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클래식 - 모든 길에는 음악이 흐른다
진회숙 지음 / 상상스퀘어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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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길 위의 클래식
작가 : 진회숙
출판사 : 상상스퀘어
읽은기간 : 2026/04/08 -2026/04/26


음악평론가 진회숙님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쓴 산문집..

여행지마다 그 지역에 대한 소개에 더하여 잘 어울리는 음악들을 소개해 준다.

덕분에 다녀온 지역은 추억과 함께 들어보고 싶은 음악리스트가 만들어졌고, 가보지 못한 곳은 그리움과 상상력이 더해져 더 가고 싶게 만든다.

글을 잘 쓰시는 분이라 재미있게 읽었고, 사진도 풍성해서 여행산문집으로 더할나위 없이 좋다.

'진회숙님이 썼고, 이정도의 내용이라면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몰라보고 안 읽었을리가 없는데..' 라는 생각을 했느데 출판사를 보고 바로 알았다.

내가 이 책을 왜 안 읽었는지...

출판사는 독서모임 같은 걸 만들어서 사람들을 모집한 후 자기네 책을 읽고 홍보글을 쓰게한다고 해서 악명이 자자하다는 소문을 들은 곳이었다.

사실이건 아니건 내가 꺼리는 출판사다 보니 이런 좋은 책도 나중에 읽게 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안좋다고 소문난 출판사 책을 홍보하거나 옹호할 생각이 없다.

진회숙님이 다음번에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내시면 그때 별 많이 드리는 것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p21 노예 출신의 자유민 즉, 벼락부자들이 부상하면서 윤리의식도 무너졌다. 이는 폼페이의 건출물을 장식한 그림이나 모자이크, 조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주 에로틱한, 지그 ㅁ보아도낯 뜨거운 것들이 많다. 베티의 집 역시 이런 벼락부자의 몰취미를 보여준다. 이 집에는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한 그림, 심지어는 성폭행의 대상으로 묘사한 그림도 있다. 반면에 옷을 벗고 남근을 드러낸 남성을 풍요와 번영의 상징이자 집안의 수호자로 묘사한 것이 눈에 띈다

p25 폼페이 발굴 초기에는 너무 음란하고 선정적이어서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에로틱한 벽화의 대부분은 지금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의 비밀의 방에서 전시되고 있다. 고대 성인 스포츠의 다양한 자세를 학구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들은 참고하시라

p33 실낙원의 저자 존 밀턴을 비롯해서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레오파르디, 독일의 문호 괴테, 영국의 시인 바이런, 셸리, 키츠, 스콧, 프랑스 작가 라마르틴, 뮈세, 미국 시인 롱펠로우 등 걸출한 문학의 거장들이 모두 이곳에 머물렀다. 미국의 소설가 제임스 페니코어 쿠퍼는 이 호텔에 머물며 소설 물의 마녀를 완성했고, 스토 부인은 소렌토의 아그네스의 영감을 얻었으며,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은 이곳에 6개월간 머물며 유령을 썼다.

p43 카루소가 묵었던 소렌토의 호텔에는 카루소 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카루소를 작곡했던 루치오 달라 룸도 있고, 마가렛 공주가 특히 사랑했다는 마가렛 룸도 있으며, 특히 루치아 달라가 작곡한 카루소를 세상 누구보다 잘 불렀던 파바로티 룸도 있다고 한다. 호텔이 아니라 말 그대로 노래의 전당인 셈이다.

