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 둘만 모여도 의견이 갈리는 현대사 쟁점
박태균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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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 박태균

 : 창비

읽은기간 : 2024/09/08 -2024/09/13


제목을 보고 기대를 많이 했는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

한국사에서 이슈라는 말이 붙으면 보통 2군데다. 하나는 한국 고대사, 다른 하나는 일제 강점기.

그런데 이 책은 과감하게 현대의 이슈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더 흥미가 있었다. 

그런데 현대사는 함부로 이슈라는 말을 부치면 안될 것 같다. 특히, 첨예하게 대립되는 내용이라면...

나처럼 뭔가 새로운 발견이나 새로운 학문적 업적이 나온줄 알았는데 이슈와 대립을 설명하는 수준.. 

다른 책과 다른 것은 이슈의 원전을 실었다는 것. 예를 들어 독도에 대한 내용이라면 독도에 대한 이슈가 발생한 조약과 협의문이 번역되어 실려 있어서 원전을 읽고 더 궁금하면 책을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사료도 적고, 판단할 만한 내용도 적다면 함부로 이야기하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립된 양측에게 모두 공격을 받을 테니까...

대립을 해소하고 더 나은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이긴 하지만 좀 더 선명하기를 바라는 독자의 마음으로는 많이 부족했다..

더 선명한 결론이 있는 책을 원한다. 


p17 일본이 장악한 섬들은 대부분 태평양의 전략적 요충지들이었죠. 이것 외에 또 하나의 핵심적인 요구는 바로 한국과 타이완의 해방 문제입니다. 특히 한국의 해방을 언급한 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죠.

p27 원래는 일본을 무력화시켜서 더이상 말썽을 피우지 못하게 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중국이 공산화되자 일본을 다시 한번 부활시켜서 아시아에서 중국의 팽창을 막기 위한 미국의 파트너로 삼기로 했던 것입니다.

p104 영어로 개척을 의미하는 익스플로이테이션을 사전에 찾아보면 두 가지 상반된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이용한다 즉 수탈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개발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p165 한반도에서 정전협정이 불안정한 상황인데도 유엔이 새로운 협정이나 체제를 고민하는 과정에 제 역할을 못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 정전체제의 가장 큰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194 우리는 베트남에서 철수한다. 우리에게 베트남은 중요하지만 아시아 문제는 아시아 사람들이 해결하라라고 발을 빼는 거죠. 이것이 바로 1969년의 닉슨독트린입니다.

p208 우리는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을 취해왔기 때문에 해외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아무리 잘사는 나라라도 무역의존도는 대부분 20퍼센트 이하이고 내수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우리의 경우는 무역의존도가 60퍼센트 이상입니다. 즉 우리 경제는 해외 경제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해외 경제가 흔들릴 때마다 많이 흔들리게 됩니다.

p213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서 미국과 우리나라가 환율 문제에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장면 정부에서 환율이 현실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정부 때 다시 한번 환율 문제가 정상화되는 거죠.

p221 초기인 1963년에서 1964년으로 넘어갈 때 경제개발계획이 한 번 바뀌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수출을 강조하는 정책으로 바뀐 거죠. 이전의 경제개발계획과 다른 성격의 경제개발계획이 나온 거에요. 그래서 1964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출중심의 경제개발계획이 실행됩니다.

p227 8.3 조치는 크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위기가 왔을 때는 시장논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시장을 정상화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시장논리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점입니다. 1969년과 1970년의 청와대 보고서만 보더라도 시장논리가 살아 있었지만 8.3조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는 기업가 윤리를 명확하게 세워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p233 이런 한계 상황들이 70년대 말에 왔습니다. 미국의 정책이 바뀌고 세계경제가 바뀌고, 또 우리의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그 구조가 복잡해지니까 박정희식 모델로 가는 것이 어려워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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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 - 인류를 지배종으로 만든 문화적 진화의 힘
조지프 헨릭 지음, 주명진.이병권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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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모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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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기간 : 2024/09/01 -2024/09/0


이기적유전자에 나오는 밈이라는 용어의 과학적 증명이라고 할까?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에 문화적 진화를 포함시켰다고나 할까?

인류는 왜 다른 영장류와 다르게 진화하여 지구의 정복자가 되었는지를 문화의 진화로 설명하는 흥미로운 책...

재미있게 읽었는데 다른 유명한 과학자들도 추천하는 걸 보면 이런 생각과 주장에 똑똑하신 분들도 많이 동의하나보다. 

문화적 진화가 일어나는데 가장 중요한 지점은 집단의 규모다. 그 규모가 커질수록 사회적 진화가 더 잘 일어난다. 모의실험을 통해서 보면 규모가 크고 적당히 똑똑하고 덜 똑똑한 사람이 섞여있는 집단이, 똑똑한 사람만 모여있는 소규모의 집단보다 더 진화가 잘 된다고 한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교류하고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는 포인트다.

진화가 있었고, 우리가 그 진화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걸 부인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진화라는게 방향성이 없다보니 '왜 이래야 하지?'라는 대답을 할 때 항상 나는 의문이 든다. 

신의 존재를 믿는 나에겐 진화의 다양한 설명들이 재미있기도 하고 질문이 많이 생기게 된다.

이 책이 2015년에 나왔는데 2024년에 읽었다. 

이렇게 내가 세상의 변화에 느리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좇아가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올해의 책 후보다. 


p28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우리 종의 암컷은 월경주기 내내 변함없이 성관계를 가질 수 있고, 생식 능력이 멈춘(폐경이 일어난) 뒤로도 한참 있다가 죽는다. 아마도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엄청나게 큰 뇌에도 불구하고 우리 종이 그다지 총명하지 않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은데, 적어도 우리 종이 거둔 엄청난 성공을 설명할 만큼 선천적으로 영리한 것은 아니다.

p29 2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우리에게서 문화적으로 습득한 정신적 기량과 노하우를 제외하면, 다른 유인원들과 문제 해결 테스트에서 경쟁할 때 특별히 뛰어나지 않다. 더욱이 우리의 종의 엄청난 성공이나 우리의 훨씬 큰 뇌를 설명하는 데 충분히 인상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p34 우리 종이 성공한 비밀은 우리 개개인이 지닌 마음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집단두뇌에 있다. 우리의 집단두뇌는 우리의 문화적 본성과 사회적 본성의 통합에서-우리는 쉽사리 남을 본받으며 적절한 규범을 써서, 폭넓게 상호 연결된 커다란 집단 안에서 살 수 있다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p39 기후변화도 이러한 멸종에 기여한 요인이었겠지만, 많은 대형 동물군 종들이 사라진 시기는 인류가 여러 대륙과 큰 섬에 도착한 시기와 오싹하리만치 일치한다.

p54 지능적이고 합리적인 행위자들의 경합에서 예측되는 승리 전략은, 동조자는 왼쪽을 50퍼센트 정도로 찍으면서 무작위로 대응하고, 그동안 비동조자는 무작위로 대응하되 왼쪽을 20퍼센트 빈도로만 찍는 것이다. 이 결과를 내시 균형이라 한다. 왼쪽을 찍어야 하는 빈도는 왼쪽이나 오른쪽을 일치시키거나 불일치시키는 경우의 보수만 바꾸면 달라질 수 있다.

p60 프랭클린의 대원 105명은, 커다란 뇌도 있고 동기도 충만한 영장류로서 인간이 3만 년 넘게 식량약탈자로서 살아온 환경을 마주했을 뿐이다. 그들은 북극에서 3년 동안, 그리고 보급품이 서서히 줄어드는 가운에 얼음 속에서 꼼짝도 못한 채 19개월 동안, 그 환경을 경험하고 그 커다란 뇌들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할 시간이 있었다.

