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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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흐르지만 집중하게 되는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꽤 분량이 많은데도 다루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짧은 축에 속하는 작품이었다.

화자의 젊은 시절, 어느 한 여름 한때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놓고 있었다.

주인공은 평소 동경하던 건축가의 건축 사무소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공공도서관 건축 경합을 위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여름 별장에서 지내게 되며 여러 일을 겪게 된다.


책을 읽다보면 건축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된다. 유명한 건축가들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라던가 아스플룬드라던가. 그 건축가들이 건설한 여러가지 건물과 그 안의 건축적 요소들을 세세하게 다루는 부분들이 깊게 다가온다. 모르는 분야라서 일수도 있고, 그들 그리고 주인공을 포함한 책 속 등장인물들의 장인정신 같은게 느껴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이야기를 처음  봤을 때는 비행기로 유명한 라이트 형제의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러다가 '카우프만 저택', 그가 일흔에 완성한 건축물의 이야기를 읽다가 갑자기 팟 하는 느낌이 왔다. 어디였지? 어디서 본 거지? 전시였나? 책이었나? 헷갈리지만 분명 아는 내용. 그제서야 그가 건축가였으며 카우프만 저택의 특징을 전에 다른 책에서 접했던 것이었음을 떠올렸다. 일단 떠올리고 나니 사진도 떠오르고 설명들도 떠올라서 신기했다. 카우프만 저택에 관한 내용 뿐 아니라 이제까지 접해온 건축 관련 정보들이 함께 떠올라서, 이 책을 좀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건축 사무소 사람들의 일과를 통해 건축가들이 어떤 작업을 하는지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게 도면 그리는 것이었다. 도면 그리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생생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배운 도면 그리던 경험이 책 속의 상황을 상상하는데 도움이 될 줄이야. 앞으로 전혀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고보면 다른 것들도 모두 언젠가 재평가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건축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것과 함께, 새에 관한 이야기도 꽤 나온다. 주인공이 어릴적부터 새에 관심이 있었던 특징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름 별장'이라는 배경과 어우러져 자연에 녹아드는 느낌이 나서 좋았다. 한편으로 주인공을 새에도 관심이 있는 인물로 설정한 이유가 있는건지 궁금해지긴했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다.


어떤 한 분야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담긴 책은, 읽는 독자들도 그 분야에 진지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한다는 걸 느꼈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으면서, 건축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고려하면서 하는 작업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떤 건축물을 만날 때, 세부적인 부분들까지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조금 생각해보게 될 것 같다.


건축은 준공되고 나서 비로소 생명이 부여된다. 나는 어느새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은 이용객과 그 시대에 의해 숨결이 부여되고 살아난다.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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