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클래식 - 천재 음악가들의 아주 사적인 음악 세계
오수현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스토리 클래식

 : 오수현

 : 블랙피쉬

읽은기간 : 2022/12/28 -2023/01/05


작곡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클래식 음악의 매우매우 유명한 멜로디를 들으면 대충 어떤 음악인지를 알 수 있고, 작곡가들의 전기나 에피소드 책을 좀 읽어서 겉핥기가 된, 초보에서 막 벗어나려고 있는 수준이 되니, 클래식 책을 읽을 때 고민이 된다.

책을 잡아서 읽다보면 대부분은 아는 내용인 책들이 조금씩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금 어려운 책을 읽으면 완전 까막눈이 된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대부분 아는 이야기다. 다만 작가의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다 보니 에피소드에 대한 해석이나 감정은 조금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모차르트를 혹독하게 교육시켰던 아버지에 대한 평가나, 바그너에 대한 평가, 브람스와 클라라에 대한 생각 등이 주로 그렇다.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아니고서야 모를 일..

작곡가마다 내용이 길지 않고 초보자가 알면 재미있을 에피소드가 많이 담겨있어 초보자가 읽기에 참 좋다.


p25 하이든에게 작곡이란 영감과 열정으로 하는 예술 활동이라기보다는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듯 매일매일 해치워야 하는 사무적인 일에 가까웠는지도 모릅니다.

p32 하이든은 언제나 유머가 넘치는 밝은 성격의 음악가였습니다. 성 슈테판 성당 합창단에서 활동하던 어린 시절엔 미사 중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다가 합스부르크공국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직접 “저 아이를 붙잡아 매질을 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을 정도로 장난기 넘치는 아이였죠

p36 결혼 생활 동안 둘이 사이좋게 지낸 시기는 거의 없었고 하이든은 메조 소프라노였던 유부녀 루이지아 포르첼리와 내연 관계를 유지하며 결혼 생활에서 충족하지 못한 사람의 감정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둘 사이는 에스테르하지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 루이지아가 낳은 둘째아들이 하이든의 아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p57 모차르트는 매우 빠르게 곡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고뇌와 분투의 흔적대신 아름다운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같은 유려함이 흘러넘칩니다.

p80 즉흥적으로 흘러나오는 선율과 악상을 토대로 작품을 쓰다 보니 베토벤, 브람스 같은 작곡가에 비해 곡의 구조와 형식이 느슨하고 엉성하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그래서 형식미가 중요한 교향곡이나 소나타 같은 작품은 가곡만큼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기도 하죠.

p108 그는 리스트, 쇼팽, 바그너, 베를리오즈, 슈만의 낭만주의 작품이 울려 퍼지던 19세기를 살았으면서도 고전주의 기조를 꿋꿋이 유지해 나갔습니다. 멘델스존은 동년배라고 할 수 있는 리스트, 쇼팽과 파리에서 1년 가까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친구처럼 지냈는데, 그들의 음악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p110 동생 펠릭스에겐 음악이 직업이 될 수 있지만, 네겐 그저 장식품일 뿐이란다. 여성에게 음악은 그런 것이다.

p121 욕정의 화신 상드가 순진하고 병약한 쇼팽을 제물로 삼았다고 말이죠. 쇼팽은 마요르카로 떠나는 길에 친하게 지내던 퀴스틴 후작의 집에 들렀는데, 퀴스틴 후작은 쇼팽이 떠나간 뒤 지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올여름 내내 상드와 쇼팽이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쇼팽의 얼굴이 너무 야위어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어. 상드가 흡혈귀 같은 여자라는 걸 그는 모르는 것 같아’

p141 슈만은 결혼 직후 시인의 사랑, 여인의 사랑과 생애 등 여섯 권의 가곡집을 냈는데, 그가 결혼한 1840년 한 해 동안 발표한 가곡수가 100곡을 넘어 이해를 가리켜 가곡의 해라고 부릅니다.

p148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2020년 슈만의 작품을 담은 음반을 냈는데, 유령 변주곡을 녹음하는 과정에서 당시 참담했던 슈만의 내면 상태가 자신에게 전이돼 굉장한 고통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p159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 연습곡 중 세 번째 작품인 라 캄파넬라는 피아노계의 파가니니를 지향했던 리스트의 열망이 구현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들의 얼굴을 보면 예외 없이 온통 땀으로 범벅될 정도로 엄청난 기교를 요구하는 곡입니다.

p169 리스트가 남긴 또 다른 업적은 관현악곡, 성악곡, 바이올린곡 등 다양한 작품을 피아노 연주곡으로 편곡했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그는 베토벤 교항곡 9곡을 모두 피아노 연주곡으로 편곡했습니다.

p201 둘은 슈만의 장례식 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고, 우정의 관계로 남기로 합의한 것 같다는 게 많은 음악학자들의 견해입니다.

p207 브람스는 비스바덴에 머물며 슈피스를 향한 열정을 가슴 가득 품고 작품3을 써 내려갔습니다. 이때 쓴 작품이 브람스의 4개 교향곡 중 가장 서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교향곡 3번입니다.

