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에우제니오 카르미 그림, 김운찬 옮김 / 꿈꾸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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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지만 의미있는 우화, 움베르토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


『움베르토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는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가 쓴 우화 세 편을 담은 책이라는 설명에 궁금해졌던 책이다. 총 세 편의 우화가 이어진다. 각각 '지구와 평화', '다문화와 세계', '문명과 지구 환경'을 주제로 했다. 세 가지 주제 모두 우리 지구인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주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지켜야 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첫번째 이야기는 '폭탄과 장군'.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폭탄을 모으는 나쁜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폭탄 속 원자, 아토모들은 그러고 싶지 않아 숨어버린다. 장군은 그걸 모른 채 전쟁을 일으키고 도시마다 폭탄을 떨어뜨린다..!

두번째 이야기는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우주선을 타고 지구와 가까운 행성 화성으로 떠난 지구인들. 미국 사람, 러시아 사람, 중국 사람이 화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좋아하지 않았기에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사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걸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때 마주한 화성인. 지구인과 확연히 다른 모습에 세 사람은 서로 더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화성인을 배척하게 되지만, 어떤 상황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

마지막 이야기는 '뉴 행성의 난쟁이들'. 오만한 황제는 새로운 땅을 찾아내 문명을 전해주고 싶어했다. 그 임무를 받고 떠난 우주 탐험가는 새로운 행성, '뉴' 행성을 발견한다. 그곳의 주민인 난쟁이들에게 과학 기술이 기반이 되어 발달한 문명을 알려주려 한다. 하지만 말을 할수록 이 문명이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세 편 다 나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어 좋았다. 씁쓸함보다는 동화같지만 행복한 엔딩이 좋다.


간결한 세 편의 우화를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SF라는 것이었다. 현대의 우화는 과학 기술이 담긴 '사이언스' 픽션인걸까?

첫번째는 폭탄을 구성하는 요소인 '원자'가 과학과 관련이 되어 있었다. 두번째와 세번째는 '우주'를 향해 떠나는 우주인들이 등장한다.

'우화'라는 단어의 느낌이 SF와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잘 전해졌고, 동화같은 느낌도 존재했다. 이런 점이 신기했다. SF의 매력을 하나 더 발견한 느낌. 

삽화도 독특한 매력을 더했다. 콜라주 같은 느낌도 있고, 수채화 물감의 번짐 느낌도 있다.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책의 주제인데, 세 이야기 중에서는 두번째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 말이 다르다고, 생긴 모습이 다르다고 '우리'라는 선 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존중하지 않는 모습. 그 기준을 어디에 세우느냐에 따라 같은 인물을 다르게 인식하는 모습이 나왔기에 주제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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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나 사이
김재희 지음 / 깊은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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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좋아한 작가의 에세이, 이상과 나 사이


얼마 전 김재희 작가의 『경성 탐정 이상』을 읽고 이상과 구보란 인물이 궁금해져 『이상과 나 사이』도 읽어보게 되었다.

중학생 시절 절친 언니의 한마디에 처음 접했던 이상의 작품, 『날개』를 읽고 그 때부터 이상의 팬이 된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상을 좋아하던 글쓴이는 결국 작가가 되었고, 그를 자신의 작품 속에서 탐정으로 활약하게 만들었다.


비밀은 작가를 키운다. 그리고 아프게 하지만 작가에게 그걸 딛고 일어날 힘을 준다. 작가는 아픔을 딛고 용기를 내 작품에 매진하게 된다. (p.21)


이상의 작품은 학창 시절 공부를 위해 읽은 기억밖에 없다. 그다지 끌리는 작가가 아니었다. 그의 작품, 특히 시는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으니까. 왜, 처음 게재될 당시에도 독자들의 거친 항의를 받았다는 에피소드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 정도까지 항의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대의 기준에서는 매우 충격적이었나보다.

근현대 한국 작품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어서 이상은 더욱 멀기만 했다. 이상의 삶을 간단하게는 알고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뮤즈가 존재했으니까, 관련한 정보도 소설 이해를 위해 공부할 내용이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것이, 독이었다. 이상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의 매력을 찾아보려 노력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상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음을 깨달았다.

