에 이미 인류의 문명을 이루는 기본 요소들이 한번에 모두 출현했다. 그래서 도시의 출현은 사회의 근본적인 재창조라고 할 수 있다.

p58 청금석이 쓰인 물건에는 금과 은이 아낌없이 쓰였다. 그런데 청금석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나지 않고 현대의 아프카니스탄 지역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이 시기에 이미 먼 중앙아시아에서 나는 재료를 가져다 썼다는 말인데 그 수입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p59 에리두는 ‘세상에서 가자 ㅇ오래된 수도’였으며, 우르는 문화적 선진국이고, 아카드는 무력이 강한 도시였으며, 최고신 엘린을 주신으로 모신 닙푸르는 종교적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수메르의 로마 혹은 메카”로 인식되었다.

p61 사르곤이 등장했다. 기원전 24세기였다. 그는 아카드제국을 세워 뛰어난 무력으로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통일했다.

p65 사르곤의 손자 샤르-칼리-샤리가 대를 잇는다. 사르곤이 정복한 땅의 사람들은 사르곤이 죽자 반란을 일으켰다 동서남북의 반란을 잠재우고 아카드 제국을 건사한 임금이 나람-신이다. 나람-신은 할아버지 사르곤처럼 정복왕의 면모가 뚜렷하다

p72 사실상 신바빌로니아어나 신아시리아어는 특정한 지역과 시대에서 사용된 아카드어일 뿐이다. 아카드어를 익히면 후대의 제국인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원문에 접근할 수 있으니, 고대근동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카드어 공부는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실제로 아카드어를 공부하지 않고 고대근동학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p73 먼 경계지역에서 적들이 쳐들어와서 제국을 흔들어 놓거나 때로는 제국을무너뜨릴 것이다. 서쪽의 아무르인들, 서북쪽의 히타이트인들, 동쪽의 메대(페르시아)가 그 변방의 침입자 역할을 맡을 것이다.

p79 함무라피 법전이라면 흔히 동태복수법의 원리를 더올리기 마련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이 원칙은 다소 원시적인 것으로서,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면서 점차 돈으로 보상하는 원칙으로 진화했다는 지식이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이와 다르다. 함무라피 법전보다 더 오래된 신수메르 시대 법전에서는 본디 돈으로 보상하는 원칙이었다.

p80 아카드가 무력을 앞세운 호전적 제국이었다면, 우르 제3왕조는 외교를 중심으로 통치했다는 인상을 준다. 임금이 원정한 기록은 훨씬 적다. 이런 우르 3왕조의 통치술을 확립한 임금은 슐기라고 전한다.

p87 실제로 상,하 이집트의 갈등과 대결은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나일강 삼각주에 자리잡은 하이집트는 모든 것이 넉넉하다. 반면에 상이집트는 나일강 주변의 도시들에만 사람들이 산다.

p102 고왕국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임금의 역할이 확립되었다. 파라오는 이집트 전체에서 가장 높은 존재였다. 파라오는 수도에 좌정했고, 내치와 외치는 물론 온 백성의 삶을 책임졌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성립되어 세금을 걷고 교역을 장려했으며 홍수를 측정했다. 그리고 이미 이 시기에 크고 평평한 벽돌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p107 마스타바 건축은 고왕국부터 프톨레마이오스 시대까지 주욱 이어졌지만 고왕국과 중왕국에서 특히 활발했다(신왕국부터는 분묘가 널리 쓰였다) 그러므로 피라미드만 보지 말고 피라미드와 마스타바를 함께 보는 눈이 필요하다.

p118 피라미드 건설사업에 참여한 일꾼들은 봉급도 좋았고 사회적 지위도 낫지 않았다. 때때로 거대한 피라미드 건설사업은 농한기에 경제적 수입을 보장하는 일이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의 거대 피라미드가 노예들의 강제노동의 결과라는 견해는 과거의 것으로 현대 학자들에게 거의 수용되지 않는다. 사실 채찍에 맞고 굶주리는 노예들의 강제노동으로 그렇게 크고 정교한 작품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p123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수메르-아카드 문명이 탄생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서로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기원전 3천 년대에는 직접 충돌하지 않았다. 아나톨리아 반도나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기록들이 나오지 않는다.

p131 팔레스티나 지역이 역사에 등장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구약성경에는 이 시기의 도시국가, 임금의 이름, 그들의 경쟁 역사적 주요 사건 등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구약성경은 이 시기 고대근동의 중요한 사건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구약성경만 읽은 사람들에게 이 시대는 매우 막연하거나낯선 느낌을 줄 것이다.

p138 앗슈르라는 도시의 영역이 끼치는 넓은 지역을 아시리아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학문적 용어는 중요한다. 앗슈르는 도시의 이름이고 아시리아는 영역국가의 이름이다. 학자들이 이때의 아시리아를 고아시리아라고 하고, 그 이전의 아시리아를 초기 아시리아라고 부른다. 샴쉬-아다드 1세가 죽자 세상은 다시 어지러워졌다.

