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 대청 외교와 『열하일기』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 서가명강 시리즈 16
구범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 구범진

 : 21세기북스

 : 2021/09/15 - 2021/09/20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제목만 들어봤지 실제로 읽어본 적은 없다.

열하는 청나라 황제의 여름별장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여름별장이라고 하지만 사실 여러달동안 이곳에 청나라 황제가 머물렀기 때문에 북경에 이어 제2의 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곳이다.

저자는 조선 정조때 파견된 사신들이 북경에서 열하로 변경된 일정을 소화하며 변화된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와 국제정세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영조때까지 남아있던 명나라 숭배와 청나라 배척의 모습이 1780년 정조의 사신파견을 기점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광해군의 명나라,청나라 등거리 외교나 강홍립장군의 항복등에 대해서 현대 역사가들은 광해군의 통찰력을 높이 사고 있는데 반해, 저자는 이런 시각을 부정한다. 

강홍립의 항복도 군사들이 상당히 죽고 나서 어쩔 수 없는 항복이었다고 주장하고, 광해군도 통찰력이 있어 등거리 외교를 한 것이 아니고 청나라가 조선까지 신경을 쓰지 않아서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해석을 하는 것이 더 정확한지는 좀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국뽕에 취해서인지 아직은 광해군의 통찰력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청나라의 최대 전성기 시절과 조선의 르네상스 시절을 알려주면서 티벳등 국제관계까지 두루 살펴보는 책은 드물었는데 당시 국제정세까지 알 수 있어 재미있었다.



p14 열하일기 속의 열하 이야기가 사실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는 나의 발견과 1780년을 분수령으로 조선과 청의 관계가 크게 달라졌다는 나의 핵심 주장만은, 조선 후기 사신의 외교 활동 및 여행에 관한 한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깨알 같은 지식들과 더불어 독자 여러분께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p39 인조는 조선 사람들이 금수와 다름이 없다고 무시하던 오랑캐의 우두머리 홍타이지에게 오랑캐의 방식으로 절을 하면서 오랑캐의 신하가 되었다

p68 입관 전 시기 서울과 선양을 왕래하던 조선 사신들의 입장에서 청나라의 베이징 천도는 여행 거리와 기간, 그리고 여행으로 인한 노고가 대폭 증가함을 의미했다. 압록강을 건너 선양까지는 옛날 거리 단위로 540리에 불과했다.

p84 17세기 전반 후금-청을 둘러싼 세계에서 조선은 사실 명에 다음가는 큰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 점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조선의 위상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터이지만, 1637년 2월 24일 삼전도의 항복 의식이 끝난 뒤에 열린 연회에서 인조에게 주어졌던 의전상 지위를 소개하는 것으로 조선의 위상에 대한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p104 이제 열하는 황제가 매년 거의 다섯 달을 머무는 장소가 된 셈이니, 사실상 베이징에 버금가는 청나라의 두 번째 수도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115 머나먼 이역에서 찾아와 자리를 함께한 특별 하객들은 바로 건륭 자신의 손으로 이룩한 제국의 각 부분을 대표하는 존재였으니, 그날 하례의 광경은 모르긴 몰라도 그 자신이 일군 제국의 축도로 비치지 않았을까?

p126 건륭제 즉위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던 영조는 52년의 재위 기간 내내 건륭의 생일을 이듬해 정월에야 뒤늦게 축하하는 관행을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지켰다

p139 1780년 진하 특사 박명원에게 주어진 주된 임무는 물론 팔월 13일의 칠순 만수절을 축하하는 것이었지만, 공식 명칭이 성절겸사은사가 아니라 진하겸사은사였다는 점도 주의를 요한다

p157 당시의 기록물들이 제도적,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제약을 받았던 것과 대조적으로, 열하일기는 시대를 앞서가던 자유로운 인간 박지원이 쓴 책이기에 그러한 제약에 구속되지 않을 수 있었다

p165 청의 최하급 9품 관원들보다도 아래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그러니 조선의 정사,부사를 청의 2품,3품 관원들과 나란히 서게 한 것은 파격적인 우대라고 할 만했다

p170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조선 사신 일행이 황제와 함께 공연을 관람했으며, 이러한 종류의 궁정 행사에 조선 사신이 참석한 것은 이때가 역사상 처음이었다는 점이다.

p191 정조는 판첸과의 만남 및 불상 수수와 관련하여 상주내용통지자문 외에 별도의 추가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박명원이 올린 별단에서 찾을 수 있다

p232 박명원은 줄곧 머리를 곧추 치켜들고 있었다. 박지원에 따르자면, 박명원의 배고 거부는 예부상서나 군기대신 등의 강요를 이겨내고 성취한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p260 열하일기에서 적어도 직,간접적으로 판첸과 관련이 있는 부분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충실히 전달한 것이라고 무작정 믿지 말아야 한다

p292 1780년대 초 청의 조선 사신 접대에 일어난 변화는 정조와 건륭이 성의와 은혜를 주고받는 우호 행위를 상승적으로 반복한 결과로 나타난 양국 관계의 증진 또는 격상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p302 조선은 분명 외국으로 인식되었고, 또 그렇게 분류되었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조선의 경우와 대조적으로, 청나라에는 절대로 외국이라고 부르지 않는 외번이 존재하였다

p319 건륭제는 원래 연반조근을 하러 온 외번 왕공 등을 접대하는 자리에 조선 사신 등을 초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p321 그들은 모두 건륭 연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청에 완전히 복속한 집단이나 지역의 수장들이었다. 고희천자 건륭에게 그들을 대거 한자리에 모은 칠순 만수절의 하례는 곧 자신이 그때까지 평생 이룩한 업적을 상징하는 이벤트였다

p333 홍경모의 친청 언설은 1780년대 이후 조선 사인들의 청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라고 보아도 큰 잘못은 아닐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 매트 헤이그

 : 인플루엔셜

 : 2021/09/14 - 2021/09/18


인기 많은 소설.

