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윤건 - 윤건 에세이
윤건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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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감성 충전하다, 카페 윤건


쇼팽 발라드 1번을 들으며 리뷰를 쓰고 있다. 이 책 속에 나왔던 한 에피소드에서 언급되었던 음악이다. 피아노곡으로 유명한 쇼팽의 작품답게 너무나 아름다운 이 곡... 클래식의 잔잔함은 이 책이 주는 느낌과 닮아 있다. 아, 이제까지 들었던 윤건의 음악과도 닮은 것 같다. 그가 쓴 글이니까, 당연한건가.
 

책에는 윤건이 운영하는 작업실 겸 카페, '마르코의 다락방'과 관련된 에피소드와 그,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책을 통해 카페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는데, 첫장부터 소개된 카페 입구의 레고시티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어떤 곳일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책을 읽어갈수록 더욱더 그곳에 가보고 싶어졌다. 적산가옥의 구조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고 하는데, 그 구조는 어떤 것일지 실제로 보고 싶었다. 그밖에 여러 가지 보고 느끼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접하니 더욱 끌렸던 것 같기도 하다.


책 속에서 에피소드 자체는 공감의 부분이 적었을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생각들은 마음 속 깊이 파고드는 부분들이 분명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


정말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너무 속상해서, 너무 지쳐서, 너무 아파서 확 시원하게 울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거든.

근데, 잘 울어지지가 않아.


물이 가득 찬 쫄깃한 노란 속살을 가두는

파인애플 껍질 같은 어른이라는 껍데기. (p.114~115)


어른이 되면, 온전히 감정을 드러낼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것. 어제 본 한 TV프로그램에서 방황하는 감정들을 울면서 쏟아내는 것이 좋은 치유방법이 될 거라 이야기했었는데. 그렇게 펑펑 울지 못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이 자꾸만 생겨나는 것일까?

또 이런 부분도 끌렸었다.


언젠가 내가 그에게 물었다.

정리의 비법이 뭐야?

그는 말했다.

무조건… 버리기.

오래된 물건은 가지고 있어봐야 짐만 될 뿐이라며.

하지만.

나는 문득 궁금해져버렸다.

그럼… 추억은…? (p.211)


물건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 책도 그렇고, 오래된 편지들, 어릴적 일기들, 낡은 옷, 풀다 만 문제집까지... 과거의 추억이 쌓여 공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버려야하는데, 쉽게 버려지지가 않는다. 거기에 담긴 추억들을 잃고 싶지 않아서. 오래된 물건을 들춰보면,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 추억들은 대부분 미소를 짓게한다. 과거 속에서 사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가끔 과거를 떠올리는 일은 현재에서는 쉽게 잡을 수 없는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 그 시절에는 그게 행복인지 몰랐지만... 그래서 참 인생이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하며.


생각해보니,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뭔가 대단한 야망과 패기라기보다는 그저 단순한 취향의 문제인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면 그냥 퐁당 빠져버리면 그뿐. 그다음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시간에게 나를 부탁하고 기다리기. 기다림이 간절해지면 시간이란 놈의 마술이 시작된다. 시간은 퍼즐 놀이하듯 우리 삶을 이리저리로 튕기고 굴리며 애를 먹이다가 몸과 마음은 파김치가 되고 포기라는 두 글자가 입 안에서 뱅뱅 맴을 돌 때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에 나를 세워놓는다. 그러니 인생은 조급한 사람들의 필패. 조급함을 피하려면 내 마음속의 영웅 하나쯤은 필수. (p.214)


얼마나 기다릴 수 있어?

시간이 내게 묻는다.

아직은, 괜찮아.

그러나 가끔은 두렵기도 하다.

이 어중간한 시기가 영원해질까봐...

그런 생각을 하며 읽었던 부분이랄까.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을 하면 사람은 정말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막연히 기다릴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은, 너무나 적은 것 같고 말이다.


책은 총 이틀간 읽었는데, 어쩌다보니 밤 시간에만 읽어버렸다. 낮에는 다른 책을 읽다가 저녁즈음 되면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의도한 바는 아닌데, 밤에 읽어 그 감성이 더욱 잘 느껴진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비까지 내렸으면 더 완벽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어쨌든 오랜만에 감성 충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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