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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평점 :
제목 : 강인욱의 고고학여행
작가 : 강인욱
번역 :
출판사 : 흐름출판
읽은날 : 2019/10/01 - 2019/10/05
분류 : 일반
어렸을 때 내 꿈이 역사학자 또는 고고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고고학자가 되겠다고 하니 우리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굶어죽고 싶어?"
이 한마디에 난 흙을 파는 대신 숫자를 파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굶어죽기 딱 알맞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쓴 글을 보니 옛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 특이하게 유라시아의 고고학을 전공한 강인욱 교수님의 책.
금관이나 토기같은 유물이 많이 나오는 우리나라와 달리 초원지방은 유골도 온전한 상태로 많이 발굴된다고 한다. 건조한 지형이다 보니 그런것 같다.
유목민족의 고고학 발굴이라니... 그 안에서 벌어지는 동서문화 교류의 흔적을 발견한다든지, 수준높은 유목민들의 유물을 보는 건 또다른 즐거움이다.
후반부에 나오는 일제시대때 파헤쳐진 유적지, 마구잡이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도 유적지, 화끈한 개발로 파헤쳐진 4대강 이야기는 우리의 천박한 수준을 고발한다. 창피하다.
그래도 이런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걸 보니 아직 꿈을 접은 건 아닌것 같다.
돈을 좀 많이 벌었으면 은퇴해서 제2의 인생으로 이런 삶을 사는 것도 좋으련만, 은퇴는 커녕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도 힘든 월급쟁이라 서글프다...
그래도 책을 살 돈을 벌고,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있어서 행복하다.
좋은 책을 읽었다.
p8 고고학자는 일반인들이 지나치고 관심을 두지 않는 토기편 한 점을 발견할 때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p23 실제로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해도 약 30여 종의 인류가 있었다.
p30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결국 죽어서 없어진다는 것을 느끼면 자포자기하며 자기파괴적으로 살 수도 있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집단적으로 발현된다면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p58 신석기시대 초기이지만 꽤 많은 양의 발효주를 만들었고, 한국을 포함한 최초의 막걸리는 적어도 9000년 전으로 그 역사가 올라간다고 할 수 있겠다
p67 맥주라는 참신한 맛의 음료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미 5000년 전의 동서교류를 만들었던 것이다. 실크로드의 보이지 않는 원동력은 바로 맥주에 있었다
p70 미국의 고고학자 프라이스가 저술한 고고학의 방법과 실제라는 책에는 고고학자의 필수품으로 당당히 맥주가 포함되어 있다. 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아서 적당히 마시면 원기를 돋아준다
p70 황금이나 보물은 볼 수 없을지라도 저녁에 비싸지는 않으나 맛있는 맥주를 드시게는 할 수 있을 겁니다
P75 이런 곳에까지 왜 발해가 진출했을까 하는 궁금함은 바로 경제가치가 높은 물품들(인삼, 모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 사소한 유물들이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P85 왕이 죽어서도 증기욕 세틀르 무덤에 가지고 갈 정도로 당시 대마 증기욕은 고위층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던 것 같다
P93 우리나라 세형동검문화에서 발견되는 것들과 유사하게 생긴 청동방울과 거울은 만주와 시베리아 일대의 샤먼들이 지금도 여전히 쓰고 있다.
