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또는 M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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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부부의 스파이 추적기, N 또는 M

 

<비밀결사>, <부부탐정>에 이은 토미와 터펜스 콤비의 세번째 사건 이야기. 그 사이 시간이 빠르게 흘러 그들의 아이들은 훌쩍 성인으로 커 있었다. 시간대가 확 바뀌어서 처음에는 다소 놀랐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에 적응한 토미와 터펜스처럼 독자인 나 역시 그들의 추리를 하나하나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변한 그들의 위치에 적응할 수 있었다.

 

일상의 삶에 다소 아쉬움을 느끼던 토미와 터펜스에게 어느날 손님이 찾아온다. 그는 정부에서 일하는 '그랜트' 씨. 예전에 토미와 터펜스에게 사건을 맡겼던 '카터' 씨인 이스트햄턴 경의 추천을 받고 그들을 찾아온 것이다. 그는  터펜스가 전화를 받고 자리를 비운 사이, 그랜트는 토미에게 진짜 임무에 대해서 설명한다. 내부의 스파이를 추적하던 요원이 죽어가면서 남긴 힌트, N 또는 M... 그것은 각각 남자와 여자 스파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와 더불어 남긴 말을 풀어내 알게 된 '상 수시'라는 곳에 스파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꽤 오래 전에 활동하여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토미가 스파이를 찾아내는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토미는 위장된 임무로 둘러대고 드디어 상 수시로 떠나고, 그곳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나게 된다. 기지로 인해 토미의 진짜 임무를 알아낸 터펜스는 그랜트씨의 허락을 받고 토미와 함께 스파이 추적에 나서게 되는데...

상 수시에 하숙하고 있는 인물들은 모두 수수께끼가 있고, 상 수시 뿐 아니라 외부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도 있다. 과연 그 중에 N과 M은 누구일까?

 

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났을 무렵이 배경이었던 <비밀결사>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러 이번에 읽은 <N 또는 M>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된 토미와 터펜스는 초반에 전쟁에서 한발 비켜서 있을 것을 요구받는다. 전쟁은 젊은이들을 필요로 하지, 나이든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임무가 주어졌다! 그런 걸 보면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들의 활약을 통해 '나이'는 관계없음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흘렀지만 자칭 '아마추어 탐정'이라고 칭하는 토미와 터펜스의 매력은 여전하다. 그들은 허세가 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만, 맡겨진 임무에 책임을 다해 성공하려는 의지 하나만큼은 굉장히 뛰어난 모습이다. 그렇게 진실된 모습에 독자도, 책 속의 인물도 감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토미는 자신 있게 말했다.

"빨리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랜트가 물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자신하시오?"

토미가 말했다.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야만 한다고요!" (p.66~67)

 

한편 또 다른 반가운 인물도 등장하는데, <비밀결사> 때 터펜스에 의해 그들의 조수가 된 '앨버트'이다. 앨버트 역시 이 책에서는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었다고 한다. 토미와 터펜스의 중년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지 않았듯이, 앨버트 역시 그랬다. 그 앨버트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있다니! 중년이라니! 앨버트는 토미와 터펜스의 제안에 의해 상수시에 와서 그들을 돕게 된다. 그의 조사방식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그의 평범성을 보여주지만 그래서 그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앨버트는 논리적인 생각에 익숙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영국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는 일단 어떤 감정으로 확 기운 후에 어떻게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그럭저럭 헤쳐 나가는 유형이었다. 주인어른을 찾아야 한다고 결심한 앨버트는 충직한 개처럼 그를 찾아나섰다. (p.237)

 

<N 또는 M>은 다른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책의 대부분의 결말이 그렇듯이, 전혀 의외의 인물이 범인(스파이)으로 밝혀진다. 그 외의 다른 용의자로 부상하는 인물들도 각자의 비밀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의심이 가도록 촘촘하게 짜여져 있다. 아쉬운 것은 몇몇 의심스러웠던 인물들의 정체가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이 스파이의 정체를 알고 보여주었을 반응도 은근 궁금한데 말이지. 그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길 뿐이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N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인데, 완벽한 위장을 하고 있었던 이 인물의 정체가 토미에 의해 밝혀지는 부분은 정말 '우연'이었다. 이번 책에서는 '토미'의 활약보다는 '터펜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활약이 많았다. 토미가 결정적인 비밀을 밝혀냈던 <비밀결사>와는 반대인 셈이다. 한 사람이 어려움을 겪으면 다른 사람이 그를 도우니, 역시 완벽한 콤비이자 커플이다!