p213 브람스는 혁신가보다 장인에 가깝습니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져 내려온 독일 음악의 전통을 고수하며 높은 예술적 완성도와 성취를 일궈냈습니다.

p228 안토니나는 결혼 생활이 파국을 맞은 이후 3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들의 아버지는 각각 달랐습니다. 그녀는 아이 셋을 모두 고아원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안토니나는 차이콥스키보다 24년 더 살았지만, 그중 20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p241 푸치니는 자신이 쓴 오페라에 출연하는 여가수들과 밥 먹듯 불륜을 저질렀고, 오페라 나비부인을 쓸 땐 영감을 얻겠다며 일본이 여가수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대놓고 애정 행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p254 토스카니니는 탁월한 음악 해석 능력과 오케스트라에 압박을 가해 단원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연주에 강력한 리듬감을 부여하면서 오케스트라에서 장대한 사운드를 이끌어내는 그의 스타일은 푸치니의 오페라와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p260 말러는 음악을 통해 사랑과 기쁨 같은 보편적 정서를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고독과 상실의 고통으로 점철됐던 자신의 삶에 관한 자전적 서사시에 가깝습니다.

p270 말러에게 지휘는 생계 수단이었고, 작곡이야말로 진정한 꿈이자 열정이었습니다. 그는 여름 휴가 때마다 알프스 근처의 조용한 휴양지를 찾아 오로지 작곡에만 몰두하는 시간을 제일 즐거워했습니다.

p271 말러는 모두 10개의 교향곡을 썼는데, 그중 교향곡 3번은 총 연주 시간이 100분에 이릅니다. 19세기 대편성 교향곡의 대표 작품인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연주 시간이 70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말러 교향곡이 얼마나 긴지 알 수 있죠

p286 드뷔시는 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음악가였습니다. 물론 수많은 음악가 삶에 스캔들과 에피소드가 등장하지만, 드뷔시의 여성 편력은 양다리, 두 집 살림은 기본이고 연인의 친구와 바람피우기, 후원자 아내와 밀회하기 등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비열하고 난잡한 것들이었습니다.

p291 드뷔시는 모호한 화성과 음색의 다채로운 변화를 통해 몽환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또 중세에 쓰였던 교회선법과 동양의 5음계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도 신비감을 더하는 요소입니다.

p307 워낙 늦깎이 학생이었던 터라 사티의 지도 교수가 사티보다 세 살 어렸다고 합니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시절과는 달리 사티는 매우 모범적인 학창 시절을 보냈고 3년 뒤엔 그의 인생 첫 학위도 받았습니다. 드뷔시의 충고 덕에 사티도 보다 체계적인 작품을 쓸 수 있게 된 것이죠.

p308 검은고양이에 모인 젊은 예술가들은 사티의 작품 중에서도 피아노 모음곡인 짐노페디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짐노페디는 벌거벗은 소년들이라는 뜻입니다.

p310 잘못된 식습관에 과도한 음주까지 더해져 사티는 59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습니다.

p320 임윤찬의 연주가 특별했던 것은 기교를 넘어 연주자와 작품이 한 몸이 된 것 같은 신들린 연주로 관객들에게 굉장한 전율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적잖은 기성 연주자조차 이 곡을 대할 땐 힘겹게 사투를 벌이는 것 같고,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임윤찬의 무대는 마치 1909년 이 곡을 초연했을 당시 라흐마니노프의 연주가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연주였습니다.

p327 쟁존 당시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로서는 이견이 없는 최고의 연주자였지만, 작곡가로서는 평단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20세기를 살아가는 19세기 복고주의자라는 게 그에 대한 비평가들의 일관된 평가였습니다.

p326 자신의 작품은 물론 베토벤, 쇼팽, 슈만, 바흐 등의 작품도 녹음했습니다. 그는 피아노 소리를 울리게 하는 페달을 다른 피아니스트들에 비해 굉장히 절제해 사용했는데, 그 때문에 그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명징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탈리아의 사생활 - 알베르토가 전하는 이탈리아의 열 가지 무늬 지구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알베르토 몬디.이윤주 지음 / 틈새책방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 이탈리아의 사생활

 : 알베르토 몬디

 : 틈새책방

 : 2022/12/21 - 2022/12/27


비정상회담에 출연했던 외국인들은 사려깊고 생각이 반듯한 사람들 같다.

과거 미녀들의 수다에서는 신변잡기의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은데 비정상회담은 생각보다 무거운 주제를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어로 듣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했다.

이 친구들이 자신의 나라에 대해서 책을 썼는데 색다른 느낌이 많이 난다.

한 사람의 관점이라 얼마만큼 객관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모습을 많이 느끼게 된다.

로마제국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는 관광이나 패션으로 워낙 유명한 나라이고, 여행지로 빠지지 않는 국가다.

확실히 볼 게 많고 먹을게 많은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여자, 낭만적으로 말해서 사랑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나라라는게 참 좋다. 학생들의 공부방식이나 대학을 가는 방식도 많이 다르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우리나라가 참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좋은 점이 많으니까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거겠지?

비정상회담 출연자들의 책을 읽어가면서 삶이란 참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생각과 삶도 풍성해지는 것 같아 참 좋다.