p63 거대한 기마상을 제작하는 작업에 착수하자마자 갑자기 자동 대포발사기가 떠올라 하던 일을 멈추고 설계에 들어갔다가, 얼마 못 가 수직 이동이 가능한 헬리곱터에 꽂혀 대포발사기를 제쳐두는 식이었다. 다빈치가 오래 살았는데도 완성작이 별로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p71 단테를 존경했던 귀도 다 노벨로 플렌타는 자신의 고모뻘인 프란체스카가 시인의 역작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자기 가문 출신의 프란체스카를 비난하지 않고, 사랑에 희생된 가여운 여인으로 묘사한 데 고마움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p76 지은 지 1000년이 넘은 산 프란체스코 성당 역시 오랜 세월 동안 서서히 가라앉았고, 그러면서 지하실에 물이 차게 되었다. 그 바람에 제단 밑의 연못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이 생겼다.

p93 라파엘로는 이렇게 서로 만날 일이 없는 대학자들을 한데 모아 전무후무한 장면을 연출했다. 비록 상상화지만 세상에 이처럼 지적 에너지가 충만한 그림이 또 있을까 싶다.

p100 돌 위에 파인 사람의 발자국이 실제 베드로의 발자국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성 체칠리아의 손가락과 마찬가지로 베드로의 발자국 역시 믿음의 영역인 것을.

p113 양쪽에 발코니가 있는 산 마르코 대성당의 내부를 둘러보면서 나는 몬테베르디가 이 구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했을지 상상해보았다. 그는 발코니 곳곳에 성가대와 연주자를 배치해 사방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는 스테레오 효과를 구사했다. 그렇게 드라마틱한 발상과 색채적인 표현력으로 산 마르코 대성당을 아름답고 화려한 천상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p127 그레고리오 성가는 무미건조한 음악이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예술적 감동을 추구하지 않는다. 감각적인 것을 거부함으로써 이것이 인간의 음악이 아닌 신의 음악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이렇게 과도한 장식을 지양하고,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단순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노력은 결과적으로 그 안에 깃든 정신적 내용이 더욱 풍부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효과로 이어졌다.

p146 정원일에 열정적이었던 모네는 그림을 그리면서 터득한 색의 조화와 화면 구성에 대한 지식을 정원을 만드는 데 십분 활용했다. 한쪽 꽃밭에는 온갖 종류의 꽃들을 심은 반면 다른 쪽에는 같은 종류, 같은 색깔의 꽃을 심었다. 마치 한 사람의 화가가 한 가지 물감을 칠해놓은 듯 말이다.

p148 모네의 그림을 음악으로 옮기면 바로 드뷔시의 음악이 된다. 모네의 그림은 눈으로 듣는 음악이고, 드뷔시의 음악은 귀로 보는 그림이다.

p178 현재 왕비의 극장은 베르사유 궁전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하지만 베르사유 궁전을 다녀 간 사람 중에 이 극장을 보았다는 사람은 드물다. 대개는 이런 극장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근처에 있는 프티 트리아농이나 그랑 트리아농만 보고 가기 때문이다

p179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녀는 의연히 최후를 맞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폭도들 앞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왕비로 품위 있게 죽는 것, 그리하여 왕족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는 것, 아마 그녀가 자신이 속한 계급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p200 루소의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와 로시니가 오페라로 만든 볼테르의 비극 세미라미스 사이에는 프랑스어로 쓰였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 루소가 소박한 민중의 삶을 그린 새로운 오페라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을 때에도 볼테르는 귀족 취향의 고전 비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p205 시내에 들어오니 거리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볼테르의 동상이 보였다. 동상 밑에 페르네의 대부라는 명패와 함께, 그가 페르네를 위해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우고, 분수와 우물을 만들고, 숲을 조성하고 , 늪지대를 메우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도로와 저수지, 인공 수로를 건설하는 등의 일을 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고 볼테르가 페르네라는 도시의 부흥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p210 서재를 가득 메웠던 7000여 권의 장서 역시 다른 사람에 팔렸다. 당시 이 방대한 장서를 사 간 인물은 계몽주의 신봉자로, 볼테르를 존경했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였다. 수십 대의 마차에 책을 싣고 가는 장면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프랑스에서 러시아로 건너간 볼테르의 장서들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다가 지금은 러시아 국립 박물관의 볼테르 룸으로 옮겨진 상태다.

