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송라이터스 - 유재하부터 아이유까지, 노래로 기록된 사랑의 언어들
김영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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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송라이터스

 : 김영대 

 :  문학동네 

읽은기간 : 2026/03/10 -2026/03/13


이런 책 너무 좋다. 

발라드라는 장르에 대한 설명도 좋았고, 발라드에 해당하는 노래들에 대한 해석과 설명도 맘에 들었다. 

아쉬운 건 더이상 이 좋은 해석을 볼 수 없다는 것...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11 FM라디오는 누구나 즐길 수 있지만 모두가 즐기지는 않았던 힙스터 아닌 힙스터 문화였다.

p18 곡을 쓴다라는 행위에는 선율을 작곡하는 일뿐 아니라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는 작사의 영역도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p29 한국과 일본을 넘나든, 그야말로 초국가성을 정체성으로 삼아 태어난 한국형 팝발라드의 원조 슬픈 인연. 이 노래는 최초의 리메이크 메가히트곡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p34 동시대 뮤지션들, 그중에서도 화성과 코드 진행에 가장 민감한 악기인 건반을 연주하는 송라이터들이 가졌던 비슷한 문제의식과 지향점의 결과이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재미있는 사실은 보통 이런 문제에 대해서 뮤지션들은 늘 비슷한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가령 ‘사실 우린 그게 그렇게 특별한 건지 잘 몰랐어’ ‘평소 많이 듣던 팝의 영향을 받은 거지’라고 말하는 식이다. 어쨋든 그렇게 1985년은 한국형 팝발라드의 원년이 되

p50 이 곡을 통해 한국 록음악은 재능 있는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한 명을 잃었는지 모르지만, 가요계는 역대급 보컬리스트를 새롭게 얻었다. 시나위와 아시아나 등 당대 최고의 그룹을 거친 괴물 보컬 임재범은 이 밤이 지나면이 가져다준 엄청난 성공과 함께 주목을 받았지만 언더 vs 오버의 이분법, 그리고 음악의 완성도가 아니라 로커의 변절만을 문제삼던 당시 분위기와 맞물려 긴 슬럼프에 빠진다.

p56 발라드가 하나의 장르로 묶이기 어려운 것처럼, 시티팝 역시 자세히 파고들수록 그 경계가 흐릿하다. 그러나 이 장르 아닌 장르들은 한국 대중음악에서 뚜렷한 교차점을 굥유한다. 그것은 바로 현대성과 낭만성,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 모던한 감정의 풍경이다.

p72 이문세-이영훈의 발라드가 어필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음악정 특징은 예쁨이었다.

p80 송라이터 윤종신은 그 옛날 광화문 네거리 속 이영훈이 그러했듯 그리움의 대상이 떠나간 공간 속 추억과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쓰곤 하는데(동네 한바퀴, 모처럼, 거리에서)는 그 추억을 과거 속 박제된 추억이 아니라 매번 되살아나는 현재로 묘사한다는점에서 독특하다.

p102 문제는 그 모든 태도가 적어도 음악과 우리의 관계에서는 미덕으로 포장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노래의 서사가 가진 특수성이자 아이러니라 말할 수 있다. 현실이었다면 옆에서 쥐어박고 싶을 인물이지만, 노래 안에서는 오히려 그의 선량함에 감정이입하고, 그의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에게 원망을 느낀다.

p116 사랑의 위대함은 끝을 알면서도 시작한다는 데 있고, 사랑의 함정은 매번 이번만은 다를 거라며 믿고 다짐한다는 데 있다.

p145 다른 이를 사랑하지 말라며 울부짖는 화자의 목소리에는 당연히 전자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와닿는다. 그런데 그 의미를 후자로 바꾸어도 노래가 말하고자 하는 영원히 한 사람만을 향하는, 변치 않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 충분히 어울린다.

p156 정석원의 친형이기도 한 015B의 멤버 장호일이 SNS를 통해 밝힌 바에 의하면, 이 노래의 가사는 만화 총몽의 스토리에 영감을 받아 쓴 것이다. 총몽에서 주인공 알리티는 그리워하던 이도를 만나지만 그게 자신을 속이기 위해 연출된 꿈인 것을 깨닫고 헤어짐의 슬픈 운명을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p160 대단히 파워풀한 목소리임에도 그것을 철저히 미성으로 숨겼는데, 이는 곡이 가진 나이를 훨씬 낮추는 동시에 신인가수(그것도 얼굴 없는 가수)의 신비로움과도 완벽히 들어맞았다.

p174 몇 년이 지나 그렇게 보고 싶던 그 사람이 한층 더 아름답게 나이든 모습을 보며 안도하고, 지금 내곁에는 나를 믿고 있는(내가 사랑하는이라 쓰지 않은 박주연의 선택에 소름이 돋는다) 한 여자가 있다. 화자는 아내가 알 리 없는 오래전 그 추억이 담긴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모두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데, 왜 마음 한구석이 저릿한 걸까. 그래서 추억은 미련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p183 곡의 모든 구절은 그 길이, 발음, 운율에 맞추어 재치 있게 결합되어 있다. 박주연은 프리코러스 파트에서 “또” “음” “늘”이라는 별 뜻 없는 단음절 단어들로 멜로디의 리듬감을 살려가는데, 솜씨 좋은 작가들이 보여줄 수 있는 송라이팅의 노하우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p188 너무 촘촘하지도 그렇다고 성기지도 않은 외로움의 곁을 가만가만 풀어놓기 시작하는 장필순의 목소리도 관조적이다. 그가 말해주듯 식어가는 감정을 마치 꺼져가는 장작불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가만히 응시한다.

p211 1990년대 말 이후 케이팝의 풍경을 그대로 증언하는 미디엄템포의 R&B발라드 장르 위에 촌스러움이 배제된 미려한 선율은 가요계에 새로운 감각을 가진 송라이터가 등장했음을 직감하게 해주었다.

p216 두 버전의 가장 큰 차이는 일본어 가사에서 느껴지는 사랑은 꿈을 포갠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조금 더 아련하고 조심스러운 느낌이 있는데 반해 한국어 가사 버전은 그 사랑의 희망과 의지의 자세가 더 적극적인 느낌을 준다

p226 김동률 특유의 비브라토와 멜팅이 더해지면 그의 음악에서는 마치 지중해 바람을 맞으며 칸초네를 듣는 것 같은 이국적 낭만성이 흘러나온다. 그 낭만성과 외로움의 정서를 클래식음악에 비유하자면 브람스의 섬세하고 쓸쓸한 서정이 연상된달까. 독보적인 남성적 낭만은 바로 이 노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의 핵심적 매력이기도 하다

p231 생각지도 못한 전화 한 통을 받고 그는 기회일지 또다른 상처일지 모를 재회의 장소로 향한다. 그의 말처럼 이젠 없을 것 같았던 길을 뛰는 것에 감동하며, 무슨 전화였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 만남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지 아직은 알지 못하지만 그저 무심한 인사였어도 좋다는 한결같은 마음은 그런 것들을 개의치않는다.

p235 나와 술잔이 함께 울었다라는 표현은 마치 한시의 구절같이 고풍스러우며, 나는 너를 잊음으로 용서한다는 표현은 체념 속에서 다 버리지 못한 회환과 미련의 조각에 대한 너무도 정직한 다짐이다.