여행이란 그리고 책이란 참 좋은 것이다. 


p16 이탈리에서는 컵의 온도마저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커피 잔들은 언제나 따뜻한 커피 머신 위에 놓여 있다. 커피는 커피 잔에 담겨야 한다. 향과 맛을 조금이라도 해치지 않도록 말이다.

p24 지금 이탈리아 말고 커피를 제일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일 듯 하다. 진짜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얼마든지 있다.

p49 파스타의 경우, 나오자마자 먹어야 면이 붇지 않은 상태에서 최상의 맛을 즐길 수 있다. 가운데에 놓고 번갈아 나눠 먹는 동안 굳어 버리는 파스타를 볼 때면, 나의 마음도 함께 굳는 것 같다.

p72 시내 한복판에서 투데이 메뉴 20유로 이런 집을 선택했다가는 편의점에서 파는 냉동 피자를 맛보게 될 수도 있다.

p89 해변에 가면 포틀리스 차림의 여성이 수두룩한데, 그걸 굳이 쳐다보는 남성도 별로 없다. 빤히 쳐다보거나, 반대로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는 사람이 있다면 촌스럽고 고리타분한 사람이라고 욕먹을 것이다.

p94 이탈리아 남자에게 인생의 1순위는 돈도 명예도 아니고 여자다. 이걸 낭만적으로 말하면 사랑인 거다.

p98 모든 여성은 저마다 아름답고 매력적인데 그 아름다움에 맞는 미소와 찬사라르 보내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나!

p112 교황의 인기와 교회의 힘이 비례한다.

p124 하루 종일 하니까 날시가 매우 중요하다. 결혼식 자체가 신랑 신부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날 하루를 위해 모두가 엄청나게 공을 들이기 때문에 아주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그 수고를 감당할 수 없다.

p129 기원이 어떻든 현재의 카르네발레는 화려함 그 자체다. 눈을 뗄 수 없는 전통 베네치아 코스튬이 펼쳐지는 거리에, 보행자뿐인데도 일방통행이 저절로 생긴다.

p132 이탈리아어 바칸체는 한국어 휴가의 의미를 넘어선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다. 휴가와 관련된 이탈리아인들의 판타지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영화, 노래, 그리고 온갖 로맨스 등으로 재생산된다.

p141 이탈리아에는 이런 활동을 주선해주는 에이전시가 아주 많다. 긴 방학을 집에서 보내기에는 무료한데, 돈이 부족해 마땅히 갈 곳 없는 학생들은 방할 때마다 이런 활동을 찾는다.

p165 저녁 6시쯤 되면 친구에게 “너 오늘 아페리티보 가?”라고 묻거나,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 나 아페리티보하고 들어갈게”라고 말한다. 6시쯤 만나 술을 한잔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각자 밥 먹으러 집에 간다.

p173 한국에 살며 “가장 그리운 게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고국의 음식이나 분위기라는 답을 기대한 분이 많겠지만, 내 대답은 라이브 공연이다. 서울에 온 뒤 한국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곳을 찾았지만 인구에 비해 지나치게 적었다.

p203 몇몇 인기 학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기 수준을 고려해 학교를 결정한다. 입학을 하더라도 졸업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잘못하면 서른 살까지 대학에 다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217 어느 날 갑자기 팬이 된 게 아니라 그분들도 나도 태어나자마자 유벤투스 팬이 된 거다. 모태 유벤투스다.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도 없으니 믿음이라고밖에 설명하기 어렵다.

p237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더 이상 새로 교체할 수 없는 부품들을 늘어놓고, 몇십 년 전 설계도를 보면서 일일이 차를 손보는 모습들도 매우 아름답게 느껴진다.

p245 이탈리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는 단순히 멜로디에서 오는 감동을 넘어선다. 아리아 자체가 너무나 훌륭한 시이기 때문에 오페라에 나오는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자라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학과 친해진다.

p254 재미있는건 지식수준에 비해 교양 수준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연극도 많이 보고 그림도 많이 안다.

p265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하나의 나라가 되어가는 중이긴 하지만, 이탈리아가 막 통일되었을 때 이탈리아를 만들었으니 이제 이탈리아 사람을 만들어야겠다라는 말이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람스의 밤과 고흐의 별 - 39인의 예술가를 통해 본 클래식과 미술 이야기
김희경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브람스의 밤과 고흐의 별

 : 김희경

 : 한국경제신문

 : 2022/12/19 - 2022/12/24


음악가와 미술가를 대비하며 풀어쓴 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나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시 잘난체 하기 좋은 책이다. ^^

에프소드별로 내용이 길지 않아 시간남을때 조금씩 읽기에도 좋다. 

