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
이디스 워튼 지음, 성소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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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 현상을 다룬 8개의 단편, 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


'이디스 워튼'이란 저자 이름을 보고 읽고 싶어진 책이었다. 다른 책에서 이름을 접한 적 있었다. 평소 취향과 많이 어긋나는 느낌이지만, 소개글을 읽다보니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던 『순수의 시대』를 쓴 작가. 그 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를 만났다. 출판사의 책 소개글을 읽다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무엇보다 '고딕 소설'이라는 분류에 끌렸다. '고딕 소설'이란 장르는 알고는 있지만 읽어본 적은 없었다. 단편집이라 첫 책으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디스 워튼은 병약했던 유년 시절을 겪고 평생 환각증세와 불면증으로 힘겨운 삶을 보냈다고 한다. 유령을 믿지는 않지만 환각 증세를 겪은 뒤 두려움이 생겼다. 『이디스 워튼의 환상 이야기』의 고딕 소설 단편들에, 그 두려움이 깊게 젖어 있다


"유령이 있긴 있는데, 아무도 그게 유령이라는 걸 모른다고?"

"글쎄, 어쨌든 나중에 가서야 안대."

"나중에 가서야?"

"한참…,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p.8, 시간이 흐른 후에야)


8편의 단편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첫번째 이야기, '시간이 흐른 후에야'다.

젊은 부부가 유령이 나온다는 집에 이사하게 된 후 겪게 된 서늘한 이야기.

처음에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유령의 존재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로 불안감을 심고,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가 '사건'이 발생한 뒤 결국 무너져내리는 결말이 강렬하다. '고딕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미지에 잘 맞다고 느껴진다. '집'이라는 공간적 소재가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의 중심에 놓여있는 점도 그렇다. 적당한 생략으로 독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기는 것도 서늘함을 더한다.


그녀는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절대 모를 것이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 집은 알고 있었다. (p.48,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아쉬운 점은 첫번째 이야기가 워낙 깊은 인상을 남겼기에 이어 읽게 된 다른 단편들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나마 일곱번째 이야기는 유령보다 추리물에 가까운 소재인 듯해 흥미가 있었지만, 나머지 단편들은 대부분 끌리지 않았다. 그건 항상 권선징악의 결말은 아니라는 이유도 있었는데, 이 요소는 '꺼림칙한 기분'을 남겨 유령이 떠도는 듯한 분위기를 더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정확히 말해 그 집이 그렇게 우울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를 우울감이 나를 덮쳤다. (p.77, 하녀를 부르는 종소리)


단편이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속사정이 생략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에서 언급된 내용으로 충분히 짐작이 가능한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독자가 짐작하는 내용은 어디까지가 작가가 의도했던 부분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파고들고 파고들다 보면 상상력을 발휘해 더욱 서늘한 설정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행동, 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독자의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이야기 속에 감도는 불안감은 더욱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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