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의 선택 1~3 세트 - 전3권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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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까지도 인류 역사상 최고의 군사 전문가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로마의 가이우스 마리우스로 첫 장을 연 "마스터즈 오브 로마; 로마의 일인자'들의 이야기는, 술라의 역사적인 로마 침공과 더불어 로마 공화정의 종장을 향해 치닫는다.

로마 공화정은 옥타비아누스가 황제의 자리에 오름과 함께 막을 내리지만, 사가史家에 따라 그보다 이전, 카이사르의 독재관 등극이나 술라의 로마 침공을 공화정 종장의 첫 문장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이는 로마의 공화정이라는 시스템이 실재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가? 라는 의문과 맥을 함께 하는데, 이 작품의 저자인 콜린 매컬로는 이 거대한 이야기의 첫 주인공을 가이우스 마리우스로 점찍은 것으로 보아, 그의 독재관 등극을 그 시점으로 본 것 같다.


지난 2부까지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세상이 펼쳐지고, 술라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이 그려졌다면, 3부에서는 술라의 로마에 대해 상세하게 그려진다. 사실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독재관으로 집권하는 동안 로마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워야 했다. 사실상 그는 로마의 통치에 신경 쓸 겨를이 별로 없었다. 

때문에 술라가 법제들을 재정비하고, 원로원을 장악하고, 도시를 재건하는 장면들로 시작하는 3부 '포르투나의 선택' 은 전 권들보다 훨씬 더 흥미로웠다.

특히 많은 로마 역사 '덕후' 들이 신처럼 사랑하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저자의 애정도 느낄 수 있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등장하는 부분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쩌면 그 사랑의 근원이 콜린 매컬로에서부터 시작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음이 문장마다 충실히 느껴진다.

어떤 인물이라도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1부 1권부터 등장하며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살살 긁던 얄미운 새끼 똥돼지 메텔루스 피우스가 끝끝내 살아남아 노련한 전략으로 그간의 모든 평을 뒤엎을만한 대 활약을 펼치는 부분에서는 나 역시 메텔루스 피우스에게 꽤나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살짝 놀라기도 했다. 

사실, 1부 1권부터 꾸준히 등장했던, 장수한 인물들에게는 대부분 알게 모르게 애정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술라는 물론이고, 그의 오랜 연인 메트로비오스, 카이사르의 어머니이자 술라의 오랜 여사친 아우렐리아, 카이사르의 고모뻘이자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아내인 율리아, 카이사르에겐 외종조부이자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오랜 친구였던 루푸스까지.(심지어 루푸스는 장수하고 또 장수해서 카이사르와 재회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포르투나의 선택' 이 이전의 작품들보다 놀라웠던 것은 전투에 대한 묘사였다.

보병과 기병의 전략, 전술적 효용과 편제는 물론이고 지형, 지물에 따른 논리적 군사배치(진형), 역할, 상성 등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대의 전투를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군인들이 서로 부딪히는 전선의 상황 뿐 아니라 보급품 확보와 보급로 구성 등 그 배후의 이야기들까지 상세하게 그려내면서 실제 로마 군대의 군인들이 어떻게 전쟁을 치뤘을지 완벽하게 그려낸다!!!

물론 사료가 있긴 했겠지만, 사료와 고대의 지도, 현재의 지형만 보고 수백, 수천, 수만의 장병들이 대오를 이루고 캠프를 구축하는 장면을 상상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 반도의 남, 북부의 산맥들과 동방의(서아시아) 고원과 황무지까지 수많은 군인들이 보급을 조달하고 전략을 세우고 전투를 치르는 장면들이 정말 리얼하게 펼쳐지는데,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카이사르는 가까스로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씌워놓은 유피테르 대신관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동방의 전쟁에 참여하며 차근차근 업적을 세운다. 카이사르는 가이우스 마리우스나 술라에 비하면 혈통 하나만큼은 의심할 수 없는 존재였다. 로마에서 가장 오래 된 파트리키 가문 태생으로 적당히 주어진 의무만 다하면 에스컬레이터처럼 권력의 최상층까지 차근차근 올라갈 수 있었다. 완벽한 혈통에, 뛰어난 지능, 거기에 매력적인 외모까지 갖춘 카이사르를, 그래서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유피테르 대신관이라는 굴레를 씌워 영원히 봉인하려 했던 것이었다. 

 평생 제사나 주관하며 살 뻔 했던 카이사르는 어머니 아우렐리아의 뛰어난 기지 덕분에 집정관을 향한 에스컬레이터에 무사히 탑승할 수 있었고, 전장을 찾아다니며 군적을 쌓는다. 자신의 재능을 활짝 꽃피우며 활약한 결과 동료 병사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냈을 때 수여되는 '시민관' 을 일찌감치 획득하면서 이른 나이에 원로원에 입성하게 된다. 로마는 처음부터 군사 영웅에게 호의적인 시스템이었는데, 술라에 의해 더욱 공고해지게 된 덕이었다.

