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탄생 - 책은 어떻게 지식의 혁명과 사상의 전파를 이끌었는가
뤼시앵 페브르 & 앙리 장 마르탱 지음, 강주헌.배영란 옮김 / 돌베개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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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등장이 가져온 변화들, 책의 탄생


이 책을 보는 순간 꽤 많은 분량을 과연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다른 책의 두배 정도는 되어보이는 아주 두꺼운 책.

그러나 무엇보다 '책'과 관련된 책이니 끝까지 읽고야 말겠다고 생각하며 주말을 온전히 투자해서라도 읽어가기로 결심했다. 물론 이 결심의 배경에는 표지의 고풍스런 문양에 반한 것과 이런 책도 읽는다는 일종의 허영심 비슷한 감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이런 책을 읽는데 학술적인 이유같은 게 없을 때가 더 많지 않은가. 때로는 이런 사소하고 황당한 이유에서 좋은 책을 읽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들어가며'라는 부분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지식의 양이 몰려온다. 우리가 현대에 '책'이라고 부르는 '인쇄본 책'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인쇄 이전 책을 만드는 방법이었던 '필사'가 페시아 시스템과 같이 분업을 통해 전문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각자의 역할이 분명했기에 필사는 대량 생산도 가능했다. 즉,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리 비싸거나 힘든 작업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구축된 필사 시스템과 필경사들은 후에 인쇄기술이 발명되고 인쇄본 책이 등장한 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의 작업이 인쇄 작업의 발판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살펴본 것은 책의 원료가 되는 종이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부분을 읽으면서 종이를 만드는 제지산업에 대해 얼마나 막연하게 알고 있었는지 느끼게 되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처음 종이의 원료는 헌옷(넝마)였다는 것. 우리가 쓰는 종이가 처음에는 헝겊이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제지용 넝마가 따로 존재했으며, 그 넝마를 이용해 종이를 제작하는 과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넝마가 종이 제작의 가장 중요한 원료였기 때문에 제지소는 넝마를 구하기 쉬웠던 도시 근처에 위치했었고, 넝마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했다고 했다. 제지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한 14c~19c를 배경으로 한 책을 읽을 때 종종 볼 수 있었던 '넝마주이'가 제지 산업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직업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제지업자가 종이를 만들 때 자신이 제작했음을 나타내기 위해 투명 로고를 새겨 종이를 제작했다는 것도 눈길이 갔다. 자신만의 특색을 담은 로고디자인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종이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인쇄술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금속 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에 앞서 목판 인쇄를 소개하고, '인쇄술의 발견'에서 금속을 이용해 만든 활판 인쇄술을 다루고 있다.  먼저 서양의 인쇄기술을 설명하고, 동양의 인쇄기술을 언급한다. 특히 금속 활자에 대한 이야기에서 한국도 등장해서 더 흥미로웠던 부분이었다. 프랑스의 학자들이 지은 책인데 거기서 한국도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좋았다. 서양과 동양의 인쇄작업을 주도하는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인쇄가 발전했다는 점을 알아갈 수 있었다.


이어진 '책의 외형'이라는 챕터에서는 이미지적인 부분들을 생각하게 했다. 이전의 필사본과는 달리 인쇄본만의 특징을 가지게 된 이유들이 소개되었다. 처음에 여러가지가 혼재했던 서체들은 점차 4가지의 대표 서체로 굳어갔는데, 로툰다체, 대전문자체라고도 불리는 고딕체, 미사경본 문자체인 텍스투라체, '바타르' 고딕체, 안티쿠아 문자로 미래의 로마체가 되는 리테라 안티쿠아였다. 또한 제지업자가 자신들의 로고를 만들어 종이에 넣었던 것처럼, 인쇄업자들도 자신들만의 로고를 만들기 시작했고, 인쇄할 때 삽화도 만들어 인쇄하기 시작해 책은 점차 이미지적으로 볼거리를 담아가기 시작했다.


상품으로서의 '책'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었다. 인쇄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전보다 많은 책들이 빠르게 퍼져나가기 시작했지만, 인쇄를 하는데는 돈이 필요했다. 때문에 원가와 재정조달에 대한 우려가 항상 존재했다. 인쇄를 많이 해도 팔지 못하면 결국 손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안정적으로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금출자자로 공공권력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소개한다.


산업 발달에 따라 '출판 길드'도 등장했다. 출판 길드와 관련해 몇 가지 직업군에 대해 언급된다. 먼저 '활판 인쇄공'이라는 새로운 직업의 등장이다. 그들은 수공업자이면서 지식인이라는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다. 인쇄를 할 때 글이 틀리더라도 알아채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라틴어를 배웠고, 인쇄하는 책을 읽으며 새로운 사상에 정통하고 논리를 중시했다. 때문에 그들은 점차 불합리한 근무환경에 반발하며 길드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직인과 장인이라는 직업적 위치에 따른 갈등이 있기도 했다. 이러한 갈등들을 해결하기 위해 길드와 국가권력이 개입하기도 했다.