p65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문화적 진화의 선택 과정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도구, 관행, 기법을 포함한 문화적 적응물의 묶음들을 조립해 왔기 때문인데, 이러한 묶음은 아무리 동기로 충만하고 협동적인 개인들의 집단이라도 몇 년 만에 고안해 내지 못한다.

p83 사람들이 더 성공한 사람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 실험의 핵심적 연구 결과는 엄청나게 다양한 분야에서, 통제된 실험실 조건과 실세계의 양상에서 모두 거듭 관찰되었다.

p89 8장에서는 이 발상을 확정해 어떻게 선택적인 문화적 학습이 인간에게서-우리가 영장류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권력 지위와 더불어 우리종 안에 거주하는- 명망이라 불리는 두 번째 형태의 사회적 지위가 진화하도록 주도했는지 살펴본다. 예컨대 왜 현대 세계에서는 유명하기 때문에 유명해지는 게 가능한지 알게 될 것이다.

p101 우리의 세상에서, 마키아벨리주의자로 성공하려면 먼저 숙련된 문화적 학습자가 되어야만 한다. 먼저 규칙이 뭔지를 알아내기 전에는, 규칙을 왜곡하고 이용하고 조작할 수도 없다.

p107 핵심은 사바나 사냥 묶음을 창조하기까지 이 우연한 통찰과 운 좋은 실수가 우선적으로 전달되었고, 지속되었으며, 마침내 다른 형질들과 재조합되었다는 것이다.

p114 척추동물의 뇌는 성숙하는 동안 신경세포들 사이의 (축삭) 연결망이 점차적으로 ‘안으로 묻히고’ 성능을 높여주는 수초라는 (흰 빛깔의) 지방질 겉껍질에 둥글게 말려지면서 뇌의 백질이 증가한다. 이 수초화 과정은 뇌 영역들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지만, 가소성이 떨어져서 결국 학습의 영향을 덜 받게 된다.

p119 이 모든 기법 가운데, 익히기가 아마도 우리의 소화계를 다듬어온 문화적 노하우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영장류학자인 리처드 랭엄은 조리가 (그래서 불과 함께) 인간의 진화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해 왔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해왔다.

p133 이러한 추론이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땀에 기반을 둔 우리의 정교한 체온조절 체계는 문화적 진화가 물통을 만들고 다양한 환경에서 수원을 찾아내기 위한 노하우를 발생시킨 뒤에야 진화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를 기막힌 오래달리기 선수로 만드는 한 벌의 적응물은 실은 공진화 묶음 안으로 문화가 결정적 재료의 하나인 물을 배달했던 것이다.

p147 포유류의 몸에서는, 썩어가는 과일을 비롯한 여러 출처에서 나오는 알코올이 알코올탈수소효소 유전자가 생산한 효소에 의해 분해된 뒤 최종적으로 간에서 처리되어 에너지와 대사산물로 바뀐다. 그러나 알코올이 간으로 흘러들어오는 속도가 너무 빠르면 넘쳐서 심장으로 들어간다음 전신에 퍼진다. 취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p159 종합적으로 볼 때, 문화적 진화는 인간의 유전체를 갖가지 중요한 방식으로 강력하게 모양지을 수 있고, 그렇게 해왔다. 5장에서 보았듯이 이 문화-유전자 공진화의 상호작용은 우리 종의 역사 속으로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때부터 문화적으로 전달되는 불, 물통, 추적, 발사무기 따위에 관한 노하우들이 핵심적인 선택압의 일부로서 우리의 해부구조와 생리의 여러 측면을 선호하고 있었다

p169 이 금기들의 집합은 여성들의 평소 식단에서 가장 유독한 종을, 정확히 어머니와 자식이 가장 취약한 시점에 선택적으로 겨냥하는 일종의 문화적 적응물에 해당한다.

p174 우리 종과 반대로, 다른 동물들은 식물을 해독하는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유전적 적응 구조를 잃어버리고 문화적 노하우에 대한 의존성을 진화시킨 뒤, 먹기만 한다

p177 이 예시의 핵심은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적 관행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때로는 자신의 관행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또는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심지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에 새나 뼈를 이용한 점술이 실제로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 관행을 버리거나 갈수록 의례를 통해 알게된 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직관을 선호할 것이다.

p195 어떤 형태로든 공경을 받지 않는다면, 명망가로서는 아무 관계도 없는 학습자가 주위에 있게 해줄 의욕이 거의 없어서 자신의 기량, 전략, 노하우에 우선적으로 접근할 권한을 제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p200 명망가가 영향력이 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견과 관행을 바꿔 명망가의 것과 더 잘 일치시키기 때문이기도 하고, 설사 의견이 다른 경우에도, 공경의 한 형태로서 명망가를 따라가고 싶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p210 심지어 명망이 낮은 참가자가 먼저 협력했을 때에도 명망이 높은 참가자는 여전히 협력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명망이 낮은 참가자는 실제로 명망이 높은 참가자의 협동적 경향 또는 행실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었을 뿐 아니라, 명망이 높은 참가자는 명망이 낮은 참가자가 자신을 따르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만 협력으로 대응했다. 여기서 협력이 창출되어 모든 사람의 이익이 커지느냐 마느냐는 결정적으로 명망이 높은 참가자가 먼저 행동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었다.

p254 최근의 여러 실험적 연구도 남들과 장단 맞춰 노래하기 그리고/또는 움직이기가 집단 안에서 소속감을 심화하고, 신뢰를 조성하며, 협력을 촉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p260 서로에게서 배우는 우리의 능력이 공동체 의례, 음식 금기, 친족관계의 규칙을 포함하는 일련의 사회규범을 탄생시키며, 이는 인간의 사회생활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p267 모든 친사회적 제도는 집단 간 경쟁의 역학에 의해 새로워지지 않는 한, 시간이 가면 낡아서 마침내 이기심의 손에 무너진다.

p274 인류학자 도널드 터진은 일라히타가 다른 공동체들과 달리 그처럼 큰 규모를 유지한 비결에 대해 자세히 연구했다. 그는 지난 세기 동안 일라히타가, 그것을 에워싼 신비한 믿음 체계 안에 안락하게 자리잡고 있는, 의례적으로 자극되는 형태의 사회조직을 도입했음을 발견했다. 이 묶음이 공동체를 재조직해 하위집단들 사이에 서로 교차하는 상호의존성을 창조했고, 의존성은 다음 의례에서 신성화되었다.

p293 위반자가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문제는 따돌림이나 신체적 폭력으로 비화되고 가끔은 조직적인 집단처형으로 절정에 이른다. 복종하지 않고 훈련을 거부하는 놈들을 죽임으로써 늑대를 개로 가축화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인간 공동체는 자신들의 구성원도 가축화했다.

p311 사회규범이 까다로운 이유는 그것이 흔히 숨어 있다가 너무 늦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규범 가운데 다수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의 일부로 너무도 깊이 박혀 있는 나머지 어떤 사람은 다르게 믿을 수도 있으리라고 상상하기가 어렵다.

p323 결과는 전쟁의 경험이 아동기의 중간 시기를 여는 7세 무렵에서 성인기 초기(20세 무렵)에 이르는 발달 기간 사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범위에 들어가는 나이에 경험한 전쟁은 사람들에게 평등주의적 규범을 고수하려는 동기를 각인시키는데, 그것은 그들의 내집단에만 해당됐다. 다시 말해 전쟁에 더 많이 노출된 사람은 비용분담게임에서 반반 나누기를 택하는 식으로 평등주의적 선택을 더 많이 하지만, 내집단의 구성원에게만 그렇게 한다.