 로마로 복귀한 후에는 뛰어난 웅변을 바탕으로 뛰어난 변호인으로 자리잡는다. 당대 최고의 웅변가인 키케로와는 다른 방식의 웅변으로 시민들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카이사르는 어머니인 아우렐리아 덕에 로마 최하층민들이 사는 수부라 지구에서 살아왔기에 최고의 혈통에도 불구하고 최하층민들까지 살피는 안목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엄청나게 사랑받는 인물이었다.  

완벽한 혈통에 뛰어난 지능, 매력적인 외모에 이제는 떡갈나무 잎으로 만들어진 관까지 쓰며 원로원에 입성하며 시민들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그런 그를 우러르는 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에게 뒤따르는 칭송만큼 많은 질시와 견제를 받아야 했다.

이미 청소년기 때 부터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받았듯이. 


한편, 카이사르가 차근차근 성장할 무렵, 로마는 가이우스 마리우스 이후 최고의 권력자였던 술라가 천명을 다한다. 

자신이 공언한대로 일정 임기를 마친 뒤 종신 독재관에서 내려온 그의 뒤를 이어 폼페이우스가 두각을 드러낸다. 세르토리우스와의 일전에서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긴 했지만, 메텔루스피우스로 인해 큰 깨우침을 얻고 한단계 성장한 그는 해적들을 소탕하고 동방을 정벌하며 그야말로 로마의 일인자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로마 최고의 거부 크라수스 역시 자신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고 있었다. 

매사에 잇속이 밝은 크라수스는 카이사르가 장래에 얼마나 높은 인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었고, 카이사르 역시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지만, 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돈벌이에 골몰하는 크라수스라는 인물을 흥미롭게 여기고 있었다.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서 한번 마주친다.

나는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가 힘을 합쳐 스파르타쿠스의 세력을 물리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콜린 맥컬로가 알려준 실상은 약간 달랐다. 크라수스가 다 차려놓은 밥상을 폼페이우스가 낼름 받아간 느낌이랄까.ㅋㅋ 크라수스는 누가 공을 세우든 상관 없는 사람이었기에 재빨리 손익을 따져 손해보기 전에 알아서 적당히 빠져나갔다. 


'포르투나의 선택' 에서는 위에 언급했듯 전쟁에 대한 묘사도 대단하지만,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조율하는 카이사르의 처세술이 무엇보다 돋보였다.

카이사르는 원대한 야망을 갖고 있었지만, 아직 미미한 세력이었다.

폼페이우스는 어마어마한 재산과 공적을 바탕으로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가이우스 마리우스처럼 변방 출신에 혈통도 조금 떨어졌다. 그는 자신의 출신과 혈통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고, 그 때문에 로마 중심의 원로원 정치를 혐오했다. 그 혐오가 그의 최대 단점이었다.

크라수스는 로마 최대의 거부였지만, 정치 세력이 전혀 없었고, 정치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 그의 권력은 오로지 돈에서 나왔고, 카이사르는 어마어마한 빚에 쪼들리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오가며 여러 정치 공작을 펼치는데, 엄밀히 따지면 로마 공화정도 일종의 대의 민주주의와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기에, 원로원에서 벌어지는 여러 정치 공작들이 아주 낯설지는 않았다.

그 정점은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가 함께 집정관에 오르게 하는 장면인데, 진짜 엄청 재미있다. ㅋㅋㅋ

카이사르가 어떤 방식으로 서로 끔찍하게 싫어하는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손을 잡게 만들고, 두 힘의 균형을 절묘하게 이뤄가는지 그야말로 기가 차다!!! 

꼭 책으로 확인하시길~! 


참고로, 4부 [카이사르의 여자들] 은 이러한 균형 외교(?), 처세의 정점을 보여준다.

삼두연합이 이렇게 탄생했구나, 싶은!!!  

참고로 4부는 책도 더 얇고, 재밌기는 훨씬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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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서의 꿈 십이국기 7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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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후유미가 창조한 십이국기의 세계관은 지독할 정도로 불합리하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며, 불완전하다.

이른바, '살아있는 신' 들이 존재하는 세상임에도 지독하게 불합리하고, 때문에 지독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십이국기'의 세계관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다.

이것은 세계관이 가지고 있는 불합리성과는 개별적으로 작가가 확실하게 완성시킨 세계관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 

십이국기는 한 세계관 안에서 꾸준하게 장편과 단편 타이틀이 출간되는데, 서사적으로 연결되는 타이틀이 있고 그렇지 않은 타이틀도 있다. 장편을 통해 국가관이나 리더론의 철학적, 논리적 빈약함과 전투에 있어서의 전략, 전술적 개념의 부재가 드러나고, 단편을 통해 서서히 보충된다.


조금 더 비약하자면, 초기에 설정한 세계관의 빈약함 때문에 뒤로 갈수록 철학과 논리를 그 안에 맞추려고 아등바등하는 느낌도 든다. 물론, 오노 후유미라는 작가가 지적인 작가이기 때문에 작품이 거듭될수록 세계관은 완성되어 가지만, 필연적으로 작품 안의 세계는 더욱 불합리해지고, 등장인물들의 삶은 괴로워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연약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전쟁에 관한 설정이다.