 

스파이를 찾는다는 점에서 나름 첩보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머릿속에 있던 첩보소설의 이미지와는 약간 거리가 있어서 조금 알쏭달쏭한 느낌. <비밀결사>와 <부부탐정>보다는 좀더 평안하고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것은 주인공인 토미와 터펜스가 나이가 들면서 변화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노년이 되었을 때는 분위기가 또 어떻게 달라지려나, 그들의 다음 이야기도 또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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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나는 외국어를 시작했다 - 거침없는 삶을 위한 짧고 굵은 10개 국어 도전기
추스잉 지음, 허유영 옮김 / 청림출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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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의 의미, 그래서 오늘 나는 외국어를 시작했다

 

외국어 공부가 소중한 까닭은 나와는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p.6)

 

처음에 이 책을 서점에서 보고, 외국어를 좀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책 표지에 '두 달이면 외국어 하나가 끝!'이라는 말과 '거침없는 삶을 위한 짧고 굵은 10개 국어 도전기'라는 글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 읽었던 <습관의 재발견>이나 <7번 읽기 공부법>과 같이 학습과 관련된 자기계발서에 가까운 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생각대로 외국어를 공부하는 저자만의 방법과 다른 유용한 방법들을 소개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무엇보다 '동기부여'의 측면이 강한 책이었다. 왜 외국어를 배우려고 해야 하는가. 외국어를 배워서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그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바로, '그래서 오늘 나는 외국어를 시작했다'라는 것이다.

외국어를 취업이나 입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많은데, 그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도록 연결해주는 하나의 다리로써 기능하게 할 것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모든 언어에는 '인류'라는 생물종의 특정한 지류가 단순하게 또는 복잡하게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 담겨 잇다. 또 언어를 학습하는 우리들은 다른 언어를 배우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믿고 있던 진리를 다시 점검해보고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단어를 몇 개 암기했느냐가 뭐 그리 중요한 문제일까? (p.110)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책을 읽으면서 번역에 약간 혼란이 있었던 점이다. 저자는 자신의 모국어를 생각하고 말한 듯 한 부분의 번역을 한국인 독자에 맞춰 '한국어'로 변형한 듯한 부분이 보여 헷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꽤 마음에 든 것은 확실히 의지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 중간중간 소개하는 몇몇 방법들은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동시에 2가지 언어를 공부하지 말하는 것이었다. 영어와 스페인어 공부를 병행할 생각이었는데, 이 책에서 이야기한 조언을 받아들여 당분간은 영어 마스터에 집중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독서의 폭이 좁았는데, 특히 자기계발서는 특히 더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비슷비슷한 성공스토리와 조언들이 담겨 있는 책들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한 의욕이 필요할 때만큼은 그런 책들이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이 책 역시 그랬고, 그래서 두고두고 읽을 책이 또 하나 생긴 것 같아 기쁘다. 물론 적용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그 언어를 실제로 사용해야 하는지, 언제 사용해야 하는지, 그 언어를 사용해 무엇을 할 것인지 알고 있는가? 간단히 정리하면 강한 목적성과 시간 제한이 있는가? 이것이 바로 외국어 학습의 효과를 결정한다. (p.203)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생각했다. 내가 배우고 싶은 외국어들과, 그 외국어들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외국어를 배우려는 순수한 이유. 그건 단순했다. 세상의 많은 이야기들을 알고 싶었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이야기가 아닌 것들도 알고 싶었다. 글 뿐 아니라 뉴스도, 공연도, 사람들과의 대화들도. 이렇게 더 많은 언어를 배워서 더 많은 지식을 쌓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모호하다. 그래서 이제까지 외국어 학습이 잘 되지 않았던 걸까? 좀더 선명하고, 세세하고, 무엇보다 강한 목적성이 있는 목표를 고민해봐야할 것 같다.

그리고 어쨌든 나도 이제, 다시 외국어를 시작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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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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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그의 매력에 빠져들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읽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펑펑 눈물콧물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지하철에서 읽는 것을 보고서 지하철에서 읽기에 나쁘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반전이 있을줄이야.

베스트셀러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째 요즘은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가진 매력을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최근 읽은 책 중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들에 대해 생각해보면, 다들 꽤 만족감을 주었다. 내 취향이 대중의 취향에 가까워진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 건지 알 수 없지만.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오베라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과거, 그리고 부인을 떠나보낸 후 자살을 계획하던 날 우연히 그의 인생에 들어온 이웃들로 인해 바뀌어가는 오베의 현재의 모습. 아니, 바뀌었다기 보다 그의 내부에 이미 있던 걸 끌어낸 것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그의 신념을.

오베는 아내 소냐의 죽음 이후 고립된 상태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그가 생각하는 원칙, 기준에 의해 이웃을 돕게 되고, 그 도움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결국 그는 많은 친구들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오베가 말하는 이야기들과 그의 과거 이야기들에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가 꽤 많아서 자꾸 울게 되어버린 것이다.