p233 생전에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왕으로 불렸는데, 이는 감자를 통해 기근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지금 상 수시에 있는 그의 무덤에 가면 참배객들이 놓고 간 감자를 볼 수 있다.

p280 전설에 나오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성 같은 건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다. 왕은 순전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저 재미로, 어린 시절의 판타지를 실현하기 위해 성을 지었다.

p282 왕조의 홀은 비잔틴 양식 특유의 화려한 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특히 짙은 푸른색과 보라색 기둥 그리고 나긋나긋한 아르누보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식물과 동물 모양의 바닥 모자이크가 아름답다

p289 린더호프 궁전에는 깜짝 놀랄 만한 곳이 있다. 산에 굴을 파서 만든 거대한 인공 동굴이다.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에 나오는 비너스 동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데, 보는 순간 미쳤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p297 내용이 형식을 지배하고, 형식은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옛 귀족문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바이에른 국립극장의 화려한 위용과, 그 계단에 길게 깔린 레드 카펫, 그리고 한껏 잘 차려입고 그 위를 밟는 오페라 관객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형식에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풍성한 문화적 전통의 내용을 보았다.

p301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한 눈치작전이 필요하겠지만 여하튼 티켓을 사지 못한 사람은 매트와 담요 그리고 와인만 준비해 막스 요제프 광장으로 가면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와인을 마시고 웃고 떠들며 적당히 축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으니까.

p309 건물보다 높이 자란 가로수가 길게 늘어선 슈바빙 거리를 걷는 동안 내 나이 또래의 한국인 관광객을 여럿 만났다. 전혜린이 말한 회색빛 나의 거리를 보러 온 사람들이리라. 그러나 그날의 슈바빙 거리에 회색빛 우울은 없었다. 날씨가 화창했기 대문일까. 우울은 커녕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에 긍정의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p318 카이저라는 작곡가오 함께 음악이 있는 희극을 구상하기도 했는데, 이때 우연히 바이마르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를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카이저와 함께 구상했던 희극의 모든 것이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그대로,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차원 높은 형태로 구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괴테는 모차르트 오페라의 숭배자가 되었다.

p332 자유를 빼앗긴 사람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안다. 실러는 도피 생활을 하던 1785년에 그 유명한 환희의 송가를 썼다. 그런데 본래이 작품의 제목은 자유의 송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군주제가 굳건하던 곳에서 자유라는 말을 쓰면 검열에 걸릴 듯해 자유를 환희로 바꾸었다.

p340 이거 왜 이렇게 멀어? 투덜거리는 남편을 내가 점잖게 타일렀다. “21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저 멀리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로 이동하는 거잖아. 그 시공간의 간극을 건너뛰러면 이 정도 수고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어?”

p348 리틀 스파르타는 야생의 자연과 인간의 이야기가 만나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 공간을 이해하려면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 정치, 철학, 사상, 문학, 신화, 전설, 음악, 미술, 예술 등 인류 문명의 모든 것을 담고 있으니 세상에 이렇게 유식한 정원이 또 있을까

p358 그대 어머니 마리 드 기즈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프랑스 궁전에서 자란 메리는 어머니인 마리 드 기즈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그러나 당시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미 개신교가 권력을 장악한 상태였다. 메리는 실질적인 개신교 국가에 유일한 카톨릭 신자로 왕위에 올랐다.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다. 메리는 개신교 지도자 존 녹스의 배려로 스코틀랜드에서 유일하게 카톨릭 미사에 참여할 특권을 갖게 되었지만, 개신교 신자들 눈에 곱게 보일리 만무했다.