십이국기 세계관 안에서 '국가간의 전쟁'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타국에 대한 내정간섭조차 하지 않고, 그 국가가 무너져도 소극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할 뿐이다!!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세계관 안에서 전쟁의 개념은 축소되고, 군인이라는 존재는 기껏해야 요수를 사냥하는 일이 주 업무인 '사냥꾼'에 불과하게 된다. 

무관의 역할이 극히 미미해지며 세계관 내에서 무관이 이름을 떨칠 계기가 없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요수를 사냥하는 것으로 이름을 떨친다는 설정은 있을 수 없다. 외려 요수만을 사냥하는 직종군이 모여사는 그룹이 있고, 이런 인물들은 보통 사람들에겐 혐오직군으로 기피대상이며 봉산 근처에 자신들만의 부락을 만들어 모여산다.(※도남의 날개) 뛰어난 장수는 요수를 '사냥' 하지 않고, '제압' 해서 길들인다.(※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등) 

 

결국 십이국기 세계관의 군인들은 왕이 정치를 그르치면 나타나는 요수들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위군이란 의미이다. 이러한 방위군들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세력은 금군일터. 경국의 이야기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편제가 공개된 적이 있었는데, 타국이 침략할 리가 만무한 궁전 수비병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오로지 내란에 대비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즉, 타국과의 전쟁이 아니라, 자국민을 죽임으로써 역할을 다하는 금군이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지만, 십이국기 세계관 안에서는 세계가 뒤집히지 않는 이상 적국이 쳐들어 오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국가간의 전쟁이 없는 세계관이라면 상비군이 존재할 필요조차 없다.

실제로 상비군의 개념을 갖게 된 것도 로마 공화정 말기인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고안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대제국 로마도 상비군이 아니라 전쟁때마다 집정관의 명령에 의해 소집되는 비정규군으로 거대한 국가를 충분히 일으켰고, 저 강대한 게르만족의 위협이 이탈리아 전역을 침탈한 18세기 말엽이 되어서야 상비군의 개념이 자리잡혔다. 


국가간의 전쟁이 개념조차 없는 세계관 안에서, 게다가 '구름 위' 라는 천혜의 요새 안에 있는 궁전을 지키는 군사가 수천에 달한다는 설정은 솔직히 그 자체로 큰 오류이기도 하다.

심지어, 십이국기 세계관은 지독할 정도로 정체되어있기 때문에 시민의식이 발전할 계기가 없다. 지배층이 신에 의해 간택된 불멸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의 반란 따위는 꿈도 꾸기 어렵다. 설사 왕이 위왕이나 가왕이라 하더라도 아래로부터의 반란은 일어나지 않는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편은 가장 개연성이 떨어지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무관의 공적인 업무는 변방에서 요마, 요수들의 침입을 막는 역할일 것이고, 부수적으로 내란에 대비해 자국민들을 감시하는 것일 터다. 실제로 십이국기 세계관의 무관은 왕실 소속으로 지방 영주에게 파견되는 형태이다. 지방 영주는 사사로이 장수를 거느리거나 왕권 없이 군대를 소집할 수 없다.(※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하지만, 당연하게도 왕이 무너지면 장수는 어쩔 수 없이 그 지방 제후의 휘하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가장 강력한 내란의 불씨가 되는 것이다. 

그런 무관이 과연 왕과 함께 백성들을 다스리는 일반 관료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비슷한 직급에 올라갈 수 있을까? 

또 하나, 타국과의 전쟁이 없는 세계관에서 대인對人용 전술이 개발될 리는 만무하다. 개발 되었다면, 이 또한 자국민들의 반란을 대비한 것일 터다.  


이번 작품집에서 이러한 세계관의 설정을 다소 보완할 수 있는 개념이 하나 등장한다.

십이국기 세계는 국가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평화의 시기가 그리 길지 않았다" 는 점이다.

기린에 간택된 완벽한 왕도 치세가 20~30년에 그치고 만다는 설정이 이번 단편을 통해 등장한다. 

아무리 왕기가 있고, 천기까지 받아 불멸의 삶을 누리는 왕이 된다지만, 그렇다고 그가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니다.

선적에 오르지 못한 가족과 친지, 지인들이 수명을 다하고 내정이 안정되고 반복적인 일상이 시작되면 인간은 권태감에 빠져들고, 의식있는 관료들은 왕이 천기를 잃을 것을 대비하기 시작한다.

왕이 천기를 잃으면 요수와 요마들이 출몰할 것이고, 관료들은 봉토를 가진 봉건제후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영지를 지켜야 한다. 성을 지키는 상비군도 있겠지만, 왕기를 잃는 난세가 되면 그만으로는 부족할 것이기에 군벌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왕이 천기를 잃고 기린이 병들면 난세가 시작된다.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요수와 요마들이 출몰한다. 봉건제후들은 더이상 내정을 신경쓸 필요가 없기에 영지로 돌아가 영민들을 보호하는데 힘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주들은 자기의 안위만을 챙길 것이다. 대부분의 관료들은 이미 왕보다 훨씬 오래 삶을 누린 존재들일 것이고. 