P102 증후을묘의 무덤 안쪽 벽에 설치된 이 편종은, 요즘으로 말하면 무덤 속에 그랜드피아노가 들어간 셈이다. 그런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은 건, 음악이 당시 사람들에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동시에 그 영롱한 종소리가 천상으로 인도하는 신의 부름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P105 고조선의 비파형동검문화에서도 구금이 발견될 것으로 기대한다
P106 최근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우륵보다 약 600-700년이나 이른 시기인 삼한시대에 이미 가야금의 원형이 확인되었다
P108 고구려에서도 이 공후가 유행했다는 정사기록이 있으니, 이미 고조선 시대에 서역을 통해서 악기가 들어왔다는 점은 너무나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P114 고조선 이후에도 우리의 고대사에서 공후로 대표되는 초원의 음악은 계속 연주되었던 것 같다. 공무도하가는 이처럼 서역의 음악과 이어졌던 2000년 전의 교류를 반증해주는 귀한 자료이다
P122 2000년간 흙 속에 묻혀 있어서 붉은 빛이 약간 어두워지긴 했지만, 그 은은한 빛깔만은 변함이 없었다. 단조로운 초원 생활에서 이 붉은빛이 흉노의 선우와 귀족들을 얼마나 매혹시켰을지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P124 2000년 전 유라시아의 최대 군사강국이었던 흉노를 무너뜨린 것은 강대한 군사력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간파하고 흔들던 중국의 화려한 사치품들이었던 것이다.
P126 개방으로 인한 문화재의 훼손을 막아내기 위한 묘책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한국에서는 경주 석굴암의 경우가 그러한 보존과 관련되어서 많은 문제가 있다
P137 야생마늘은 학명으로도 곰의 마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단군신화에 쑥과 마늘이 등장한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마늘은 아마 곰마늘의 일종일 가능성이 더 크다
P138 봄이 되어 맵싸한 냄새가 시장에 풍기면 드디어 지긋지긋한 시베리아의 겨울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들곤 했다. 체렘샤는 그냥 보면 잡초 같지만 한 입 물면 우리가 좋아하는 맵싸한 마늘의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P139 단군신화의 진짜 의의는 바로 유라시아의 보편성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핀란드에서 태평양 연안의 캄차카가지 곰과 관련된 신화가 없는 부족은 없다
P141 약초나 꽃으로 만든 방향제를 향수병에 넣어 사람들을 만나면 마치 담배를 나눠 피우듯이 서로의 병에 담긴 냄새를 맡으며 대화를 나눈다. 차 한 자 마시든 향수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게 향기를 맡으면서 각자의 기호도 알고 또 새로운 향기를 즐긴다
P148 최근 고대의 동물뼈에서도 DNA를 추출해서 분석하는 방법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요리에 사용된 동물뼈는 요리과정에서 세포 안의 DNA가 대부분 파괴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P162 패총이 주는 고대에 대한 정보는 실로 방대하다. 조개마다 번식하는 수온이 다르기 때문에 당시의 기후를 알 수 있으며, 패총에서 발견되는 조개는 당시 사람들이 즐겨 먹는 것들이니 그들의 식성도 알 수 있다.
P175 과학적이든 비과학적이든 사람들은 꾸준히 자신들을 치유해왔다. 뼈에 남겨진 다양한 흔적으로 고대인의 병을 연구하는 고병리학은 이를 증명한다
P194 구제발굴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도입된 지는 30년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서울이 발전하면서 얼마나 많은 유적이 사라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P197 중도는 수백 개의 고인돌과 1000여개가 넘는 유물이 발견된 청동기시대의 거대한 중심지였다는 점에서 고고학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P198 현대의 정치가와 사업가들은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유적이 있다면 빨리 발굴해서 그 위에 무엇인가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을 세우고자 결의했다
P199 상식적으로 백제시대의 거대한 성벽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면 그안에는 백제시대의 다양한 유적이 있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서울 전체에 경제개발의 광풍이 불 때였으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의 문화재는 간과한 채 광범위한 개발이 이루어졌다
P200 미래의 고고학자들은 과연 우리를 성실한 고고학자로 기억할까, 아니면 발굴을 앞세우며 무자비하게 유적을 파헤친 서투른 고고학자들로 기억할까. 나로서는 더는 중도나 4대강 같은 발굴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P204 이렇듯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 대안으로 제시된 헤이그조약이지만, 실제로는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열강들이 약탈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되었다
P209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당시에 발굴하고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유물들이 쌓여 있다.