p332 5-본보기 처리군에서, 참가자들이 무조건 앞선 세대에서 가장 능숙한 선생을 모방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는 (다섯 명 가운데) 최상위 선생 네 명의 통찰을 통합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최고의 선생이 한 것에 상대적으로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 이것은 중요한데,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별개의 요소들을 습득함으로써, 학습자가 발명없이도 혁신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p338 더 큰 개체군이 문화적 전달에 내재하는 정보의 손실을 극복할 수 있는 이유는, 뭔가를 배우려는 개인들이 많으면 누군가는 결국 자신의 학습 본보기와 최소한 같거나 그보다 나은 수준의 지식 또는 기량을 가지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p344 무엇이 어린이를 성공으로 이끌었을까? 과제를 더 잘 푼 아이들은 (1) 다른 아이들을 더 자주 본떴다(남들과 행동을 일치시켰다) (2) 설명을 더 자주 들었다(가르침을 받았다) (3) 다른 아이들에게서 선물을 더 많이 받았따(사회적이었다). 따라서 모방, 교육 사회성이 중요했던 것이다.

p346 불행히도 손을 들고 이렇게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은, 도구의 복잡성을 보고 선천적 인지능력을 추론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도구의 복잡성이 발생하는 데는 사회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이것이 정답이다)

p370 아이들에게서 정수와 색이름을 둘 다 충분히 이해하는 능력은, 최소한 언어의 다른 양상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늦게 발달한다. 흥미롭게도, 요즈음 서구의 아이들은 지난 세대의 아이들보다 더 어린 나이에 기본 색이름을 떼는데, 이는 문화적 체계가 이 지식을 더 잘 전달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p398 능숙한 독자는 아마 얼굴을 알아보는 능력이 떨어질 텐데, 왜냐하면 관련 뇌 영역들을 돌려쓰면서, 얼굴 인식을 전문으로 하는 방추화 영역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실은 신경적으로 얼굴 정보를 처리할 때 뇌의 오른편을 선호하는 비대칭성이 정착된 것도, 읽기 학습의 효과가 얼굴 처리를 왼편에서 몰아내어 왼편이 할 수 있는 일을 오른편으로 떠넘기기 때문일 수 있다.

p402 최근의 증거는 문화가 어떻게 우리 뇌 구조를 바꾸고, 몸을 주조하고, 호르몬을 조절하면서 생물학을 모양짓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문화적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의 한 유형이다. 유전적 진화의 한 유형이 아닐 뿐이다

p405 다른 가격을 매긴 같은 포도주에서 얻은 스캔 사진을 비교한 결과는, 사람들이 더 비싼 포도주를 마시고 있는 동안 내측 안와전두피질, 다시 말해 냄새, 맛(음식과 음료), 음악에 대한 쾌감이나 호감의 경험과 연관되는 영역에서 더 높은 활성화를 보여주었다.

p424 우리 종의 문화적 본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인간 개체군을 제도, 기술, 관행에 연관된 수많은 차원에서 심리적으로 상당히 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 그리고 그 심리적 차이들은 궁극적으로 (유전적이 아닌) 생물학적 차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유전학적 설명을 생물학적 설명과 동일시하고 이 둘을 문화적 설명과 구별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p434 이 초기 단계의 어느 시점에, 아마 우리 계통에서 7번 염색체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MYT6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졌을 것이다. 현생 영장류안에서 이 유전자는 영장류의 머리뼈를 둘러싸는 거대한 근육을 만들어 냄으로써 영장류가 질긴 먹이를 씹고 아주 세게 물 수있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이 유전자의 도움으로 만들어지는 강력한 근섬유가 더는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 안에서는 이 유전자가 활동하지 않는다.

p463 인간의 암컷은 언제든지 성 상대자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고 수컷은 자신의 짝이 언제 임신할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다. 이와같이 배란이 최소한 부분적으로 감추어짐으로써, 수컷은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더 자주 짝의 주위를 맴돌다가 번식에는 불필요한 성관계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p478 왜 인간은 다른가에 대한 답은, 우리는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것이다. 문화적 진화가 누적적이었고, 그런 다음 이 축적되고 있는 정보 덩어리와 그것의 문화적 산물 모두가, 불과 식량 공유 규범처럼, 인간의 유전적 진화에서 중심적인 추동력으로 발전했다. 우리가 이토록 독특해 보이는 이유는, 다른 어떤 현생 동물도 이 길을 밟지 않았고, 이 길을 밟았던 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그랬듯 우리 종이 여러 번에 걸쳐 확장하던 어느 한 기간에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p482 전반적으로 이 문화-유전자 공진화 과정은 인간의 협력이라는 특정한 본성의 설명을 가로막는 주요한 난제들을 잘 풀어간다. 그것은 왜 우리 종은 다른 종보다 이토록 더 많이 협력적인지를 해명할 뿐 아니라, 왜 인간의 협력은 (1) 사회와 행동 분야(예: 식량공유, 공동체 방어, 의례 참여 따위)에 따라 이토록 많이 다른지, (2) 지난 1만 년 사이에 이토록 극적으로 증가해왔는지, (3) 문화적 학습에 의해 이토록 쉽사리 영향을 받는지, (4) 의례적 관행이나 음식 금기처럼 협력과 무관한 많은 분야에서 작동하는 것과 똑같은, 평판을 통한 강요 기제에 의존하는지 (5) 사회에 따라 수반하는 보상, 처벌, 자질의 신호, 규범 위반자를 선택적으로 이용해먹는 방식이 천차만별인, 전혀 다른 유인체계에 의해 유지되는지도 설명해준다.

p488 명망과 순응주의의 단서들을 신뢰도증강표시 CRED(믿다)와 조합한 새로운 공동체 의례가 개발되고 확산되어 이 새로운 신에 대한 신심을 깊게 하고 국지적 공동체나 부족을 넘어서 연장되는 더 큰 믿음의 공동체를 건설했다. 그 결과로 현대 종교는 우리의 정치제도와 마찬가지로, 우리 종의 진화사 대부분 동안 존재했던 종교 및 의례와는 상당히 다르다. 모두 똑같은 문화적 진화 과정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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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의 이슬람 - 한국의 지성을 위한 교양 필독서 21세기 중동과 이슬람 문화의 이해
이희수 지음 / 청아출판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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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수의 이슬람

 : 이희수

 : 청아

읽은기간 : 2024/07/03 -2024/09/03


이슬람에 대해서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시는 이희수 교수님의 책

책이 벽돌책이라 읽는데 오래 걸렸다. 

이슬람 역사책인줄 알았는데 이슬람에 대해서 자주 묻는 질문 30가지를 비롯하여, 이슬람의 역사, 주요인물, 이슈들에 대한 소개 및 해석 등 이슬람에 대해 다양하게 배울 수 있고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읽다보면 너무 이슬람 편향적인거 아냐?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내가 서구의 시각에 경도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뉴라이트라는 반민족적인 집단들이 우리나라 역사의 해석을 바꾸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이슬람을 폄하하고 미워하는 집단이 우리나라에 너무나 많다.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이슬람을 바라보게 하는데 이런 책이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좋았다. 


p23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사라지면서 안정적인 원유 확보와 수송이 미국의 절대 국익이었던 시대가 종식된 것이다.