p253 발라드, 혹은 느린 사랑노래라는 개념은 분명 실체가 있긴 하지만 특정한 악곡 구조나 편곡 스타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그래서 음악보다는 문학적 정서에 더 가깝게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p276 어려운 원곡의 하이라이트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이들은 또래들 사이에서 예외 없이 영웅으로 군림했다. 대부분은 삑사리로 귀결되었지만 친구들의 우와 하는 존경의 눈빛을 기대하며 다들 한 번쯤은 도전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p280 신해철의 음악을 꿰뚫는 가장 중요한 테마는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일까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들이 정해 놓은 길을 마다하고 굳이 다른 길을 걷기로 한, 그리고 어쩌면 비현실적인 이상을 꿈꾸는 자신이 느끼는 버거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불안함과 의구심에 대한 이야기다

p291 본토 출신이지만 엄연히 한국인인 김조한의 목소리는 R&B가 인종의 영역이 아닐 수 있음을 처음 깨닫게 만든 계기였다. 수많은 이가 그의 목소리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자신만의 목소리로 R&B의 한국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p304 역사적인 히트곡 꿈에를 기점으로 R&B 본연의 색채는 다소 옅어지긴 했지만, 커리어 초반 박정현은 소울풀한 감성과 독창적인 밴딩, 그리고 화려한 애드리브를 구사하는 보기 드문 블랙뮤직 기반의 보컬리스트로서 이름이 높았다.

p317 듀엣 대신 컬래버 혹은 피처링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그때문일 것이다. 21세기 대중음악에서 듀엣은 절절한 사랑의 대서사시가 아니라 머뭇거리면서 키워가는 사랑인지 우정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풋풋한 호감, 같은 목표와 지향을 꿈꾸는 이들의 동료의식이나 협업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p326 이영훈, 유재하와는 또다른 맥락에서, 동물원의 김창기는 포크음악과 팝발라드 사이에서 한국식 서정주의의 한 지점을 들려줬던 인물이다. 김창기의 가사는 어려운 말로 거창하게 꾸미지 않고, 일상적 언어를 통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진심어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p330 떠남과 돌아옴, 본질과 허상, 집착과 초월의 이야기로도 해석할 수 있는 이 노랫말은 오즈의 마법사, 위대한 개츠비, 백년의 고독, 그리고 연금술사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반복되어온 주제의식, 그러니까 소중한 것으로의 귀환과 자각에 대한 스토리의 원형을 지극이 평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언어로 탐구하고 있다.

p338 원한다면 얼마든지 파워를 올릴 수 있겠지만, 이미 그 정도로도 충분히 풍성하고 짜릿하게 올린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마치 모든 노래를 80퍼센트 정도 출력으로 부르는 듯한 이 여유로운 감각은 당대는 물론 현재의 디바급 가수들에서도 쉽게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다.

p367 그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 곡들에 담긴 송라이터들의 생각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 쌓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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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김태완 지음 / 현자의마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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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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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 2026/02/22 -2026/03/08


조선시대 과거시험에 책문이 있다. 

왕이 시대에 해결해야할 과제를 문제로 제시하면, 과거시험을 보는 사람들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시험이다. 

요즘으로 보면 심층 면접시험정도 될까?

과거 역사에 대해서도 해박하게 알고 있어야 하지만, 질문을 자신의 관점으로 바꾸어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기에 상당히 어려웠을 것 같다. 

이 책은 책문에 나왔던 시제와 급제자들의 답변을 모은 책이다. 

세종과 같이 학문에 뛰어난 왕의 시제도 있고,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으로 등극한 중종의 시제도 있고, 임진왜란 이후 어려움이 극심하던 조선을 해결할 방법을 물었던 광해군의 시제도 있다. 

급제자들의 글솜씨는 매우 빼어났지만 성리학의 나라답게 임금이 덕을 쌓고 군자를 가까이하고, 어질어야 된다는 도덕교과서같은 답변들이 많아 이런 답변이 정말 효과를 발휘할까 싶기도 하다. 

그중에는 광해군이 잘못해서 나라가 이모양이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던 급제자의 책문도 있다. 광해군이 합격을 취소시키려고 했을 만큼 강한 글을 썼는데 또 그를 장원급제 시키겠다고 하는 대신들도 있는 걸 보면, 조선은 왕의 나라긴 하지만 신하의 힘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프랑스는 대학수능에서 이런 식의 논술시험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렵겠지? 

조선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p10 세월호가 침몰한 사건은 세월호라는 배가 바다로 빠져 들어간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이었다. 방송이 배의 침몰을 생중계하는 동안 나라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는가?

p22 성삼문은 마음이 정치의 근본이고 법은 정치의 도구라고 전제하고서, 군주가 먼저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 신숙주는 적합한 인재를 얻어서 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석형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널리 듣고 채택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같은 문제에 제출한 대책이 복수로 남아 있는 사례는 뜻밖에도 그리 많지 않다.

p28 이들 제왕은 마음을 보존하는 것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았기에, 법을 제정하더라도 오래 지나서야 폐단이 생겼고, 폐단이 생기더라도 구제하기 쉬웠습니다.

p52 후한의 실책은 무과시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권력이 내부에 집중되었던 폐단 때문입니다. 송의 위기는 번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군사의 대비가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은 마침내 환관으로 인한 내분을 피할 수 없었고, 송은 두 황제가 사로잡혀간 치욕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p64 설화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역사는 사실을 해석한다. 그러니 윤씨 부인의 자결이건, 숙주나물의 유래건, 사육신의 갖가지 야담이건, 그것들은 모두 나름대로 민중이 생각하고 바라는 삶의 진실을 드러내준다.

p67 예기 곡례 상에는 세 가지 꼭 물어야 할 삼문이 기록되어 있다. 나라에 들어가면 법과 제도로 금하는 것을 묻고, 성내에 들어가면 풍속을 묻고, 집에 들어가면 주인의 선조의 이름을 물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묻는 것을 삼문이라고 한다. 이 세가지는 모두 방문하는 나라와 주인을 공경하기 위한 몸가집이다.

p76 성삼문에게 어이없이 자기의 아이디어를 빼앗겨서 장원의 자리를 놓쳐버렸으면서도, 그것을 웃어넘길 수 있는 이석형의 풍도도 넉넉하다. 아이디어가 최대의 무기가 된 오늘날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옛 사람의 사귐이 불현듯이 그립다.

p95 원래 마음 그 자체는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를 알지 못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군주를 보지 못하면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며, 재물을 만나지 않으면 탐욕스러운 마음이 없다. 정치가 문화를 숭상하면 학문을 높이고, 정치가 무력을 숭상하면 무용을 귀하게 여긴다. 이를 근거로 따져보면, 인재는 근본이 정치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p102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자기 재능을 숨기고 펴지 못하며, 선비는 지혜를 품고서도 다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 예 하며 순종하고, 속으로 비난하며 남의 일인 양 구경만 합니다. 또 안으로는 세상을 개탄하는 마음을 품고도 밖으로는 굽실거리며 공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p105 재능 있는 사람만 찾아서는 안 됩니다. 장점을 취하면 누구라도 쓸 수 있습니다. 아주 어리석은 사람을 완전히 뜯어고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단점만 보완하면 누구라도 쓸 수 있습니다.

p110 어린아이에게는 바른 몸가짐과 예절, 기본적인 생활기술을 익히게 하고, 자라서 성인이 되면 학문적인 이론과 지식을 가르친다.

p115 신분을 상징하는 갓끈을 씻느냐, 더러운 발을 씻느냐 하는 것은 물이 깨끗한가, 흐린가에 달려 있으니 오로지 물이 불러들인 결과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모욕을 당하고, 집안이 무너지며, 나라가 망하는 것은 그 원인이 일차적으로는 자기에게 달려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좋은 인재가 주위에 많기를 바란다면 인재가 저절로 찾아들도록 먼저 자기 몸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p127 인심은 사사로운 것을 생각하기는 쉬워도 공공을 생각하기는 어렵고, 도심은 밝히기는 어려워도 어두워지기는 쉽습니다. 순과 우 임금은 위대한 성인입니다. 이런 성인들도 이처럼 간곡하고 자세하게 훈계하고 깨우쳤으니,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p135 선생님은 불천위로 후손들이 대대로 제사를 지내주시는데 왜, 그렇게 말라 계시니껴? 그랬더니 퇴계 선생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고, 말도 말게. 후손들이 나를 얼마나 뜯어먹는지” 일본에 거주하는 윤학준이라는 이의 나의 양반문화 탐방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p139 권벌과 이언적 두 분은 평소 행실을 반듯하게 하는 데는 권벌이 이언적을 따르지 못했으나, 재앙을 당하여서 꿋꿋하게 절개를 지키는 데는 이언적이 권벌에게 양보해야 할 것이다.