이 부분에서는 저자와 저작권 문제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었다. 선인세라던가, 저작권문제는 처음에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때문에 저자들은 자신의 작품이 아무리 유명해져도 그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인세 등과 같은 것에 대해 선도적 역할을 했던 것이 영국이었다. 1710년 새로운 법령이 공표되어 '저작권'copyright 소유가 서적상이 아닌 저자에게 가면서 저자의 권리가 보장되기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인쇄술이라는 새로운 기술과 그 기술을 담은 책을 가지고 인쇄업자들은 곳곳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초기 인쇄술 지원은 성직자들이 주로 했으나, 도서관에 책을 수용하는 양이 한계에 다다르고 인쇄되는 책의 내용 또한 종교적인 내용 외에 다양한 내용을 담게 되면서 인쇄업자들은 안정적인 고객층 확보를 위해 다양한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쇄술이 서유럽 및 남유럽권에서 동유럽권, 아시아권, 신대륙(아메리카)에서 어떤 식으로 전파되었는지 소개하고 있었다.


책을 사고 파는 매매에 관한 문제도 여러가지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운송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책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보니 이동할 때 어려움이 많았다. 제본방식도 발전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운송시 특히 신경을 써야했다. 젖거나 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다양한 책을 매매하는 박람회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인쇄업이 발달한 도시에서 주로 도서 박람회가 열렸다. 리옹, 메디나 델 캄포, 프랑크푸르트, 라이프치히 박람회들이 있었다. 박람회에서는 새롭게 출간한 서지목록들을 만들어 새로운 작품들이 뭐가 나왔는지 알아가도록 할 수 있었다. 책을 매매할 때 대금 결제방식도 좀더 간편하고 손해를 최소화 하는 방법으로 변화해갔으며, 박람회에서 시작된 서지목록 출간과 중고책 거래, 방문판매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점차 국가적으로 인쇄 및 출판업에 대한 규제, 특히 '윤허권'이라는 것이 생겨나며 무단복제를 못하게 되고 검열 및 금서에 대한 부분들이 강화되면서 어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밖에 책이 가져온 변화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자국어 체계의 확립에 인쇄본 책이 기여했다는 점이었다. 원래 대표적인 언어로 쓰였던 라틴어는 자국어를 사용한 인쇄본 책의 널리 보급되면서 점차 역사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좀더 많은 대중이 사서 읽게 하기 위해 자국어 번역본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자국어의 발달을 가져온 것이다. 한편 말이 글로 남게 되면서, 점차 제각각이었던 철자법도 하나의 표준어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루터의 언어를 들 수 있는데, 루터가 쓴 언어가 독일어의 표준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많은 내용을 썼지만, 이 책에 담겨있던 변화 내용을 여기 리뷰 글에 다 담지 못했다. 이 책 자체도 처음에는 2권 분량으로 제작될 예정이었다고 하니 담기지 못한 인쇄본 책으로 인한 사회경제사의 내용은 더 많이 존재할 것이다. 게다가 책 속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각각의 주제는 그 주제 자체만으로도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런 것을 보니 하나의 상품이 사회 속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 가까운 곳에서 느낄 수 있는 변화만 하더라도, 현대에 들어와 생긴 새로운 형식의 책인 '전자책'과, 국가가 출판 시장 경제를 어느 정도 통제하는 '도서정가제'로 인해 생겨난 변화들이 있다. 이것들은 인쇄본 책의 첫 등장과 국가 권력이 통제하면서 변화를 겪는 출판산업의 모습과 겹쳐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또 느끼는 것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 다른 듯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비슷한 과정을 여러번 거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도 결국은 조금씩 발전할 것이고, 결국 사회 전반에 놀라운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을까?

인쇄본 책이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한 권의 책을 집중적으로 탐독하던 독서습관에서 여러 권의 책을 읽는 독서습관으로 이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았다. 이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면 좋을 듯 한데, 자신의 책 『독서론』Librairie에서 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도 새로운 시대의 이상적 독자에 대해 기술하며, 다가오는 새 시대에는 불특정 다수의 책을 맛보는 형태로 독서가 이뤄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만일 어떤 책 한 권이 마음에 안 들 경우, 나는 다른 책을 집어든다.(……) 이런 종류의 연구에 있어(……) 온갖 저자의 책들을 구분 없이 훑어봐야 한다. 나는 서점을 자주 바꾸는 편이다.(……) 서점에 가면 이 책도 들춰봤다가 또 금세 저 책도 들춰보며, 순서 없이 무작정 이 책 저책 살펴보는 편이고, 파본 상태의 책들도 들춰 본다.` (p.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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