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있는 계절
이부키 유키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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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개가 함께 한 열여덟의 순간들, 『개가 있는 계절』

이번에 읽은 『개가 있는 계절』은 따스한 힐링과 추억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들은 졸업을 앞둔 열여덟 살 학생들과, 그들이 돌보는 하얀 개.
표지에서 보이는, 분홍빛 벚꽃 핀 배경 아래 함께하는 모습이 포근하다.
다른 시간대의, 같은 나이의 주인공들의 에피소드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 시절만의 풋풋한 청춘이 있음을 보여준다.

1988년(쇼와 63년)에서부터 2019년(레이와 원년)에 걸쳐 흘러가는 시간 속에 머물렀던 이야기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그대로 이어진다.
어느 고등학교에 우연히 찾아와 머무르게 된 새하얀 강아지 고시로.
학생들의 부탁으로 당시 교장의 허락하에 그는 '학교의 강아지'가 되었다.
강아지를 돌보는 학생들은 일지를 쓰게 되었고, 고시로는 자신을 돌보는 학생들의 반짝거리는 순간들을 바라본다.

"어딜 가든 뛰는 사람 위에는 나는 사람이 있어. 하지만 평범하든 아니든 내가 가진 걸 믿고 갈고닦아 나갈 수밖에 없잖아." (p.94)


첫번째 에피소드, 밀려오는 파도 소리.

주요 주인공은 고시로에게 이름을 물려주게 된 하야세와, 그와 함께하며 설렘을 느끼는 유카.

그들은 그들이 주인공이었던 첫 에피소드 이후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고시로가 학교에서 살게 되고, 미술부원들이 고시로를 돌보는 모임을 만들게 된다.

하야세는 미술부원 중에 가장 그림을 잘 그리는 학생으로, 미대를 지망하고 있었다.

한편 빵집 딸인 유카는 도쿄 진학 문제로 가족과 갈등을 겪게 된다.

유카의 입장에서 읽다보면, 차별하는 것이 느껴지는 가족들의 태도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그 차별에 어떤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니, 편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부모님, 조부모님이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른다.

그들이 가진 경험이 지금 하는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차별이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마냥 가시를 세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의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가족에 관한 생각도 하게 만든 에피소드.


두번째 에피소드, 세나와 달린 날.

전혀 연결고리가 없던 우등생 아이바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 사쓰키.

두 사람은 함께 엄청나게 인기를 끄는 F1 경기를 보러 가게 된다.

첫번째 이야기와 다르게, 청춘의 활기참과 불타오르는(?) 우정을 느낄 수 있던 에피소드.

기운이 나는 느낌이었다.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할머니는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들었나 싶어 나쓰코는 슬쩍 곁눈으로 보았다.

할머니의 이불이 가늘게 떨렸다. 그 모습에 놀라 황급히 일어났다.

할머니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내일은……, 정말로……, 모르는 기다." (p.188)


세번째 에피소드, 내일의 행방.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에피소드였다.

수험생인 나쓰코는 적당히 진학하려고 했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자연 재해가 일어나면서,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그녀의 삶은 바뀌게 된다.

갈 곳이 없어진 할머니를 모셔온 아버지.

그런데 재난 후유증으로 할머니는 거실에서 항상 TV와 불을 켜고 지내 가족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결국 내년이면 대학 진학으로 집을 떠날 나쓰코가 할머니와 한 방에서 지내기로 한다.

나쓰코가 듣던 음악에 대해 물은 할머니는, 'Tomorrow never knows', 즉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라는 이야기를 듣자 그 날의 트라우마를 털어놓는다.

직접 재난 상황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데, 살아남은 이들의 슬픔을 생각하게 되어 먹먹해졌다.

나쓰코는 할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기르던 개와 닮은 고시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집밖으로도 나오지 못하던 할머니는, 나쓰코의 졸업식에 와서 고시로와 셋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책 소개에서 이야기하던 '희망'을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읽으면서 해당 곡도 궁금해 검색해 들어봤는데, 가사도, 음도 좋다.

소설 덕분에 좋은 곡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필사적으로 공부해 앞으로 이 손을 바꿔나갈 것이다.

생명의 온기를 지키는 손으로.

내일의 행방은 이 손으로 붙잡을 것이다. (p.200~201)


네번째 에피소드, 스칼렛 여름.

첫 에피소드에 나왔던 인물들이 잠시 등장한다.

이번 이야기는 살짝 어두운 면도 있었지만, 꿈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이 있었다.

학교에서의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학교 밖에서 노래하고, 있을 곳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다섯번째 에피소드, 영원하게 만드는 방법.

어릴 적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 소년.

모교의 선생님이 되어 돌아오게 된 유카.

어느새 나이가 든 개 고시로.

그들이 죽음을 가까이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

뭐든지 영원한 건 없지만, 지금의 순간을 영원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이 에피소드에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 담겨 있는데, 따스한 내용이라 좋았다.


최종화, 개가 있는 계절.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학교에 유명한 작가가 된 하야세의 전시가 열린다.

그 전시에는 학교에 살았던 개, 고시로를 그린 그림이 있다.

앞선 이야기에서 나왔던 등장인물의 소식들이 언뜻 보이고, 어긋났던 인연이 다시 이어진다.


"잊은 걸 찾았구나."

네, 하고 하야세가 끄덕였다.

"이번에는 완벽하게요." (p.366)


고등학교에서 지낸 고시로와 그를 돌보던 고돌모 아이들의 긴 시간에 걸친 이야기.

시대는 모두 다르지만, 그들이 마주하는 고민, 서로 감정을 주고 받는 모습들은 비슷하다.

추억을 되살리면서도,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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