다음 왕이 왕위에 오르면 난세동안 백성들을 보살핀 제후들을 치하하고 일부는 고위 관료로 임명할 것이다.

그 제후와 함께 한 군벌들 중 일부는 공직을 받고, 선적에 들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 배제된 관료들이 빈 자리를 메운다.

그 과정 중에 일어나는 혼란을 수습하는 것 역시, 왕의 책임. 

노회한 정치꾼들은 이 세계 안에도 분명 존재한다.

 

이번 작품집에서는 이렇게 십이국기 세계에서의 왕의 내정에 관한 단편들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신과 다름없는 왕. 하늘에 선택받은 왕.아무리 실정을 저지른다고 해도, 하늘이 선택했던 것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살아있는 신과 같은 왕. 이러한 왕에게 반기를 드는 과정과 그로 인한 파급효과,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들이 펼치는 정치와 내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슬몃슬몃 읽을 수 있어서 특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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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1
랜섬 릭스 지음, 카산드라 진 그림, 류이연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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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즐겨듣는 팟캐스트 중 '지대넓얕' 이라는 방송이 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의 줄임말인데, 최근 몇 년 간 팟캐스트 쪽에서는 방송 차트 상위권에 공고히 자리잡고 있는 방송이다.

"넓고 얕은 지식" 이라는 모토대로, 인문과 과학을 가리지 않고, 종교, 철학, 병리학, 화학, 미학, 역사는 물론 영화와 책까지 폭넓게 다루는 방송이다. 진행하는 네명의 패널들의 지식수준이 상당해서 듣다보면 눈의 뜨이고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느낌인데, 그 방송에서 얼마전 이 작품과 같은 제목의 책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내용만 듣고도 흥미가 동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영화 개봉 소식과 함께 그래픽 노블 버전의 동명의 작품이 나에게 왔다. 


이미 동명의 소설이 국내에 출간되어 있고, 화려한 시각효과로 장식된 영화까지 개봉하는 시점에 그래픽 노블이라... 

소설과 영화 사이에서 과연 손해를 입을지, 이득을 볼 지는 통계적으로 따져볼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안타깝게도 영화와 책 사이에서 큰 이득을 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관객은 한 컨텐츠를 다양한 매체로 접하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 성향이다. 그나마 최근들어 베스트셀러나 인기 웹툰이 영화나 드라마로 컨버전 되는 경향이 많긴 하지만, 실제로 크게 흥행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원작을 따라간다면 너무 따라갔다, 원작과 다른 궤를 좇으면 너무 다르다는 원성을 듣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컨텐츠의 각색은 많은 창작자들에게 강렬한 유혹이다.

개인적으로 대학시절, 스토리작법 시간에 가장 재미있게 했던 작업이 각색이었다.


지금은 슈퍼 히어로들의 활약 덕 마블과 DC의 그래픽 노블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불과 십수년전만 해도 그래픽 노블을 구경하기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만큼 어려웠다. 교보나 영풍문고의 외서코너에서 간신히 발견하더라도, 사실 상당히 읽기 어려웠다.

일본 망가의 영향을 받은 우리 만화와는 달리 글자가 빼곡하니 적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픽 노블' 은 독립된 하나의 카테고리로써 얇은 연재용 이슈들을 묶은 일종의 제책방식이기도 하지만, '소설에서 분화한 형태' 라는 태생적 정의이기도 하다. 

그래픽 내러티브만큼 텍스트 내러티브에 집중하고, 일본 망가와 우리 만화가 중요하게 여기는 컷과 컷 사이의 속도감 보다는 매 컷의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작품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그러한 그래픽 노블의 특징과 우리가 제작하고 소비하고 있는 만화의 특징을 잘 비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온전히 그림체만 보았을 때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그래픽 노블과는 상당한 차이가 보인다.

화려한 채색도 없고, 인물들의 마스크도 최근의 일본 만화에서 유행하는 미끈한 마스크들이 등장한다. 

컷의 완성도에 집중하기 보다는 컷과 컷 사이의 흐름, 내러티브에 집중한 느낌이 든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상한 아이들보다 새로 변할 수 있는 존재인 '임브린' 이 갖고 있는 '무한 루프' 라는 특별한 능력이다. 세상에는 이상한 아이들을 먹어 치우는 괴물 '할로우'가 존재하고, 할로우의 부하들인 인간의 형상을 한 '와이트' 들이 존재했다. 미스 페레그린과 같은 임브린들은 할로우와 와이트를 피해 세상 곳곳에 무한 루프의 공간을 만들어 이상한 아이들을 모아 숨어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 제이콥의 할아버지인 에이브 역시 그런 사람이었고, 제이콥 역시 에이브의 힘을 물려받은 터였다. 

제이콥은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무한 루프에 숨어있는 미스 페레그린을 만나게 되고, 이상한 아이들과 함께 목숨을 건 모험을 시작한다. 