이상의 한 인간으로서의 삶, 이상의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신의 경험과 맞물려 전해주는 내용들.

살짝 무게가 다른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이상의 정보들을 많이 알 수 있던 부분들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상의 작품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꽃나무>라는 시가 있다는데,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이상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충분히 충족되지는 않아서 아쉬운 마음이 있다. 하지만 이 책 장르가 이상 평전은 아니니까.

이상의 이야기는 주로 초반에 많이 다뤘고, 뒷부분은 글쓴이의 작가로서의 에피소드의 비중이 높은 느낌이었다.

마지막에 있는 '추리소설 쓰는 40단계'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강연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은 내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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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사라지기 전에 커피가 식기 전에 시리즈
가와구치 도시카즈 지음, 김나랑 옮김 / 비빔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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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뛰어넘어 이뤄지는 소중한 만남, 추억이 사라지기 전에


연초에 눈물 펑펑 흘리게 만들었던 '커피가 식기전에' 시리즈 책 두 권. 이 시리즈의 세번째 책이 나왔다. 제목은 『추억이 사라지기 전에』. 1, 2권의 배경이었던 도쿄의 카페 '푸니쿨리 푸니쿨라'가 아닌, 하코다테의 찻집 '도나도나'로 장소를 옮겼다.


가게 이름은 '찻집 도나도나'.

이 찻집의 어느 자리에는 불가사의한 도시 전설이 깃들어 있었다.

그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원하는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전설이다.

다만 몇 가지 성가신…….

아주 성가신 규칙이 있었다. (p.16)


그 성가신 규칙은 푸니쿨리 푸니쿨라의 규칙과 동일하다.

과거로 돌아가도 찻집을 방문하지 않은 사람은 만날 수 없고, 어떤 노력을 했더라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가는 자리가 따로 있는데 그 자리가 비어야 앉을 수 있고, 과거로 돌아가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면 안 된다. 무엇보다, 과거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잠깐-잔에 따른 커피가 식기 전까지의 시간뿐이다.

이 까다로운 규칙을 들은 많은 이들이 과거로의 이동을 포기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이야기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떤 말을 전하려고 했지만, 결국 전하지 않은 이야기. 그들의 시간여행을 따라가다보면 눈물이 가득 고이고 만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이기적이야."라고 원망하지 못한 딸의 이야기.

자신만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원망하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과거로 갈 수 있다는 도시전설을 듣고 찻집을 찾아왔다. 과거로 가서 자신의 부모님에게 원망의 말을 하기 위해. 하지만 과거로 간 그녀가 듣게 된 것은 어머니의 충격적인 과거였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행복하니?"라고 묻지 못한 남편의 이야기.

개그맨 그랑프리를 우승한 뒤 실종되었던 남자가 찻집 도나도나에 나타난다. 알고보니 그는 오래전부터 단골이었고 찻집의 도시 전설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는 과거로 향한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미안해."라고 말하지 못한 여동생의 이야기.

여동생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며 계속 찻집에서 동생을 찾는 여성이 있다.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오는 날, 찻집을 찾은 그녀. 정전이 된 순간, 과거에서 여동생이 찾아와 말을 건다...

네번째 에피소드는 "널 좋아해."라고 고백하지 못한 청년의 이야기.

개그맨 오디션에 붙어 도쿄로 떠났던 남자가 돌아왔을 때 소꿉친구였던 여자는 떠나있었다. 그녀가 사라진 후에야 자신의 감정을 깨달은 남자는 마침 과거로 가는 자리가 비워진 것을 보고 그녀가 머물렀던 시간으로 떠난다. 그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단지 과거로 돌아갈 뿐이라면 누구나 돌아갈 수 있어. 하지만 이 찻집은 사람을 선택해. 규칙으로 말이지. 규칙을 듣고 과거로 돌아가려던 생각을 단념하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어. 그 이유는 무엇이든 좋아. 현실은 바뀌지 않더라도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p.341)


이 책의 성가신 규칙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했다.