p36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이 중동에 개입한 이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어 세 번째 맛보는 처절한 실패다

p45 세계 경제의 급소를 공격하는 무모하고 비열한 공격을 결코 용서할 수 없지만, 드론 공격의 빌미가 된 건 무고한 예멘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는 사우디의 군사 행태다

p47 절박한 상황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가장 유용한 노동력은 단연 젊은 남성이다. 이것은 전쟁에서 피생되는 기본적인 난민 구도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부 단체에서 20대 잠재적 성범죄자 대량 입국이라고 했다가 국제 사회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p49 두 나라 사이의 갈등과 원한은 본질적으로 종파적 문제에서 출발했지만, 민족과 언어의 차이, 이웃 경쟁국으로서의 정치-경제적 이해 충돌, 무엇보다 651년 아랍에 멸망당한 페르시아 문명권의 후예로서 이란이 갖는 역사적 트라우마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p56 21세기 들어 여론 조작으로 전쟁에 돌입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라크 침공이었다

p61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중동 정세가 훨씬 복잡해졌고, 기본적인 전쟁 윤리와 국제 규범의 틀이 무너지면서 오늘 중동 분쟁과 급증하는 테러의 일차적 배경이 되었다는 점이다

p74 대통령은 내각을 구성하고 나라를 실제로 운영하며 국제 사회에서 최고 통치자로서 국가를 대표하지만, 군 통수권, 내각 임면권, 의회 해산권, 사법부는 사실상 신정 정치체제의 최고 지도자인 하메네이가 장악하고 있다. 최고 지도자를 보좌하는 각 방면의 전문가들이 표진하고 있어 사실상 이중 정부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체제를 신정 정치라 한다.

p85 그 땅의 주민조차 자국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예루살렘을 자국 수도로 선포하는 이스라엘이나 이에 홀로 동조하는 트럼프를 통해 이 시대의 보편 가치가 과연 무엇인가 근원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p99 재스민 혁명으로 촉발된 아랍의 봄은 대안적 정치 세력이나 시민 사회 형성이 부재한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곧바로 꽃피울 수 없다는 슬픈 현실을 온몸으로 가르쳐 준 사건이었다

p103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업들은 아랍 권위주의 정권과 협력하면서 오히려 시민을 통제, 감시하고 연결고리를 와해한다는 비난에 휩싸이고 있다. 가짜 뉴스와 정보 혼란을 야기해 건강한 시민 사회 담론을 왜곡시키고, 개인 정보에 무차별 개입하면서 시민의 결집된 분노와 시위를 방해하는 데 소셜미디어가 악용되고 있다

p117 시리아와 터키에 있는 쿠르드 지역들조차 강하게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고 있어 ISIL제거 이후 중동은 쿠르드 문제가 핵심 이슈로 불거지는 양상이다

p130 그들에게 한국은 성실과 근면의 아이콘이었고, 그것을 기초로 지금은 첨단과 기술의 아이콘, 따라가고 싶은 롤모델이 됐다

p136 사실상 중동의 여성 문제 이해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의 무지에 있었다. 아랍=이슬람이라는 인식의 등식 구도로 이슬람과 아랍의 잔통 관습을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무엇이 이슬람의 종교적 가르침이고, 무엇이 가부장적 아랍 사회의 토착적 악습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오류였다.

p145 2014년 터키 아나톨리아반도의 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발굴된 괴베클리 테페 유적지는 도시 문명의 역사를 1만 7천 년 전으로 올려놓았다.

p150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이집트 람세스 2세와 히타이트 왕 무와탈리 2세가 시리아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고, 기원전 1280년 양국 간에 카데시 평화 조약이 체결되면서 일단락됐다. 시리아를 평화적으로 분할한 카데시 조약은 역사상 세계 최초의 국제 조약으로 알려져 있다.

p159 압바스 왕조의 등장 배경은 단순한 군사적 음모나 쿠데타가 아니라 강력한 하부 조직과 선전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왕조의 수도를 바그다드로 옮기고, 압바스 지배층은 인종과 민족을 초월한 범이슬람 제국을 지향했다. 이리하여 후대 역사가들은 압바스 왕조를 진정한 이스랆 제국이라 부른다

p165 무슬림은 피정복민의 문화나 관습, 종교 등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그들에게 무슬림보다 더 많은 세금만을 요구했다. 따라서 피정복민 입장에섣 이슬람 세력의 진출을 방해할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금도 적게 내고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이 주어지는 이슬람으로의 대량 개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p172 안달루시아 문화가 그토록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민족이 상호 교류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민족, 사상, 언어 등을 접하고, 상호 배타적 적대 관계보다는 이질적인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뛰어 넘는 상보적인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p182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서구 열강은 아랍인에게는 후세인-맥마흔 서한을 통해 아랍 국가의 독립을, 유대인에게는 밸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 민족 국가의 창설을, 영국과 프랑스 간에는 사이크스-피코 비밀 조약을 통해 영국의 팔레스타인 통치를 암암리에 결정함으로써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끊이지 않는 분쟁의 근원적 불씨를 제공했다

p187 이 사건은 국민에 의한 새로운 민주주의 선거 방식이라도 서구의 이익에 합치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폐기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안겨주었다.

p199 이슬람 사상의 핵심은 알라에게 절대복종하여 내면의 평화를 얻는 것이다.

p204 하느님은 인간에게 다른 동물과 달리 스스로가 판단하여 행동할 수 있는 이성과 자율 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인간의 실수나 소홀로 일어난 사건까지 모두 하느님의 책임이니 운명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한다. 더 적극적인 인간의 태도와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점이 다른 종교와의 차이라 할 수 있다

p212 당시 유목 오아시스 사회에서는 오랜 전쟁과 기근으로 남편이나 부모, 남동생의 도움 없이 여성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공동체의 발전과 여성의 안전을 위해 일부다처가 상당한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였다.

p222 여러 이유로 단식을 못 할 상황이 생기면 라마단 달이 끝난 후에 자신이 편리한 날을 잡아 부족한 날만큼 채우면 된다. 이처럼 이슬람은 엄격한 의무 규정을 두는 한편, 여러 가지 편의 규정도 동시에 가진 것이 특징이다

p268 동침한 처녀를 다음 날 반드시 죽이고야 마는 술탄이 1,001일 동안 매일 아침 처형을 미루게 하자니 재미가 있어야만 했다. 게다가 인간의 일을 솔직하게 털어내는 데 성애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여기서 그려지는 성 이야기는 귀부인의 귀를 막을 만큼 노골적이다. 대개의 문학이 침실로 가면 대충 그러려니 하고 눈을 돌리는 데 반해, 이 작품은 끝까지 따라 들어가 전모를 드러내고야 만다. 이 책이 음서로 찍혔던 것도 이 때문이다.

p279 오랜 명상과 기도를 해야했던 그들에게 커피는 최상의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잠을 쫓고 맑은 정신 상태를 유지해 주는 커피는 예멘 지방의 독특한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 이성을 흐리는 하람(금기)인 알코올에 대비해 정신을 가다듬어 절대자 알라에게 헌신할 수 있는 음료로 알려지면서 커피는 순례객을 따라 이슬람 세계 전체로 빠르게 전해졌다.

p280 유럽 최초의 커피 하우스는 1652년 영국 런던에 문을 연 파스카로제 하우스였다. 한 영국 가죽 상인이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올 때 데려온 그리스인 하인이 커피를 잘 끓였는데, 그의 커피가 소문나면서 커피하우스를 열게 된 것이다. 당시 영국인의 표현에 의하면 그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독하고 사랑처럼 달콤한 커피를 끓였다라고 한다.

p284 자그만 구리 잔에 원두 가루를 넣고 찬물을 부은 다음 약한 불에서 커피를 끓인다. 거품이 일어 커피포트 위로 넘치려는 순간 불에서 멀리해 커피 향이 새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비법이다.

p312 아랍 음식을 대표하는 나라는 역시 레바논이다. 동부 지중해에 자리 잡아 아랍 내륙과 유럽 에게해 음식, 북쪽 터키 음식의 영향을 받았고, 무엇보다 프랑스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유럽 요리의 특성까지 종합한 레바논 음식은 최고의 아랍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p336 마흐르의 액수는 신부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신부의 교육 정도 등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부모의 도움 없이 독신 남성이 준비하기에는 매우 벅찬 금액이다.

