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장면 소설, 향
김엄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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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섞인 기억 속을 부유하다, 겨울장면


『겨울장면』은 난해하고, 모호한 느낌이라는 소개에 읽어보고 싶었던 소설이다.

가끔은 멍-한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읽어도 괜찮을 것 같은 책을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원래 복잡한 책이라면,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뒤죽박죽. 기억이 뒤섞인 R의 이야기였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친 R. 죽은 회사동료 L을 매개로 떠올리는 회사에서의 일. 다소 겉도는 아내와의 대화.

사람들이 목적을 가지고 찾아가는 호수의 이야기.

R은 이곳 저곳을 떠돈다. 사람에 대한 기억. 장소에 대한 기억이 뒤섞인다.


R은 그걸 모르겠다.

저게 원래 저 자리에 있던 것인가. (p.16)


모르겠다. 알지 못했다.

이런 문장이 반복되곤 한다.

그건 독자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이야기하던 부분이 뒤에서 다시 이어진다. 비슷한 듯 다른 내용이다.

존재했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인물들.

기억은 왜곡된다고도 하던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R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환상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모르겠다. 알지 못했다.


마음을, 그 누구의 것, 자기의 것도 그는 알지 못했다.

마음은 단순히 기억이 아니고,

기억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기억은 모든 것이다.

모든,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R은 생각했다. (p.75)


뒤섞인 기억의 파편들을 읽어가는 것이 마냥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난해하고 모호한 글이 쭉 길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장면, 장면으로 끊겨있기 때문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기억은 그런 식으로 유지된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길게 이어지는 기억이 아니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 장면으로 남아있다.

그 끊긴 장면들을 엮어서 하나의 기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장면의 파편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의미도 없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는. 모든 것.

읽을수록 책 자체가 기억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R의 머릿속에 담긴 기억들 사이를 부유하며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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