p140 권벌은 마음을 보존하여서 근본을 세우고, 도를 응용하여서 정치에 이용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러고는 마음을 끝까지 한결같이 유지하여서 위대한 제왕들의 선례를 본받고 실패한 왕들을 거울삼아 정치의 결실을 거두어야 한다고 했다.

p156 그런데도 아직 기강이 서지 않고 법도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그것이 어찌 임금님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겠습니까? 아마도 그것은 정치의 근본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기 대문일 것입니다. 근본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도의 실현을 정치의 목표로 삼고 마음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아 성실하게 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p163 조광조는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이웃 고을 희천에 김굉필이 귀양 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에게 가서 배웠다. 김굉필은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조선유학의 정통을 이은 성리학의 학자였다.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이이라 하여 귀양을 갔다가 갑자사화가 일어나서 극형을 받았다.

p185 술은 제사를 지내고 겨레를 화합하게 하는 데 쓰이며, 온갖 예의를 갖추고 군주와 신하가 잔치를 베푸는 데 쓰입니다. 따라서 없앨 수도 없고, 쓰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p188 상이라는 잔에 술을 채우는 것은 술로 상할까 봐 경계한 것이고, 치라는 잔으로 술을 뜨는 것은 술로 위태로워질까 봐 경계한 것입니다.

p230 재능은 평상시라면 쓸 수 있지만 비상시에는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덕은 비상시나 평상시나 일관되게 쓸 수 있습니다.

p236 민중들 사이에서는 중국을 대국으로 섬겨야 하는 약소국의 비애와 조공은 물론 중국 사신의 공공연한 수탈과 내정간섭에 저항하는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왔다.

p251 학문의 길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정치의 길은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p257 신사무옥의 계기를 만든 이 송사련의 아들이 바로 예 성혼, 율곡 이이, 송강 정철과 교분을 쌓으며, 동인들로부터 서인의 브레인이라는 평을 받은 구봉 송익필이다.

p260 연산군에서 명종 초까지 사화가 거듭되자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정계에서 물러나 학문을 닦고 은인자중하면서 후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아예 처음부터 현실에서 벗어나 자기의 지조와 양심을 지키려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

p262 그는 사직을 청하며 올린 상소에서 국정을 시정하라고 충고하면서, 문정왕후는 궁중에 있는 일개 과부이며, 명종은 선왕의 어린 아들일 뿐이어서 현실을 바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나라가 잘못되고 백성들이 병드는 원인을 자세히 살펴서 과감하게 폐단을 고치지 않으면 정치가 잘못되고 민심이 병드는 것을 수습하기 어렵다고 드러내놓고 비판했다.

p264 칸트는 에술작품의 미를 평가할 때는 작품 이외의 어떤 측면도 고려해선 안 된다는 뜻에서 관심 없는 만족을 미가 지닌 본질의 하나로 거론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글이든 글씨든 그 사람의 인품이 보잘것 없으면 아무리 조형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라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p284 조광조가 지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서 정식 문과 시험을 거치지 않고 천거에 의해 유능하고 뛰어난 인재를 특별 채용하는 방법인 현량과를 실시했고 율곡 이이가 기회 있을 때마다 과거 이외의 방법으로 인재를 등용하려고 노력한 것도 기존 훈구세력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한 목적의 하나로 볼 수 있다.

p311 황윤길과 김성일의 보고를 듣고 난 뒤에 보인 조정 관료들의 견해차이는 시급하게 전개되는 국제정세마저도 당쟁의 소재로 삼았던 당시 관료들의 어이없는 당파의식과 동서붕당의 양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해프닝이었다.

p330 반드시 정벌할 만한 힘이 있어야 정벌하고, 화친할 만한 형세가 되어야 화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정벌해도 목적을 이룰 수 있고, 화친해도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되어서 영원히 쇠퇴하거나 어지러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p375 전하께서 부드럽고 듣기 좋은 말과 마음에 드는 말만 듣고자 하신다면 좌우에서 뜻을 받들고 잘 따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굳이 여러 선비들을 대궐 뜰에 모아 놓고 낮추어서 궁벽한 시골의 무지몽매한 사람의 건방진 말을 물으시겠습니까?

p389 무엇보다도 동의보감이 지닌 불멸의 가치는 대다수 민중의 마음을 헤아렸다는 점이다. 정식 처방과 값비싼 중국 약재를 접할 수 없었던 민중들은 약이라도 써보고 죽었으면 한이 없겠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는데, 이를 헤아려 향약과 단방요법을 정리하여 수록한 책이 바로 동의보감이었다.

p396 광해군은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양국의 명분을 적절히 세우면서 이른바 윈-윈 게임을 했던 것이다. 국제관계에서는 은원은 은원이고, 외교는 외교인 것이다.

p421 공납을 개선하는 까닭은 백성을 편하게하려는 것이니 토지의 주된 생산물로 세제를 정한다는 원칙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p439 시험을 주관하는 시관인 우의정 심희수가 장원으로 급제시키려 했으나 다른 사관들이 반대하여 병과로 합격했다. 광해군은 그의 대책을 읽고 자기의 실정을 극렬하게 비판하는 데 진노하여 그의 이름을 삭제할 것을 명하는 삭과 파동이 일어났다.

p443 광해군은 일본에 대한 대비, 명에 대한 보은, 후금에 대한 경계라는 세 줄기 격량 속을 돛대도 없이 부러진 노로 저어가는 배와 같은 조선의 키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p447 궁궐 안의 기강을 바로잡아 청탁을 물리치고, 소인배들의 발호를 막을 것, 언로를 열어 군주와 신하가 허심탄회하게 정치를 논하고 간언을 받아들일 것, 외척 세력의 발호를 막고 공평한 도리를 행할 것, 정치의 기강을 바로잡고 직무에 힘써서 국력을 신장시킬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개혁에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군주가 자기수양을 해나가면서 자만하지 말고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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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사
앙드레 모루아 지음, 신용석 옮김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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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사 

 : 앙드레 모루아 

 :  김영사

읽은기간 : 2026/01/11 -2026/02/16


미스테리한 것은 이 책을 내가 왜 샀을까다..

가격이 싸지도 않고, 책도 엄청 두껍고, 좋아하는 나라의 주제도 아닌데 덥석 이 책을 주문했다. 

출판사가 김영사여서 산걸까? 어쨋든 책장에 장소만 차지하고 있던 책을 결국 꺼내 읽었다. 

남의 나라 통사를 이렇게 열심히 읽다니... 나를 칭찬한다. 

읽고난 소감.. 

어느 나라나 자기나라에 대한 자부심은 엄청나구나..

국뽕이 없는 국사책은 없다.. 그리고 자랑하고 싶은 건 열심히 자랑해야 한다 ^^

흥미로운 건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제2차 세계대전때까지 프랑스 정치는 제대로 굴러간 적이 거의 없어보이는데도 세계 각지에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과학, 미술, 인문, 군사 영역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유지했는가다. 프랑스는 신기한 나라다. 