이상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을 잡아먹는 할로우와 와이트들의 거대한 집단은 나치와 연관되어 있는 듯 한 떡밥을 던지기도 해서 긴 스토리의 시작점과 다름없는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아직 원작과 영화를 보지 못한 나에게 앞으로의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원작이 아마존에서 수십주간이나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사랑받았던 작품이기도 하고,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스토리 텔링이 참으로 흥미롭다. 아직 원작을 만나보지 못한 독자라면,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한번쯤 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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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 3 - 완결
꼬마비 지음, 재수 그림 / 애니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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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을 통해 이 작품이 연재되었을 때 참신한 기획에 박수를 쳤더랬다.

언제나 날카로운 통찰로 사회를 풍자하는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인 꼬마비 다운 기획이었달까. 

'모 베러 블루스' 이후 오랫동안 장편 만화 쪽에서 보기 힘들었던 재수 작가의 그림을 볼 수 있게 된 것도 좋았다. 요즘엔 페이스 북을 통한 활발한 드로잉 활동(?)이 눈에 띄지만, 역시 독자로서 긴 호흡의 만화를 보고 싶었다.

웹툰 '천적' 의 전반적인 감상은, 초반엔 신선한 기획에 참신함을 느껴서 재미있게 봤는데, 대결의 패턴이 반복되면서 뒤로 갈수록 단조로워지는 느낌이 강했다. 내용도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딱히 해결책이 없는, 상당히 괴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었기에 30화쯤 보다가 구독을 멈췄던 기억이 난다. 

단행본이 완결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찾아보게 되었는데, 어, 책으로 보니 지루함이 크게 줄어들었다.

웹툰으로 읽었던 내용들이긴 했지만, 1권 내용들도 제법 새롭게 느껴졌다.

특히, 스크롤이라는 습관적인 행동으로 인해 눈여겨 보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이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재미들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만화도 책으로 보는 것이 좋다. 한 페이지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한 컷에 오래 머물러도 되는.



일단 첫 장을 열면 귀여운 그림체의 고양이와 쥐 캐릭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름이 '갑순', '을동' 이다. 

특히 이 회색빛 오드아이 고양이는 내가 키우는 다얀이와 꼭 닮아서, 연재 초기에 애정을 갖고 지켜볼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웹툰상의 그림. 갑동이와 을순이. 애니북스판 책에서는 컷 배열 등과 폰트만 약간 달라졌다. 




갑동이와 을순이는 일종의 해설자와 아나운서로써 일상 생활 속에서 평범하게 마주친 인간 군상들의 '대결' 을 중계해주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네이버 엔스토어를 통해 무료로 볼 수도 있는 첫 에피소드만 간략히 소개해 보자면, 어둑어둑한 저녁, 아파트 단지에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나눠피며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떠드는 한 떼의 고교생들이 있다.

그들 앞에 70대의 아파트 단지의 경비아저씨가 한 분 등장한다. 

점유하고 있는 자들과 쫓아내야 하는 자. 

잘못하면 큰 사건으로 비화 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대결이 이제 막 시작되는 것이다. 

갑동이와 을순이는 이 사건을 중계하기 시작한다.

고교생들의 성향과 경비원의 성향, 경력, 나이등을 해설한다.

마치 축구 경기의 해설자처럼 팩트와 의견을 적절하게 섞어 맛깔나게 읊어준다.








 

개인적으로 '만화'는 그래픽 내러티브를 중시하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텍스트를 활용해서 서술하듯 상황 설명을 하는 방식을 높이 평가하지도 않고 그다지 선호하지도 않는데(비슷한 이유로 영화에서 도입부에 화면을 꽉 메운 자막이 나오는 작품은 높이 평가할 수 없다), 이 작품에서만큼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야 했다.

텍스트를 활용한 '해설'은 이 작품이 선택한 짧은 옴니버스식 구성 안에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갑동이와 을순이가 쏟아내는 수많은 텍스트들을 통해 대결의 주인공들에게 충분한 설정을 부여함으로써 캐릭터의 깊이가 더해지고 설득력이 생겨나는 것이다. 

또한, 해설자들에게도 충분한 드라마를 부여함으로써 비록 형식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을지라도 작품 안에 함께 녹여내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드러난다. '재미' 를 주기 위해 고민한 노력이 드러난다는 의미인데, 그것은 해설자들의 이름, 갑순, 을동, 병구, 정아에서부터 캐릭터화 한 동물들, 그 조합까지 모두 공들인 티가 역력하다.

특히 중요한 대결 뒤에는 카메라 오프 뒤의 스튜디오처럼 둘이 가공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씬이 등장하곤 하는데 이 부분들이야말로 작가가 직접적으로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때로는 작품 자체가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구성인데, 외려 해설자들의 드라마는 연속성이 있어서 색다른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갑순 + 을동



△갑순 + 병구




△병구 + 정아


    

결은 마치 토너먼트처럼 이어진다.

담배 피던 고등학생들을 몰아낸 아파트 단지의 경비 아저씨는 아파트 입주민과 부딪히게 되고, 그 아파트 입주민은 자신의 아내와, 또 그 아내는 아랫집에서 시끄럽다며 올라온 부부와, 게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아들과도 대결 구도를 펼치곤 한다.