관심이 있으면 더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연말에 읽으면서 음악관, 미술관에 가면 참 좋을 듯 하다. 


p21 눈에 보이지 않는 여신들의 이상적인 미를 좇기보다, 파리의 거리에서 살아 숨 쉬는 동시대 인물들을 바라보고 관찰하게 된 것이죠. 그는 스스로 “나는 남이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것을 그린다”라고 말했습니다.

p28 빈 분리파가 당시 내세운 슬로건은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됩니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p36 피아졸라가 쓴 악보들을 본 블랑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잘 썼어. 그런데 여긴 스트라빈스키, 여긴 라벨이군. 피아졸라는 어딨지?”

p48 피카소는 이를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성장하면서도 여전히 예술가로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p66 리스트는 이전까지만 해도 체르니의 지도를 받아 정확한 템포를 지키던 연주자였죠. 그러나 이때부터 파가니니처럼 고난도의 기교를 뽐내며 화려한 연주를 하는 비르투오소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p77 카라얀은 그 정도로 목표지향적이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모두 달성한 사람은 목표를 너무 낮게 정한 사람이다”

p83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을 것 같은 작품만 일부러 골라 사들이는 최후의 구매자 역할도 자처했습니다. 그 수도 많았습니다.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인상푸 작품의 90%가 카유보트의 기증품일 정도입니다.

p108 신성한 예배당에 이런 나체들은 어울리지 않는다. 목욕탕에나 어울리는 그림이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보복을 하듯 추기경의 얼굴을 지옥의 수문장 미노스의 얼굴로 그려 넣었습니다.

p115 드보르자크는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음악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하게 다른 장르의 음악을 받아들이고 접목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감하고 새로운 도전으로 대작 신세계로부터가 탄생했습니다.

p141 1805년을 전후로 교향곡 3번, 교향곡 5번, 교향곡 6번, 피아노 소나타 14번, 피아노 소나타 23번 등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명곡들이 잇달아 탄생했습니다.

p145 피사로는 고흐를 처음 보고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 남자는 미치거나, 시대를 앞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두 가지 모두를 할 줄은 미처 몰랐다”

p185 나는 높은 수준의 미술에서 2등이 도기보단 평범한 것들의 1등 화가가 되겠다. 궁정 화가가 한 말이라고 쉽게 생각되지 않지만 벨라스케스의 삶과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p208 12개의 별자리와 여인을 함께 그려 넣은 황도 12궁은 실내용 달력에 그려진 그림인데요. 이 그림으로 인해 달력 주문이 폭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4명의 여성을 통해 계절을 의인화하고 그 변화를 담아낸 사계도 오늘날까지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p236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블라드미르 호로비츠가 60년 만에 고국인 러시아로 돌아와 은퇴 독주회를 열고 마지막으로 연주한 곡도 트로이메라이였습니다.

p245 불멸의 사랑과 이를 담은 작품들로 오늘날까지 자주 회자되는 모딜리아니. 그는 벨 에포크 시대, 몽마르트의 보헤미아인으로 불릴 만큼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즐겼던 화가입니다.

p247 벨에포크는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이 끝난 1871년부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14년까지의 기간을 이릅니다. 이 시기 파리엔 인상파, 입체파 등 다양한 사조의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고, 그만큼 개성 강한 작품들이 많이 탄생했습니다.

p271 카메라 옵스큐라는 카메라의 시초로 볼 수 있습니다. 사각형 상자 한 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빛을 통과시키면 반대편에 풍경이 거꾸로 나타나죠. 페르메이르는 이 장비에 맺힌 이미지를 연구하고, 거울도 함께 이용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를 통해 빛의 양 등을 자세히 살펴보고 계산했죠

p281 1781년 레오폴트의 반대에도 빈으로 훌쩍 떠났는데, 이는 세계 최초로 전업 작곡가의 길을 걷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왕실과 교회의 의뢰를 받아 작곡하는 게 아니라, 영감과 의지에 따라 창작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p286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 그리고 행복을 화폭에 고스란히 담으려 했습니다. 느루아르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죠. “그림은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건 인생이나 다른 작품에도 충분히 많다”

p288 인상파 화가들은 주로 풍경을 그렸습니다. 이에 반해 르누아르는 사람에 주목했습니다. 소설가 에밀 졸라가 “르느아루는 무엇보다 사람을 그리는 화가”라고 정의하기도 했죠

p292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곡입니다. 베토벤, 브람스, 차이콥스키의 작품들과 함께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도 꼽히죠.

p303 슈베르트가 만든 가곡의 세계는 넓고도 깊습니다. 송어와 같은 가볍고 유쾌한 곡부터 우아하면서도 신비로운 매력을 가진 작품까지 다양합니다. 슈베르트는 특히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시를 좋아해, 괴테의 작품으로 마왕, 프로메테우스 등 60여 곡을 만들었습니다.

p313 이탈리아 오페라가 작품의 줄거리보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음악을 강조한다면, 바그너를 중심으로 한 독일 오페라는 짜임새 있는 서사와 극적인 전개를 내세웁니다. 그래서 바그너의 작품들을 이탈리아 오페라와 구분해 악극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극히 사적인 네팔 - 섞이지 않지만 밀어내지도 않는 사람들
수잔 샤키야.홍성광 지음 / 틈새책방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지극히 사적인 네팔

 : 수잔 샤키야

 : 틈새책방

 : 2022/12/12 - 2022/12/16


한국사람들보다 한국말을 더 잘했던 비정상히담 출연진들의 책을 계속 읽고 있다.

이번에는 네팔이야기다.