P213 전쟁과 고고학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파괴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전쟁이 현실 사회의 구조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고고학은 지층의 구조를 파괴하여 그 속에 있는 유적과 유물을 꺼낸다
P216 로마가 유럽을 정벌하면서 곳곳에 세운 건축터들이 비행사들의 폭격과 정찰 중에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 흔적은 실제 땅위를 다니면서 보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희미했다
P218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정찰기술과 사진기술은 더 진보했고, 덩달아 항공고고학도 발전했다. 지금은 드론과 구글 지도의 발달로 연구실에 앉아서 유적들을 분석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P225 주거지 중첩현상은 각 집자리들 중에서 무엇이 더 오래되었는지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이지만, 숙련된 경험자가 아니면 밝히기 어렵다. 실제 우리가 역사시간에 공부하는 한국의 청동기시대도 바로 이 주거지 중첩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P228 발굴, 분석, 유물 정리 그리고 보고서라는 고고학의 원칙을 성실히 지킨 마무리였다. 이후 맥코드는 버지아 주에서 꽤 저명한 고고학자로 활동하다가 2008년에 사망했다
P230 너무나 많은 전쟁의 과정이 자신들의 논리에 맞게 일방적으로 서술되었다. 고고학을 동원해서 그 과정들을 객관적으로 남겨놓는 것이 필요하다
P237 고고학자들은 폐허를 공부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유라시아의 거대한 고분 또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경탄하게 하는 이 유적들은 하지만 사실 멸망의 흔적이다
P239 물길이 바뀌어서 교역을 하던 배가 들어올 수 없고,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사람들을 재빠르게 각자도생을 구하면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P254 후지무라의 조작은 단순히 한 고고학자의 공명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들의 역사를 무조건 올리려고 하는 일본의 쇼비니즘적 시각과 야합한 결과이다.
P256 정신병을 이유로 당시의 모든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관련된 어떠한 언급도, 추가적인 진실 규명도 하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그는 그가 활동했던 도호쿠 지역에서 여전히 평온하게 살고 있다
P263 질낮은 가짜 유물을 이순신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최단기간 졸속으로 국보로 지정한 사건은 우리나라 문화재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치욕으로 남았다
P265 문헌을 주로 연구하는 역사와 달리 고고학이 대상으로 하는 유물들은 매일 새롭게 쌓인다. 언제나 고고학자들의 주장을 뒤엎는 새로운 발견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두 개의 발견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
P277 실제 고고학의 목적은 역사 기록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밝히는 것이다
P283 그는 세계 최초로 트로이 유적을 발견한 인물이자 트로이 유적을 없애버린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P285 카자흐스탄 초원의 황금문화는 흔히 사카라고 불리는 유목민들이 남긴 것이다. 유라시아 초원에서 유목을 한 사람들을 흔히 스키타이문화라고 한다. 사카는 크게 보면 스키타이 계통의 사람들로, 이란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화려한 황금문화를 중앙아시아에서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만들었다
P294 고고학도 인생과 같아서 우연한 행운이 가끔씩 찾아온다. 하지만 그 행운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고고학자들의 능력 그리고 유물에 대한 겸손한 마음이다
P296 철도에 깔 돌을 구하기 위해서 고분을 부수며 발굴을 하는 기상천외한 상황은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졌다
P299 서봉총의 황금을 둘러싼 이야기에는 한국을 침탈하기 위한 철도 사업에서 시작된 서봉총의 파고, 황금을 이용한 일본의 선전사업 그리고 엉터리로 마무리된 발굴사업 등 일제강점기 한국의 고분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사가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
P303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 공짜야. 그걸 누릴 줄 알면 부자인거야
P305 고고학이 미래를 지향하는 학문인 이유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고고학은 더욱 진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309 유물을 발굴하고 세척하고 도면과 사진을 남기는 작업이 전체 작업량의 80-90%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