 

종이 책을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나 엉엉 울게 만드는 책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막 울고 싶을 때 읽으면 충분히 울게 만들어줄 테니까.

이미 그런 책들을 몇 권 가지고 있지만, 한 권 더 있으면 더 다양해지니 좋겠지.

무엇보다 나는 오베가 좋았다. 원리 원칙에 충실하고 올곧은 성격의 그가 좋았다.

결코 난 그와 비슷해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사람은 정반대에 끌린다고도 하지 않은가.

소냐가 말했던 것처럼, 오베같은 남자는 쉽게 찾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쉽게 잡을 수 있는 인물도 역시 아니다.

 

오베는 자기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만 이해했다. 시멘트와 콘크리트, 유리와 강철, 공구들, 가늠할 수 있는 물건들. 그는 올바른 각도와 분명한 사용 설명서를 이해했다. 조립 모델과 도면, 종이에 그릴 수 있는 것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5. 오베라는 남자 中)

 

어떤 남자들이 갑자기 어떤 일을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기란 때로 어렵다. 오베는 아마도 자기가 뭘 했어야 했는지 내내 알았을 것이다. 죽기 전에 누굴 도와야 했는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가 올 때까지는 늘 낙관적이다. 다른 살마과 무언가를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33. 오베라는 남자와 평소와는 다른 시찰 中)

 

에필로그까지 마음에 들었다. 오베의 죽음 이후, 오베와 소냐 집을 보러 온 신혼 부부의 모습이, 마치 그들 부부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남편 쪽은 완전히 오베의 성격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사브'라는 자동차에 대한 고집이 있는 것까지, 전부.

 

이 책은 E-book으로 읽었다. 그러고보니 요새 읽은 E-book들도 다 만족스러웠다. 요즘에는 많은 책들이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어서 흥미있는 전자책들도 많이 있는 것 같아서 좋다. E-book으로 읽으면 좋은 것은, 그 책에서 마음에 드는 글귀가 많을 때 북마크로 표시하기 쉽고 캡쳐해두기도 편하다는 점이다. 다른 장점도 많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다시 E-book을 읽어가는 양도 늘어갈 것 같다. 물론 종이책만큼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어쨌든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온 소설들이 뭐가 있을까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 흥미로운 소설을 찾아낼 수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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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 북원더러 서진의 뉴욕서점 순례기
서진 지음 / 푸른숲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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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과 논픽션이 어우러진 서점순례기,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뉴욕에 있는 다양한 서점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는 일종의 여행 에세이. 그러나 이 책은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갔다.

픽션과 논픽션이 섞여 있는 구성이다. 어디서부터가 픽션이고 어디서부터가 논픽션인지, 약간 가늠이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

그래서 읽기에 조금 혼란스럽고 골치아픈 부분이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 읽게 영향을 주었다.

픽션부분의 스토리는, 최근 전자책의 등장과 구매자들이 온라인 서점으로 옮겨가면서 길 위에서 서점이 사라져가고, 미래에는 종이책들마저 모두 불태워버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흘러간다. 미래는 모르겠지만, 서점이 계속해서 사라져가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이기에, 관심이 가는 소재였다.

그리고 논픽션 부분이 서점을 순례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서점 순례의 내용 역시 픽션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어쨌든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게 된 것은 뉴욕의 서점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었으므로, 거기에 집중해서 읽었다. 픽션 내용은 논픽션과 섞이다보니 급작스럽게 전개되는 부분이 있는 등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서점 순례기는 꽤 만족스러웠다. 다양한 서점이 있었고, 각각의 특징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서점들이 많았다. 국내에도 분명 이런 서점들이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혹시 국내 서점들을 순례한 책이 있지는 않을까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공감하는 글을 이곳저곳에서 읽을 수 있었다. 책에 대한 글, 서점에 대한 글. 그런 것들을 읽으면서 뉴욕에 이렇게 매력적인 공간들이 있는 걸 이제라도 알게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뉴욕의 대표 중고서점인 '스트랜드'와 장르소설 전문점인 'The Mysterious Bookshop'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흥미로운 컨셉의 서점들이 정말 많았다. 서점과 책에 둘러싸인 여행이라... 매력적일 것 같다.

 

살 책이 없더라도 스트랜드를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싸게 책을 살 수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움베르트 에코가 미국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곳이 스트랜드라고 한 것은 어쩌면 스트랜드만의 카오스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광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p.30)

 

정말정말 스트랜드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부분. 스트랜드만의 카오스는 뭘까? 좁은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책의 냄새를 맡고 거기에 파묻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숨어있던 보물같은 책을 찾아내는 것.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책들로 이뤄진 카오스. 생각만해도 두근두근하다.