책에도 나오지만 나에게 네팔은 히말라야와 동의어다.

책을 읽다보니 네팔이란 나라가 참 다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126개의 민족이 어울려 산다고 한다. 

그 작은 지역에 이렇게 많은 민족이 있다는 것 자체가 수많은 전쟁과 이동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들이 큰 갈등없이 어울려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네팔민족성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카스트가 존재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차별적인 제도는 아니라고 한다. 카스트는 직업의 구분정도로 생각하고 사는것 같다. 

축제가 많아 휴일이 많다는 것도 재미있다. 저자가 소개해주는 축제들은 참 흥미롭다.

힌두교의 다양한 신들에게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색의 축제같은 경우는 꼭 가보고 싶다.

내게 가까운 지역도 아니고 가보고 싶어 동경하는 곳도 아니지만 새로운 지역, 새로운 역사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세상엔 참 많은 나라와 민족이 있다. 


p20 나마스테는 이런 의미다.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을 존중한다”

p29 공공장소에서 이성과 이야기를 나누면 눈길이 솓아진다. 몰래 만나거나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달해야 한다. 그렇다. 네팔에서 이성과 사귀려면 살 떨리는 비밀 연애를 각오해야 한다.

p37 네와르 민족은 막내가 부모님을 모신다. 형이나 누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고 ㅏ함께 고생을 했으니 제일 귀여움을 받고 자란 막내가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논리다.

p49 아무도 “나는 바이샤, 너는 수드라” 하면서 카스트를 따지지 않는다. 중요한 건 민족과 가문이다.

p51 네팔의 카스트는 신분이 아닌 어떠 ㄴ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 줄 뿐이다.

p58 더릿은 보통 부정한 일에 종사한다. 부정한 일이란 청소나, 빨래 같은 것을 말한다. 가장 천대받는 일은 가죽을 만지는 일이다

p59 상당수의 네팔 사람들도 이제 부당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그러나 더릿은 천하고, 더릿과 접촉하면 지옥에 간다는 인식을 쉽게 바꾸기는 어렵다

p68 네팔 사람들은 크리슈나의 매력을 이어받은 사람들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거다 “우리는 크리슈나의 후손이니까 여기저기에 여자 친구를 만들어야 해”

p93 네팔에서 새로운 총리가 취임하면 가장 먼저 인도를 찾는다. 인도에 밉보이면 정권이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국민들의 생계와 목숨까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p101 소를 가지고 농담하는건 피했으면 한다. 네팔에서 소를 잡으면 벌금 정도가 아니라 징역행이다. 혹여 “물소는 먹으면서 젖소는 왜 안 먹어?” 이런 얘기를 하면 네팔에서는 매우 공격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p110 소를 함부로 대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유는 물론이고 소똥과 오줌까지 신성시한다. 심지어 모든 부위에 다른 신이 산다고 믿는다

p136 신체 조건보다 더 중요한 건 산을 대하는 태도다. 세르파는 산과 신을 지키는 사람들, 산을 존경하고 자연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민족이나 출신과는 상관없이 세르파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

p147 오늘 실패해도 내일은 되겠지 하고 다시 도전하면 그만이에요. 산에 오르면 이른바 멘털이 강해져요. 지금 40대인데요. 20년 넘게 여기서 일했으니 저한테 산에 오르는 건 그냥 일이고 일상인거죠

p171 전설을 보면 쿠마리는 샤키야 가문에서 뽑는다는 걸 알 수있다. 그래서 내 동생도 쿠마리 후보가 된 것이었다. 샤키야 가문은 석가모니의 후손이라고 한다. 석가모니 후손의 몸에 힌두교 여신이 현현한다.

p211 반군이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일종의 수금을 하러 다닌거다. 자금을 조달하라곤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그냥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마오이스트인데 기부금 좀 주세요” 이렇게 한 거다. 심지어 자기들이 기부액을 정해 놓고 돌아다녔다.

p228 우리는 힌두교라는 종교가 아니라 자연과 우리 안의 신을 믿는다. 자연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다 신이고, 자연과 함께하는 우리의 생활이 종교다

p236 나름 한국말도 어느 정도 하게 됐으니 한국 사람들의 호기심에도 부응하고 싶은데 막상 이야기하려고 하면 자꾸 막힌다. 그래서 뜬금없이 외국에서 모국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다. 한국이 좋기 때문에 네팔과 한국이 서로 더 잘 알고 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p238 네팔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이 추위를 많이 타는 건 나약하거나 엄살을 부려서가 아니라 정말 추워서 그런거다

p240 다른 나라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네팔의 경우에는 게으르다기보다는 좀 더 여유롭고 느긋하다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p245 서로 섞이지 않지만 서로 밀어내지도 않는 사람들. 이게 네팔 사람이다. 서로가 다른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존중한다. 다만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에는 타협하지 않는다.

p261 길일을 잡고 진짜 생일을 정하는 등 대소사를 모두 이 달력에 의지한다. 비끄럼 섬벗은 단순한 달력이 아니라 생활의 중심이다.

p268 한국의 축제는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이 손님을 받는 개념으로 준비한다. 누구나 같이 즐기는 게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것을 구매한다. 엄밀히 말하면 축제가 아니라 장사다

p278 홀리는 네팔과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힌두교 축제다. 3월쯤 되면 한국의 네팔, 인도 커뮤니티에서도 이 축제를 연다. 이날은 봄맞이 축제 혹은 색채의 축제로 불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민의 한국사 1 - 전근대편 시민의 한국사 1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 돌베개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시민의 한국사1

 : 한국역사연구회

 : 돌배게

 : 2022/11/08 - 2022/12/18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국사 통사를 읽었다.

