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죽음
리사 오도넬 지음, 김지현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묘하게 몰입감이 높았던 소설, 벌들의 죽음

 

다 읽고나니 몇분간 멍한 기분. 책 속의 내용은 평소의 나라면 그저 피하고 싶은 주제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음에도, 자꾸만 읽으라고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그것이 무엇인지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지만. 어쨌든 결국 다 읽어버렸다.

 

시작부터 시체가 2구나 나온다. 다름아닌 주인공 자매, 마니와 넬리의 부모님이다. 죽음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채 시신은 자매들의 손에 의해 치워지고, 묻히고, 은폐된다. 이야기는 자매의 시선을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제 3자가 끼어들지 않으니, 비밀은 더욱 철저히 은폐된다. 독자들도 모르고, 자매도 죽음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서로를 의심하지만, 그것을 입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그들의 유대감은 그만큼 강하고 견고하다. 그들은 부모님의 죽음을 숨긴 채 마니가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기까지 견뎌내기로 한다.

 

그러나 비밀을 숨기는 것은 만만치 않다. 일단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신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빨리 알게 된다. 그리고 집안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들로 자매들은 고생한다. 그들을 지켜보던 옆집 노인 레니가 자매들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다. 그런데 이 노인의 과거도 밝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는 과거 아동성추행으로 경찰서 신세를 진 적이 있는 동성애자다. 그러나 그의 시선으로 지켜본 결과, 그는 굉장히 온순하고 맑은 사람에 가깝다. 레니는 자매를 보살펴주면서 따스함을 느낀다. 그렇게 레니와 자매는 가족처럼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매는 레니에게조차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다. 레니는 그걸 알면서도 드러내지 않고 지켜본다.

넬리에게 마니가, 마니에게 넬리가 있으니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외로운 여정이 되었을 테니. 그래서 나는 자매들끼리 비밀을 나누고 간직하도록, 비밀을 통해 둘의 유대가 강해지도록 놔두고 있어. 유대감은 중요한 거야. 그게 있어야 삶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어떻게든 계속 걸어나갈 수 있으니까. (p.94) 

 

한편 자매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두운 면을 가진 사람들로만 가득 채워져있다. 불법적인 일들을 저지르는 사람들, 타락의 길로 빠져드는 아이들, 위선의 가면을 쓰고 거짓된 모습만 보이고 있는 어른들... 그 중 가장 위선적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은 자매의 외할아버지다.

그는 갑작스레 나타나 자매들의 어머니인 이지를 찾는다. 과거 자신의 학대로 인해 도망친 딸에게 용서를 빌려 한다는 것. 그런데 그를 보니 예전에 미국 드라마 CSI의 한 에피소드에서 봤던 등장인물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학대했던 과거의 잘못을 씻어내고 다시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어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를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자식들. 그러고보니 꽤 중요한 등장인물 중 하나인 샌디의 엄마, 앤도 비슷한 느낌이다. 나쁜 생활을 청산하고 깨끗한 크리스천이 되고 싶어한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면 샌디도 이지같은 결말을 맞게 될까? 아니기를 바란다. 부디, 제발.

 

옆집 노인 레니나, 블라도, 그리고 자매의 외할아버지를 보면서 사람들의 악한 과거를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뉘우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용서해주어야 할까? 아니면 사람이 변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며 끝까지 멀리해야할까. 책에서는 딱 한 번의 실수 때문에 고통받는 레니의 모습, 살아남기 위해 착한 본성에 반하는 나쁜 일에 빠져들었던 블라도를 보여주면서도, 과거의 일을 반성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위선일 뿐인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리는데 혼란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품고 있는 비밀이 하나하나 밝혀질수록 몰입감은 점차 커진다. 결국 이야기 끝까지 '비밀'은 여러가지 형태로, 여러가지 내용을 담은 채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소재가 되었다. 결말까지도. 결말 부분에서는 감동적이면서도 안타까웠다.

우울한 주제를 가득 품고 있어 어둡고 섬뜩하면서도, 따스한 분위기가 담겨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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