 

나는 종이로 만든 책을 사랑한다. 서점에 들어서면 서가에 꽉 차 있는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평생이 걸려도 꽂혀 있는 책들의 절반, 그 반의 반도 읽지 못할 텐데 이미 다 읽어버린 것 같은 황홀한 느낌이 든다. 수많은 책들이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에 그런 착각 말이다. 멋진 표지와 묵직한 장정, 책을 넘길 때마다 느껴지는 감촉과 종이 냄새는 또 어떻고. 나는 책의 내용을 사랑하는 것일까? 책이라는 물건을 사랑하는 것일까? (p.72)

 

마지막 의문에 답하자면,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책 속에 담긴 내용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 내용을 안고 있는 책이라는 물건을 사랑한다. 책꽂이에 책들을 가득 꽂아 넣은 것을 뿌듯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만일 책벌레가 생겨서 책들을 갉아먹어버리면 어떡하지, 습기가 차서 변색되어 글씨가 보이지 않게 되면 어떡하지. 자고로 무소유를 지향해야 하는 법인데 다른 건 다 될 것 같지만 책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처음에는 그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언젠가부터 책을 소유하고 싶어졌다. 이러다 언젠가 책을 수집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건 아닐까. 눈앞에 있는 책장에 수많은 책이 빼곡히 채워져 있을 때 느끼는 행복감. 가슴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나는 손으로 넘겨볼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책을 사랑한다. 종이책은 그 자체로서 기기와 콘텐츠의 역할을 하는 완전한 문화상품이다. 배터리나 플레이어가 필요 없다. 오래가고 휴대하기 쉬우며 책꽂이에 꽂아놓으면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래서 다시는 책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책은 꾸역꾸역 늘어만 간다. (p.289)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은 시대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라 이야기했지만, 종이책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전자책과 종이책 모두 글을 담고 있지만, 둘의 기능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뤄진다. 전자책은 전자책만의 장점이 있고, 종이책은 종이책만의 장점이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여전히 종이책에 조금더 애정이 간다. 책의 무게감을 느낄 때 그 안에 담긴 글의 무게를 느끼는 것 같고, 책장의 넘길 때 느껴지는 종이의 재질, 들리는 소리, 세월이 담긴 책의 냄새가 좋기 때문이다. 종이책으로 하는 독서는 오감을 이용하는 것이기에,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은.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를 읽으면서, 특색있는 서점들과 그 서점의 직원들이 말하는 구하고 싶은 3권의 책들의 리스트도 보게 되었다. 덕분에 본의아니게 위시리스트에 책이 또 몇 권 채워졌다. 무엇보다 책 자체에 대한 애정을 다시 가득가득 채우게 해주었다. 그래서, 읽어가면서 참 즐거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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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사나이 할리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나중길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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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자체가 미스터리한, 신비의 사나이 할리퀸

 

할리퀸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자신이 창조한 탐정 중 가장 좋아했던 탐정이라고 한다.

그는 그가 등장하는 이 단편집 제목 그대로, 신비로운 인물이다.

퀸과 함께 콤비를 이루는 자, 새터스웨이트는 그를 '죽은 이의 대변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처음엔 약간의 미스터리한 면이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단편을 하나하나 읽어갈수록 퀸의 말과 행동에서 인간이 아닌 듯한 초월적인 느낌이 짙게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퀸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전 제가 온 길로 돌아가겠습니다."

새터스웨이트가 뒤를 돌아봤을 때, 퀸은 절벽의 끄트머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p.202)

 

그렇다고 해서 책에서 할리퀸이 어떤 존재인지 속시원히 말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암시뿐이라 알 수가 없다. 신비감에 싸인 존재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래서 애거서 크리스티가 좋아했던 걸까. 나도 할리퀸을 좋아한다. 사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조한 탐정들 중에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탐정들이 더 매력적인 것 같다. 파커파인, 토미와 터펜스, 그리고 할리퀸.

 

<신비의 사나이 할리퀸>에서 새터스웨이트가 그 자신의 관찰력과 퀸의 적절한 도움으로 어긋났던 진실을 하나하나 바로잡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퀸이 죽은 이들을 대변하는 경우도 있지만, 죽은 이가 없는 사건의 경우도 있다. 궁극적으로 그는 '정의'의 실현을 이끌어낸다.

또한 그는 갑작스레 나타났다 또 갑작스레 사라지는 존재이니만큼, 단편 미스터리에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단편집은 어쩐지 초월적 존재의 느낌이 느껴진다는 면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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