내용도 꼼꼼하고 최근 발견된 내용들도 많이 업데이트됐다.

새롭게 추가된 내용들을 생각하면서 읽으려니 아무래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시험용 서적이 아니다보니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배경도 같이 설명해준다.

한번 읽어서 이해될 수는 없을 것 같고 앞으로 4-5회정도 더 읽어서 머릿속에 정리해야할 것 같다.

2권도 기대된다. 


p34 후기 구석기시대에 들어서면서 여러 쓰임새에 맞춰 찍개, 주먹도끼, 긁개, 자르개 등으로 다양한 석기를 만들어 썼다. 돌날의 아랫부분을 손질한 슴베도 만들었다. 이것을 나무자루에 꿰어 창이나 작살로 쓰거나, 더 작게 만들어서 화살촉으로 사용했다. 슴베찌르개는 한반도에서 만들어져 일본 열도로 전해졌다

p39 한반도와 그 주변의 신석기문화는 대략 기원전 8,000년 전부터 시작됐다

p42 신석기인은 이전처럼 막집도 지었지만, 조금 발전된 움집을 짓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p53 청동기가 보급된 이후에도 농기구는 주로 돌이나 나무로 만들었는데, 반달돌칼, 돌보습, 나무 쟁기 등이 대표적이다

p56 최근에는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민무늬토기의 등장 시점을 근거 삼아 기원전 15세기로 보기도 한다. 다만 만주와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를 대표하는 비파형동검이나 청동거울은 기원전 12세기 무렵에 등장했고, 한반도 지역에 청동기 문화가 널리 보급된 것은 기원전 10세기 무렵이다.

p95 문헌과 금석문에 보이는 동부여라는 나라가 부여와 별개로 존재했는지, 위치가 어디였는지 등은 명확히 알 수 없다

p105 동해안의 옥저와 도예는 예족이라는 동일한 종족이다

p107 집단끼리 서로 침범할 경우 노비나 소,말로 배상하도록 했는데 이를 책화라고 했다. 특별히 음력 10월에는 무천이라는 제천행사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p115 전연의 모용황은 용성을 도읍으로 삼고 중원 진출을 도모했는데, 342년 중원 공략에 앞서 고구려를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이때 고구려는 모용황의 전략을 간파하지 못해 도성인 국내성이 함락됐다. 전연군은 고국원왕의 부왕인 미천왕릉을 파헤쳐 시신을 탈취하고, 왕모와 왕비 등 주민 5만여 명을 포로로 잡아 철군했다

p117 고국원왕은 미천왕대에 점령한 낙랑군과 대방군 지역을 본격적으로 경영하며 남진정책을 추진할 기반을 다졌는데, 이때 중국계 망명인을 활용했다. 이는 안악 3호분2의 무덤주인인 동수가 중국계 망명인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p123 백제국은 대외적으로 목지국을 압도하며 점차 마한의 중심 국가로 올라섰다

p133 마립간 시기부터 경주에 거대한 돌무지덧널무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돌무지덧널무덤은 널에 시신을 넣고 그 위에 껴묻거리를 넣은 덧널을 덧세운 다음, 그 주위에 돌을 쌓고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든 것이다

p181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진흥왕의 맏아들인 동륜의 아들 진평왕이 즉위했다. 진평왕은 신라사에서 유례없이 긴 재위 기간을 누리면서 정치적 안정과 함께 제도정비를 이뤘다

p215 고구려는 372년에 태학을 두었다. 여기서 박사들이 학생들에게 유학 경전 등을 강의했는데,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는다. 이와 별도로 경당이 있었는데, 여기서 청년들이 활쏘기를 익히고 중국 고전을 공부했다

p221 이른 시기 금석문은 한자를 우리말 어순으로 작성한 것이 많다. 그러나 6세기 중엽 이후의 비문들에는 순한문투의 문장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신라사회에서 한자와 한문에 대한 이해가 심호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p253 수의 고구려 원정이 임박함에 따라 각국의 외교적 대응이 더욱 활발해졌던 것이다

p257 당시 고구려는 왕권이 매우 약화된 귀족연립체체상태였다. 백제도 무왕대에 왕권이 많이 강화됐지만, 여전히 대성8족 등 귀족 세력의 권한이 막강했다. 신라도 선덕여왕의 측근세력과 반대파 진골 귀족의 대립이 깊어지고 있었다

p265 백제도 당과 관계를 소홀히 하면서 신라를 계속 공격하던 중에 나당 연합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삼국 사이의 갈등과 충돌을 넘어서 동북아시아 전체를 뒤흔드는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p271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663년 6월 부여풍이 복신을 제거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군사 지휘를 총괄하던 복신의 죽음으로 부흥군은 크게 동요했다

p275 이 무렵인 670년 4월 티벳 고원의 토번이 당을 공격해 도성 일대를 위협했다

p279 신라의 당군 축출은 당의 동방정책을 뒤흔들었을 뿐 아니라, 돌권의 부흥과 발해 건국으로 이어지는 국제 정세 변동의 단초를 열었던 것이다.