최근에 주경철 선생님이 프랑스사를 냈는데 외국인이 보는 프랑스 통사는 어떤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그 책도 엄청 두껍다. 벽돌책에 다시 도전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p7 국가가 형성되고 백년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프랑스 국민은 정당한 일이라고 믿으면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이든 감수했다라고 국가가 형성된 후 프랑스 국민정신을 정의한다.

p21 세계에서 프랑스의 페리고르 지방을 흐르는 베제르 강 유역만큼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곳도 드물다.

p22 프랑스 인종이란 것이 존재했던 적은 없다. 현재 프랑스를 구성하는 지역은 유럽대륙의 서쪽 끝이라 침략을 마무리하거나 침략자가 정착하는 곳이다.

p23 고대 그리스 학자들은 북쪽 지방에 사는 야만족, 즉 알프스 산 너머에 있는 키가 크고 백색 피부에 금발인 종족을 통칭해 켈트인이라고 불렀다.

p24 프랑스인의 혈관에는 리구리아인과 이베리아인의 혈액에 켈트인, 로마인을 비롯한 기타 수많은 인종의 혈액이 혼합되어 흐르고 있다.

p28 골족 사회는 미개했지만 야만 상태는 아니었다. 총명하고 언어의 심미 감각이 예민하며 로마인의 생활에 호기심이 많던 골족은 재주 있는 장인과 용감한 군인의 자질을 보여주었다.

p30 카이사르는 로마에서도 감히 시행하지 않던 방법으로 골족을 가혹하게 다뤘다. 그는 부족 대표들을 체포해 재물을 몰수했고 수천명의 포로를 무자비하게 팔아치웠다.

p31 독립전쟁은 1,2 년간 계속되었지만 카이사르는 이를 참혹하게 진압했다. 100만 명이 넘는 포로가 형을 받거나 팔려 나갔고 수많은 사람이 오른팔을 잘렸다.

p37 근동에서 태베사막으로 간 사람들은 현세의 유혹을 피하고 홀로 준엄한 금욕생활에 몰입하기를 희망한 것이다. 골 지방에서는 수도원이 현세를 떠나 공동으로 영적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을 모았다.

p38 학문하는 수도사는 공부에 전력하고 일반 수도사는 여행하며 주서를 교환한 덕분에 로마제국은 멸망했어도 그리스도교는 생기를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p43 476년 기어코 서로마제국은 멸망했고 동로마 황제가 서유럽의 권위를 억지로 유지하려 했다. 황제는 서구의 권력을 동고트의 왕 테오도리크에게 위임했다. 일설에 따르면 로마 주교에게 위임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훗날 교황이 세습적 권리를 주장하는 법적 근거로 작용했다

p44 프랑크족의 수장 클로비스가 골 지방에 거주하던 모든 게르만족을 제압했고 이 지역에서 점차 카톨릭교회의 세력이 강해졌다.

p47 메로빙거 왕조는 발루아 왕조보다 긴 300년간 프랑스를 통치했다.

p55 페팽은 메로빙거 왕조 최후의 왕인 힐페리히 3세를 수도원에 유폐하고 그의 아내 베르트라다와 함게 성 보니파스 주관 아래 대관식을 치렀다. 이는 두 사람 사이에 탄생할 아들이 이중을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 현명한 책략이었다.

p87 그는 신앙심이 깊었으나 교회의 권리 주장에 맞서 국가의 권한을 유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교황 인토켄티우스 3세는 국왕들을 자기 신하처럼 여겼지만 필리프 2세는 거기에 승복하지 않았다.

p94 1270년에 사망한 루이 9세는 자신이 조상에게 상속받은 권위보다 훨씬 더 위대한 왕권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이때부터 카페 왕조의 왕은 세습군주로 인정받았고 자신의 의사에 따라 최고회의를 거치지 않고 무엇이든 집행할 수 있는 신의 대표자가 되었다.

p103 필리프 4세는 별세 후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댓 왜 그는 증오를 받았을까? 그는 왕의 절대권력을 강화했고 봉건권력과 교회권력에 맞섰으며 개인의 이익을 공중의 이익으로 전환했다. 이 모든 일은 그 자체로는 유용했지만 가의 신하인 법률가들이 부당한 수단을 행사하지 않고는 수행하기 어려웠다. 만약 루이 9세였다면 그처럼 고통스러운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도 같은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다.

p113 당대의 대시인 크레티앵 드 트루아는 알리에노르의 딸 마리 백작부인이 살던 상파뉴 궁정에 머물렀는데, 백작부인은 그에게 사랑하는 귀부인에게 몸을 바치는 기사를 주제로 한 란슬롯 이야기를 기술하게 했다.

p125 이것은 두 나라의 왕관을 한 몸에 차지하려는 영국 왕의 욕심이 아니었다면 백년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한 비교적 정확한 견해다.

p132 샤를 5세는 허약하고 체구가 작았으나 경건하고 박식한 위대한 국왕이었다. 그는 냉정해 보였는데 이는 정력이 부족한 사람이 흔히 그렇듯 절제 때문이었다.

p143 영국인과 부르고뉴파의 눈에 잔은 마녀이자 이단자였다. 그녀의 몸에 악마가 붙어 있지 않고서야 어찌 무력도 없이 짧은 기간에 이런 승리를 거둘 수 있겠는가?

p144 선입관 없는 재판관이라면 법정 심문에서 나온 그녀의 존경할 만한 답변을 통해 잔 다르크의 숭고한 신념가 애국심을 확인했을 것이다. 교육도 받지 않은 어린 처녀가 고귀하고 순결한 답변을 하자 그 음흉한 법정도 여러 번 당혹스러워했다.

p175 이 회복 능력은 비옥한 토지와 근면한 농민을 비롯해 자신의 운명에 대한 본능적인 자신감과 프랑스인은 프랑스인일 수밖에 없다는 뿌리 깊은 신념에서 우러난 것이다

p181 15세기 이탈리아에서는 그리스도교적 도덕이 쇠퇴하고 있었다. 성생활 개방이 음탕할 정도였고 살인을 해도 살인자가 예술가인 경우 관대하게 처리했다. 피렌체의 조각가 벤베누토 첼리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존경받을 만한 젊은이란 사람을 많이 살해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p184 문예부흥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는 그 문화가 일부 특권계층의 수중에 있었다는 점이다. 반면 중세기 문명은 민중적이었다. 음유시인과 방랑 연예인은 거리의 광장에서 노래를 불렀고 대성당에서는 신비극을 상연했다. 성당도 도시 전체의 협력을 얻어 무명의 건축가가 건립했다.

p198 독일과 플랑드르의 자본이 승리해 카를 5세가 당선되었고 프랑스는 치명적 위기를 맞았다. 프랑스는 플랑드르 지방의 출입구에 독일군이 진주하는 것을 그대로 방관할 수 없었다. 그날부터 플랑스와 게르만인 사이에는 최근의 전쟁이 무색할 만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p208 현명한 사람들은 이를 승인했다. 드디어 프랑스는 정복자, 침략자, 점령자 등 원한의 대상만 될 뿐 아무런 이득도 없던 이탈리아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프랑스 국토의 안전보장에 기여할 메츠, 투르, 베르됭을 수비하는 데 전념하게 되었다.

p225 스페인 식민지에서 유입된 막대한 금은으로 인해 물가가 급격히 상승했던 것이다. 물가 상승기에는 국가 전체적으로는 번영하지만 고정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농지를 임대하는 지주는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기 때문에 무산계급과 귀족계급 양측에서 이중의 불만이 생긴다. 경제는 정신에 영향을 주고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쉽게 이단을 받아들인다

p256 토지 경작과 목축은 프랑스의 두 개의 젖줄이며 이느 ㄴ페루의 금광 및 보물과도 같다

p261 그 후 10세대에 걸쳐 모든 사람이 이단을 시인했고 앙리 4세는 샤를마뉴 황제, 잔 다르크, 성 루이 왕과 함께 프랑스의 영웅 반열에 올라 있다. 그는 프랑스의 신비적인 면은 물론 용기, 양식, 즐거움 같은 위대성도 대표한다

p270 상류 부르주아계급은 모피로 몸을 휘감고 백합꽃 문장이 붙은 모든 좌석에 홍색 또는흑색의 관복을 펼쳤다. 과거에는 귀족이 되려면 전쟁이란 수단을 택했는데 이제 부르주아 계급은 행정가 사법 분야를 이용해 귀족이 되었다. 이들 부르주아계급은 그들 특유의 질서와 재산을 모으는 열의, 해박한 지식, 때로 카톨릭동맹에 도전한 고등법원장 아를리의 경우처럼 용기를 귀족사회에 도입했다.

p283 당연한 일이지만 성직자는 공무를 집행할 때 다른 사람들처럼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더러운 짓을 하지 않습니다. 독신생활을 하는 성직자들은 세상에 영혼 외에 남길 것이 없으므로 지상에서 국왕과 조국을 위한 봉사에 전념한 뒤 멀리 천국에서 영예롭고 완전한 보상을 받으려고 합니다.