주인공인 여성은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된다. 또한, 기르고 있던 고양이가 길거리에서 차에 치여 죽게 된다. 자신이 피아노를 가르치던 사람의 교습시간을 잊어버려 부업도 못하게 된다.

항상 남의 눈치만 보며 살던 주인공은 자살을 결심하고 약을 먹는다.

깨어보니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이상한 공간에 던져진다. 

이곳에서 자신의 후회의 책을 보며 주인공은 과거 선택할 수도 있었던 여러 삶을 살아본다. 

예전에 보던 코미디 프로그램의 '그래 결심했어'의 외국 소설 버전같다. 

그녀는 다양한 삶을 살아본다. 수영 국가대표로 성공했던 삶도 살아보고, 북극 환경생태가로서도 살아본다. 

'그래 결심했어'의 프로그램과는 달리 주인공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빨리 죽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도 결국엔 또 다른 삶의 책을 펴보고 삶을 살아본다.

살기 싫어도 삶은 살아진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죽고 싶다면서 계속 다른 삶을 살아보고 있는 주인공이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결국 주인공은 죽음으로 가지 않고 기존의 삶을 변화시켜 사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평행우주론이라는 양자역학의 상상력을 이용하여 수많은 삶을 살아본다는 발상은 양자역학이 없을때에도 종종 나오던 스토리다.

아마도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후회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거보다는, 미래보다는 지금 선택에 집중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간의 미래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공간의 미래

 : 유현준

 : 지식서재

 : 2021/09/06 - 2021/09/13


건축설계를 하는 분이 건축에 대해서 글을 써서 그런지 실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서 참 좋다.

동대문 DPP를 보면서 저렇게 괴상하게 건물을 짓나하는 생각을 했는데 나름 이유가 있다고 한다. 또 건축 설계로 유명한 분이라고 하니 무언가 의미가 있게 지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괴상하다는 생각이 바뀐건 아니다.. ^^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자기집뿐만 아니라 카페, 영화관등도 자신의 공간으로 생각하며 현대인들은 살아간다고 저자는 이야기하는데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생각이다. 

나의 공간이란 결국 내가 활동하는 곳을 모두 포함한다는 이야기인데 내가 다니며 활동하는 곳이 결국 내 정체성과 연결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산을 다니는 사람들은 산과 자기의 정체성을 연결시킬 것이고, 산을 다니며 호연지기를 키웠다는 선조들은 이미 그런 사실을 간파했다는 이야기니 군자는 요산요수라는게 옛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후반부에 가면 서울집값이야기와 집값잡는 법에 대해서 나오는데, 하나의 방법이고 고려할만한 사항이긴 하지만 사실 공감이 되지는 않는다.

규제를 줄이고 민간에게 맡기라는 건데, 탐욕과 탐욕이 만나 선을 이룬다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하는 문제일 것 같다.

책은 참 재미있다. 교양으로든, 공부를 위하든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3% 본능적인 요소의 힘들이 어느 정도로 어떻게 작용할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보통 과학자들이 미래가 12시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예측하면 대부분 2시나 11시 방향으로 가게 된다

10% 침대는 공간적으로 하루 8시간만 사용하지만 자리는 24시간 차지하는 장치다. 치대는 공간을 낭비하는 공간적 사치다

16% 가장 친환경적인 건축물은 태양광 발전 장치가 많거나 친환경 건축 자재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닌, 기둥식 구조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살아남을 수 있고, 신축을 안해도 된다. 신축을 안해도 되면 콘크리트나 철의 소비를 줄일 수 있다

20% 제사장은 호화로운 옷을 차려입고, 복잡한 제사 의식에 따라서 퍼포몬스를 펼친다. 평지에 있는 사람은 제사장을 올려다본다. 반대로 제사장은 수천 명의 사람을 내려다본다. 이때 내려다보는 동시에 시선의 집중을 받는 제사장에게 권력이 집중된다

28% 온라인 강의가 아무 때나 필요할 때 들을 수 있느냐, 아니면 생방송이냐에 따라서 선생님의 권위는 차이가 난다

28% 교육은 지식 전달이 전부가 아니다. 선생님은 지식 전달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해답은 대화에 있다. 교육이라는 것이 선생님에서 학생으로 일방향으로 전수되는 흐름이 아닌, 학생과 대화를 통해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41% 입을 가리는 것은 부정적이기 때문에 베트맨, 그린 랜턴, 조로 같은 얼굴을 가려야 하는 히어로 캐릭터들도 입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논만 가리고 나온다

42%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키가 작은 두목은 상대방을 올려다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뒤로 젖힌다. 그래야만 눈을 내리깔며 상대방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내려다보는 시점을 만들 수 있고 이는 곧 자신이 더 강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43% 조화로운 재즈 팀은 한 개의 음에 다른 연주자들이 같은 느낌을 받고 같은 종류의 반응을 결정하기 때문에 조화로운 협주가 나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마음이 되어야 제대로 된 재즈 공연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45% 전염병이 있으면 모여 살 수가 없고, 물이 없어도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가 만들어지기 좋은 조건은 건조한 기후대에 물이 풍부한 곳이다. 그 두 개의 조건을 만족시켜 주는 곳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다

45% 사람은 그냥 자연만 보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더 끌린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인간이 다른 인간과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사피엔스만의 본능 때문일 것이다

53% 사람은 지상으로 다니고 물건이 지하로 다니는 세상이 물건이 지상으로 다니고 사람이 지하로 다니는 세상보다 나은 세상이다

65% 플렉스란 과시를 뜻하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과시는 낭비를 통해서 할 수 있다.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은 사치스러운 공짜 공간을 선보이는 공간 플렉스를 통해 그 공간이 얼마나 차별화된 상업 공간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66% 이러한 미래 사회의 공간이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이러한 진화의 방향이 이기적인 인간에게 나타날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이다

