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헤세의 독서 에세이,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는 아주 유명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들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좀처럼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작가이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에 왜이리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다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헤르만 헤세의 경우는, 그의 작품을 아주 어렸을 적에 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에 아직 어린 나이였고, 그래서 헤세는 어려운 말들만 하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한 번 그런 생각이 굳어지니, 다시 접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러나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어릴적 생각했던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 읽기를 다시 시도하기에 앞서, 헤세가 쓴 독서비평을 통해 그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일단 스타트가 좋았다. 헤세가 쓴 비평은 길지 않으면서도 깊은 생각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처음으로 실려 있던 비평은 안데르센 동화집. 부담스럽지 않게 읽어가기에 딱이었다.

그렇게 헤세가 쓴 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생각했다. 이 책을 한번에 쭉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헤세의 비평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그 안에 담긴 생각들을 받아들이는 게 참 좋았다. 읽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게 된다. 낯선 책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헤세가 소개한 작가들, 그리고 그들이 쓴 책들이 눈에 들어오는 게 참 많았다. 특히 궁금했던 책은 괴테가 썼다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라는 책이었다. 헤세는 꽤 길게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쓰고 있어 참 궁금해지게 한다. 그밖에 호프만의 <수고양이 무르의 인생관>, 제임스 힐턴의 <굿바이, 미스터칩스>, 조지프 콘래드의 <서양인의 눈으로>도 궁금한 책들이었다.


이야기꾼과 독자 사이에는 말 없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곧 삶이란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것이며, 영국은 낙원이고, 늙은 칩스 선생은 재치 있고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p.268)


책은 총 세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 첫번째 파트가 서양 작가들의 책에 대한 헤세의 비평이었다면, 두번째 파트는 헤세가 작가들에 대해 적은 글이었는데, 이것도 꽤 흥미롭게 읽힌다. 독자는 헤르만 헤세의 시선을 빌려 작가들의 작품세계에 좀더 깊이 접근하게 된다. 이전에 너무 어렵게만 느꼈던 작가들의 신선한 매력을 접하게 된다. 헤세 덕분에 나는 스탕달, 도스토옙스키, 발자크, 괴테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고, 클레멘스 브렌타노, D.H. 로렌스,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라는 작가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왜 고전을 읽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부족했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들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삶은 언제나 옳다. 역사는 수많은 가치들을 소리 없이 스러지게 만들지만, 그러면서도 가치 있는 것을 언제나 다시 망각에서 건져올린다. 그래서 잊혔던 스탕달이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이 되었고, 새로운 판본들, 번역들, 전기들이 잔뜩 나오고 있다. 그의 작품 일부는 불멸로 남을 것이다. (p.276)


세번째 파트는 동양 서적에 관한 비평이다. 동양의 고전에 대한 책 이야기들이 신선했다. 특히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자 문화권인 우리가 그대로 쓰는 것과 달리, 작품 제목을 번역해서 새롭게 붙이는 게 참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공자의 <논어>를 <대화>라고 번역한 것이다. 옮긴이는 여기서 이런 방식으로 번역할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중국의 문자를 빌려 써왔고 실생활에서 중국어와 한자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해도, 이는 엄연히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자어가 친숙한 사람이라도 '홍루몽'이라는 말에서 '붉은 방의 꿈'이라는 뜻을 생각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실용적인 책들에 밀려 고전을 권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이런 뜻풀이의 고역을 번역자 손으로 해결하지 않고 독자에게 넘기는 것은 그리 좋은 전략이 아닌 듯하다. (p.310)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말하자면, 한자어를 그대로 가져와 제목에 붙이면 어쩐지 딱딱한 느낌이 감돌지만, 그것을 우리말로 해석한 제목은 좀더 편안한 느낌이 있어 다가가기 쉬워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한편 노자와 장자의 관계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비유하는 것도 흥미롭다. 헤세는 책에 담긴 동양의 전반적인 생활 및 문화를 받아들이고 배울 점은 적용시켜야 된다고 이야기한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부분들도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헤세가 옮여 이야기하는 내용은 이전에 읽었던 책 내용임에도 더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헤세의 독서 비평을 읽어가면서 그의 다양한 생각들을 접할 수 있었고 독서, 특히 고전에 대한 흥미를 자극시켜 주어 참 좋았던 책이었다. 글을 읽으며 역시 헤세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책에 담긴 내용을 좀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식을 쌓고 공부할 필요성도 느끼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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