p287 사형을 고집한 것은 국왕이지 추기경이 아니었다. 가능하면 사면하려 하는 리슐리외에게 국왕은 아래의 칙서를 보냈다. “사건과 관련된 제후들은 주인의 은혜를 망각한 자들이다. 짐은 경에게 자비심으로 그들을 동정하거나 관대하게 처리하지 않도록 명령한다”

p289 리슐리외는 늘 자신이 기존 계획을 따를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에게 원대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단지 방법만 있었을 뿐이다. “정치는 미리 계획한 의사보다 사태의 진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움직인다” 이것은 거의 모든 행동가가 말하는 최고의 예지다.

p296 그는 실제로 프랑스 국민에게 사고에서는 명철한 논리를, 실천에서는 확고한 신념을 가르치려 노력했다. 프랑스 국민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동시에 성급하고 우둔해 다스리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p300 독일은 자주적인 군비와 외교정책을 보유한 350개의 독립연방국가로 분할되었다. 게르만이 자유를 회복하는 동시에 프랑스의 안전도 보장된 것이다. 그토록 많은 연방국가가 결속해 프랑스에 도전할 수도 없고 설령 도전할지라도 프랑스가 그중에서 동맹국을 찾을 수 없을 것이었다. 제국의회는 잔존했으나 만장일치 채택제라 이는 앞으로 아무것도 결의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p307 시청에서 마자랭을 당대에 제일 더러운 인물이라고 욕설을 퍼붓던 이자생활자조합은 추기경 겸 재상인 마자랭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실각했을 때 가장 먼저 지독한 욕설을 퍼부은 사람들이 그가 다시 득세하자 제일 빨리 머리를 숙였다.

p324 스페인의 왕위 계승 전쟁은 루이 14세의 치세 말기를 고난으로 빠드리면서 1713년까지 이어졌다.

p336 1685년 10월 17일 국왕은 낭트 칙령을 취소하고 신교도의 공개예배를 금지했다. 여기에는 거국적인 찬동이 있었으나 만장일치란 언제나 강압의 상징이다. 개혁파 중에서 망명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영국, 네델란드, 독일 그리고 아메리카로 탈출해 그곳에서 사실상 존경을 받은 위그노파 공동체를 건설했다. 결과적으로 프랑스는 유능한 육군, 해군, 법관, 상공업자를 약 40만 명이나 잃었다. 이것은 루이 14세 치세에 가장 중대한 실정이었다.

p362 군의 장군과 애첩들도 모두 전쟁을 희망했고 모두가 국왕에게 영국이 강대해져 프랑스에 위험한 존재가 되었으니 자유주의적인 프로이센 왕을 도와 오스트리아를 격파해야 영국이 손해를 본다고 진언했다. 드디어 국왕이 양보했다. 이 전쟁은 범죄 이상으로 커다란 과오였고 이로 인해 프랑스는 영국에 재해권을 프로이센에 독일 지배권을 상납했다

p372 고등법원은 국가에 해독을 끼쳤고 과세를 방해했으며 편견에 치우쳐 고문을 자행했다. 파리 고등법원은 전국의 고등법원을 통합해 국왕의 명령에 반대했다. 볼테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처럼 극심한 무정부 상태가 지속될수는 없다. 왕정이 권위를 회복하든 고등법원이 이기든 결론이 나야 한다”

p378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고난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면 이러하다. 옛적에 한 자연인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인위적인 인간을 끌어들였더니 그때부터 동굴 안에 내란이 발생해 일생을 두고 계속되었다. 그 인위적인 인간, 즉 전통과 미신을 고수하는 인간을 제거하면 동굴 안에 평화를 재건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p385 프랑스는 사교적 회합이 역사적 전환기로 작용한 유일한 국가다. 궁정에서 남녀의 정사가 성행한 이후부터 프랑스인은 여성과의 교제와 대화를 즐겼다. 18세기에는 몇 개의 저택이 사상의 증권거래소처럼 유명해졌고 철학가들은 그곳에서 국내의 남녀 유지를 비롯해 외국의 저명인사들을 만났다

p397 그러나 국가의 채무가 10억 리브르에 달했고 당시 이것은 너무 막대한 금액이었다. 미슐레는 이렇게 말했다. “아메리카는 자유를 얻고 스페인은 미시시피와 플로리다를 획득했는데 프랑스는 영예와 파산을 짊어졌다”

p399 마리 앙투아네트는 비판의 희생자가 되었고 간소한 생활을 좋아하는 그녀가 모든 국민과 함께 즐기려고 오페라와 무도회까지 참석하는 미덕을 발휘해도 그것은 오히려 비난의 소재가 되고 말았다. 다른 왕비였다면 이런 행동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을 테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의 반대파는 이것을 죄악으로 내몰았다.

p409 진보적인 소수파는 어떤 혁명이든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들은 자신이 시작한 혁명에 종지부를 찍을 만한 절제력을 갖춘 워싱턴의 사례는 역사상 대단히 희귀한 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p426 공격자 측의 손해가 상당한 것을 보면 영웅이 많았고 점령이 끝난 후 사령관과 수비병이 무저항 상태에 있었는데도 잔인하게 학살한 것을 보면 몰상식한 자들이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p439 각 연대는 군대와 국가의 통솔관게를 재건하기 위해 파리의 샹 드마르 연병장에서 거행할 바스티유 점령 혁명기념일에 대표를 파견하기로 했다. 당시 아메리카에서 시작된 연방이란 개념이 유행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전국에서 대표를 보내겠다고 약속했고 파리에서는 조국의 제단 앞에 잔디 계단을 구축하기 위해 궁정신하, 수도사, 석공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p447 당통은 사랑할 만한 것은 모조리 사랑했고 로베스피에르는 자기 자신만 사랑했다. 당통은 투쟁을 선호했고 로베스피에르는 아첨을 선호했다.

p472 당시에는 밀고가 시민의 의무였고 단두대는 미덕의 제단이었다. 혁명재판소는 14개월 동안 쉼 없이 열렸고 핏기 없는 입술에 이마가 좁은 냉혈적인 검사 앙투안 캉탱 푸키에-탕빌의 말 한마디면 피를 뿜으며 목이 잘렸다.

p484 부유해진 농민과 이득을 얻은 자코뱅 당원들은 정부가 현 상태를 유지하길 기대했다. 그들은 혁명을 끝내고 싶어 하는 동시에 혁명의 이득만큼은 보장받기를 바란 것이다. 즉, 그들은 기득권 포기와 반혁명의 보복은 원치 않았다.

p500 공화제란 국민이 열중하는 하나의 공상에 불과하다. 이것도 다른 공상들처럼 스스로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들은 허영심을 만족시켜줄 명예를 바랄 뿐 자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p519 그는 도처에서 질시와 반감의 먹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모르고 있었을까? 그는 누구보다 이런 사정을 잘 알았고 자신이 구축한 체제가 허약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여러 왕국을 분여한 자기 가족의 자격이 불충분하다는 것도 분명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끌고 갔다.

p536 사자가 쇠사슬에 묶였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사람들은 이때까지 향을 태우며 숭상하던 사람을 저주하는 데 필요한 욕설을 찾느라 분주했다. 사람들은 외국인을 영접하러 나가면서 마치 코블렌츠에서 돌아온 망명자처럼 행세했다. 백기로 손수건, 속옷을 흔들었고 청홍색기는 발로 짓밟아버렸다. 더욱이 가장 열과적으로 날뛴 사람들은 이때까지 보나파르트를 가장 내세우던 이들이었다.

p541 백색테러는 프랑스를 바르게 통치하려면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였다. 하지만 앙리 4세의 전통을 답습하려던 루이 18세는 살롱의 초과격파 여성을 다루기엔 너무 연로했고 더구나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p566 루이 18세는 구체제의 온건파로 18세기의 자유사상가였고 샤를 10세는 철저한 망명자로 경건한 고집쟁이였다.