67% 시장 경제에만 맡겨 놓게 되면 향후 온라인 공간은 기술이 발달할수록 점점 더 저렴해지는 반면 오프라인 공간은 점점 더 비싸져서 일반 대중은 온라인 공간에서 주로 생활하고 오프라인 공간은 부자만의 전유물이 될 수도 있다

72% 정부가 규제를 줄였더니 알아서 잘됐다는 이야기다. 시대에 뒤떨어진 원칙을 고집하면 공무원은 열심히 일하고도 도시의 진화의 발전을 방해하게 된다

80% 획일화가 되면 가치 판단의 기준은 정량화된다

82% 높이도 천편일률적이다. 12층이 제한이면 12층으로, 35층이 제한이면 모두 35층으로 짓는다. 만들어진 풍경이 깎두기 머리 같다. 지루하고 아름답지 않게 느낄 수 밖에 없다

83% 대부분의 신도시들은 LH에서 도시 설계를 하고 엔지니어 회사에서 토지 이용 계획도를 그리는데, 같은 방식으로 계속 반복해서 일을 하다 보니 똑같은 도시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84% 재능 기부는 사회 발전을 위해서 없어져야 한다. 재능은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을 통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기부해야 하는 것이다

85% 성수동은 미디움 사이즈라는 또 다른 공간 체험을 제공해 준 것이다. 이렇듯 최근 들어 젊은이들이 찾는 곳은 특별한 공간적 체험을 제공하는 곳이다

89% 건축은 다른 예술과는 달리 한 번 지어지면 공공의 공간 속에 오랫동안 남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영향을 주는 일이다라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92% 초등학교 시절에 나는 장난감 미니카를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의 부를 미니카를 몇 대 살 수 있는지로 측정했다. 가장 사랑하는 것이 세상을 보는 기준이 된다

92% 현대인 한 명의 공간은 사는 집 외에도 이용하는 각종 카페, 레스토랑, 영화관, 미술관, 경기장, 공연장, 여행지 등으로 구성된다. 역사상 최대의 크기다

96% 일론 머스크의 인공위성 인터넷망이 완성된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측은 중국 공산당일 것이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인터넷 통제가 더이상 불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세 이야기 - 신들과 전쟁, 기사들의 시대
안인희 지음 / 지식서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중세이야기

 : 안인희

 : 지식서재

 : 2021/08/07 - 2021/09/15


시대를 구분해서 역사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사실 시대를 구분하는게 쉽지는 않다.

보통은 시대의 특징이 서로 오버랩되면서 시대가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세라고 부르는 시대는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동로마제국이 멸망한 1453년으로 나는 알고 있다.

이 책에서는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인 1492년까지로 보고 있다.

시대를 어떻게 나누든 중세는 중세만의 특징이 있다.

기독교 중심이라는 것.

기독교가 어떻게 유럽의 중심이 되었고, 그 안에서 삶과 문학, 그리고 전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껍지 않은 분량에 꽤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어 저자의 필력이 대단함을 느낀다.

특히 그동안 잘 몰랐던 중세 문학, 특히 기사문학에 대해서 배웠다.

롤랑의 노래도 말만 들어봤지 내용이나 그 배경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는데 이 책에 자세히 나와 있어서 도움이 됐다.

유럽에 여행을 가게 되면 작은 시골 마을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설명이 중세를 그대로 간직한 동네라는 말이다.

막상 가보면 이게 중세마을인가 싶기도 하지만 내가 보고싶은 유럽은 사실 그런 모습이긴 하다.

지금이야 낭만적으로 보이는 중세시대지만 당시 살던 사람들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책을 읽으며 낭만만 생각한 내가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중세가 이뻐보이고 그런 유럽을 가보고 싶은 맘은 더 커지기만 한다. 


p16 르네상스가 시작할 때에는 중세의 많은 요소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그 마지막 국민인 미술적 전성기인 16세기는 이미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된 다음이었다

p22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에 속하는 (호전적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평화로운) 나일 문명이 만나는 동부 지중해의 크레타 섬이 바로 고대 유럽 문명의 시작 지점이다(기원전 3000년경). 서로 이질적인 두 문명권이 만나는 곳이니, 고대 크레타 문명은 처음부터 매우 역동적이고 이동과 왕래가 빈번하고 활기에 넘쳤다

p34 그동안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이 문명인으로서 유럽 역사의 주역이었다면, 이제 새로 펼쳐지는 중세에는 로마 사람들이 "야만인"이라 불렀던 유럽 북방의 게르만 사람들이 주역으로 등장했다

p38 이베리아반도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파죽지세로 북쪽으로 올라가던 아랍 세력을 막아낸 사람이 카를 대제(독일에서는 카를 대제, 프랑스에서는 샤를마뉴, 라틴어로는 카롤루스 대제)의 할아버지 카를 마르텔이다. 800년에 그의 손자 카를 대제가 황제가 되면서 서유럽은 조금 정신을 차리게 된다(이 시기를 카를 대제 시대의 르네상스라는 뜻으로 카롤링 왕조 르네상스라 한다)

p45 최근 연구자들은 주로 언어를 기준으로 문화를 가르고 있다. '프랑스 문화'란 프랑스어 문화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p55 메로빙 왕가가 힘없이 끝나고 카롤링 왕가가 시작되었다(751). 따져보면 피핀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왕권을 찬탈한 인물인데, 유럽 종교 지도자인 로마 주교가 재빨리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 도덕성이 뒤로 밀리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p65 프랑크 왕국의 카를 대왕은 이탈리아의 북부를 비잔틴 제국보다는 서유럽의 북부와 결합시켰다. 그리고 이 대관식은 비잔틴 제국과는 별개로 새로운 유럽의 시작을 알린 일이었다

p66 800년 카를 대제의 대관식은 이것을 상징하는 사건으로서, 이 해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기억하기에 편하고, 기억하면 매우 쓸모가 있는 연도이기도 하다

p68 하룬 알-라시드는 아바스 왕조의 황제로서, 이베리아반도에 자리 잡은 우마이야 왕조와 대립하고 있었다. 또한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왕국은 앞에서 보았듯이 카를 대제가 정복하지 못한 적이었다

p81 이 문서는 위조의 시대이던 중세에 나타난 가장 유명한 위조문서의 하나다. 신앙심 깊은 수도사 한 명 도는 여러 명이 750~850년 사이에 교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서를 천연덕스럽게 위조했던 것이다.

