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사랑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종이약국

 

가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맞이하는 책들이 있다.

<종이약국>도 그런 책이었다.

책 소개를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이 마음을 다친 사람에게 수상서점 '종이약국'의 주인이 책을 추천하는 이야기일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부분은 초반에 잠시 나올 뿐이었고, 이 책의 큰 줄거리는 서점 주인인 '페르뒤' 씨가 과거 사랑했던 여인인 마농이 썼던 편지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읽고, 후회감에 싸여 무작정 떠나게 되고, 그 여행 속에서 비로소 온전히 이별을 하게 되는 그런 내용이었다.

책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별에 관한 이야기여서 처음엔 조금 실망했다.

'종이약국'이라는 서점의 이름과 책으로 아픔을 치유한다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기에 그 내용이 좀더 다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사랑 이야기를 읽는 걸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니까.

하지만 글을 읽어가면서 점점, 페르뒤 씨의 사랑 이야기에, 그리고 이별을 조금씩 받아들여가는 과정에 빠져들어갔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 위해서 과거의 사랑과 '제대로 이별'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마농과의 이별 이후 멈춰있던 페르뒤 씨의 시간은, 그녀의 편지를 뒤늦게서야 발견하고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이별은 사람을 성장하게 만든다고 하던데, 페르뒤 씨는 마농을 드디어 놓아 줄 수 있게 되면서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그 점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게 그가 책에 관해 생각하는 부분들이었다.

 

책은 항상 충분할 것이다. 책은 읽는 사람을 언제까지나 사랑할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모든 것 속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다. 삶에서, 사랑에서, 죽음에서도. (p.51)

 

책 초반에 페르뒤 씨가 손님에게 책을 추천해 준 후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는 책에 둘러싸인 삶을 살아가며, 사람들과의 교류는 살짝 멀리하고 있었다. 오로지 책만이 믿고,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고 생각했었다.

 

페르뒤 씨는 책들 옆에 있으면 늘 피난처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는 배 안에서 온 세상을 발견했다. 온갖 감정, 모든 장소와 모든 시대. 결코 여행을 떠날 필요가 없었으며 책들과의 대화로 충분했다. 때로는 사람들보다 책들을 더 높이 평가한 적도 있었다.

책들은 덜 위험했다. (p.323)

 

어쩌면 두려웠던 건지도 모른다. 사람과 맺어가는 관계는 예측할 수 없다. 어떻게 시작하고 또 어떻게 끝날지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책은 다르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책 속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각종 상상으로 가득하지만, 진짜 세상보다는 분명 덜 위험하다. 책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책은 독자를 거부할 수 없다. 주도권은 항상, 독자 자신에게 있다. 거부당하는 일이 없다. 사람 사이의 관계와는 다르게도.

 

어떤 책이 나를 구해줄까?

그 대답이 생각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책들이 많은 걸 할 수 있지만 모든 걸 할 수는 없어요. 중요한 일들은 직접 살아봐야 해요. 책으로 읽지 말고. 나는 내 책을...... 직접 체험해야 합니다." (p.374)

 

무작정 시작한 여행의 끝에서 페르뒤 씨는 비로소 느끼게 된다.

어떤 책도 온전히 삶을 구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결국 우리는 책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일들은 진짜로, 스스로 경험해봐야 한다. 죽을 듯이 힘들고 아파도, 일단 부딪혀 봐야한다.

그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또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페르뒤 씨가 그랬던 것처럼.

 

+덧.

그런데 페르뒤 씨가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이 '마농'이었던 것은 우연일까? 그녀의 이름과 행동에서 어쩐지 <마농 레스코>가 자연스레 연상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출판사나 작가와는 전혀 상관없는 몽실서평단에서 지원받아 읽고 내맘대로 적은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