p594 군사적 영예가 없던 7월 왕정은 그대로 무너졌다. 대혁명과 제정시대의 영예에 젖어 있는 프랑스는 타국의 비위를 맞출 정도로 평화주의를 추종한 왕정을 너절한 정권으로 여긴 것이다.

p601 카톨릭교도로 와정주의자였던 발자크는 인간의 열정을 그대로 방치하면 얼마나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가를 묘사해 도덕적, 정치적 전통의 필요성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p605 중용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에게만 유리했으면 노동게급은 아사 직전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1789년보다 더 비참했던 노동계급은 더욱 단결했고 자신들의 실력을 인식하고 있어서 혁명을 조성하는 데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다.

p625 1830년에는 부르주아계급이 실세였고 1848년에는 민중이, 1851년에는 군대가 실세였다. 이것을 믿고 승리에 도취한 도당들은 무슨 짓을 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

p631 그의 정부는 값싼 식량과 대규모 토목사업, 축전, 휴가를 베풀었다. 그는 진심으로 선량하고 유능한 독재자가 되기를 원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상에 선량한 독재자란 없는 법이다

p626 프랑스에서는 부르주아계급의 사업가와 농민이 1848년 6월 이후 사회주의와 별안간 강력하게 성장한 노동자에게 공포를 느낀 나머지 무력을 선호하고 제정에 찬성했던 것이다. 노동자들은 불만과 실망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을 포기했다.

p649 1866년 프로이센은 몇 주 만에 오스트리아군에 대승함으로써 처음으로 근대전의 과학적, 공학적, 우월성을 확인했는데 동원의 신속성, 무기의 우월성, 철도의 조직적 이용 등이 프로이센에 전격적인 승리를 안겨주었다.

p660 황제의 사상은 때로 광채와 관용에 빛났고 또 때로는 무정견과 환상에 사로잡혀 유럽을 프로이센에 넘겨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p665 표면적으로는 근엄한 영국의 빅토리아 왕조시대에 영국인은 황색 표지의 프랑스 소설을 숨어서 탐독했다. 영국인은 바람을 피우려 파리로 건너왔고 쾌락을 즐기면서도 그 쾌락 때문에 파리를 비난했다.

p668 제정 몰락은 정신적 퇴폐를 낳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반대였다. 1815년의 패전은 세기의 청년과 도피문학을 낳았으나 1871년의 패전은 반대로 선량하 사람들에게 활기를 주고 그들을 현실 활동으로 이끌었다.

p683 1871년 1월 18일 프로이센은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독일제국 성립을 선포했다. 비스마르크는 리슣리외를 이겼고 베스트팔렌 조약은 폐기되었다.

p709 수개월 후 44세의 강베타는 사고와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이 창조하고 구제하고 강화한 공화국으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은 셈이었다. 정치가로서 그의 민첩하고 현명한 자질은 언제나 정세가 혼란에 빠질 위기에서나 그 가치를 발휘하는 난국 돌파형이었다. 사람들은 모든 죄악 중에서도 우수한 재능이란 것을 가장 용서하려 하지 않는다.

p717 언론인 카롤린 세베린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그느 ㄴ카이사르처럼 출발해 카틸리나처럼 살다가 로미오처럼 죽었다”

p723 그의 무고함을 확신한 가족이 계속 조사해 각서의 필자로 페르낭 에스테라지를 고발했다. 정보부의 조르주 피카르 대령도 드레퓌스가 무지라는 확증을 잡고 상관에게 진상을 발표하도록 진언했다. 하지만 완고, 오만, 편견이 정의뿐 아니라 신중성을 제압했다.

p734 대혁명 이래 프랑스는 정치적 균형 상태와 확고한 합법성을 가진 정치체제를 꾸준히 추구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국내는 극도로 분열되어 있지만 1871년 이후에는 독일에 대한 불신과 복수심 그리고 영예를 회복할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려는 요망에 모든 당파가 집결했다.

p741 프랑스에서는 문학자와 과학자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존경을 받았다. 연극 초연, 서적 출판, 아카데미 프랑세즈 선거, 때론 문법 토론까지도 대단한 사회 사건으로 취급했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이 흥미 본위의 화제에 불과하거나 천박한 호기심일 때도 있었으나 정신 분야의 노력에 대한 존경은 프랑스의 항국적이고 고귀한 특징 중 하나로 남았다

p743 베르그송은 철학가 특히 예술가에게 언어라는 부호를 떼어내고 언어적 인식 밑에 깔려 있는 실체를 추구하라고 강조했다.

p748 마른의 승리는 프랑스가 전 역사를 통해 과시해온 탁월한 반격전 중 하나였다. 이 전투는 독일의 전격적인 승리를 불가능하게 했으나 프랑스의 국토를 해방하지는 못했다.

p754 개전 초기 러시아가 독일의 60개 사단을 동부전선으로 유도하지 않았다면 마른의 승리는 없었을 테고, 영국의 육해군이 아니었으면 전쟁을 4년이나 지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사단이 없었다면 승리는 했을지 몰라도 오랫동안 사투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미국의 생산 능력 역시 승리의 중요한 요인이었다.

p759 정권은 1914년 이전처럼 급진파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신교도이며 급진파인 가스통 두메르그가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임되어 루르 지방에서 철병했고 소득세 창설자인 카요가 재무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기어코 금전의 장벽에 부딪쳐 쓰러지고 말았다.

p761 그는 국제연맹을 위해 온갖 수완과 열변을 토했으나 이 제네바 기구는 미국의 불참과 영국의 무관심으로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p765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최종 목적은 프랑스 파멸이고 그 수단은 영국과의 친선이라고 선언했다. 프랑스의 통치게급은 확실한 동맹국이 없었으므로 속수무책이었다. 1933년 무솔리니가 로카르노 조약에서 폴란드를 제외한 새로운 4대국(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조약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이뤄지지 않았으나 불안을 느낀 폴란드는 프랑스에서 이탈했다.

p767 히틀러는 영국 못지않게 강렬한 프랑스의 평화에 대한 욕구를 철저히 이용했다. 독일은 어떠한 정복도 원치 않는다고 누차에 걸쳐 언명했다.

p775 27일 벨기에 국왕이 항복했고 28일에는 고트 장군이 됭케르크에서 영국군을 본국으로 철수시켰다. 베이강 장군은 자신의 작전대로 전투를 진행할 수 없자 됭케르크 교두보에 수비를 명령해 구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로를 통해 구출하도록 했다.

p780 제3공화국은 이렇게 숨을 거두었다. 패전과 함께 운명하긴 했으나 제3공화국은 존속한 전 기간을 통해 행운과 영예에 가득 찬 정치체제였다. 1875~1914년 동안제3공화국이 프랑스의 국력을 강화했기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이 프랑스 장군에게 최고지휘권을 주고 파리에서 열린 평화회의를 클레망소가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p792 많은 고난을 겪은 국민은 그 고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희망했다. 무엇보다 런던과 알제 도는 국내 레지스탕스파에서 위험한 여건을 무릅쓰고 투쟁해온 사람들이 그 지도권을 계속 보유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프랑스공화국은 임시정부가 관리하고 제헌의회를 선출해 여기서 제정한 헌법을 국민투표로 확인하도록 결정을 내렸다.

p806 이 모든 원주민에게 개혁을 약속한 프랑스는 국내 문제에 정신을 빼앗겨 폭발적인 사태가 발생하기까지 식민지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

p809 신속하게 결단을 내리는 망데스-프랑스 정부의 방식은 매우 인기가 좋았다. 이 불안정한 시기에도 여전히 진부한 자세를 버리지 못한 의회는 비판을 받았다.

p813 드 골은 국가에 봉사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으나 헌법 절차에 따르지 않고는 정권을 인수하지 않겠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코티 대통령은 즉각 이 목적을 위해 합법적인 절차를 취하기로 했다.

p824 1066년의 정복으로 수립된 영국 왕정은 곧 지방권력의 자유를 허용할 만한 실력을 갖췄다. 프랑스 왕정은 초창기부터 몹시 물안정했기에 국가를 단계적으로 건설하면서 한편을는 지방의 전제 권력과 투쟁해야 했다.

p826 프랑스인은 영국인, 독일인, 미국인보다 행정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나 대신 어떤 완전한 이상이 하나의 지상 명령으로 부과되면 설령 성문화하지 않은 법이라도 준수한다.

p828 프랑스 국민은 과거의 전통 때문에 분수 이상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영향을 전적으로 군사력만으로 평가한다면 이 말은 타당한 견해라고 할 수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영향은 사실 지적이고 정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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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시작하면 잠들 수 없는 세계사 - 문명의 탄생부터 국제 정세까지 거침없이 내달린다
김도형(별별역사) 지음, 김봉중 감수 / 빅피시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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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형

 :  빅피시

읽은기간 : 2026/03/05 -2026/03/09


역사란 결국 후대의 역사가가 선택하여 기술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역사책이라는 것도 저자가 내용을 취사선택하고 해석을 부친 책이다. 