p83 강력한 통치권을 기반으로 한 왕이 황제가 될 경우에만 황제의 지위도 튼튼했는데, 이 경우에도 그의 힘은 황제라는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실질적으로 지닌 영통의 통치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p84 8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서유럽에 출몰하기 시작한 북쪽의 해적들은 해안 지역에서 주로 수도원과 교회들을 약탈했다. 9세기가 되면서 그들의 출몰 횟수가 더욱 늘었고, 10세기가 되자 그들 중 일부가 약탈하던 지역에 차츰 눌러앉기 시작했다.

p108 1060년까지 14년동안 그는 거의 끊임없이 온갖 전쟁을 겪었다. 프랑스 왕과 앙주 백작의 합작 공격까지 막아내고 나서야 마침내 윌리엄은 확고한 승리를 거두었다

p117 이 전투에서 해럴드 왕과 두 형제가 노르만 기사들의 손에 전사했다. 윌리엄은 나중에 해럴드 왕이 쓰려져 죽은 바로 그 자리에 거대한 기념교회를 건설하게 했다. 이것이 배틀 수도원이다.

p122 그의 시대에 잉글랜드의 인구 및 재산 상태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나왔다. 이 기록은 원래는 왕의 두루마리라 불리는 것이지만, 자주 최후의 심판 책이라고도 불린다. 마치 최후의 심판을 위한 것처럼 그 무엇 하나 빼지 않고 기록했다는 뜻이다.

p129 프랑스 노르망디로 여행을 한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외 자수 박물관을 찾아가 보자. 저 유명한 정복자 윌리엄의 이야기를 새로운 눈길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p138 로마에서 하인리히 4세(당시 독일 왕이자 이탈리아 왕)에게 밀린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에게서 다급한 구조 요청이 왔다. 교황의 봉신이던 로베르는 아드리아해안을 버려두고 서둘로 로마로 달려가서 하인리히 4세를 쫓아내고 교황을 구출했다. 대신 그의 부하들은 로마를 잔인하게 약탈해서 교황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p143 매우 뛰어난 교육을 받고 당대의 기독교와 아랍 세계에서 좋은 점을 모조리 받아들인 로저2세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통치자였으며, 서방에서는 예가 없는 하렘을 거느렸다.

p150 인기가 없는 교황이었다. 이 교황처럼 당대의 부자, 권력자, 왕 들과 대립하면서 그들의 권력을 제한한 개혁가가 고위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다만 평신도들은 그의 개혁을 몹시 반겼다.

p165 로마카톨릭의 기틀을 세운 위대한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살레르노에서 쓸쓸히 죽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다. 나는 옳은 일을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했다. 그래서 나는 유배지에서 죽는다

p182 마라트에서 한 행위는 아랍 세계에 이교도(기독교) 침입자들의 야만성과 잔인성을 알리는 예로 널리 퍼졌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아랍의 노래에는 "인육을 먹는 자들"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그 옛날 십자군 전쟁 시기에 쳐들어온 프랑크 기사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p196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이렇게 큰일을 벌여서 마련한 권력과 재물의 이점을 그리 오래 누리지는 못했다. 자크 드 믈레가 죽던 같은 해에, 극히 우유부단하던 클레멘스 교황도 죽고, 필리프 왕까지 죽었기 때문이다

p198 카페 왕조의 필리프 4세는 중세 프랑스의 왕권을 강력하게 만든 왕으로서, 교황청을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겨간 사건(아비뇽 유수, 1309~1377)과 성전기사단을 파괴한 일 덕분에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얻었다

p204 3차 십자군 전쟁의 마지막에 리처드가 귀국하다 같은 편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사정은 십자군에 동참한 유럽 영주들의 개인적 이권이 기독교 공통의 전투라는 전체 이념과 동일한 것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p208 전 유럽에서 종교수호를 위해 모였들었다는 연합 군대가 성지 회복은 커녕 같은 기독교 도시를 공격하여 약탈하고 지배하는 깡패 집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미 한 번 시작된 약탈의 버릇은 더욱 고약한 방향을 잡았다

p213 프랑크 사람들은 황금 장식품의 약탈에 열성이었지만, 베네치아 공화국은 예술품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탐색조를 구성해서 가장 가치 있는 물품들을 베네치아로 가져갔다. 오늘날에도 베네치아의 총독궁전에 그때의 보물 일부가 장식 또는 전시되고 있다

p225 아키텐 공작 윌리엄 9세는 총 11편의 노래들을 남겼는데 이들이 모두 그의 작품인지 아주 분명하지는 않다. 어쨋든 그의 이름을 달고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p226 이런 모진 시험을 거친 끝에 여인들은 나그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전하지 않으리라 믿고 그가 마음에 들어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러니까 목욕물을 마련하고 좋은 시간을 위한 준비를 했다. 그는 거기서 8일 이상을 머물며 그들과 188번이나 섹스를 했단다

p233 앞서 3차 십자군 전쟁 이야기에서 만나본 사자심장 리처드는 헨리와 엘레오노르 사이에 태어난 셋째 왕자다. 그의 이야기와 또 다른 유명한 전설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 이야기의 상당수는 잉글랜드가 아닌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다

p238 베네딕트 수도원 노래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카르미나 부라나의 중세 필사본이 발견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 수록된 작품들은 11,12,13세기에 쓰인 것들이다. 주고 (깨진) 라틴어와 중세 도이치어가 뒤섞여 있고, 많은 작품들은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이 소실되어 몹시 불완전한 형태다. 옛날 필사본에 적힌 작품들이 지닌, 피하기 힘든 운명이다

p246 역사적으로는 기독교도들끼리의 싸움이던 것이 서사시 <롤랑의 노래>에서 갑자기 기독교와 이교도의 전투로 바뀌었다

p258 중세 시대를 논하려면 정교와 카톨릭을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정교와 카톨릭이 중세 시대인 1054년에 나뉘기 때문이다.