p283 즉위한 지 한 달을 갓 넘긴 681년 8월에 왕의 장인 김흠돌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모반의 주동자는 물론 가담한 모든 사람들 처형했다

p319 국왕권을 한층 강화해가던 682년에 예부 산하에 국학을 설치했다

p329 황룡사 종과 725년에 만든 오대산 상원사의 동종은 귀족 가문의 공방에 소속된 장인이 만들었다. 큰 사찰도 자체 공방을 운영하고 승려가 장인을 겸했다.

p335 가부장제를 바탕에 둔 사회이지만 여성의 재혼이나 사회 활동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는 홀로 된 뒤에 원효와 재혼했다. 그리고 궁궐에서 나온 삼모부인은 거대한 황룡사 종을 주조하는 사업에 대시주자로 참여했다

p345 문무왕이 의상에게 토지와 노비를 하사하며 크게 지원하려 했다. 그러나 의상은 승려는 무소유를 지향하며 불교의 가르침에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p351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부른 우리말 노래로 진성왕 때에 각간 위홍과 승려 대구화상이 삼대목이라는 향가집을 편찬했다는데 현재는 전하지 않고 삼국유사에 수록된 14수만이 알려져 있다

p357 신라 범종은 걸개 옆에 종의 내부와 통하는 음관을 설치해 깊은 소리를 낼 수 있게 했는데, 다른 나라 종들에는 보이지 않는 한국 종의 특징이다

p365 무왕은 동생 대문예에게 원정을 명령했으나 그는 전쟁의 상대가 당까지 확대될 것을 우려하며 반대하다가 726년 당으로 망명했다. 이처럼 당시 발해 지배층은 외교노선을 둘러싸고 반당파와 친당파로 분열되어 있다

p379 내분기에 이탈한 말갈 부족을 9세기 초에 선왕이 다시 정복한 이후 지방통치제도는 5경 15부 62주로 완비됐다. 발행의 영역은 남쪽으로 신라와 접했고, 서쪽으로 거란과 이어지며 동쪽으로 연해주까지 미쳤고, 북쪽으로 동류 송화강 하류를 경계로 삼았다

p387 조각으로는 정혜공주 무덤에서 발견된 돌사자와 흥륭사 석등이 대표적이다. 돌사자는 눈을 무릎뜨고 머리를 치켜들고 있으며 혀를 만 채 입을 벌리고 있다. 가슴을 앞으로 내밀어 강한 힘을 표현한 조각 수법이 돋보인다. 상경성 2호 절터에 위치한 석등은 상륜부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기둥돌 아래와 위에 새겨진 연꽃 무늬도 부조가 강하고 힘찬 느낌을 준다.

p349 그에 따라 화폐 제조를 담당하는 주전도감을 설치해 해동통보,삼한통보 등의 동전과 활구라고도 불린 은병을 주조,발행했다

p357 정치가 경색된 가운데 측근 세력의 문,무신 사이에 권력 다툼이 생겼다. 결국 1170년, 견룡군 장교들이 중심이 된 무신들은 보현원에서 왕이 연회를 벌이고 있는 틈을 타 무신정변을 일으켰다

p367 고려는 최우가 집권하던 1231년 처음 몽골의 침공이 잇은 후부터 1259년 강화가 논의될 때가지 장기간 맞서 싸웠다

p403 1269년 고려 세자 왕심(충렬왕)은 원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원에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황실의 딸과 통혼할 것을 요청해 허락받았다

p407 쌍화점은 고려 충렬왕대에 지어진 고려가요 혹은 향악곡으로 알려져 있다. 남녀관계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이를 남녀상열지사라 하기도 했다

p447 노비는 호적에 등재됐지만, 재산으로 취급해 상속되거나 매매됐다. 국가에 역을 부담할 의무가 없는 대신 권리가 제한돼 과거에 응시하거나 관리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집과 토지 등 재산뿐 아니라 노비를 소유하는 것이 가능했다. 부유한 노비는 주인에게 재물을 주고 양인이 될 수도 있었다

p452 이혼과 재혼을 대하는 당시 분위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고려시대에는 남녀 모두 의무적으로 정조를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호 신의의 원칙에 입각한 개념에 가까웠다. 이규보가 한 남성의 묘지명을 지어주면서 “혼인한 이후에 다른 여성과 관계한 일이 없다”는 망자의 말을 기록한 것을 보면, 정조를 지키는 경우가 얼마나 흔치 않았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p460 죄가 의심스러우면 가벼운 쪽을 따른다거나 죄 없는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법을 어기는 실수를 하라는 역대 국왕의 말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p464 화엄종은 교학불교를 대표하며 불교 교단에서 그 위상을 회복했다. 왕실에서는 화엄종에 관심을 표하며 원찰이나 진전사원을 화엄종 사찰로 지정했고, 왕자들을 화엄종에 출가시키자 문벌 자제가 화엄종으로 출가하기도 했다

