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2
가스통 르루 지음, 정지현 옮김, 규하 그림 / 인디고(글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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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그, 오페라의 유령

 

미뤄두었다가 드디어 읽은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원작 소설.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아 책을 구매하고 꽤 오랜 시간 방치했다가 이제야 읽었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의 표지는 아름다운 일러스트였지만 어두움이 느껴졌다. 같은 시리즈의 다른 책들을 읽을 때와는 좀 다른 분위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소설의 큰 줄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공연을 좋아하기 때문에, '오페라의 유령'의 줄거리를 접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연도, 소설도 보지 않았었다. 공연의 경우는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는데 놓쳐버렸다. 그러니 이 책이 나와 '오페라의 유령'의 첫 만남이었다.

 

가스통 르루라는 이름은 언뜻 들은 적이 있었다. <노란 방의 미스터리>라는 작품의 작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페라의 유령> 역시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음울하고 어두운 미스터리. 그것은 유령처럼 오페라 하우스 이곳 저곳에 문제들을 이끌고 나타나는 '오페라의 유령'의 존재 그 자체다. 이 글은 일종의 액자소설로, 기자인 화자가 '오페라의 유령'에 관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동시에 오페라의 유령은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이기도 하다. 한 여자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가질 수 없었던 한 남자와 그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불행을 겪어야 했던 여자. 그리고 그 여자와 서로 사랑에 빠져 불행에 휩쓸린 남자의 이야기.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오페라의 유령의 정체를 밝혀내려는 신임 관장들과의 에피소드, 크리스틴과 라울, 그리고 오페라의 유령이 얽힌 에피소드이다. 적절히 교차해서 에피소드가 진행되는데, 이 두 에피소드에 드리워진 유령의 그림자 때문에 음울한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느껴진다.
한편 유령은 여러가지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샹들리에가 떨어져 사람이 죽기도 하고, 고문실을 마련해 놓았고, 그의 집으로 오는 호수에도 덫을 설치해 결국 사람이 죽게 만든다. 그는 천재적이었지만 그 천재성을 위험하게 사용했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 어두운 인물이었기 때문인걸까, 그는 결국 사랑하는 여인을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도록 한다.

그렇게 오페라의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뒤 화자는 이런 말을 한다.

 

가엾고 불행한 에릭! 우리는 그를 동정해야 할까, 저주해야 할까?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해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몰골이 너무나 추했다. 평범한 얼굴이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비범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추한 얼굴 때문에 자신의 천재성을 숨기거나 속임수를 쓰는 데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거대한 제국을 거느릴 만한 용기가 있었지만 결국 지하실에서 사는데 그쳐야만 했다. 그렇다. 우리는 오페라의 유령을 가엾게 여겨야 한다. (p.428)

 

지금은 절대로 이 화자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나중에 놓아주긴 했다고 해도 그는 사랑을 강요했다. 속임수를 썼다. 자신에게 방해되는 인물들을 제거하려 했다. 무엇보다 죄없는 사람을 죽였다. 두 명이나. 그런 자를 가엾게 여겨야 한다고? 단지 그가 자신을 꿈을 펼쳐 보이지 못할만큼 추한 외모를 가졌었다는 이유 때문에? 그는 겁쟁이다. 용기가 있었지만 발휘하지 못한게 아니었다. 언제부터는 스스로 피하고, 숨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읽을수록 주인공 세 사람 모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릭은 그가 저지른 범죄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스타일인 성격 때문에, 크리스틴은 시종일관 소극적인 면을 보이는 것 때문에, 라울은 대책없이 일단 저지르고 보는 타입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읽기 시작했으니 결말까지 읽기로 하고 읽어갔다.

많은 세계 명작을 읽을 때마다, 처음에 그 인상이 나빴던 적이 아주 많았다. 오페라의 유령 역시 그렇다. 어쩌면,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게 되면 이 오페라의 유령, 에릭을 가엾게 여기게 될까. 미안하지만 현재로서는 거의 0퍼센트에 가까울 뿐이다. 그리고 다른 커플 역시 그렇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사랑에 대해 냉소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랑이란 주변에 비극을 불러오는 것 같다고. 언제나 큐피드의 화살은 어긋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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