이 말은 저자의 시각에 따라 일어난 사건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같은 시대의 같은 내용을 기술한 역사책이라도 저자가 달라지면 새롭게 생각하게 되는 내용이 많아진다. 

현대사는 잘 모르는 내용이 많아 새롭게 알게 된 게 많았고, 중세나 근대역사는 나와 생각이 달라 생각할 게 많았다. 

어렵게 쓰여있지 않아 읽기에도 좋았다. 


p57 러시아의 역사는 완충지 확보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더 많은 완충지, 즉 안전지대가 되어줄 땅을 원했고 끝없이 영토를 팽창했기 때문이죠

p88 이탈리아군은 계속해서 후퇴합니다. 영국군은 공격하는 대로 계속 밀리는 이탈리아군을 보고 무려 이탈리아령 리비아까지 진격해 버립니다. 패퇴하던 이탈리아군 23만 명 중 무려 13만 명이 영국군의 포로가 됩니다.

p107 초반에 미국 태평양 함대를 기습해서 전력을 최대한 약화시키고 동시에 나치 독일 해군이 대서양에서 미국을 견제한다. 그 사이 중국, 동남아를 점령한 후, 자원 확보용 인프라를 구축한 뒤 유리한 조건으로 미국과 협상한다. 문제는 상상과 현실은 크게 달랐다는 점입니다.

p175 종교가 중심이었던 이 혁명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민주주의에도 크게 기여합니다. 의회의 입법권이 왕권을 제압했고, 종교적 자유와 저항권, 자유주의 사상이 제도화됐습니다. 또 청교도들이 주장한 양심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는 오늘날까지도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주요 사상입니다.

p187 카를 5세는 돈을 구할 데가 필요했는데, 문제는 그가 스페인을 이용하여 돈을 조달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스페인은 무역과 식민지를 통해 엄청난 수입을 거두고 있었으니까요. 스페인은 기것 번 돈을 죄다 전쟁 비용으로 지출해야 했고, 결국 스페인의 지출은 수입의 2배가 넘게 됩니다.

p259 몽골제국의 제2대 황제 오고타이 칸 때는 유럽을 침공해서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를 차례로 격파하고, 이슬람 제국인 아바스 왕조까지 멸망시킵니다. 엄청난 영토를 차지한 몽골.

p268 제국은 천천히 몰락합니다. 먼저 차가타이 한국은 내분으로 인해 동서로 분열됐다가 정복자 티무르가 세운 티무르 제국에 정복당했고 일한국 역시 내분으로 혼란하다가 당시 흑사병으로 황족들이 죽어 나가자 서서히 해체됩니다. 참고로 이때 킵차크한국은 약해진 일한국에 쳐들어가 멸망의 결정타를 날렸죠. 그러나 킵차크한국도 곧 명을 다합니다. 역시 티무르 제국의 공격을 받은 데다가 러시아 세력이 점점 강해지면서 킵차크한국은 분열되기 시작했고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다 1502년에 멸망합니다.

p285 북한 경제는 무너졌고, 1995년부터 3년간 이어진 폭우와 가뭄으로 인해 이재민들에게 식량을 배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릅니다. 1990년대에 나라 시스템 전체가 붕괴됐고, 주민들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24만 명부터 많게는 350만 명이 아사했다고 추정됩니다. 이를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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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토벤인가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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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베토벤인가

 : 노먼 레브레이트

 :  에포크

읽은기간 : 2026/02/18 -2026/03/04


작가는 베토벤의 작품을 100곡을 뽑아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연주자들도 소개한다. 

연주곡들은 자기가 들어보고 선택했는데, 잘한 작품은 아낌없는 칭찬을, 맘에 들지 않은 작품은 가차없는 비판을 쏟아낸다.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많은 연주자들이 작가의 칭찬 또는 비판의 화살을 맞았다. 

이렇게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저자를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또라이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베토벤의 위대함을 크게 쓰다보니 모차르트나 하이든은 좀 폄하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적들도 많을 것 같은데 나름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하니, 그정도의 불편함은 가볍게 넘기는 사람인가보다. 

음악을 들으며 뭐가 좋은지, 왜 좋은지 잘 모르는 막귀는 그저 틀리지 않고 멋지게 연주하면 다 좋다. 

그정도의 음악성만으로도 난 만족한다. 죽을때까지 많이 듣자. 


p34 리히노프스키는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의 가족과 친밀하게 지냈던 한 지인이 “냉소적인 타락자, 파렴치한 겁쟁이”라고 말한 데서 보듯 리히노프스키의 성적 취향은 방탕하게 노는 빈의 엘리트들이 보기에도 특이한 축에 속했다.

p54 하이든은 유감을 품지않고 제자의 첫 피아노 3중주 세 곡의 악보를 살펴보더니 세번째 곡이 청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곡이라고 경고했다. 리히노프스키 집에서 3중주가 초연되었을때 하이든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는 베토벤을 데리고 나가 핫초콜릿을 사주고 돈도 빌려주었다. 베토벤은 배은망덕하게도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하이든으로부터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p77 나는 어째서 8번에 끌릴까? 현혹시키기 때문이다. 이곡은 교향곡 아류나 영화 추억에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부른 노래가 아니다. 베토벤은 8번을 같은 조성으로 된 전원 교향곡과 연관지어 F단조로 된 나의 작은 교향곡이라 부른다.

p80 독일인들은 예술이 권력보다 우위에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현대사는 정반대 양상을 보여주지만 말이다. 독일인들은 괴테가 베토벤과 더 닮은 모습이기를 원한다.

p90 모차르트는 자기 시대의 관습 내에서 작곡한 반면, 베토벤은 관습에서 한 발 벗어났다. 모차르트가 지금 여기에 관심이 있다면, 베토벤은 그 너머를 바라본다. 모차르트의 환상은 무궁무진하다. 베토벤에서 매혹적인 것은 그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려는 방향이다.

p121 비평가의 일은 큰 그림을 전하는 것이다. 작곡가는 음악을 만들고, 연주자는 연주하고, 비평가는 현장에 있거나 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연주를 맥락 내에서 해석한다.

p134 무엇보다 그는 산자락의 개울처럼 자유롭게 흐르는 음악이라는 예술을 가둬놓고 포장해서 상품으로 만들고, 제대로 주목하지도 적절하게 옷을 차려입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러니저러니 비교할 수 있다는 착각을 자신이 조장했다는 것을 깨닫고 몸서리를 쳤다.

p151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음란함을 혐오했고, 다음의 이유를 들어 <돈 조반니> 공연을 보지 않겠다고 했다. “예술은 성스러운 것이니 그토록 불미스러운 주제를 변명하는 구실로 전락해서는 결코 안되네” 그는 노트에다가 이렇게 적었다. “영혼의 합일이 없는 감각적인 만족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네. 고귀한 감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후회의 감정만 남지”

p166 슈베르트는 같은 시를 가져다가 우리의 마음을 두 동강 내지만, 베토벤은 페이소스를 피자에 얹어 준다.