p265 이교도 기사나 기독교 기사나 가리지 않고 중세 기사 이야기들은 판타지 요소를 띠게 되었다. 중세 문학의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판타지 요소를 지닌다는 점이다. 진지한 역사인 듯이 꾸민 이야기들에도 대부분 판타지 요소가 많이 섞여서 등장한다.

p272 크레티앵의 작품들은 1190년 무렵부터 활발해지는 중세 도이치 궁정 기사소설의 내용과 형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도이치 소설 내용의 일부가 다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작품인 에다에도 스며든 만큼, 크레티앵을 전성기 중세 유럽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선구자라고 부를만하다

p279 그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간통 이야기인데, 그들은 죽을 때까지 자기들의 사랑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죽은 다음 두 사람의 무덤에서 자라난 나무들까지도 서로 뒤엉켜서 굳건히 하나가 된다. 성직자 계층의 작가가 이런 간통 소설을 쓰고, 게다가 그 사랑을 찬미한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이상하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기는 하다

p284 오늘날 우리는 종교가 지배한 중세 시대 유럽 여성을이 억압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물론 억압을 받았지만) 중세 전문가 르 고프에 따르면 중세 시대는 전반적인 생활이 후세보다 훨씬 불편한 상황에서도 여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더 평등한 사회였다고 한다. 물론 완전한 평등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p286 운문 에다의 시편들은 대략 800년대부터 130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긴 시간 동안 스칸디나비아반도와 아이슬란드의 여러 시인들이 쓴 시편들을 수집하여 새로 정리한 것들이다. 여기에는 40편 이상의 장시가 들어있다. 그중 16편까지가 신들의 노래이고, 그 뒤는 영웅들의 노래다

p291 대부분 젊은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낭만주의 작가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와는 다른, 게르만 언어와 문화의 뿌리를 중세 문헌에서 찾으려 했다. 그리고 야코프 그림의 열혈 제자 하나가 에다 문헌을 번역해서 스승에게 헌정햇다

p292 잔인하고 난폭한데도 여전히 점잖고 게다가 죽지 않는다는 그리스 신들에 비해, 게르만 신들이 지닌 그로테스크한 야만성은 현대인이 가상 세계에서 폭발시키는 난폭함과 코드가 잘 맞는 모양이다. 어쨋든 이들 게르만 신들과 수많은 중세 이야기들은 현대의 판타지 세계에서 기묘한 모습으로 부활했고, 또한 각종 변형까지도 경험하는 중이다

p296 페스트는 1347년에 시칠리아와 제노바를 거쳐 유럽 대륙에 상륙했다. 이듬해에는 벌써 피렌체, 베네치아 등 북부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이보다 몇 해 앞서서 인도와 중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괴질로 쓰러졌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p305 언제나 큰 재앙의 시기에는 생각 없는 인간들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고 싶어 하는데, 이 또한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덕분에 인간이 손쓸 수 없는 두려운 상황에다가 인간의 불필요한 잔혹 행위까지 더해져서 전염병 시대의 삶은 더욱 끔찍해진다

p308 많은 이들이 좋은 것들을 소중하게 아끼고 간직했으나, 전염병이 닥치자 즐기지도 못한 채 죽거나 도망쳐야 했다. 내일을 위해 비축해 둔 것이 아무 소용 없음을 거듭 목격하고 보니, 차라리 지금 이 순간을 과도하게 즐기자는 생각이 든 것도 이해가 된다

p320 그녀는 푸아티에에서 3주에 걸쳐 성직자와 고위직 인사들의 신뢰성 검사를 통과하고, 시녀들이 수행한 처녀성 검사도 통과했다

p321 2차 종교재판에서도 그녀는 다시 이단 판정을 받은 끝에 1431년 5월에 루앙의 시장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사후에 추종자들이 그녀를 순교자로 여겨 숭배할 성유물이 나올까봐 불에 타고 남은 재는 센강에 뿌려졌다

p340 이런 사유의 맨 앞장에 선 인물이 페트라르카다. 그는 섬세한 감수성을 소유했던 듯하다. 자연에 대한 미적 안목을 지니고 풍경과 자연을 즐기면서 그런 즐거움을 글로 남겼거니와, 유적지나 고전 서적에 대해서도 특별한 애착을 느꼈다

p348 출신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재능을 후원했다는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다

p350 르네상스 시대 전제군주들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일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였다. 이런 경쟁 상황에서 특별히 유명한 통치자 집안들과 통치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이 인문주의자와 작가들을 후원했고, 학자와 작가들은 그들의 업적을 기록하고 찬미하며 후세에 남겼다. 다만 그들이 행한 악행의 기록들도 비교적 상세히 남아있다. 자기 힘을 과시하기를 좋아한 통치자들이 건축가, 조각가, 화가 등 예술가들을 후원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p364 15세기 초에 태어난 마사초는 원근법을 거의 창안하다시피 하면서 미술에서 완전히 새로운 표현의 길을 열었다. 그때까지의 그림들이 2차원 화폭에서 2차원적인 표현만이 가능했다면, 28살에 요절한 이 젊은 화가는 그림에 깊이와 축을 만들어내면서 3차원의 모습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p384 이들 부부 카톨릭 왕들은 교황의 칙서에 따라, 통합된 에스파냐 왕국에 종교재판 제도를 도입했다. 그들의 뒤를 이은 에스파냐 왕들은 유럽에서 가장 지독한 종교재판과 이교도 및 이단 탄압 정책을 계속해서 펼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흐 : 천상의 음악
존 엘리엇 가디너 지음, 노승림 옮김 / 오픈하우스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바흐, 천상의 음악

 : 존 앨리엇 가드너

 : 오픈하우스

 : 2021/06/20 - 2021/09/06


바흐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산 책..