p476 연등회와 팔관회에서의 연회는 왕과 신하 간의 위계질서를 확인하고, 서로의 우호를 다지는 행사인 동시에 관민이 어우러져 함께 즐기는 축제의 성격도 있었다. 이는 훈요10조에서 당부한 것처럼 군주와 신민이 함께 즐기는 행사였던 것이다

p477 첫 번째는 1011년 거란의 침입을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시작됐다

p495 천문을 담당하는 기관인 사천대와 태사국은 고려 초기에 설치되어 일식이나 월식 등을 관측하고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역할을 했다

p500 초기에는 주로 대형 천불이 많이 제작됐으며, 대형석불은 지역적 특색이 반영된 경우가 많다. 불상 의외의 조각으로는 태조 왕건의 동상이 유명하다

p517 정도전은 국가 운영에서 국왕보다는 신료를 중심에 두는 방안을 모색했다. 주자성리학이 제시한 정치사상을 좇아서 재상 중심의 정치체제를 추구했던 것이다

p531 명은 다른 나라가 조공을 바칠 때는 입국 확인서인 감합을 요구했지만 조선의 경우 국왕의 표문만으로 허락할 정도로 조선을 인정했다

p577 유학에서는 정치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권력을 제어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으로서 역사 기록을 중시했는데, 조선은 이러한 이념에 따라 사관제도를 정비하고 사관의 위상을 강화했다.

p596 사림은 피해를 입었지만 지방의 서원이나 향약을 기반으로 지지 기반을 확산하는 등 계속 성장했던 것이다. 명종 말 선조 초에 이르면 중앙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하며 정치를 주도했다

p606 이는 스스로 작용할 수 없으며 사단과 칠정 모두 기가 발하고 이가 올라타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존재와 도덕을 일괄해 이기의 관계를 서술한 것이었다. 이러한 차이때문에 이황은 이기이원론자, 이이는 이기일원론자로 분류하기도 한다

p607 기대승과 벌였던 사단칠정 논쟁에서 드러나듯이 이황은 이를 중시했을 뿐 아니라 도덕 원칙과 명분을 강조하는 도덕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p611 대학이 성인의 수신부터 치국평천하까지 이르는 추상적 지침을 담고 있다면, 소학은 일상에서 실천해야 하는 도덕적 행실에 대한 지침을 담고 있다.

p615 조선에서 왜인에게 주던 혜택과 무역량을 줄이자 대마도주의 지원을 받은 왜인이 폭동을 일으키거나(삼포왜란), 일본 국내의 혼란으로 통제가 느슨한 틈을 타 왜구가 조선의 해안을 약탈하는 사건(사량진왜변, 을묘왜변)이 발생했다

p630 병자호란은 임진왜란에 비하면 극히 짧은 기간에 마무리됐음에도 오랑캐로 간주하던 여진에게 패배하고 조공국이 됐다는 사실로 인해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파장이 더욱 컸다. 아울러 항복의 책임을 둘러싸고 정치적 갈등이 잠재됐다

p644 향약은 전쟁과 그 후유증으로 인한 사회적 동요를 완화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양반의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향촌사회에서 양반층과 상천민 사이의 신분차별도 한층 공고화됐다.

p651 조선 후기 5군영은 일관된 계획을 갖고 설치됐다기보다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른 것이었기에 각 편제나 조직, 그리고 운영 방법 등이 제각각이었다

p655 정조가 추진한 탕평은 충과 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되, 붕당을 구별하지 않고 오로지 충성스러운 자만을 등용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충은 와에게 중성하는 자만을 등용한다는 의미다

p670 대동법의 수취율은 시행 초에는 도마다 차이를 보였지만, 대동법이 확대 시행되면서 점차 12두로 고정됐다

p675 19세기 초 1,000만 석에 이르는 환곡은 더 이상 농민들에게 재분배의 혜택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과세 부담으로 작용해 농민항쟁의 불씨를 지폈다.

p687 조선시대 한양 주민 중에서 핵심 집단은 관료와 그 가족이었다. 대다수의 관료는 지방에 근거지를 두고 관료가 되면 상경했다가 은퇴하면 낙향했지만 대대로 벼슬살이를 하며 한양에 세거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 후기에 대대로 한양과 그 인근에 살면서 한양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족층을 경화사족, 경화세족이라 부른다

p694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노비면 그 자녀는 모두 노비가 되는 일천측천의 가혹한 노비세전법은 1669년(현종 10) 양인의 증대 방침에 따라 종모법으로 전환됐다. 혼란을 거듭하던 종모법은 1731년(영조 7)에 확정돼 노비와 양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자녀에게 신분 해방을 가져다줬다.

p701 홍경래는 정주성에서 전사했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그가 죽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신화처럼 퍼져나갔다.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홍경래의 난에 고무되어 반란이 일어났고, 홍경래와 같은 영웅이 나타나 민을 구원해주기를 바라는 염원이 전국 각지로 퍼져가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