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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잘 먹는 것 - 삼시 세끼 속에 숨겨진 맛을 이야기하다
히라마츠 요코 지음, 이은정 옮김 / 글담출판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평범한 일상 속 음식의 매력, 산다는 건 잘 먹는 것
요즘은 '음식'이 주목받는 시대인 것 같다. 많은 TV프로그램에서 쿡방이 유행하고 있다. 사진을 올리는 SNS인 '인스타그램'에도 음식과 요리 사진들이 넘쳐난다. 먹음직스럽기만 한 게 아니라 화려함도 품고 있는 음식, 먹을 것들.
이번에 읽게 된 책, 히라마츠 요코의 <산다는 건 잘 먹는 것>은 이 흐름을 타고 가는 듯 하면서도 약간은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 '삼시 세끼 속에 숨겨진 맛을 이야기하다'라는 부제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음식은 삼시 세끼를 챙겨 먹어야 하는 '일상'과 닿아있다. TV 속의 화려한 요리들과, 인스타그램 속 약간의 허세가 얹어진 음식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첫번째 에세이부터 너무나 신선했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먹는 것'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조곤조곤 풀어놓는 이야기. 잊고 지나칠 법한 이야기들인데, 그녀가 짚어주니 '아, 정말 그랬지.'하고 공감이 갔다.
그렇구나, 손가락도 혀였구나!
그래서 슬쩍 집어 먹는 건 손가락만 할 수 있다. 젓가락 같은 걸 쓰면 흥이 깨진다. 아무도 몰래 살짝 맛을 볼 수 있다. 까칠까칠, 매끌매끌, 촉촉, 서늘서늘, 미끌미끌. 손가락이라는 또 하나의 혀를 업신여길 수 없는 게 이 때문이다. (p.18)
때로는 직접 무언가를 먹는 경험에 관한 내용이 아닌, 책을 통해 느끼는 맛과 냄새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었다. 굉장히 공감이 가는 내용 중 하나였다. 겪어본 적이 있었다. 책 속의 이미지를 상상하다보면, 실제로 맛과 냄새를 느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떄가 있다. 물론 이미 그 음식에 대한 경험이 쌓여있는 경우에 그렇다. 새로운 음식의 경우는 상상할 수 없으니까 그런 경우가 덜하다.
몇 십 권, 몇 백 권의 책이 가슴 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맛과 냄새가 쌓여 간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면 그 맛과 냄새는 어느새 확실하게 윤곽을 드러내며 이미 먹은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참으로 제멋대로고 묘하고 이상하다. 그것들은 나와 책 사이의 비밀결사와 같은 것으로, 둘만이 아는, 둘이서만 만들어내는 맛이며 냄새다. (p.57)
앞부분이 '먹는 행위'와 관계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면, 뒷부분에서는 먹을 때 사용하는 도구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다양한 그릇들과 주전자, 식탁보와 테이블 매트. 젓가락을 올려두는 돌과 같은 사소한 것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잎'을 음식을 올려두는 용도로 이용한다는 부분이었다.
원래부터 잎은 '사용할 수 있는' 도구다. 만주를 올리고 치즈를 올리고 건과일을 올리고 초콜릿을 올린다. 나는 무엇에든 사용한다. 잎은 그릇과 음식 사이에 잠깐의 여유를 만들어준다. 손바닥에 올려서 그릇 대신으로 사용하며, 그 옛날의 느긋함과 평화로움을 맛본다. (p.117~118)
화려함을 벗고, 일상의 평범함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편안한 글들을 읽어가는 것이 참 즐거웠다. 표지에 꽂혀 있던 띠지에는 두 사람의 추천사가 적혀 있었다. 수요미식회 자문위원 박미향 기자와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중인 박준우 기자의 평. 둘다 너무 공감가는 내용이었다. 식재료에 대한 글에서 차분한 감수성을 느낄 줄은 정말 몰랐다. 읽으면서 잔잔한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질 않았었다.
또 이 책은 제16회 분카무라 드 마고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한다. 일본 책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라,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몰랐던 상이었다. 그런데 책이 워낙 만족스러워서, 다음에 이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작품을 접하게 되면 호감도가 미리 상승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