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하버쿡 젭슨의 진술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7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송기철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아서 코난 도일의 기괴한 미스터리, J.하버쿡 젭슨의 진술

 

아서 코난 도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탐정의 대명사인 '셜록 홈스'의 창조자라는 것. 그러나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셜록 홈스는 오히려 족쇄가 되기도 했다. 시리즈를 마음대로 종결하지도 못하고, 독자들의 몰아치는 항의로 죽음을 맞이하게 했던 캐릭터를 되살려야 하기까지 했던 아서 코난 도일. 셜록 홈스를 좋아하는 한 독자로서, 셜록 홈스 시리즈가 셜록 홈스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상황에 대한 독자들의 반발심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내가 당대의 독자였어도 아마 같은 반응을 하지 않았을까. 셜록 홈스의 광팬이니까. 하지만 아서 코난 도일,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작가보다 인기가 많은 캐릭터는 무서운 존재다. 자신이 만들었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두려움을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셜록 홈스 시리즈의 엄청난 성공 때문에 아서 코난 도일의 다른 작품은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빛나는 성공이 작가로서 다양한 스타일에 도전하는 데에는 족쇄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쩐지 조앤 롤링이 떠올랐다. 판타지 소설인 해리 포터의 성공 이후, 편견 없이 평가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필명으로 추리 소설에 도전했던 그녀.

 

예전에 '셜록 홈스 시리즈'를 너무 좋아했던 나머지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기로 마음 먹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 접한 책은 환상 소설이었는데, 제목이 잘 기억 안나는 걸 보면 역시 큰 임팩트는 없었던 모양이다. 실망스러웠다. 그 때문에 아서 코난 도일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편견이 조금 강해졌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상당한 의문과 불안감이 있었다. 이 책이 과연 만족스러울 것인가? 셜록 홈스만큼?

 

에스프레소 노벨라 시리즈의 7권 <J.하버쿡 젭슨의 진술>은 아서 코난 도일의 단편 4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표제작 'J.하버쿡 젭슨의 진술'을 비롯해 '가죽 깔때기', '경매품 249호', '북극성 호의 선장'이 그것들이다. 이 네 작품은 우려와 다르게 상당히 흥미로운 소재와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었다. 셜록 홈스의 '추리소설'과는 다르지만, '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지닌 단편들이었다.

 

각각의 단편들은 모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데, 뭔가 기괴하고 섬뜩한 내용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표제작 'J.하버쿡 젭슨의 진술'은 아서 코난 도일이 소설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라 했다. 실제로 일어난 미스터리한 사건을 소재로 하여 그 이면에 어떤 비밀이 있었을지 상상해서 이야기한 내용인데, 항해 일지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것은 마지막에 실려 있던 '북극성 호의 선장'도 마찬가지이지만, '북극성 호의 선장'은 'J.하버쿡 젭슨의 진실'보다 좀더 기괴한 이야기에 가깝다. 논리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공포, 현상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형식을 읽다보니 어쩐지 얼마전 읽었던 에드거 앨런 포의 스타일도 떠올라 매우 흥미로웠다.

 

두번째 단편 '가죽 깔때기'의 경우는 평범해 보이는 물건에 담긴 끔찍한 진실을 풀어낸 이야기인데, 꿈이라는 것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깨닫게 한 것이 특이했다. 이 단편에서는 화자와 화자의 친구의 대화에서 흥미로운 관점이 제기되는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돌팔이란 언제나 선구자인 법이지. 점성술사는 천문학자가 되고, 연금술사는 화학자가 되고, 최면술사는 실험심리학자가 되었어. 지난날의 사이비가 오늘날의 전문가란 말이야. 심지어 꿈처럼 미묘하고 모호한 문제조차 언젠가는 질서와 체계로 환원될 거야. 그날이 오면 저쪽 책꽂이에 있는 우리 동지들의 연구도 신비주의적 오락거리가 아니라 과학의 근간이 되겠지." (p.75)

 

꿈을 소재로 한 심리학, 그러니까 정신분석학에서의 무의식 연구 등에 관한 내용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이것은 아서 코난 도일의 관점일지도 모르겠는데, 꽤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느껴졌다.

세번째로 실려 있던 '경매품 249호'도 미스터리한 요소를 가득 품고 있는 단편이었다. 의문의 습격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정체가 밝혀지기까지의 분위기가 상당히 기괴하고 음울하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셜록홈스 시리즈에서 느꼈던 느낌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에드거 앨런 포의 스타일도 느껴졌다. 하지만 각 이야기들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었다. 아서 코난 도일이 '추리 소설'이 아닌 다른 스타일의 매력적인 미스터리를 쓸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던 책이었다. 어쩐지 예전에 읽고 실망했던 아서 코난 도일의 다른 소설을 다시 읽어봐야할 것 같다. 지금은 좀 다른 관점에서, 너그럽고 열린 마음으로 읽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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