이후 대결들은 끊임없이 이어져 구직자와 면접관, 회사원과 성매매 업소 여성, 월세 입주민과 집주인, 어른이 된 후 처지가 바뀐 고교 동창생들을 지나, 마트 캐셔와 손님이었던 이들이 백화점 직원과 손님으로 처지가 뒤 바뀌어 만나는 에피소드들까지 등장한다.

물론, 금수저와 초 금수저의 대결도 기다리고 있다. 



△챕터의 시작부에 이렇게 대진표가 등장하고,



△챕터의 마지막 장에는 승부 결과가 나타난다.


△허나 영원한 승자는 없는 법이라, 재대결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다른 환경, 상황 속에서.

영원한 갑과 영원한 을은 없듯이.



1,2권에서 비교적 우리 주위에서 보기 쉬운 일화들이 대결 구도로 펼쳐진다면, 3권은 조금 더 극단적인 상황의 군상들이 등장하는데, 작가의 주제 의식은 더욱 짙어지고, 직접적이 된다. 

무척 논쟁적인 주제들이 해설자와 아나운서의 노골적인 멘트를 통해 더더욱 논란을 부추기게 되고, 이러한 작가들의 의도는 독자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어 네이버 연재 당시 댓글의 내용들이 꽤나 무시무시했던 기억이 난다. 

풍자와 해학이 가득하지만, 작가의 주제의식은 무척이나 날카롭다.

꼬마비 작가야 '살인자ㅇ 난감' 'S라인' '미결' 로 이어지는 죽음 3부작을 통해 냉철한 통찰을 보여준 전례가 있고, 재수 작가 역시 '모 배러 블루스' 를 통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둘의 차이점이라면 희망에 대한 온도 차이일 것이다.

꼬마비 작가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따스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재수 작가의 그림은 작품을 지배하는 냉랭한 기류를 다소 완화시켜 준다. 꼬마비 작가의 죽음 3부작 역시 작화는 단순하고 귀여웠듯이, 불편한 내용을 다소 덜 불편하게 느끼게 하기 위한 장치로 작화를 무척 잘 이용한다는 인상이다.


웃는 얼굴로 명치를 쿡 쑤시는 살인마의 송곳처럼 두 작가가 그려내는 일상 생활 속의 대결은 치명적이기 짝이 없다.





△출판용어로 '도비라' 라고 부르는 챕터 나눔용 컷들은 이렇게 영화 포스터를 패러디 해서 쏠쏠한 즐거움을 준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 과 '혐오'는 '인권' 의 테두리를 가뿐히 넘어 '헬조선' 에 이르렀다.

어느 한 곳도 갑질과 혐오가 도사리지 않는 곳은 없고, 갑질과 혐오 안에서 인권은, 안전은 아무것도 아니다. 

작품의 말미에 작가는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분열로 인해 갑질과 혐오가 생겨났을까,

갑질로 인해 분열이 촉발되었을까?'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든, 분열과 갑질, 혐오는 모두 자웅동체처럼 붙어 있다. 

그들은 어디서든 아귀처럼 달려들어 '헬' 을 잉태한다.

확실한 것은, 우리 사회가 공동체 의식을 거의 모두 잃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기회만 생기면 자신보다 약한 자를 찾아내 쌓아왔던 모든 분노를 토해낸다. 마치 자신은 그래도 된다는 듯이, 이 사회가 응당 그래왔다는 듯이, 마치 우리 사회는 반상이 뚜렷한 조선이라는 듯이. 마치 자신은 결코 강자 앞에 설 일이 없다는 듯이 독하게 풀어낸다.

상대가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이고, 아들이며 딸이라는 점은 개의치 않는다.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 나의 아들과 딸들이 다른 어딘가에서 똑같은 취급을 받으리라는 사실은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모니터 뒤에 숨어 인터넷 사회로 들어가면 더욱 끔찍한 세상이 펼쳐진다. 

조각조각 분열되어 다른 조각을 비웃고, 욕하고, 때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오를 쏟아낸다. 

길고양이를 챙기는 사람들과, 길고양이를 챙기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과,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장애인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비장애인들과, 심지어 장애인들마저 등쳐먹는 비장애인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우리역사에 빨갱이들과, 꼴통보수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남자를 혐오하는 여자들과,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들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을까? 

많다고 느끼는 것이 단순히 체감의 문제 - 인터넷 등을 통한 노출이 많기 때문에 단순히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10년 쯤 전에도 이 정도였나, 싶다.

잠깐이었지만, 공생과 상생을 노래했고, 화합과 평화를 노래했던 적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그냥 내 착각이었을까?

지금은 어디서든 대결과 파괴만을 노래한다.


대화와 타협은 간데 없고, 시위와 물대포, 고소미가 난무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아직 문제를 인식하지 않고(못하고가 아님!)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위정자들만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아닌, 진짜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깔아 뭉개도 되는, 다수는 소수를 무시해도 되는, 강자는 약자를 억압해도 되는, 배운 자가 덜 배운 자를 모독해도 되는, 권력 있는 자가 권력 없는 자의 모든 것을 빼앗아도 되는.

