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라디오
이토 세이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영림카디널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상상하면 들린다, 상상 라디오


발상이 참 독특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상상을 통해 들을 수 있는 라디오.

그리고 그 라디오는, 죽은 이들이 들을 수 있는 라디오이기도 하다.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나서도 이런 저런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너무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서 이 리뷰에 온전히 옮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래도 하나하나, 열심히 정리해봐야겠다.


책은 총 다섯 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상상 라디오에 대한 소개가 이뤄지고 이어 사연들이 소개되는 제1장 죽은 자의 목소리.

귀에 이상이 생긴 이후 나무 꼭대기에서 라디오 방송을 하는 이야기를 들은 소설가의 이야기인 제2장 귀를 기울이면.

다시 DJ 아크가 진행하는 상상라디오로 돌아와, 새로운 사연들을 말하고 자신의 상황을 깨닫는 제3장 넋을 위로하며.

두 명의 대화로 이루어진 이야기, 제4장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

상상 라디오의 마지막 방송이 흐르는, 제5장 구원의 노래.

상상 라디오 방송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들이 교차되면서 등장하는 구성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슬프지만 슬프지 않다는 것이다.

소설 속 배경은 후쿠시마 대지진이 일어난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고통받았다.

특히 중심 소재인 '상상 라디오'는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상으로 듣는 방송이다.

때문에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밝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건 DJ 아크의 진행이 활기차기도 하고, 또 그의 방송을 듣는 청취자들도 우울한 상황을 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언뜻언뜻 보이는 안타까운 내용들이 더 강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과거의 이야기를 한가득 쏟아놓으며 추억하는 그들의 모습이, 조금 아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귀에 이상이 생긴 소설가의 이야기에서는, '상상 라디오'에 대한 논쟁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입장과, 살아있는 사람을 제일로 하고 그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

둘 모두 일리가 있는 의견들이라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던 것 같다.

저자는 그 중,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입장에 좀더 비중을 싣고 있다.

이후 4장에서 두 명의 대화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제목을 읽지 않았다면 전혀 짐작하지 못했을 것 같다.

평범한 연인의 대화일 것 같았는데, 알고보니 생사의 경계에 놓여있던 것이었다.

죽은 이와의 소통을 실제로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상상 라디오' DJ 아크와 연결되어 간다.


책 뒤편의 소개에서 책 속의 '후쿠시마 대지진'과 비슷한 내용으로 '세월호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3장을 읽으면서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잠자던 공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남자, 어두컴컴한 물에 갇혀 있는 여자.

그들은 그래도 '상상 라디오'를 통해 연결되었다. 다행이다.

그런 상황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차가운 바닷속에서도 상상 라디오가 흐르고 있을까? 그럴 것이다. 상상한다면.


DJ 아크는 마지막 방송을 하며 이야기한다.

자신은 방송을 그만두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서 방송을 이어갈 것이라고.

그러니까 계속해서 들어달라고.

죽은 이들의 슬픔을 듣고, 서로 위로하고, 결국 치유할 수 있는 것.

소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벗어나 이뤄지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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