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브레스 - 당신은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미나미 교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조용한 일상 속에서 평온하게 마무리할 수 있기를, 사일런트 브레스


"미토 군, 의사에는 두 부류가 있어. 알아?"

오코치 교수의 수수께끼 같은 질문이 또 시작되었다.

"치료할 줄 아는 의사와 치료할 줄 모르는 의사인가요?"

"아냐."

교수는 냉큼 부정했다.

"죽는 환자에게 관심이 있는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야." (p.287)


사일런트 브레스. 직역하면 '조용한 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조용한 일상 속에서 평온한 종말기를 맞는 것을 표현해 본 말'이라고 작품에 앞서 그 뜻을 적어두었다.

『사일런트 브레스: 당신은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까?』는 죽음을 선고받은 환자들을 마지막으로 담당하게 된 의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 이상 병원에서 진행하는 치료활동이 도움이 되지 않을 상황에 이른 환자들. 집에서 평온한 마지막을 맞기 위해 재택 방문 치료를 선택한 이들. 그 사연들을 하나씩 풀어낸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의사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애초에 병을 못 고치는 의사에게 존재 가치가 있기나 할까. (p.49)


대학 병원에 근무하던 주인공 린코는 계열 병원인 '무사시 방문클리닉'으로 소속을 옮기게 된다. 그곳은 병원이라기보다는 작은 진료소에 가까운 곳. 재택의료에 집중하는 곳이다. 자신이 원했다기보다는 거의 떠밀리듯 옮겨간 새로운 직장에서, 린코는 지금까지 진료하던 환자들과는 전혀 다른 환자들을 마주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선연히 보이는 환자들.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환자들.


"평화로운 치료만 하다 보면 말이지,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잊기가 쉬워. 하지만 낫지 않는 환자를 외면해선 안 돼.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죽으니까." (p.56)


의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직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정해진 수명을 억지로 늘일 수 없다. 억지로 숨만 이어가는 연명치료를 하기보다 차라리 인간다움을 유지한 채 마무리를 짓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모든 병이 정복된 것은 아니다. 무한한 생명은 아직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읽어본 병원, 의사 관련 작품들과는 약간 다른 결이 느껴져 신기했다. 아직 갈 때가 아닌 생명을 살리기 위한 사투, 끝없는 노력과는 반대되는 분위기. 차분하다. 끝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정리하는 이들과 그들이 마무리를 잘 하고 갈 수 있도록 적절한 양의 조치를 취하는 의사의 모습.

주인공이 일터를 옮기기까지 그런 모습을 알지 못한 것처럼,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생각치 못했던 장면들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아야코는 '죽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인생의 마지막을 '살기 위해' 돌아왔던 것이라고 린코는 생각했다. (p.86)


총 여섯 에피소드가 있고, 각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이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환자들을 마주한다.

'정신적 고통'에서는 저널리스트 지모리 아야코로, 말기 유방암 환자였다. 그녀는 첫만남부터 자신이 '죽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며 건강에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녀가 떠난 후에 남겨진 부분을 통해 그녀의 진짜 마음을 어느정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이노반'에서는 22세의 근디스트로피 환자로 서서히 근육이 쇠퇴하는 질병을 앓는 아마노 다모쓰가 나온다. 그는 아야코와는 전혀 다른 성격과 행동을 보여준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밝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결말은 안타깝고, 긴 여운을 준다.

'엠바밍'은 84세의 고가 후미에라는 여성과 가족의 이야기였다. 이 에피소드의 경우 환자의 가족간의 갈등에 대한 부분이 중점이 된다. 유산상속이나 연명치료를 시행할 것인가에 관한 갈등이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앞두고 고민하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다룬 에피소드였다.

'케샨병'은 산속에서 발견된 아이 다카오 하나코의 이야기였다. 말을 하지 못하고 보행 장애와 심근증 증상을 보이는 소녀는 비밀을 품고 있었다.

'장기생존자'는 주인공의 스승이기도 했던 의대의 명예교수 곤도의 이야기였다. 그는 현역에 있을 때는 적극적인 치료를 지향했고 그만큼 실력도 있었기에 존경받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췌장암 말기임을 알게 되자 치료를 거부하고 집에서 마지막을 지내는 걸 선택한다. 그런 그가 외출해서 여러 사람들을 찾아간다. 알고보니 그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존재했다.


"미토 군, 다시 한 번 말해 두지. 죽음은 패배가 아니야. 평온하게 보내드리지 못하는 거야말로 우리의 패배지." (p.364)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아버지를 재택에서 간병하기로 결정한다.

소설 초반부터 주인공의 아버지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었다. 주인공 린코는 여러 환자들을 만나면서, 단순히 삶을 이어나가는 것보다, 스스로 원하는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아버지가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선고를 받게 되자, 재택 간병이라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고, 평온하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이 마지막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주인공이 성장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죽음을 앞둔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만큼,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에 대해 깊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부제인 '당신은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까?'라는 물음에 나는 어떤 답을 낼 수 있을까. 어떤 답을 내고 싶은 걸까.

띠지에 적힌 이 책의 출간 비화에 따르면, 저자는 의사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자 독학으로 의학을 공부하다 재미를 느껴 33세에 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졸업 후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고, 40대에 연수의 생활을 보내며 소설 습작까지 했다. 그렇게 55세에 비로소 이 책, 『사일런트 브레스』로 작가 데뷔를 한 것이다. 전문적인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삶을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 노력들이 이야기 속에 담겨 있기에 진지함이 배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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