p380 흔히 첫 만남에서는 여유 있고 사교적인 분위기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가 이 사람하고 고래할 수 있을까? 결정할 것이다. 관계를 맺는 것보다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p389 이슬람은 이러한 모든 불확실성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자본가나 노동자 중 어느 한쪽이 부당한 이득을 보거나 부당한 손실을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만일 사업이 이익을 낳을 경우 자본은 이익의 정당한 몫을 갖고, 손해가 날 경우에는 손실 또한 나누어 책임진다

p402 할랄을 흔히 이슬람의 금기인 술과 돼지고기 같은 음식에 한정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할랄은 식음료 분야뿐만 아니라 금융, 보험, 서비스, 관광(호텔), 제약, 화장품, 바이오산업, 사료, 의복, 패션 등에도 적용되는 무슬림의 일상을 지배하는 총체적 삶의 개념이다. 쉽게 말하면 할랄은 올바른 삶의 방식을 규정한다

p413 메블라나의 수피 사상은 이집트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일부, 터키를 중심으로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졌다. 이슬람이란 종교가 전파 과정에서 아랍이라는 민족적 옷을 벗고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토착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포용력을 갖추고 이슬람을 퍼뜨린 수피주의가 중심에 있었다

p416 이븐 바투타는 이슬람 세계가 배출한 14세기 최고의 여행가이자 학자였다

p420 초간 이후 6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프랑스판만이 완역되었다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 이런 면에서 세계 두 번째의 완역이라는 영광을 국내 학계가 갖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p432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이의 걱정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이 오로지 자기 생각만 늘어놓으며, 아이를 잡고 시간을 붙잡는다. 그래서 영화는 더없이 늘어지고 늘어진다. 그런데 이 단순한 장면에서 사람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정말 이상한 영화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특출한 감독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p446 탁월한 연구 성과를 보인 알콰리즈미는 830년에 이미 수학의 일차 방정식과 이차 방정식을 해설한 대표 저작 복원과 대비의 계산을 집필했다. 알고리즘을 다루는 책은 825년에 쓴 인도 수학에 의한 계산법이다

p452 중국 내부의 정치적 대혼란으로 더는 페르시아인 이주민의 안전과 장래가 보장받지 못하자 이란인은 당시 중국 주변국 중 한 왕의 주선으로 신라로 망명한다. 따라서 쿠쉬 장군의 영웅담을 담은 서사시인 쿠쉬나메 많은 붑분에 신라에 관한 이야기가 서술돼 있다. 사산조 페르시아와 신라와의 관계는 물론, 신라의 지리적 상황, 부속 도서, 여자, 군대, 궁정 생활 등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p461 아랍 상인이 한꺼번에 100명 단위로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고려에 와서 왕을 상대로 교역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나가다 우연히 들린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빈번한 왕래가 있었으며, 고려 시장에 대한 풍분한 정보를 가지고 필요한 물품을 싣고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p465 즉위식이나 정월 초하루, 동지, 망궐례 때 세종은 문무백관과 외교 사절을 초빙해 의례를 가졌다. 그 자리에 이슬람 대표도 참석하여 송축하였는데, 이슬람식 송축은 꾸란을 낭송하는 것이다. 따라서 꾸란 낭송으로 왕의 만수무강과 국가의 안녕을 빌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려 때 개성 한복판에 이슬람 성원이 있었고, 조선 초기까지 조정에서 꾸란이 낭송될 정도로 이슬람 문화는 깊이 들어와 있었다

p485 팔레스타인이라는 한 지역에 아랍인에게는 아랍 국가의 독립을, 유대인에게는 유대 민족 국가의 창설을 약속해 주고, 실상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미 그곳을 점령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p489 1948년 5월 14일, 유대인은 아랍인을 몰아낸 곳에 이스라엘 국가를 건국했다. 아랍 국가와 제3 세계의 반대속에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아랍인의 심장부에 유대 국가를 건설한 것이다. 이스라엘에게는 2천 년 만에 탄생한 위대한 국가였겠지만,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는 불운과 재앙의 날이었다. 그들은 이날을 알나크바(대재앙)의 날로 기념한다

p512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문명 국가 유럽은 바로 이웃에서 자행되는 가공할 인공청소를 방치함으로써 문명 범죄의 공범자라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나치 학살을 방관했던 70여 년전의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p524 1978년 모스크바에서 발간된 한 잡지의 기록에 따르면, 1937년에는 체첸 공화국에 310개의 모스크가 존재했는데, 1978년에는 그 수가 단 두 개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지독한 종교 탄압이었다

p529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동서 문화사의 중심지이다. 이집트 문명에 버금가는 오랜 고대 도시 문명은 물론,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간다라 불교, 이슬람 문화가 켜켜이 쌓인 문명 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역사상 이름을 떨쳤던 페르시아, 그리스 박트리아, 쿠샨, 에프탈리테, 사파리조, 사만조, 가즈나조, 구리조, 티무르조, 무굴조 등이 이 땅에서 번성하면서 귀중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p554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어떻게 해서라도 자치와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 하지만 거대한 중국을 이기려는 소수 민족의 투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자칫 민족 절멸이라는 위험한 게임을 치러야 한다. 소수 민족의 슬픔과 좌절이 여기에 있다. 자식들의 안전을 위해 현실에 순응하면서 조심스럽게 기회를 보지만, 쉽지 않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p578 사이드 쿠틉의 사상과 가르침은 파키스탄의 마울라나 마우두디에게 전수되어 타블리 자마아트라는 정치정당을 통해 이슬람 이념을 현실 정치에 접목하려는 시도로 나타났으며, 탈레반을 거쳐 결국 21세기 벽두에 알카에다라는 급진적 반미 테러 조직을 배태시켰다.

p612 더욱이 그 종교가 일신교라면 폐쇄성과 자기 종교 절대주의의 성향이 훨씬 강하다. 자기 종교의 절대적 신념 체계 내에서만 사랑과 베풂이 넘치고 다른 종교를 향해서는 분노와 적의의 칼날을 들이대는 일신교가 만민 평등과 중생 구제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까? 나의 소중한 가치만큼 다른 믿음을 향해서도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표할 수 있는 다문화적 덕목이 종교에서는 어떻게 발현될 수 있을까? 참으로 어려운 숙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에 대한 무한대의 사랑과 힘들고 지친 자에게로 향하는 종교적 초심을 되찾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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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관한 오해
이소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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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에 관한 오해

 : 이소영

 : 위즈덤 하우스

읽은기간 : 2024/08/21 -2024/08/27


믿고보는 이소영님의 식물책.

식물 세밀화를 그리는 분인데 그림이 너무 정교해서 신기한 느낌이 들어 읽기 시작했다.

막상 읽다보니 소영님의 글솜씨가 빼어나서 자꾸 읽게 된다.

글과 세밀화가 어울리면서 식물을 보는 눈이 많이 성장했다.

그림도 좋아하지 않고, 식물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식물을 사랑하게 만들고, 눈여겨보게 한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게 어떻게 식물을 보고 그렇게 잘 구분하지?

이 분의 책을 읽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밀화를 그리기 위해 긴시간동안 관찰하고 그려보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시간과 관심이 식물을 사랑하게 하고 잘 알게 만드는 것 같다.