p374 음탕하기 그지없는 앤 불린의 딸! 사생아에 불과한 주제에 감히 내 앞에서 도덕을 논해? 천박하고 음탕한 창녀 같으니! 내 저주가 네 머리 위에 떨ㄹ어질 것이다! 너같이 천한 사생아 때문에 잉글랜드 당이 더렵혀졌어! 뭐, 이정도면 그냥 날 죽여달라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경악을 금치 못한 신하들이 “저 여자 미쳤나 봐”를 합창하는 가운데, 엘리자베스 역시 메리의 죽음을 예고하는 격정적인 아리아를 미친듯이 쏟아낸다.

p380 이 대목을 해설하는 오디오 가이드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마치 연극대사를 읊는 것처럼 실감 나게 상황을 묘사한다. 중간에 비명을 지르는 효과음까지 들어가니 내가 마치 그 살해의 현장에 있는 듯 등골이 오싹했다. 당시 메리는 임신중이었다. 임신한 몸으로 총애하던 시종이 눈앞에서 무참히 살해당하는 광경을 보았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p394 소년의 유령은 자넷 더글러스의 회색빛 유령, 악마와 카드놀이를 하는 비어드 백작의 유령과 함게 글래미스 성에서 가장 자주 목격되는 유령으로 꼽힌다.

p396 맥베스 부인은 남편의 마음이 약해질까 걱정한다. 그래서 자기의 사악하고 강한 정신을 남편의 귓속에 퍼부어주겠다고, 황금의 왕관을 방해하는 그 모든 것들을 혀의 힘으로 쫓아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여기서 소프라노가 구사하는 거친 목소리와 고집스럽게 상승하는 오케스트라 반주는 권력을 향한 맥메스 부인의 강렬한 의지를 상징한다.

p404 본격적인 식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로버트 번스가 지은 설커크 기도문을 낭독한다. 어떤 사람은 고기를 먹을 수 없고, 어떤 사람에게는 고기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겐 고기가 있고, 그것을 먹을 수 있으니 주여!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p409 해리포터의 촬영이 끝난 후 조개집은 철거되었지만 도비의 무덤은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도비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다. 평범한 바닷가였던 프레시워터 웨스트가 해리 포터 팬들의 성지가 된 것이다. 지금 무덤에는 방문객들이 갖다 놓은 자갈이 쌓여있다.

p419 최초의 이스테드보드는 1176년에 열였다. 웨일스 귀족과 리스 경이 카디건에 있는 자신의 성에서 웨일스 각지에서 온 시인과 음악가들의 실력을 겨루는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최고의 실력을 지닌 시인과 음악가에게는 리스 경의 의자를 상으로 수여했는데, 상으로 의자를 주는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p424 포트메리온에 있는 건물 중에는 마을을 조성하며 새로 지은 것도 있지만 옛날 건물을 옮겨 와 복원한 것도 있다. 애초에 엘리스 경이 내세운 슬로건이 과거를 보존하고 현재르 ㄹ꾸미며 미래를 건설한다였는데 이처럼 과거를 보존한 건물 중에 브리스톨 기둥이 있다.

p426 이번 영국 여행의 성과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웨일스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 웨일스가 이렇게 좋은지 미처 몰랐다. 그래서 일정을 사흘밖에 잡지 않은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 언제 기회가 되면 펨브로크셔 국립 해양공원 둘레길 전 구간을 걷고 싶다. 나중에 보니 웨일스 해안 먹거리 영상을 올린 그 아저씨가 투어도 한단다. 그 팀에 합류해 웨일스 해얀에 널려 있는 안주들을 초고추장, 소주와 함께 섭렵할 날을 기대해본다.

p443 증상이 나타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슈만은 또다시 천사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천사의 소리가 아니었다. 죽음을 부르는 소리, 뭉크의 그림처럼 기괴하고 섬뜩한 소리였다. 슈만은 한 해 전에 썼던 바이올린 협주곡의 주제를 가지고 변주곡을 작곡했다. 환청을 배경으로 작곡한 그 곡이 바로 유령 변주곡이다.