'과거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현재는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시간 여행은 분명 관계된 인물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일종의 타임 패러독스. 지나간 과거는 이미, 현재의 행동에 의해 영향을 받은 상태였다.

시간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상대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진심을 담아 말을 건넨다.

전해지지 않았던 비밀과 진심이, 시간 여행을 통해 전해진다.

복잡하고 성가신 규칙은 사람들이 오로지 진심만을 똑바로 전하게 만드는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첫번째. 물론 네 에피소드 모두 감동적이지만, 첫번째 이야기는 엄마와 딸이 서로의 구원이 되어준 것이 두고두고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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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를 써야 작가가 되지
정명섭 지음 / 깊은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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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지망생을 위한 정보를 담은 책, 계약서를 써야 작가가 되지


출판계는 어렵다고 하는데 작가를 꿈꾸는 이들은 많아진 현재.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책 출간을 꿈꾸며 여러 플랫폼에서 글을 쓴다. 그 경쟁률을 뚫고 출간 계약이라는 바늘 구멍을 통과했다고 마음을 놓기에는 이르다. '계약'은 어느 분야에서든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써야 작가가 되지』는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 계약서 쓰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첫장을 넘기면 긴 도서목록이 나온다. 글쓴이가 2006년 첫 책을 출간한 후 2020년 초반까지 세상에 나온 책들이다. 15년 동안 약 100여권. 분야도 다양하다. 추리소설, 좀비소설에서 시작해 청소년 소설과 동화, 역사소설까지. 문학이 아닌 인문서도 있다. 장편, 단편 길이를 가리지 않았다. 다작으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가 우리 나라에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낼 때마다 계약서를 썼다고 한다. 수많은 계약서를 쓴 경험을 이 책에 담았을테니, 신뢰감을 더해주는 목록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하나하나가 다른 세계관을 지닌 우주라고 할 수 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도전해 성공했기 때문에 그 경험과 지식이 다음 주자에게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교육이든, 필사든, 습작이든 말이다. 다만, 나의 성향과 사상에 맞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연습해야 한다. (p.50)


처음부터 바로 계약 이야기를 하진 않는다.

출간을 하려면 작품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시작은 창작, 글쓰기와 관련된 내용이다.

다양한 '병'에 관한 내용이 흥미롭다. 다양한 사례 중 두 가지에 눈이 갔다. 글을 쓰지 않고 설정만 주구장창 쓰는 병인 '설정병'. 세상에 완벽한 설정은 없는데, 자신이 없어 계속 설정만 짜게 되는 경우가 있다. 글을 쓰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중간에 포기해 버리는 '포기병'. 이 포기병이 위험한 건 습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완결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썼다. 한때 소설 쓰기를 꿈꿨으나 설정병, 포기병에 걸려 지금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접어둔 상태다. 머릿속을 맴도는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풀어쓰지 못할 것 같아서. 일단 써보는 게 중요한 걸까? 고민이 움튼다.

두번째 챕터에서 본 주제 등장! 계약서에서 확인해야 하는 것들을 알려준다. 저자의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들이다. 왜 계약서를 꼼꼼하게 봐야하는지, 각 요소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일반적인 기준이 어떠한지. 계약과 관련한 기타 다양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담았다.

마지막 챕터는 계약 후 작가로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활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담았다.

계약서. 딱딱할 수 있는 주제인데 상당히 가독성이 좋은 책이다. 많은 글을 쓴 작가이기 때문에 매끄럽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좋은 가독성이 책의 큰 장점이기도 하다. 정보를 전달하는 책은 부담없이 쉽게 읽을 수 있으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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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탐정 이상 5 - 거울방 환시기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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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이상, 숙적과의 마지막 대결! 경성 탐정 이상 5 거울방 환시기


김재희 작가의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의 마지막 권, 『경성 탐정 이상 5 거울방 환시기』가 출간되었다.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는 1권이 나왔을 때부터 읽을지 말지 고민했던 시리즈였다.