올해 또 하나의 좋은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다.. ^^


p29 놀랍게도 보리수나무라는 이름에 얽힌 혼돈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내가 손님에게 내놓았던 그 과일은 사실 보리수나무 열매가 아니라, 정확히는 뜰보리수의 열매였다.

p34 춘추벚나무와 장미가 가을에 꽃을 피운 게 이상해 보인 것은 가을에 꽃 피우는 장미와 벚나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를 의심하기 이전에 우선 우리의 무심함부터 돌아볼 일이다.

p77 16세기 네델란드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렌지 가문을 기리는 의도로 네델란드 국민이 주황색 당근 소비를 대폭 늘리면서 주황색 당근 품종 육성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그 후 그것이 미국에 도입되고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면서 지금 우리가 식용하는 주황색 당근이 주를 이루게 됐다.

p85 쪽은 우리나라 자생식물이 아닌 재배식물이고, 최근에는 천연염색을 안 하다 보니 자생식물 연구자든 재배식물 연구자든 그 누구도 족에 별로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p105 그렇기에 식물을 그림으로 그리는 내게 제비꽃은 유난히 다루기 까다로운 식물이다. 식물 세밀화는 종의 특징을 드러내야 하는 그림인데, 제비꽃은 교잡이 잦은 편이라 종을 식별하기 어려운 데다 환경 변이가 무척 다양하여, 종의 특징을 잡아내어 기록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모든 단계가 어렵다. 식물 기록자에게 제비꽃은 쉬이 지나쳐도 되는 식물이 아니라, 더 면밀히 관찰해야 하는 대상인 셈이다

p123 포플러 아래에 서서 추억에 젖는 감성이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던 것은 포플러가 무성했던 1990년대 한국이기에 가능했을 뿐, 지금은 왕벚나무나 모스테라가 포플러를 대신하고 있고 오히려 나무가 아닌 멋스러운 시설물이 현대인들에게 추억의 매개가 된다.

p151 원예가와 조경가가 이토록 꽃양배추에 진심인 이유는 1년 중 약 4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화단의 주역이 되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p156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 있는 나무는 프랑스에서 본 마로니에나무와는 열매의 형태가 조금 다른다. 에전에는 진짜 마로니에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지금 공원에 심겨 있는 나무는 마로니에나무가 아니라 그와 비슷한 일본 원산의 칠엽수란 식물이다.

p163 막상 우리는 늘 먹는 마늘의 열매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리의 꽃은 언제 피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것은 우리가 식물을 오로지 식용 대상으로만 본다는 증거 아닐까.

p197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며 나는 수없이 다양한 식물의 냄새를 맡아왔다. 장미의 진득한 꽃 향, 편백나무 숲의 시원한 향, 부추속 식물에게서 풍겨오는 알싸하고 매운 향기. 그중에서도 특히 5월의 제주도 공기에서 나는 달콤한 귤꽃 향과 겨울 잣나무 숲의 상쾌한 바늘잎 향을 좋아한다.

p215 땅에 붙어 나는 작은 풀들은 주변 나무들에 가려져 햇빛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고 생장도 느리다. 그런 풀이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또 주변의 큰 나무 그늘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다른 식물에 기대어 위로 올라가는 덩굴식물이 됐다.

p223 우리나라에서 꽃가루 알레르기 문제를 일으키는 식물들이 우리 산과 도시를 푸르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빠른 생장 속도로 건축물과 가구, 종이의 재료가 되거나 버섯을 재배하는 재료가 되기도 하는 핵심 식물이다.

p234 정원에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이면 물이 흐르는 소리, 그 곁의 개구리 소리, 바람에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소리, 빨간 열매를 먹으러 온 온갖 새소리가 들린다. 이곳의 식물을 스스로 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소리는 내는 다른 생물을 불러들이고, 또 다른 존재와 마찰해 소리를 낸다

p255 나무는 하천이 범람한 후에도 물이 흐르는 속도를 늦추고 둑이 터질 위험도 줄여준다. 애초에 해가 갈수록 비가 많이 내리고 호우가 잦은 이유는 해수면이 상승하고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대기 중 수분이 증가하기 때문인데, 이를 해결하는 열쇠 역시 나무를 심는 것이다.

p267 신선한 상태의 식재료를 서울에 공급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서울에 생활용품을 유통하기 위해서는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외곽에 농장과 공장을 지어야 했다. 가끔 이곳은 서울을 위해 존재하는 동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p311 위디언 케이스는 운송의 역할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열대 기후에서 온 식물들은 영국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없었기에 영국인들은 거대한 규모의 워디언 케이스라 할 수 있는 ‘온실’을 만들어 그 안에서 식물을 재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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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 문명을 가로지른 방랑자들, 유목민이 만든 절반의 역사
앤서니 새틴 지음, 이순호 옮김 / 까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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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마드

 : 앤서니 새틴

 : 까치

읽은기간 : 2024/08/10 -2024/08/20


읽고 싶었던 책인데 대출이 길어서 한참 기다려서 빌려 읽었다.

유목민에 대한 역사는 기록이 없다보니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유적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역사에 접근하는 방법을 쓴다고 들었다. 

그런 유목민에 대한 책이라서 더욱 호기심이 들었다.

책에 대한 느낌은 정주민들의 기록된 역사를 유목민의 시각에서 해석하기 위해 노력했다라는 것.

고대사에 나오는 스키타이를 비롯하여 이슬람, 몽골인, 튀르키에인들로 이어지는 역사는 흥미진진하고 책에 깊이 빠지게 한다. 이렇게 유목민들을 중심으로 한 역사책을 본 적이 없다보니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런 책은 지도와 메모장을 놓고 그려가면서 읽어야 하는데 출퇴근하면서 읽다보니 잊어버리거나 빼먹은 부분이 많은 것 같아 아쉽다. 여러번 읽으면서 빠뜨린 부분을 채워나가야 할 것 같다. 

올해는 지식적으로 풍성해지는 책을 많이 읽어서 좋다. 역사책읽는 해로서는 성공이다. 


p15 오늘날 이 단어는 정착민들 사이에서 사뭇 다른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일부 사람들에게 노마드는 낭만적이고 근사한 향수에 젖게 하는 말이다. 반면 한편에서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떠돌이, 철새, 방랑자, 일만 하는 사람, 도피 중인 사람, 주거 부정인 사람들이라고 암묵적으로 판단하는 의미로 빈번히 통용되기도 한다. 즉, 노마드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p35 오늘날 괴베클리 테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고고학 유적지이지만, 금빛 찬란한 보물이 나오지는 않은 관계로 누구나 다 아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슈미트와 그의 팀원들이 찾아낸 것은 휘황찬란한 보물들보다도 값어치가 더 있다.

p37 이 모든 것은 괴베클리 테페를 세운 사람들이 최소한 첫 단계에서는 맥주를 양조하고 식용 고기를 준비할 정도로는 충분히 길게 체류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배회하는 수렵인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들은 구운 고기와 아마도 맥주 같은 음료를 곁들여 큰 잔치를 벌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곳에 살지는 않았습니다”

p48 그 논문의 책임 연구자들은 가운데 한 사람인 인류학자 댄 아이젠버그는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다양한 성격들 중에는 상황에 따라 진화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하는 것들이 있다” 7R 변이 유전자도 어떤 정황에서는 유목민에게 더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쪽으로 이롭게 작용하지만, 다른 정황에서는 영양이 부족하고 불행해지는 쪽으로 유도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p58 필리핀의 마닐라 같은 현대의 인구 밀집 도시에서는 동일한 면적에 2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렇게 인구 밀도가 높은데도 굶주리거나 이웃과 식량 쟁탈적은 벌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여분의 식량을 생산해 필요할 때까지 그것을 저장하고 보관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p71 길마메시 서사시는 2개의 본보기상을 제시한다. 움직임이 자유로운 자연계에 속해 동물들과 함께 뛰어다니는 엔카두와, 도시국가에 정착해 사는 길가메시가 그것이다. 다수의 건국 신화가 그렇듯 이 서사시도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수정도 가했다. 대다수가 정착민이었을 오래 전 사람들은 야생인간을 길들이는 내용에 기뻐했을 것이다.