집에 배달된 책을 보니 미주를 포함해서 10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책이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차근차근 읽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깊어 고생했다.

바흐의 전기라기보다는 바흐의 음악의 완성도와 악보에 대한 설명위주로 되어 있어 더욱 어려웠다.

악보를 읽을 줄은 알지만 악보의 전개에 대한 지식이 없다보니 왜 아름답고 이런 주제와 선율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음악을 들으면서 읽었으면 그나마 이해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읽다보니 음악을 들을 수 없어 작가의 설명이 마음에 막 와닿지는 않았다.

주변환경이 그렇게 어려웠음에도 음악을 향한 바흐의 열정과 음악의 완성도는 바흐가 왜 바흐인지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저자는 바흐도 인간이었고, 실수도 많았음을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내 눈에는 , 어떤 환경하에서도 굴하지 않는 바흐의 위대함만 눈에 띈다.

너무나 두꺼워 다시 읽을 엄두가 나지는 않지만 음악을 들으며 저자의 설명을 다시 들어보고 싶다. 

나의 일천한 음악지식이 한스럽다. 


p20 그가 남긴 글 중 상당수는 교회 오르간 연주에 관한 상세한 기록과 썩 훌륭한 제자들을 위한 추천서로, 재미없고 난해한 내용이다. 그다음으로 많은 내용은 시청 공무원에게 보내는 항의 서한으로, 자신의 근무여건과 불만스러운 보수를 가지고 끝없이 물고 늘어지고 있다.

p27 이 책의 목적은 작품 속 인간과의 조우에 있다. 따라서 이 책이 지향하는 바는 전통적인 전기와는 매우 다르다. 똑같은 경험과 똑같은 느낌을 다루면서 이 책은 작곡행위가 바흐에게 실제로 무슨 의미였는지 독자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p43 내 속은 분노로 끓어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알아왔던, 이 놀랄 만큼 기쁨에 찬 음악을 어떻게 이토록 점잔만 빼고 창백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을까?

p57 바흐 부고 기사에 수록된 그의 미출판 작품 리스트는 그의 아들과 제자들이 그의 칸타타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려준다. 그들은 바흐 작품 중 총 다섯 편의 주일 및 축일을 위한 교회음악 전곡집을 부고 기사 제일 상단에 올렸다

p95 이처럼 미신과 계몽은 대학도시 안에서도 계속 공존했으며, 지동설과 기계적 세계관이 작센의 일반 시민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살펴볼 학교 교육 침투하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p121 바흐 왕조의 근원과 발전 과정을 복원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런 남성 편향성과 선택적 접근을 완전히 피해갈 수 있다.

p135 암브로지우스의 음악적 다재다능함, 자신의 재능에 대한 대쪽 같은 믿음, 그리고 기교적으로 정진하고자 노력했던 전후 바흐 형제 및 사촌들의 세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p142 그가 제바스티안이 아주 어린 시절 접한 음악적 환경 안에서 가장 흥미롭고 혁신적인 음악가였으며, 제바스티안에게 오르간 음악에 대한 첫인상을 안긴 인물이었다는 점은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p158 그 자취는 오늘날 남아있지 않고, 셀 수 없이 많은 순레자들이 찾는 아이제나흐의 바흐 하우스는 2000년 가짜로 개조한 인상적인 박물관에 불과하다

p162 요한 마테존이 말했든, '창의력은 열정과 정신을 요구하며, 그 순서와 비율을 냉철히 계산해서 계획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바흐 자신도 만년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근면과 연습을 통해 성취한 것들은, 웬만한 재능과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이다'

p176 제바스티안 이전 세대 중 가장 위대한 바흐였던 크리스토프는 자신의 숙원이던 오르간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어린 사촌의 작곡가로서의 눈부신 발전 또한 목격하지 못했다

p191 헨델은 바흐처럼 독일 교회음악가가 될 기회가 이미 두 번이나 있었고, 두 번이나 외면했으며, 이는 -마테존의 충고도 분명 한몫했다- 오페라라는 마법의 세계에 강렬한 유혹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p196 짧은 호흡의 스트럭처, 일관성이 결여된 음조 배열, 음악적 논거를 유지하지 못한 점, 그리고 오페라에서 걸핏하면 보이는 임시 처방과 타협들은 진지한 목적을 가진 음악가 바흐로 하여금 환멸을 느기게 했던 것 같다

p231 바흐의 작품에서는 오페라에 등장하는 허구적 드라마 인물이 아니라 다양한 위기를 관통하는 다양한 인간의 대리인들에게 안배된 아리아들을 만난다

p245 그는 민요가 품고 있는 노골적인 속악과 음란함을 신앙 예배에 전용했는데 이는 '화성의 모든 목표는 신의 영광'이라는 그의 주장을 위해서였다

p258 직장생활 내내 계속된 반대와 비판에도 꺾이지 않던 바흐의 완고한 투지, 그리고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 칸토르에 임명된 뒤 첫4년동안 1년 주기의 칸타타 사이크과 수난곡을 완성시키면서 보여준 그의 집요함을 앞으로 다시 짚어볼 것이다

p271 바흐가 생애 내내 가족들 사이에서 죽음을 자주 마주하고 고통스러워했다는 것만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의 부모가 둘 다 50세를 넘기지 못했고, 20명의 바흐의 자식 중 12명이 세 살이 되기 전에 사망했다

