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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스미는 -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외 지음, 강경이.박지홍 엮음, 강경이 옮김 / 봄날의책 / 2016년 9월
평점 :
천천히 스미는, 영미 작가들의 산문들
신간 코너에서 제목에 끌려 집어들었다. <천천히, 스미는>이라는 제목이 주는 잔잔한 울림이 좋았다.
저자를 보니 G.K.체스터튼, 버지니아 울프, 도로시 세이어즈 등 익숙한 이름들이 있었고, 그들의 '산문'을 선별해 실었다는 소개에 끌려 결국 읽기로 마음먹었다.
막상 책을 읽으니 그 작가들의 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새로이 끌리는 작가를 꽤 알게 된 점도 좋았다.
전자의 경우는 맨 처음 등장한 버지니아 울프의 글. '나방의 죽음'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큰 인상을 받지 않았었는데, 끝까지 읽고나니 그 사소한 죽음에 관한 묘사가 주는 무거움이 확 느껴졌다.
좋은 작가들의 좋은 산문이 많아서, 천천히 스며들어오는 글들이 가득한 산문집이다.
사람의 마음을 북돋는 것. 글 쓰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예술가가 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가벼운 오락거리를 쓰는 사람도, 충격을 주기 위해 쓰는 사람도,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위해,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쓰는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다. (p.184)
이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작가들, 그래서 그들의 작품도 궁금해지게 한 작가들이 여럿 있지만 특별히 적어둔 작가들이 있다.
맥스 비어봄. 책에 실린 '윌리엄과 메리'가 글의 일부이기 때문에 전체가 궁금해진데다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에세이로 유명한 작가인 듯 하여 궁금해졌다.
존 버로스. 글 자체는 무난하게 읽은 편이었지만 작가 소개를 읽으니 자연 에세이를 많이 쓴 것 같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자연은 언제나 흥미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홀브룩 잭슨. 책에 관한 에세이는 언제나 끌리기 때문에. 작가 소개에 쓰여있던 <서적광의 해부>나 <애서가의 즐거움>이라는 책이 궁금함을 끌어냈다.
리처드 라이트. <Black Boy>라는 책에 실린 산문 두 편이 <천천히, 스미는>에 실려 있었는데, 그 안에 담긴 인종 차별 문제가 평범한 일상에 무겁게 녹아있다는 느낌이 전해져서 다른 에세이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힘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각하고 비밀스런 문제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흑인에게는 삶의 사소한 문제들이 말하기 힘든 것이 된다. 그 사소한 문제에 자기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p.180)
최근, 작가들의 에세이의 매력을 알게 된 것 같다.
깊이 있게 생각에 빠져들게 만드는 글이 담긴 책은 잠시 읽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두고두고 곁에 두고 읽고 싶게 한다.
그런 좋은 글을 만나서 기쁘다.
그나저나 자꾸 읽고 싶은 장르가 퍼져나가니, 이것 참 어찌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