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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사라지기 전에 ㅣ 커피가 식기 전에 시리즈
가와구치 도시카즈 지음, 김나랑 옮김 / 비빔북스 / 2020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을 뛰어넘어 이뤄지는 소중한 만남, 추억이 사라지기 전에
연초에 눈물 펑펑 흘리게 만들었던 '커피가 식기전에' 시리즈 책 두 권. 이 시리즈의 세번째 책이 나왔다. 제목은 『추억이 사라지기 전에』. 1, 2권의 배경이었던 도쿄의 카페 '푸니쿨리 푸니쿨라'가 아닌, 하코다테의 찻집 '도나도나'로 장소를 옮겼다.
가게 이름은 '찻집 도나도나'.
이 찻집의 어느 자리에는 불가사의한 도시 전설이 깃들어 있었다.
그 자리에 앉으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원하는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전설이다.
다만 몇 가지 성가신…….
아주 성가신 규칙이 있었다. (p.16)
그 성가신 규칙은 푸니쿨리 푸니쿨라의 규칙과 동일하다.
과거로 돌아가도 찻집을 방문하지 않은 사람은 만날 수 없고, 어떤 노력을 했더라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과거로 돌아가는 자리가 따로 있는데 그 자리가 비어야 앉을 수 있고, 과거로 돌아가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면 안 된다. 무엇보다, 과거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잠깐-잔에 따른 커피가 식기 전까지의 시간뿐이다.
이 까다로운 규칙을 들은 많은 이들이 과거로의 이동을 포기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책에 실린 네 편의 이야기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떤 말을 전하려고 했지만, 결국 전하지 않은 이야기. 그들의 시간여행을 따라가다보면 눈물이 가득 고이고 만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이기적이야."라고 원망하지 못한 딸의 이야기.
자신만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원망하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과거로 갈 수 있다는 도시전설을 듣고 찻집을 찾아왔다. 과거로 가서 자신의 부모님에게 원망의 말을 하기 위해. 하지만 과거로 간 그녀가 듣게 된 것은 어머니의 충격적인 과거였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행복하니?"라고 묻지 못한 남편의 이야기.
개그맨 그랑프리를 우승한 뒤 실종되었던 남자가 찻집 도나도나에 나타난다. 알고보니 그는 오래전부터 단골이었고 찻집의 도시 전설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는 과거로 향한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미안해."라고 말하지 못한 여동생의 이야기.
여동생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며 계속 찻집에서 동생을 찾는 여성이 있다.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오는 날, 찻집을 찾은 그녀. 정전이 된 순간, 과거에서 여동생이 찾아와 말을 건다...
네번째 에피소드는 "널 좋아해."라고 고백하지 못한 청년의 이야기.
개그맨 오디션에 붙어 도쿄로 떠났던 남자가 돌아왔을 때 소꿉친구였던 여자는 떠나있었다. 그녀가 사라진 후에야 자신의 감정을 깨달은 남자는 마침 과거로 가는 자리가 비워진 것을 보고 그녀가 머물렀던 시간으로 떠난다. 그녀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단지 과거로 돌아갈 뿐이라면 누구나 돌아갈 수 있어. 하지만 이 찻집은 사람을 선택해. 규칙으로 말이지. 규칙을 듣고 과거로 돌아가려던 생각을 단념하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어. 그 이유는 무엇이든 좋아. 현실은 바뀌지 않더라도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p.341)
이 책의 성가신 규칙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했다.
'과거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현재는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시간 여행은 분명 관계된 인물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일종의 타임 패러독스. 지나간 과거는 이미, 현재의 행동에 의해 영향을 받은 상태였다.
시간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상대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진심을 담아 말을 건넨다.
전해지지 않았던 비밀과 진심이, 시간 여행을 통해 전해진다.
복잡하고 성가신 규칙은 사람들이 오로지 진심만을 똑바로 전하게 만드는 장치였을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첫번째. 물론 네 에피소드 모두 감동적이지만, 첫번째 이야기는 엄마와 딸이 서로의 구원이 되어준 것이 두고두고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