p285 그의 개인적인 독실함, 그가 평생 루터에게 바친 숭배, 그리고 개인적,직업적 재능 양쪽 모두의 의미에서 루터의 저서에 중요성을 부여했다는 것을 넘어서, 여기서 드러나는 바는 '바흐가 분명히 적어도 2백 살은 된 사고방식에 깊이 -그리고 분명 무비판적으로-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p291 이 모든 일은 지난 7년간 갈수록 험악해지다 폭발 직전까지 이른 바흐와 의회 사이에 벌어진 분쟁의 일부였다. 이는 '천재이면서 동시에 순종적인 직원'이 되리라는 기대를 안고 예술가를 관공서에 불러들일 대 벌어지는 고전적인 갈등이기도 하다

p303 대공의 궁정에서 일했던 15년의 시간과는 달리 바흐는 자신이 함께 일하던 조직과 높은 수준의 교회음악을 전달할 자신의 능력 사이의 절충점을 찾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을 처리하는 데 미숙했다는 점이다

p305 그가 소란 및 폭력 행위에 연루되어 아이제나흐 교회 목사들의 골치를 석이고, 사람들 사이에 추문을 일으킨 증거는 무수히 많다

p317 왜 4주가 아닌 4개월 동안 종적을 감췄냐는 완벽하게 합리적인 의문에 대해, 바흐는 '(나의) 예술에 대해 이것저것 이해하기 위해서'였다는 압도적인 태도로 응수했다

p317 뤼백에서 인생 최고로 고무적인 만남을 경험한 뒤 돌아와 여전히 들떠 있는 바흐에게, 살면서 화성 수업이라곤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훌륭한 의원들이 작곡과 오르간 즉흥 연주를 이렇게 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p322 북스테후데처럼 풍부한 경험을 가진 거장이 자신의 지위에서 음악을 어떻게 성취했는지 직접 목격한 스물 두 살의 바흐는 필하우젠에서 비슷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똑같은 자율성을 보장받고자 했다

p331 이처럼 권위에 눌릴 때면, 그는 자신의 잠재력에 기대어 음악으로 가벼운 복수를 했다. 그 방식은 교묘해서 늘 본래 의도를 감췄기 대문에 우리는 물론 심지어 복수의 대상조차 고의성을 증명하지 못했다

p348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1723년 라이프치히에서 마주한 순간, 그는 이를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지위, 임금, 가족, 그리고 안락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후 3년동안 그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그 꿈을 실현시키는 데 쏟아부었다. 이 분야에서 그의 창의성-이때 작곡 중이던 세 편의 칸타타 사이클과 두 편의 수난곡-은 거의 넘치는 수준에 이르렸고 구상과 실제, 가치 그 어던 면에서나 당대 다른 작곡가들을 능가했다

p359 음악가로서, 그리고 신에게 선택받은 신하로서 자신의 권위가 도전받는다고 느낄 때마다 그는 성마르고 과민해졌다

p372 그의 화성에 관한 지식은 대단히 심오해서 수학적이기가지 하다. 그의 모든 음표와 조성 하나하나가 서로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화음 하나하나 , 지시 변화 하나하나가 무엇을 만들지 알고 있었다. 에마누엘이 말했듯 '그는 그것들을 완벽하게 계산해서 크고 아름다운 전체에 맞물려 다양성과 위대한 단순성을 결합시켰다'

p389 바흐는 그가 선택한 아홉 명의 희생양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 중 바흐만이 유일하게 샤이베의 가시 돋친 비평에 공개적으로 대응했으며, 이 순간부터 샤이베의 표적이 되었다

p395 바흐가 악보에 포함시킨 엄청난 분량의 디테일한 장식음은 그의 실제 연주 경험과 관련된 것으로, 그가 즉흥적으로 작곡하고, 다듬고, 그리고 최초의 단순한 첫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했던 다양한 전략들이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압축되어 있다

p437 그 어떤 장르에서든 그는 관습적으로 정해진 정서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했으며, 이와 관련해서는 그의 첫째와 둘째 아들도 명성이 자자했다

p452 그의 발은 마치 날개가 달린 듯 움직이며... 페달을 넘나들었고 그러한 움직임으로 오르간 사운드는 충만하게 채워졌으며 그곳에 참석한 이들의 귀를 천둥 번개처럼 관통했다. 그 천둥 번개는 원석을 다듬어 반지를 만들더니, 소리가 사라지자마자 바흐에게 안겨줬다

p457 니콜라이 교회와 토마스 교회의 내부 디자인은 사회적 계층에 따라 좌석을 분리함으로써 루터교도들의 통합에 정면으로 위배되어 있었다. 다만 공동 예배라는 목적 하나를 위해 이들은 이렇게 분열된 채로 한 자리에 모여 있을 뿐이었다

p470 괴테와 여타 지식인들이 훌륭한 음악 매너와 침묵하는 자기 성철의 습관(피터 게이가 19세기 절묘한 아름다움을 위한 이상적인 자기 통제, 혹은 지연된 심리적 보상이라 불렀던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기 전, 글루크, 모차르트, 로시니, 슈포어 등 여러 작곡가들은 연주 도중 청중이 배회하는 것은물로이거니와 강물처럼 흐르는 수다와 카드게임, 소르베를 홀짝거리는 소리를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p523 이 크리스마스 음악들은 정신없는 빠르기로 연주되는 작품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p564 라이프치히에서 바흐가 처음 품었던 포부는 학자들의 일반적인 가정보다 훨씬 웅장했다는 것이다

p570 이 칸타타에서 만날 수 있는 바흐의 가장 매력적인 습관 중 하나는 악기의 개성을 한껏 살린다는 점이다. 표정 있는 결말을 위해 그는 각 악기를 독립적으로 사용하거나 다양한 조합을 시도한다

p576 바흐의 음악은 가사만큼이나 타협을 거부한다. 이중 푸가의 두 주제는 서로 교차하고, 한 대의 코르넷과 세 대의 트롬본으로 구성된 고풍스러운 금관 악기들이 친밀하게 합류하면서 성악파트는 2중으로 확대된다