p79 오래지 않아 또 한 사람의 뛰어난 언어학자이자 박식가인 토머스 영이 그 질문에 첫 단계 답을 제시했다. “모든 것을 알았던 마지막 인간”으로 묘사되었던 그가 이번에는 “인도어, 서아시아어, 거의 모든 유럽어들” 또한 사멸된 언어군에 속해 있었음을 알아낸 것이다. 1813년에 쓴 글에서 영은 그 모든 언어들이 “절대 우연일 리 없는 다수의 유사성들로 결합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 언어들의 모어에 “인도유럽어족”이라는 명칭을 붙인 사람도 영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30억 넘는 사람들은 스텝 지대에서 생긴 인도유럽어의 다양한 형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p82 흑해에서 48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 4,000년 혹은 5,000년 전에 조성된 매장지(현재는 러시아의 아디게아 공화국에 속해 있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는 무덤에 묻힌 물건들의 원산지이다. 금와 긍ㄴ은 근동산이고, 청금석 구슬은 중앙아시아인, 터키석과 홍혹수는 캅카스 산맥 남쪽이나 이란에서 채광된 것이었다. 이 아름다운 물건들이 시사하는 것은 아마도 기원전 3500년경에는 스텝 지대의 유목민과 목축 공동체들이 인도 및 아프가니스탄산 상품들을 거래했으리라는 점이다.

p96 이집트는 100년에 걸친 힉소스의 지배 이후 기나긴 고대 이집트 역사상 최고의 번영기를 누렸다. 유목민이 제기한 어려움을 극복한 뒤 생긴 활력에, 외국인의 소개로 개량된 무기로 차오른 용기, 히타이트와 아모리족을 비롯해 여타 인접한 왕국들과의 상호 작용으로 조성된 약동하는 분위기 속에서 파라오 아흐모세 1세와 그의 이집트 신왕국 계승자들은 북쪽으로는 지금의 시리아, 남쪽으로는 누비아와 수단으로까지 국경이 확장된 제국을 건설했다

p103 영웅의 삶과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보람되기 위해서는 동료들에 의해서 기억되고, 오랜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의 공훈이 모닥불 주변에서 회자되리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전투에서의 용맹함과 이야기의 즐거움을 함께 찬양하는 것이 유목민 삶의 특징이었다.

p114 페르세폴리스는 제국을 구성하던 여러 다양한 요소들의 물리적 표현, 한 관찰자가 기록했듯이 “석조천만”이었으며, 따라서 그 자체로 유목민의 힘을 기리는 기념물이었다. 페르세폴리사는 헬레니즘화를 불러올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위대한 동방 원정이 시작될 때까지 그렇게 200년 동안이나 서 있었다

p118 주 왕조가 중국을 지배하고 이탈리아에서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이 출현하던 기원전 9세기 무렵, 메디아인과 파르스인들이 이란 고원 너머로 퍼져나가고 있던 때와 같은 시기에, 또다른 스텝 종족이 근동에서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다. 스키타이족은 제국의 중심지를 건설하지도, 폴리스를 형성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보다 가볍게 이동하는 삶을 선호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제국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p126 어느날 유목민이 사냥을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다. 왕은 식탁에 올라갈 고기를 마련해 오지 못한 그들에게 사냥기술이 형편없다고 조롱한다. 다음 날 창피를 당한 스키타이인들이 메디아인 젊은이 하나를 도살해 고기의 육질이 좋은 부분을 왕의 식탁으로 보낸다. 그러고는 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슨 고기를 먹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말을 타고 리디아로 내뺀다. 피의 복수자, 어린아이 도살자, 숙련된 사냥꾼. 이것이 헤로도토스가 우리에게 소개하는 유목민의 모습이다.

p129 싸움터가 온통 시체와 찌그러진 갑주가 나뒹구는 피바다로 변한 가운데 전투가 끝나자 여왕 토미리스가 나타났다. 그녀는 사람의 피가 가득 든 가죽 부대를 들고 있었다. 부하들이 사방을 뒤져서 키루스의 시체를 찾아내 그의 머리를 잘라 가지고 왔다. 헤로도토스는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고 인용한다. “내가 너에게 피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겠다고 했지. 자, 실컷 먹어라” 그러고는 피가 가득 든 가죽 부대에 그의 머리를 푹 담갔다.

p133 다리우스는 유목민들이 왜 페르시아인들과 전쟁에서 마추지지 않으려 하는지 알고 싶었다. 스키타이 지도자는 그에 대해 “우리에게는 도시가 없으므로 그대에게 점령될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농작물이 없으니 황폐화될 걱정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오”라고 답했다.

p140 사마천은 사람들을 경원시하는 버릇이 있었던 듯한데, 재판정에서 그를 변호해준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마 죄과의 심각성과 더불어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중재를 해줄 만한 가족 연줄도, 뇌물로 쓸 만한 재산도 없었다.

p150 스키타이인과 흉노 엘리트들이 착용했던 황금 버클과 정교한 다른 장식물의 디자인이 같으며, 동일한 동물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도 안다. 흉노의 고분들에서 로마유리, 페르시아 옷감, 그리스 은이 발견되었다는 것도 안다. 이 모든것이 말해주는 것은 한나라 황제가 실크로드를 통해서 파르티아, 페르시아 혹은 지중해 유역으로 상인들을 보낼 생각을 하기 오래 전부터 이주성 세계는 황허와 페르시아 만 사이에서 교역을 하고 있었다느 ㄴ것이다.

p169 키루스는 그 제안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부드러운 땅에서 살면 지배자로 군림하는 기간이 더 짧아지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부드러운 땅에서는 부드러운 인간이 나오는 법”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작물 수확을 잘하면서 전쟁에도 강한 사람을 배출해 유명해질 수 있는 나라는 없다”

p178 역사서설에는 주제 및 조사가 필요한 분야와, 그런 연구의 진척을 이룰 방법이 함께 제시되어 있다. 또한 경제적인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재정 체계의 작동에 대한 이븐 할둔의 통찰력 있는 의견이 개진되어 있는 것인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왕조 초에는 조세를 적게 하여 세수를 늘리는 반면, 왕조 말에는 과한 조세로 세수를 감소시킨다”라고 말한 것이다.

p185 아사비야라는 용어는 역사서설에도 500번 이상 등장한다. 많은 아랍어 단어들이 그렇듯이, 아사비야에는 넓적다리를 묶지 않으면 젖을 내주지 않는다는 암낙타, 터번을 묶는 행위, 광신자를 비롯해서 맥락이 어렴풋한 여러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가장 어울리는 의미는 당파심, 연대의식, 단결심 부족적 연대이다

p193 이 신생 제국의 가장 놀라운 점은 제국의 크기가 아니라 그 제국이 이동하는 습성을 신속한 정복으로 이끌어간 사막인, 유목민이 쟁취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p200 알 만수르는 그의 가문, 그의 수도, 그의 제국이 번창할 때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성벽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고,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물품의 자유로운 거래를 촉진시켜줄 유동성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p204 왕녀도 시를 썼으며, 하룬의 왕세자인 알 아민의 새색시 루바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전해지기로 루바나는 당대 최고의 절세미인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미모와 뛰어난 재주를 지녔음에도 남편이 환관들을 더 좋아한 탓에 시의 소재는 부족할 일이 없었다. 알 아민이 왕위 계승권 다툼을 벌이다가 자신의 형인 알 마으문에 의해서 참수형을 당했을 때, 결혼은 했지만 여전히 처녀의 몸이었던 루바나는 이런 글을 썼다. “오, 장군들과 수비대의 배신으로 죽어 노천에 누워있는 영웅이여, 내가 당신의 죽음에 우는 것은 나의 위안처나 반려를 잃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창, 말, 꿈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초야를 가져보기도 전에 나를 과부로 만든 남편 때문에 웁니다”

