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코나
아키타 요시노부 지음, 마타요시 그림, 김동주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특별한 체질을 가진 소녀와 세계, 하루코나

 

책을 두른 띠지를 보면, <하루코나>는 1000만 부 판매 기록을 세운 <마술사 오펜>의 저자 아키타 요시노부가 쓴 책이라고 한다.

<마술사 오펜>이 어떤 책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 사실이 독서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표지 그림은 약간 수채화 느낌이 있는 청순한 소녀의 이미지이다.

SF소설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생각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루코나>의 여주인공은 '하루코'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였다.

하루코는 특별한 체질을 갖고 있는데, 그건 '대항 꽃가루 체질'이라는 것이다.

그녀에게 바깥 공기는 유독물질이기 때문에, 외출 할 때는 항상 조금의 틈새도 허용하지 않는 방호수트를 입어야 한다.

당연히 불편하다.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따로 통신을 해야 할 정도로 두꺼우니까.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외출을 하는 것은, 그녀와 같은 '대항 꽃가루 체질자'는 주변의 공기를 정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거리에 나오면 꽃가루 알러지는 겪을 일이 없다.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의 외출 여부에 주목하며 바깥 활동을 한다.

꽃가루 알러지를 겪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일테니 환영할 법 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항 꽃가루 체질자'는 혼자 외출하기 힘들기 때문에 안내인이 붙는데, 자연히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어릴 적 하루코가 옆집으로 이사오면서 그녀의 안내자가 되었다.

 

처음 봤던 그 순간부터 하루코는 아름다웠다. 하루코도 나도 아직 어렸지만, 처음 보자마자 자신들만 이 세계에 없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하루코였다. 이 거리를, 그리고 언젠가 세계를 지배하고 나의 것이 될 하루코였다. (p.13)

 

첫만남을 묘사한 부분. 하루코의 모습은 표지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되지 않을까.

순수한 애정이 느껴지는 묘사였다. 맑고 투명한 감정.

하지만 평범하게 흐르던 일상의 행복을 어지럽히는 일이 발생한다.

공공 개선 기구, 일명 '개선'이라 불리는 단체의 꽃가루 대책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하루코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지나가는 길에 장애물을 놓아 사고가 일어날 뻔 하거나, 하루코와 나를 향해 화살을 쏘는 일이 생겼다.

두 사람이 다니는 학교 근처에서 비난의 말을 쏟아내는 시위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지는 것 같지 않다.

급기야 학교 친구들이 나서서 직접적인 대응을 시도하는 사태에 이른다.

 

연애 요소는 잘 모르겠다.

남녀 주인공 사이에 교류의 느낌이 적다고 생각했다.

그건 여주인공이 입은 방호 수트 때문일까?

이 소설이 1인칭 시점이어서인지,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하루코의 반응이 무덤덤하게 그려진다고 느꼈다.

감정도 방호 수트 안에 봉인해 버린 것처럼.

그녀의 세계는 오직 방호 수트 안에서만 기능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결말 부분을 보면 이 생각이 더욱 굳건해진다.

이렇게 감정적인 요소가 연약해서, 다른 강렬한 소재에 쉽게 시선을 빼앗기게 된 것 같다.

 

"글쎄다. 알레르기 같은 거야. 분노라는 것은 알레르기야. 화를 내는 놈은 본질을 생각하지 않아. 단순한 병인 거지. 하지만 위독하고 발병하면 벗어날 수 없어." (p.230~231)


하루코를 두고 대립이 커지며 두 세력간에 충돌하는 내용이 나온다.

"없애버려! 없애버려!"라는 대사가 한가득 쏟아진다.

화자는 그 분노 섞인 외침들이 마치 '꽃가루 알레르기'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생각은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귀족'이라는 별명을 지닌 인물도 이야기한다.

'알레르기'라는 요소가 '분노'라는 감정과 연결되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SF소설이라고 해서 과학적인 요소가 가득 담긴 책을 생각했는데, '인간의 감정'이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되는 점이 좋았다.

 

<하루코나>는 하루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만, 하루코에 대해 공감하면서 읽기는 어려웠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하루코의 감정을 잘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코에게 공감을 하기 어렵다는 점은 그녀와 거리를 두게 만들었고, 책 속에 등장하는 남녀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약간의 씁쓸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대항 꽃가루 체질자'를 비난하는 인물들이나, 하루코에 대한 위협을 차단하려는 인물들이나 결국 자신들의 관점에서 그녀를 도구적으로 판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녀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런 자연 환경에 피해가 간다는 주장, 그녀가 있어야 꽃가루 알레르기 걱정 없이 쾌적한 바깥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속내. 그들은 하루코의 감정이나 의견을 고려하겠다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을 비판하게 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하루코를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씁쓸함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하루코의 방호수트 안 그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안내자인 '나' 뿐일 수밖에 없는게 아닐까. 독자를 포함해서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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