그래서, 최선을 다해 자기의 자식들을 위로, 더 위로 올리려고 안달하는 그런 

지옥과도 같은 사회가 이미 되었음을.

그러니까, 저기 까마득히 높은 곳에 앉아 그런 말들만 하고 있는 것이겠지.


이 작품은 그러한 우리 사회의 특정한 한 부분을 깊은 통찰로 디테일하게 그려낸 책이다.

물론, 재미도 쏠쏠하게~! 

저~~~기 높으신 분들이 꼭 한번씩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아니다, 이 책 보고 진정한 갑질을 배우시려나.

하지만, 이 이야기도 결코 잊지 마시길.


'영원한 갑'은 없다는 사실.

당신들이 부린 갑질은 결국 언젠가 당신의 자식들이 똑같이 돌려 받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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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쇄를 찍자 4
마츠다 나오코 지음, 주원일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마, 고등학생 시절이었을 것이다.
교과목 선생님이었는지, 교생 선생님이었는지,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다. (이야기가 명확히 기억나는 것으로 보아 '여자' 교생 선생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세대도, 나이도 상대적으로 더 비슷했을테고, 남고였던 우리 학교엔 여선생님조차 한 분도 안 계시던 시기였기에, 여자 교생 선생님의 말씀이셨을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다!!!!! )
할튼, 그 때 쯤 들었다. 고2 땐가, 고3 땐가, 누구에겐가. 
칠판에 하얀 글씨가 기억나니까, 누군가는 했을거다.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니까, 일단 풀어보자면

'앞으로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의 갈등이 생길거다' 

는 내용이었다. (아니면 그냥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둘 만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내용은 이후로 수십년간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중이다. (수많은 윤색을 거치면서) 

'하고 싶은 일' 이 "희망" 이라면, '할 수 있는 일' 은 본인이 현재 가지고 있는 "능력" 혹은 "재능".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 이란 '지금 당장 선결해야 할 과제' 일 것이다.
이 세가지가 딱 맞아 떨어지기란, 차라리 로또에 당첨되기가 쉬워 보일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위대한 재능을 타고 났어도 운과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꽃피울 수 없다.
예전에 친한 형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다가 
"타케히코 이노우에가 50년 전 쯤 콩고에 태어났다고 생각해봐. 그가 그렇게 위대한 만화가가 될 수 있었겠어? " 
라고 말한 적 있다. 
베토벤, 모차르트가 조선에서 노예의 자손으로 태어났다면 그 재능이 발휘될 수 있었을까?
아마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만 하는 일' -새끼줄 꼬기 따위의- 만 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 시대에 비하면 현대 일본과 한국에서 태어난 만화가 지망생들은 차라리 나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더 심한 경쟁이 도사리고 있긴 하지만, 확률적으로 '하고 싶은 일' 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이니까. 

한 명의 작가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 을 너무 늦지 않게 딱 찾아내고, 꾸준히 기량을 갈고 닦아 작품을 한 편 완성하기까지도 큰 운이 필요하지만, 그 작품이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되기까지는 더 큰 운이 필요하다.
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이라도 정식으로 데뷔하여 작품을 발표하기까지는 역시 꽤나 험난한 과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량을 알아봐 주는 좋은 편집자를 만나서, 좋은 지면에 알맞게 실려야만 비로소 독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여, '작가'라는 명찰을 달 수 있다. 즉, 내 작품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줄 수 많은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 
세상에 독자가 없는 작가는 있을 수 없다. 작가의 작품은 독자와 만나야만 '작품' 으로서 첫 호흡을 떼고, 그 후에야 작품과 작가는 '작품'과 '작가' 로서 가치를 지니게 된다.
독자에게 읽히지 않는 작품은 어디 사는 어떤 누군가의 취미활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독자가 없는 작가에게 작가라는 명찰은 자뻑에 지나지 않는다. 
태생부터가 '대중들을 위한' 것인 '만화'는 매체의 특성상 더더더더욱 그렇다.
 
[중쇄를 찍자!]는 바로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서, 지면으로 옮겨 독자들과 만나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출판사 만화 잡지 부서의 편집자들과, 만들어진 책을 서점으로 실어 나르는 영업부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의 갈등을 거친 사람들일 터다. 

△표지의 캐릭터들부터 유쾌상쾌발랄~

 
[중쇄를 찍자!]는 일본 출판계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최근의 우리나라는 넓은 웹 인프라를 통해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도 작품을 발표하고 온라인을 통해 데뷔까지 할 수 있긴 하지만, 출판물 시대 잡지 역할을 하는 대형 포털이나 만화 전문 사이트들이 엄연히 존재하므로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볼 수만은 없다.

[중쇄를 찍자!]는'만화왕국' 일본 안에서 한 편의 만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를 거쳐 독자들에게 전달되는지, 리얼하고 디테일하면서도 명랑한 필치로 그려지고 있다. 