p224 몽골군이 자신들에게 맞선 도시들을 무참하게 짓밟았던 것은 유혈을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도시들이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본때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p227 몽골족의 공식 역사서인 몽골 비사는 기세등등한 칸의 성격의 또다른 측면을 묘사하면서, 호라즘의 샤가 자신을 모욕했다는 소식을 듣고 칭기즈 칸이 “어떻게 나의 황금 고삐를 끊어놓는 짓을 할 수 있지?”라는 물음으로 대응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황금 고삐란 칭기즈 칸과 그에게 충성을 빚진 사람들 간의 유대를 뜻한다. 몽골인들은 이 유대를 신이 재가한 것이기 때문에 신성하다고 여겼고, 그러므로 그것이 끊기면 복구하고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p247 빌럼 수도사는 이 만안궁을 몽케가 관대함을 공개적으로 표하고 알코올을 과도하게 섭취하면서 추종자들 사이에 아사비야를 강화한 국가 행사, 즉 주연을 벌인 장소로 묘사했다.

p249 고고하자들이 카라코룸에서 발견된 그 시대의 금 장신구와 다른 장신구들이 모양과 기법 면에서 1,000년 전의 스키타이인이 착용한 것과 유사했음을 밝혀낸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들-파리의 금세공인 기욤도 다수의 보석 세공인들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은 그런 작업을 고대 전통의 테두리 안에서 했다.

p258 홀라구 본인의 말에 따르면, 약 20만 명의 바그다드인들이 도시 밖으로 끌려나와 처형을 당했다. 그러나 동시대의 한 역사가는 살해된 사람 수를 그것의 4배로 기록했다. 칼리프의 환관 1,000명과 하렘 여인들 700명도 몽골군의 칼날에 스러졌다. 처형이 끝난 뒤에는 홀라구의 허ㅏㄱ하에 장병들이 바그다드를 약탈했고 강간과 학살을 자행했다.

p267 이제는 그 원칙(이동의 자유와 무역의 자유)을 지침으로 삼고 칸들이 가진 주체하지 못할 욕망의 영향도 받아, 몽골은 다른 나라들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세계가 보았던 것들 중에서는 가장 완벽에 가깝도록 마찰이 적고 예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양의 교역을 하게 되었다. 몽골에 의한 평화는 교역을 통해 팍스 로마나보다도 더 세계를 촘촘히 연결시켰고, 몽골이 세금 징수원으로 뽑은 원주민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p271 유라시아 일대에서 코발트가 이동한 경로를 추적하는 일은 가능하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기도 한 반면, 그 못지않게 광범위하게 이동한 생각, 신앙, 지식을 추적하는 일은 쉽지 않다.

p275 이 화물 선단이 창출한 무역의 수익성이 얼마나 좋았는지, 쿠빌라이의 군사 공격에 저항했던 나라들-인도 왕국들, 베트남, 크메르 제국(캄보디아), 타이의 수코타이 왕국과 치앙마이 같은 곳들-마저 그의 해상 테느워크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쿠빌라이의 종주권을 인정할 채비에 나섰다.

p282 흑사병은 1346년 카파에서 발생해 1350년 소멸되기 시작할 때까지 마치 죽음의 전사처럼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가며 7,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유럽에서만 그 병으로 죽은 사람이 인구의 3분의 1일 2,500만명이었다.

p287 생의 대부분을 군인으로 보내고 이제 50대 중반이 된 그는 술탄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이 투쟁에서 그의 가장 잔혹한 면모가 드러났으며, 이븐 할둔이 카이로가 안고 있는 위험성을 언급하며 그 도시의 영광과 함께 폭군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 가장 치명적이라고 쓴 것도 그래서였다.

p295 칭기즈 칸은 자신이 점령한 대도시들을 멀리했다. 하지만 티무르는 좀더 확고한 입장을 취해, 대규모 건축물들을 세우고 그것들을 꾸미는 일에 전념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답게 구현된 사마르칸트에서, 그는 “우리의 힘을 의심하게 사람에게는 우리의 건축물을 보여주라”고 공언했다.

p325 1659년 중국이 외국인들에게 시장 문을 닫아걸자 페르시아 블루로 중국식 문양을 그려넣은 이스파한의 도기가 서방에서 중국 자기의 인기 있는 대체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p330 오스만 제국, 사파비 제국, 무굴 제국은 다른 제국들-가령 나이지리아의 카넴-보르누 제국, 중앙아시아의 중가르 유목 젝국, 심지어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인 라코타족에 이르기까지-은 하지 못한 방식으로 서구에서 반향을 일으킨다. 아마도 그곳들이 지닌 전략적 위치와 그 뒤의 식민지 역사 때문일 것이다. 현재는 그 세 제국이 튀르키예, 이란, 인도로 발전해, 뱅골 만에서 오스트리아 국경까지, 그리고 근동에서 서쪽의 북아프리카 일대까지 뻗어나가 있다.

p333 그 직후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죽을 때만 완전히 멈춘다”고 썼다. 파스칼의 이 짤막한 두 분장이야말로 유목민의 방랑하는 삶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고, 유목민이 그의 생시에 그랬듯이 우리 시대에도-계속 움직이든 죽든 간에- 거의 만투라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p367 이방인이 그곳에 상륙하려면 조상신의 노여움을 달래줄 필요가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행동하는 대신 베이컨이 주목했던 세가지 발명품, 즉 그들의 길잡이가 되어준 나침반, 그들에게 지식을 준 책, 그리고 총과 화약으로 의기양양해져, 총을 쏘며 해안으로 난입했다. 그것이 다라왈족의 마음과 정신에 일으켰을 혼란을 상상해보라

p373 그는 자신의 시간을 들여 야생에 있는 것을 채취하면서 자신이 먹을 것의 일부를 스스로 재배해본 결과, 생계를 꾸려가는 데에는 일주일에 하루만 일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계산이 맞는다면, 그는 수렵채집인들보다도 시간을 더 능률적으로 했다는 말이 된다.

p387 유목민과 비유목민 부족을 망라해 명백한 운명의 완수로 희생된 것이 아메리카 원주민뿐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잘 알고 보호해준 세계, 그들이 숭배한 동물들과 신들도 모조리 사라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으로 사라진 것이 미국 대평원을 누비고 다닌 막대한 들소 무리였다.

p390 찰스 다윈도 그의 동료 겸 경쟁자였던 진화론자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의 인류의 기원을 읽으면서 특별히 눈에 띄는 문구 하나에 밑줄을 쳤다. 인간 사회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희생의 한 형태인 약육강식이 필요하고, 그것에 의해서 인간 종족은 강해지고 개량된다고 주장한 문구였다. 그로부터 30년 뒤에는 영국 총리 솔즈베리 경이 “지구상의 나라들은 산 나라와 죽은 나라로 대충 나눌 수 있다”며 그 개념에 공감하는 연설을 했다. 유목민도 죽은 나라 중 하나였다.

p409 유목민은 언제나 교역할 장소, 거래할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교역 장소에 다다를 수 있는 자유로운 이동이 필요했다. 마찬가지로 방복지를 찾아다닐 자유도 늘 필요했다. 위대한 유목민 제국들이 자유로운 이동, 자유로운 교역, 그리고 때로는 양심의 자유라는 원칙을 중심으로 세워졌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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