p143 앗슈르의 샴쉬-아다드 1세를 이어 바빌론의 함무라피는 기원전 2천 년대 전반기의 메소포타미아를 평정했다. 사유화가 시작되고 희년이 선포되었다. 바빌론의 안정기에 수메르-아카드 문학은 황금기를 누렸다.

p155 기원전 2천 년대 메소포타미아 문화권의 사람들은 가장 높은 신 엔릴과 그의 명을 받아 실제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다드를 섬겼을 것이다. 최종결정권은 엔릴에게 있지만 평범한 인간사의 길흉화복은 하다드로 체험되었다. 그가 비와 바람을 통제하는 신이었기 대문이다.

p196 제국이 된 히타이트는 문명을 가르쳐준 상인의 나라에 무역봉쇄로 맞선 것이다. 상인의 나라 아시리아를 상대로 경제재제가 얼마나 유효한 전략인지 히타이트는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 같다.

p203 밋탄과 아시리아는 숙적이었다. 양자 모두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위치했기에 밋탄이 강성할 당시에 아시리아는 밋탄에 조공을 바쳐야 했고 아시리아가 흥하면 밋탄은 위축되어야 했다.

p206 히타이트, 밋탄, 이집트가 기원전 2천 년대 후반기를 지배한 3대 강대국이다. 그런데 이 3대국이 교차하는 지역, 곧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에 자리잡은 소국들이 있다.

p209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 잡은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의 소국들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곳에서 완충지대의 역할을 했기에 충서을 과장해 환심을 살 필요가 있었으며, 그래서 이 편지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으면 안 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외교문서에서 진의를 해독해 내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p227 권력을 휘두른 여성 가운데 으뜸은 핫셉수트다(기원전 1473-1458년경). 그녀는 공주로 태어나 왕비가 되었고 섭저의 대비에 올랐고 결국 파라오가 되었다.

p230 후대의 왕명록에서도 그녀는 삭제된다. 후대의 이집트 지식인들그녀를 너무 예외적 현상으로 이해한 듯하다. 재위 시절 그녀는 성공적인 임금이었다. 내치와 원정을 모두 잘 했고 비범한 통치 이데올로기로 왕권도 안정을 꾀했다. 하지만 신의 딸도 역사의 편견까지는 바로잡을 수는 없었다.

p251 새로 등장하는 아시리아를 견제하고 불안한 왕위르 ㄹ안정화하기 위해 이집트와의 외교에 힘썼다. 그리하여 두 대국은 평화조약을 맺었다. 이를 흔히 카데쉬 조약 또는 이집트-히타이트 평화조약으로 일컫는다.

p262 이 지역에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인들의 건국서사는 이드리미와 비슷하지만 실제 국가 운영에서는 우가릿을 깊이 참조했던 것 같다. 독자적 글자와 언어를 사용하고 경제와 문화의 수준이 높았던 우가릿은 충분히 후대의 모범이 될 만한 나라였다.

p269 기원전 1천 년대는 순서대로 신아시리아-신바빌로니아-페르시아-그리스의 시대였다. 신아시리아는 고대근동 전역을 통일하며 첫 장을 열었다.

p271 경제적 목적을 위해 제국은 상상의 공간을 실현했다. 이미 기원전 2천 년대부터 아시리아인들은 세계를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인식했다. 첫째는 앗슈르 본토, 곧 앗슈르의 땅이고 나머지느 ㄴ앗슈르의 멍에 아래 있는 땅이었다.

p273 이런 기록들과 주변 민족의 기록을 대조해 현대 학자들은 기원전 910년에서 649년에 이르는 기간의 모든 연호와 사건을 알고 있다. 게다가 기원전 763년 6월 15일에 발생한 일식을 기준으로 절대연도를 정확히 환산할 수 있다. 그리하여 기원전 1천 년대의 사건은 예루살렘 할락 사건처럼 해와 달과 날짜마저 정확히 계산될 수 있다.

p296 역사의 가정법은 소용없다지만, 만일 요시야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남유다는 유배를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요시야는 훗날 신학적으로도 높이 평가받는 임금이다. 여러모로 판단력과 기백이 남다른 임금이었지만 현실을 냉혹했다.

p300 바빌론 문학의 수준은 드높았다. 에누마 엘리쉬, 에라 이야기, 길가메쉬 이야기 그리고 바빌론 신정론 등은 바빌론 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다. 네 편 모두 장편의 서사를 갖추고 있고 그 짜임새와 표현과 성찰이 인류 문학사의 높은 성취로서 손색이 없다.

p310 페르시아는 가장 혁신적일 뿐 아니라 유연하게 다양성을 보장하는 제국이었다. 고대근동의 가장 큰 영토를 다스린 “페르시아 제국은 다양한 언어, 문화, 경제, 사회조직들을 성공적으로 융화시켰을 뿐 아니라 근동에서 처음으로 백성들 내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국가가 되었다.

p321 이스라엘의 이런 태도는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 당시 소국들은 대개 페르시아의 지배자들을 관대하게 모사했다. 이런 면에서도 구약성경은 소국의 인식을 반영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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