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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맛 - 『도문대작』, 조선 미식선비의 음식 노트
김풍기 지음 / 글항아리 / 2026년 2월
평점 :
제목 : 허균의 맛
작가 : 김풍기
출판사 : 글항아리
읽은기간 : 2026/04/11 -2026/04/18
허균이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릴때는 홍길동전을 지은 서자출신의 개혁가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허균에 대해 점점 많이 알게 되고 그만큼 더 사랑하고 알고 싶게 된다.
난설헌의 동생으로서 요절한 난설헌의 시를 기억하고 있다가 문집을 만들어 난설헌이라는 천재적인 시인을 소개해준 사람이며, 글을 잘 썼던 외교관이기도 했고,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이런 멋진 책을 쓰기도 했다.
이 책은 허균이 기억하고 있는 음식과 재료에 대해 기록한 도문대작의 해설이다.
한자로 쓰여져 있기도 하고, 음식과 재료를 부르는 명칭이 달라지기도 하고, 한자로 쓰여진 단어가 그 음식과 재료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기도 해서 음식과 관련된 내용은 책으로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허균에 대한 사랑과 과거 경험에서 오는 음식의 향수가 이 책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읽고 싶었던 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올해의 책 후보다.
p18 권필이 이때의 과거 시험을 비판한 한시는 그의 문집에 실리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되어 전할 뿐 아니라 윤국형의 갑진만록, 고상안의 효빈잡기, 양경우의 제호시화 등에도 두루 전해지는 것을 보면, 이 시에얽힌 사건이 후대에 널리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p20 힘들고 지쳐 있을 때 그리운 고향을 생각하면 그때 먹었던 음식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는 음식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유배지에서 과거에 맛보았던 음식들을 떠올려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리운 음식들을 먹어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한 권의 책을 저술했다. 바로 도문대작이다.
p49 중국인은 우리가 먹는 만두를 교자라 하고, 밀가루 피를 교자보다 좀더 두껍게 해서 쪄먹는 것을 포자라 한다. 우리는 교자와 포자를 구분하지 않고 일단 피에 소를 넣어서 쪄낸 것 자체를 만두라 한다.
p68 정과는 과일이나 식물의 뿌리 등을 꿀에 재워서 오랫동안 천천히 졸여낸 음식이다. 주로 단맛이 있는 과일을 재료로 삼지만 도라지나 연근, 인삼, 생강 등 뿌리류를 쓰기도 한다.
p73 배나무는 열매도 열매지만 꽃 핀 풍경으로 수많은 제자가인을 감동케 했다. 옛사람들의 시문에 등장하는 배꽃은 봄날 밤의 애상적인 정서를 대변하거나 이별의 정하는 달래는 소재로 쓰였으며, 봄날 운치 있는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사랑받았다.
p115 최근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옛날에는 죽실에 밤가루와 곧감가루를 섞어서 밥을 지어 먹는 죽실반이라는 게 있었다. 국어사전에서는 대나무 열매인 죽실의 껍질을 까서 멥쌀과 섞어서 지은 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p133 앵두꽃도 좋은 눈요깃거리였다. 순서에 따라 24종의 봄꽃 소식을 알려주는 바람, 즉 이십사번화신풍을 부르면서 즐겼다. 소한, 대한,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에 이르기까지 각 절기마다 3종의 곷이 피어나기 때문에 24종이 된다. 그중 입춘의 3신이 바로 영춘화, 앵도화, 망춘화다. 입춘 무렵이면 드디어 하얀 꽃을 피워서 우리의 마음을 아름다운 봄으로 인도하곤 한다.
p143 홍도화는 달리 반도와 숭도는 털이 없는 복숭아다. 이전 글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근대 이전 동식물 관련 기록을 해독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당시의 용어가 지금과 다르고, 기록자가 정확한 명칭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p160 윤대련 집에 있는 마유포도가 가장 맛있다고 했으니, 섬세한 입만의 허균이 인정한 그 포도의 품종이 궁금해진다. 여러 종류의 포도를 맛보았을 허균이 마유포도를 희귀한 것이라고 표현한 점으로 미루어보건대 분명 당도가 높았을 것이다.
p210 새벽 댓바람에 벗이 편지와 함께 보내준 얼린 숭어가 밥상에 오르니 기쁘다는 내용이다. 원문에 동어라고 했으니 아마도 얼린 새끼 숭어일 수 있겠으나, 어떻든 숭어를 회로 먹으면서 술을 곁들였다 하니 오늘날 즐기는 방식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p251 지난 기억으로 구성되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런 탓인지나이가 들수록 모든 사안을 과거의 기억과 연결시키려는 태도는 어느정도 불가항력인 듯하다. 그것을 우리 사회의 꼰대 문화로 치부하고 괄호 처리하려는 시선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p374 오늘날에도 산갓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봄철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장아찌로 만들거나 다른 채소와 함께 무쳐 먹기도 한다. 유득공이 언급한 것처럼 고기를 먹어 속이 더부룩할 때 코를 뻥 뚫어주는 매운 산갓을 먹으면 속이 상쾌해진다.
p388 바닷가 바위에 감태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마치 푸른빛 융단을 씌워놓은 것 같다. 파도가 칠 때마다 넘실거리는 모습은 그렇게 아리따울 수가 없다. 감태 역시 파래의 일종인 만큼 조리 방식이 비슷하지만, 파래는 주로 국으로 끓여먹거나 나물처럼 무쳐먹는 반면 감태는 김처럼 얇게 펴 말려서 밥이나 다른 음식을 싸먹는 편이다.
p400 국화는 그 기운을 뚫고 꽃을 피워내기에 오상고절이라 칭송하고 소나무와 측백나무 또는 잣나무를 세한지절이라 우러르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나와 같은 필부들은 가을바람에 속절없이 스러지는 풀과 같은 운명인지라, 이즈막이 되면 괜히 쓸쓸해지곤 한다.
p413 역사는 언제나 열심히 사는 사람의 편은 아니어서, 열심히 공부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인생을 허비한다면 그 또한 공부하는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 오늘날 허균은 다양한 시각으로 논의되고 넓은 스펙트럼에서 평가되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간 내가 읽어온 허균은 엄청난 독서광이며 정갈한 삶을 살아가려 노력한 선비다.
p441 두견화전만큼 수요가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허균은 봄날의 꽃지짐으로 이화전, 즉 배꽃으로 만든 꽃지짐을 꼽았다.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면서 봄날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꽃이 진달래꽃이라면 한껏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청초함을 자랑하는 꽃은 단연 배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