p188 여기서 대화를 나눌 때 자주 거론되는 기악곡이 세 곡 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엘리제를 위하여, 이곳 사람들이 8세기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에 나오는 달빛 이미지와 연관시키는 월광 소나타, 그리고 많은 중국인이 아는 또 한 곡이 있으니 고별이라는 제목의 소나타 26번이다. 베토벤은 고별, 부재, 재회의 세 악장으로 곡을 구성한다.

p226 그들은 거친 소리를 내는 스튜디오의 한계를 테크닉으로 돌파하는 방법을 찾았다. 1950년대 러시아에서 나오느 모든 피아노 음반은 형편없는 기계를 의지로 넘어선 위업이다.

p233 레닌의 베토벤 인용-계속해서 듣다가는 혁명을 완수하지 못할 겁니다라는 코다까지 종종 곁들여서-은 소비에트 문화 정책의 기초가 되었다. 예술은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로 인해 세상을 정화하는 혁명의 폭력에 제동이 걸려서는 안 된다. 문화는 인류애와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공산주의에서 문화는 계급 투쟁의 유용한 무기다.

p255 이 곡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보여준 것은 짧은 바지를 입은 아이였다. 펠릭스 멘델스존이 유대교 성인식을 한 달 앞둔 요제프 요아힘을 런던으로 데리고 갔을 때 그는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하겠다고 하여 스승을 놀라게 했다. 1844년 5월 27일 광란의 박수가 그의 연주에 쏟아졌고 오케스트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환호를했다.

p258 도이치 그라모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베토벤 협주곡은 1979년 10대의 아네조피 무터가 카라얀과 내놓은 음반과 10대 아이돌이던 다비트 가레트의 2011년 음반이다. 무터는 단정한 모범생 소녀, 가레트는 찢어진 청부지의 불량소년이다. 영국의 나이첼 케네디가 악동 이미지로 가레트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p270 베토벤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었는데 브리지타워가 아픈 곳을 찔렀을 수도 있다. 2020년 BBC 다큐멘터리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리처드 토그네티가 한 말이다.

p280 언젠가 그가 텔레비전으로 아이스댄서 토빌과 딘의 무대를 보고 있었다. “그들로부터도 뭔가를 배울 수 있어요”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남들은 손가락을 떨고 기억력 저하로 고생하는 나이에 밀스타인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경쾌하게 흔들며 무결점의 연주력을 선보였고, 한 명이라도 박수를 치면 앙코르를 하러 나왔다.

p331 (대공) 3중주는 가장 붙임성 좋은 베토벤의 곡 중 하나다. 앞부분에서 힘차게 긋는 첼로 패시지를피아노가 찻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반주한다. 베토벤은 3주만에 이 곡을 작곡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에서 이 곡을 자유의 알레고리로 삼았다.

p367 교향곡은 그녀에게 뮌헨에서 보낸 어린시절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주었다. 뮌헨은 음악감독 브루노 발터가 최고 수준의 클래식 공연을 선보인 문화의 중심지였다. 누군가 브루노 발터라는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의붓어머니의 표정이 경건해졌다. 그녀는 발터의 전원 교향곡 음반을 질릴 줄 모르고 들었다. 그녀가 목가적인 추억에 기분 좋게 젖어 있을 때 전화를 걸어 방해하는 자는 화를 면치 못했다.

p370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쇼스타코비치 교향곡들은 존슨에게 안도감을 안겨주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시대를 살면서 누구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것을 음악으로 표현함으로써 피난처를 찾았다. 어머니가 마침내 정신병원으로 실려 가자 존슨은 마치 자신의 스탈린이 죽은 것만 같았다. 그의 아내가 말했다”당신어머니와 사는 게 이 교향곡과 같았겠구나”

p380 1845년 베토벤 축제에서 치욕을 당한 본은 1870년 베토벤 탄생 100주년 행사를 열며 리스트를 초대 명단에서 제외했다. 베토벤 조각상을 제외하고 1845년 행사의 성과라면 마지막 음악회에서 여러 아리아와 협주곡과 함께 연주된 곡이 유일한데 그 곡이 바로 베토벤이 1810년 괴테의 희곡 에그몬트에 붙인 서곡이다.

p395 빈 필하모닉 역사를 통들어 가장 자주 연주된 베토벤 곡이 이름이 붙지도 않고 세상을 떠들석하게 하지도 않았던 교향곡, 리하르트 바그너가 춤곡에 불과하다며 무시했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카르글 박사 덕분에 나는 382회 공연된 교향곡 7번이 제법 큰 차이로 빈 필이 가장 자주 연주한 베토벤 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p397 교향곡 두 곡(5번과 7번)이 정상을 놓고 다툰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교향곡 2번, 4번은 목록에서 빠졌다. 교향곡 9번은 공연에서 보기가 어려운데 당연하게도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뉴욕은 빈만큼 전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열정에 열광한다. 교향곡 7번은 평균적으로 매년 두 차례는 무대에 오른다.

p401 이것은 연륜있는 거장의 의견을 임의로 취한 것이지만, 교향곡 7번이 그 자체로 인기가 있다기보다 다른 요인들, 가령 비용이나 편의성 때문에 자주 연주된다는 데 다들 동의하는 것 같다.

p414 그는 신뢰할만한 중립적인 목격자가 아니었다. 베토벤은 요하나를 미워했고, 카를 카스파르는 온갖 결점에도 그녀를 사랑했다. 그들의 아들 카를도 마찬가지였다.

p425 그는 베토벤에게 9년에 걸쳐 총 179곡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했다. 베토벤은 흥정하기를 좋아했지만 톰슨의 턱없는 요구에는 선을 그었다.

p443 토스카는 자유를 얻고자 섹스를 제안한다. 피델리오는 자유를 말하고 섹스는 완전히 억압하는 오페라다. 토스카는 추파를 던지거나 아니면 싸움을 건다. 피델리오는 오로지 도망칠 뿐이다. 잠재력을 그냥 묻어두는 등장인물은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며 청중은 이런 플롯에서 만족스러운 도덕적 판단이나 지적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자료를 보지 못한다.

p446 피델리오는 우리가 익히 아는 의미의 오페라가 아니며 베토벤은 극장의 음악가가 아니다. 오페라에는 긴장과 충격, 흥분, 그리고 멋진 아리아가 필요하다.

p467 바가텐은 테이블에서 막대기와 공을 가지고 노는 게임이다. 비오는 날 상류층 지주들이 실내에 모여 즐겼다. 프랑스 작곡가 프랑수아 쿠프랭은 1717년 이 용어를 악곡에 처음으로 사용했다. 베토벤은 작은 것이라는 의미로 썼다.

p472 그는 이른 아침에 사람을 보내 나를 부르더니 예의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나의 4중주곡을 연주해줘야겠소” 그렇게 해서 정해졌다. 반대나 의심은 있을 수가 없었다. 베토벤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행해져야 했으므로 내가 까다로운 과제를 떠맡았다.

p477 베토벤의 4중주곡들은 다른 어떤 곡들보다 청자가 아닌 연주자를 위해 존재한다. 대부분의 실내악곡은, 예컨대 모차르트곡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한다. 자신의 방식으로 밝게 말한다. 베토벤은 연주자가 숨겨진 모호함을 밝게 비춰야 한다. 연주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청중을 이해시킬 수가 없다.

p511 페이드아웃으로 끝나는 피날레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을 참고한 것이다. 현대 조성 관계에 관한 교본을 썼던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화성의 관점에서 (디아벨리 변주곡은) 베토벤의 가장 모범적인 곡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했다.

p513 아르투어 슈나벨은 부유한 자들의 화를 돋우려고 리사이틀에서 이 곡을 연주했다. “여기서 즐기는 사람은 나밖에 없소. 돈을 받거든.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고 고통을 느끼는 거요”

p526 베토벤은 고전주의, 낭만주의 작곡가 중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시대에서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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