이상이란 실존 인물을 토대로 한 픽션이라는 점에 망설였다. 이번에 완결 소식을 듣고 읽어보기로 했다.

표지의 인물 뒷 배경의 조각난 이미지가 부제에 쓰인 단어, '거울방'의 이미지를 짐작케 한다.


교동도라는 섬에 지어진 독일계 기숙학교, 슈하트. 그곳에 재학중이던 여학생이 사라졌다.

사건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이상은 구보와 함께 인천으로 향하는 기차를 탄다.

그 기차 안에는 각기 다른 이유로 슈하트로 향하는 인물들이 몇 타고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살해된 채 발견되고 한 남자는 사라진다.

예상치 못했던 사건을 뒤로 하고 도착하게 된 슈하트.

관계자들을 만나던 이상과 구보는 슈하트에서 징벌의 목적으로 학생을 '거울방'이라는 곳에 가두었고, 사라진 여학생 역시 거울방에 들어간 후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거울 방은 어떤 데죠?"

상은 가장 궁금해하던 주제로 돌아왔다.

"거울방은 사면이 아니라 여덟 면이 거울이에요. 팔각형 거울벽이 하나하나 다양한 각으로 조각나 있어 얼굴은 수십 개 심지어 수백 개가 보이죠. 면과 면이 반사돼서……."

구소진이 잠시 멈추고 손을 가볍게 떨었다. 구보가 물을 건넸다.

"바닥에 하얀 자갈이 깔려 있어요……. 차가운 자갈을 맨발로 밟고 작은 의자에 앉아서 나를 봐요. 아무도 없어요. 거울만이 내 얼굴, 옆모습, 앞모습, 가슴과 팔, 다리, 발가락까지 비춰요. 그걸 모두 봐야 해요. 지옥이죠……."

구소진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p.109)


조사를 이어나가던 중 이상은 행방불명되고, 이튿날 거울방에서 정신을 잃고 손에는 피묻은 칼을 쥔 채 발견된다.

사라졌던 여학생의 시체와 함께.

이 모든 사건을 계획한 것은 이상의 숙적, 류 다마치 자작이었는데... 이상은 그의 최종 목적을 저지할 수 있을까.


장편이라 읽는 데 조금 애를 먹었다. 근현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는 점도 어려움을 더했다.

하지만 이상과 구보, 이 콤비가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숙적이라 할 수 있는 류 다마치 자작의 존재까지 있으니 '셜록 홈스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류 다마치가 스스로를 '설계자'라고 하는 걸 보니 '그'의 그림자가 담긴 듯하다.


"이상. 난 말이지. 날 때부터 속한 곳이 없는 자야. 중도연합도 슈하트도 내 이상향을 건설하는 도구이고, 난 설계자이지. 이 모든 걸 지휘하는. 자네도 나처럼 목적을 위해 다른 모든 걸 수단으로 생각하고 살아봐. 다시는 정신착란을 겪는 일 따위는 없을걸세." (p.264)


'거울방'이라는 소재가 인상적이다. 이상의 시에서도 '거울'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게 있기 때문인지 이 작품 속에서 이상의 작품이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 초판 한정 부록으로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에서 소개되고 영향을 준 이상 작품을 모은 것이 있으니 참고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거울방'을 묘사하는 내용을 처음 읽었을 때 어쩐지 '에도가와 란포'가 떠올랐다. 거울을 소재로 한 작품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작품을 읽었을 때의 기괴했던 느낌이 떠올라 '거울방'의 공포스러울 듯한 정경을 연상할 수 있었다.

거울이란 참 묘한 존재다. 거울에 비치는 상은 같은 모습인 것 같지만 사실 모든 것이 반대다. 선함과 악함의 마주봄. 또다른 자아. 그런 거울의 이미지를 경성 탐정 이상의 마지막 이야기에 겹겹이 채워냈다.

이상과 구보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진다.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모습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으로서의 모습. 유명하지 않은 작품들이 하는 이야기. 누군가에 의해 해석되고 풀이된 형태가 아니라, 아무 선입견 없이 내용만을 보며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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