p445 이보다 더 압권인 것이 있다. 바로 절규 케이크다. 토핑으로 올린 초콜렛에 비명을 지르는 남자의 얼굴이 새겨진 케이크인데, 뭉크 미술관의 카페에서 이 케이크를 팔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있는 뭉크의 절규 앞에서 그림 속 남자돠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은 다음 카페에 와서 절규 케이크를 먹는다.

p454 그 산을 넘는다고 끝이 아니었다. 그 앞에 또 다른 산이 있었다. 그렇게 ‘이 산이 아닌가벼’를 반복하며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세 번, 드디어 비교적 평지에 가까운 고원지대에 이르렀다. 호모 사피엔스로서 평지에서 직립 보행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p458 쉐락볼튼도 그렇고 프레이케스톨렌도 그렇고, 노르웨이의 자연은 우선 그 거대한 사이즈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송 오브 노르웨이를 통해 노르웨이의 자연을 보기는 했지만 직접 모면 영화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감동이 밀려온다. 고요한 피오르의 푸른 물 밑에 엄청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듯 보였다.

p464 이 코스를 돌면서 폭포는 원도 한도 없이 본 것같다. 송 오브 노르웨이에도 나오는 쌍동이 폭포 라테 폭포를 비롯해서 노르웨이에서 제일 유명한 폭포인 뵈링 폭포와 스타인달스 폭포, 그리고 우리나라 같으면 분명히 관광 명소가 되고도 남을 법한 수많은 듣보잡 폭포를 보았다.

p472 콘서트가 끝나고 음악당 뒤로 난 길을 걸었다. 그리그가 생전에 걸었을 법한 길을 걷다 보니 호수가 보이는 바위 언덕이 나타났다. 거기에 그리그의 무덤이 있었다. 황혼 무렵에 친구와 낚시를 하던 그리그가 바위에 낙조가 비치는 장면을 보고, 죽으면 그 바위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말대로 그리그와 그의 아내 나나는 지금 이 바위 밑에 묻혀 있다.

p490 음향이 좋기로 소문난 암석 교회에서는 수시로 음악회가 열린다. 음악회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 독창회, 피아노 독주회, 실내악 연주회, 함창 공연 등 다양한데, 이 중에서 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를 가장 보고 싶었다. 파이프 오르간은 암석 교회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일핏 보면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데, 파이프가 무려 3001개라고 한다. 3001개의 파이프에서 나온소리가 천연 암석에 반사되어 울리는 소리가 어떨지 궁금했다.

p492 핀란디아는 핀란드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일종의 민족송가다. 나는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세상에 이렇게 국뽕에 충만한 음악이 또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웅장해지고, 뭉클해진다. 핀란드 사람도 아닌 내가 이 정도니 핀란드 사람들은 어떨까.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가슴 벅찬 애국심을 느낄 것이다.

p498 예배당이라고 하지만 종교의식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따라서 일요일에도 예배가 없다. 결혼식 같은 사적인 행사도 가질 수 없다. 오로지 개인적인 평화와 고요함을 위한 공간인 것이다.

p504 핀란드 헬싱키에서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갈 때는 바이킹 라인이라는 페리를 이용했다. 저녁에 헬싱키를 출발해 아침에 스톡홀롬에 도착하는 심야 페리였는데, 이렇게 잠을 자면서 이동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밤바다 위에서의 낭만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p508 구스타프 6세는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6년, 경주에 있는 서봉총의 발굴 작업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왕자 신분으로 일본을 국빈방문 중이었던 구스타프 6세는 일제의 요청으로 경주 고분 발굴 작업에 참여했다. 그 고분 이름이 서봉총인데, 여기서 서는 스웨덴을 가리키는 한자어다

p518 밀레의 피조물들은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신의 손가락 위에 서 있는 인간은 금방이라도 땅으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자세를 하고 있었고, 앞으로 팔을 힘껏 벋은 인간은 날개 달리 말 페가수스와 함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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