p586 1829년 멘델스존이 요란스럽게 복원한 이래, 마태수난곡은 사실상 바흐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경외감에 가까운 보편적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보다 짧은 요한수난곡은 1883년 마찬가지로 멘델스존에 의해 복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듯했다

p637 마지막 합창-유사 코랄 주의 고난이 있었기에-은 프리드리히 슈멘트가 이 노래를 재판 장면의 핵심으로 인정한 이래 학자들의 가장 큰 관심을 모아왔다

p648 성악가들의 선율은 예수의 마지막 말씀(끝났도다)에 부응한 뒤, 관례대로 연주를 완전히 멈췄다가 감바 선율이 죽어가는 종지부 위에서 다시 한번 반복된다. 그러고 난 뒤 다시 회귀하는 화려하면서도 구슬픈 감바 선율은 이 음악을 절대로 공허한 승리주의로 놔두지 않겠다는 분명한 신호다

p658 바흐의 요한수난곡이 초연 직후 정확히 1년 만에 과감하게 수정된 것을 보면 이 첫 번째 버전에 대한 목사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수정을 통해 장엄한 오프닝 코러스와 문제적인 마지막 코랄이 삭제되었다

p664 나는 바흐의 수난곡을 떠받치고 있는 다층적 구조를 청중이, 만약 직접 보거나 들을 수 없다면, 적어도 느낄 수는 있다고 말하고 싶다

p673 1724년과 1725년 공개된 두 가지 상이한 버전의 요한 수난곡은 양쪽 모두 빠른 드라마 전개를 보여줬으며, 이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후 바흐는 복음 장면들 사이에 청중에게 묵상할 시간을 더 제공할 장치를 고려하게 되었다

p676 요한 수난곡에서 즐길 수 있었던 생생한 장면 묘사와 거침없는 극적 추진력이 감소되는 대신 이 마태 수난곡에서는 정교하게 의인화된 다양한 음성들-드라마 자체(바흐가 주로 대화를 통해서만 진행시키는)에 개입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아리아도 부르는 우화적인 요소들-과, 생산적인 긴장 상태에서 연속적이면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 모든 시간 변화를 유지하는 방식을 즐길 수 있다

p719 바흐는 일찍부터 (1부에서 최후의 만찬 중 성찬식 주도와 정원에서의 고뇌) 내레이션 위로 그의 존재를 끊임없이 떠올리고, 예수의 개입을- 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현악 사운드와 더불어 (십자가에서 마지막 통곡을 제외하고)-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p731 에마누엘 바흐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포르켈에게 말하길 '부지런히 일했고, 가사의 내용을 중시하며 단어를 이상한 자리에 잘못 배치하지 않도록 노력했고, 그렇다고 큰 그림을 훼손시켜가면서까지 단어 하나하나에 일일이 매달리지는 않았다. 그 결과물을 가지고 자칭 전문가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감탄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곤 했지만 말이다

p738 바흐는 경계를 허무는 사람이었다. 용인되던 취향의 범위, 더 많은 형식적, 표현적 어휘를 수용할 수 있는 음악의 범위,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고 신에게 기도하고 이웃을 교화시킬 수 있는 음악의 범위를 더 확장시키고자 했고, 이전에 자신이 무엇을 성취했든 늘 그 이상을 원했다

p762 다음에 이어지는 곡은 우리는 미약하지만 열망의 걸음으로 나아갑니다다.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더라도 고결한 오프닝 코러스 다음에 이처럼 뜬금없이 화려하고 경박하기까지 한 이중창을 예상하기는 힘들 것이다.

p798 바흐 모테트가 보여주는 빛나는 자유, 자신의 창조주를 찬양하며 보여주는 우아한 기쁨, 그리고 죽음을 명상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그의 완벽한 확신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우리의 운명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응답니다.

p809 새로 취임한 시장 야콥 보른은 교직임무에 더욱 충실하라고 바흐에게 직접적으로 강요했고, 의회에는 그가 일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하면서 그로부터 보직을 박탈하고자 시도한바 있었다

p819 바흐의 미사곡은 이러한 경쟁자들을 훨씬 넘어서 있었으며, 객관적 기준으로 보더라도 독창성과 복잡함에 있어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p844 18세기 문학 및 음악 관습상 표절은 널리 허용되긴 했지만, 헨델과 달리 바흐는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거친 조약돌을 가져다 쓸 필요가 없었다

p854 바흐가 이 중요한 순간과 어떤 사투를 벌였는지는 그의 자필 악보에 고통스러울 만큼 명료하게 드러난다. 이 페이지를 보면 중간 성부에 줄을 찍찍 긋고 새로 수정한 자국들로 지저분하게 어지럽혀져 있다

p881 바흐는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을 되돌아보며 1723-1733년-토마스 칸토르에 취임한 때부터 작센 선제후에게 미사곡을 헌정할 때까지-을 가장 도전적이고 생산적인 10년으로 보았을 것이다

p894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가 포르켈에게 한 말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편지를 길게 쓸 시간은 없었지만 대신 그의 집은 비둘기장처럼 늘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좋은 사람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기회를 더 많이 가졌다. 그와 어울리는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했고, 유익할 때가 많았다

p901 그의 제자 요한 필립 키른베르거에 따르면, 바흐는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p911 바흐의 인간성을 순순히 인정하면 그가 우리와 얼마나 비슷한 사람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천재성을 설명하지 않으려고만 든다면(신의 선물이라든가, 혹은 유전자나 양육의 결과라든가 하는 식으로)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p926 바흐는 7월 28일 오후 8시 15분이 조금 지난 직후 사망했다

p994 순례여행의 경유지로 통상적인 연주회장이 아닌 교회를 고집했습니다. 바흐의 칸타타는 연주회를 위해 작곡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