주인공 코코로는 전도유망한 유도선수로 진지하게 올림픽 국가대표를 노리던 체육대 학생이었지만, 불의의 부상으로 사랑하는 유도를 접고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서두에 언급했던,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모두가 오롯하게 한 방향이었던 새파란 청춘이 모든 삶의 계획이 순식간에 어그러진 것이다.
코코로는 펑펑 울고 난 뒤에 잠시 방황의 시간을 거치고 그 모든 일들을 리셋 시킨 상태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펑펑 울던 시기 코코로를 지탱해 준 것은 만화였고 만화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진다. 
이제 한가지는 찾았다. 
하고 싶은 일.
하지만 평생 유도만 해 온 체육소녀가 하루 아침에 만화가가 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만화 잡지를 출간하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다. 
해야만 하는 일은 출판사에 입사하기 위한 시험 공부를 시작 하는 것이다. 
여러 군데의 면접에서 낙방하면서, 코코로는 사회생활의 엄정함을 깨닫지만, 작품 안에 그러한 내용들이 구구절절 담겨 있지는 않다. 단지, 아래의 몇 컷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통찰은 참 디테일해서, 작가가 진짜 유도를 했나!!! 했더니, 운동엔 젬병이란다.ㅎㅎ
아마 취재의 결과물이었던 듯. 만화는 발로 그리는 것이라던 모 작가님의 말씀도 떠오른다.




명랑만화체의 가벼운 필치로 그려지지만,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딘 속도기는 하지만 일본도 온라인 매체의 출현으로 종이 잡지는 침체 일로를 걸어가고 있다. 
한 때는 '잡지왕국' 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나게 다양한 - 스포츠나 연예, 취미는 물론 우리가 쉽게 상상조차 하기 힘든 바리스타 전문 잡지라던가, 유치원 전문 잡지, 커텐이나 벽지, 사무용품은 물론 월간지까지!!! - 잡지들이 엄청나게 생산되어 불티나게 팔렸던 곳이 바로 일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시장이 여성잡지와 만화잡지였을 텐데, 이 잡지들도 점차 그 종 수가 눈에 띄게 줄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한 일본 출판계의 현실도 충분히 담아내고 있고, 생업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기성, 신인 작가, 작가 지망생들의 이야기도 만만찮게 실려 있는데, 아무래도 내 개인적인 상황과 맞물려 쉬이 웃어 넘길 수 만은 없었다. 




△우리는 콘티라고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네임' 이라고 부른다. 
나는 콘티를 거의 러프 데셍 수준으로 만들어서 보내는 편이다. 대사도 다 타이핑해서 알아보기 쉽게.... 신인의 자세랄까...ㄷㄷ 

  
무엇보다 [중쇄를 찍자!] 의 전체를 관통하는 명확한 주제는 오직 한가지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선. 그 선 위에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작품을 매개로 하지만 작품을 독자에게 선보인다는 것은 결국, 사람(작가)과 사람(독자)을 연결시켜 준다는 의미이다.
소설과 만화를 불문하고, 작품 속 주제는 대개 작가의 말과 동일시된다. 예를들어, 폭력적인 만화를 그리는 작가는 폭력적인 성향이 강할 것이라고 여긴다거나, 남녀 차별적인 에피소드를 다룬 작가가 여성혐오의 시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등 말이다. 
작가는 때론 비폭력을 주장하기 위해 폭력을 그리고, 남녀 차별을 반대하기 위해 남녀 차별을 그리기도 하지만,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작중 인물의 모든 대사들이 작가의 사상에서 나온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특히 댓글을 통해 독자와 1:1 소통이 가능한 작금의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욱 도드라져서, 때로는 작가가 작품이 아닌 자신의 입으로 직접 해명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렇게 작가와 독자가 1:1로 맞닥뜨리다 보니 작가들은 종종 독자와의 거리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작가가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분명히 독자와의 관계를 연결시켜주는 '선' 은 존재한다.
우리는 이것을 '인프라' 라고 부르고, 역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간에 꼼꼼하게 메여진 선들이다. 
전기를 발명한 사람이나 인터넷, 월드와이드 웹을 개발한 과거의 사람들까지 운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 현재 작품이 실려 있는 포털 사이트의 서버를 관리하는 직원부터 독자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조립하여 파는 사람은 물론, 작가를 픽업하고 원고를 전달받는 웹 사이트의 담당 편집기자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작가는 쉽게 자만한다. 
오로지 나의 재능만으로, 내 작품이 뛰어나서, 독자들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막말로 어느 순간 EMP 라도 터져서 모든 전자장비가 마비된다면, 거리에 나가 펜과 종이로 사람들에게 만화를 팔아먹을 수 있는 웹툰 작가가 몇이나 될까? 
거리의 시민들 앞에 만화를 들이밀고, "보기 싫으면 보지 마시던지 ㅎㅎ " 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혼밥' '혼술' 에 익숙한 나에게도 새삼스레 큰 울림을 주었다.
뭐든 혼자 다 하고 있었고, 혼자면 다 좋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수 많은 사람들의 수고를 받아 살고 있었다.
또한,  
우리 각자는 자기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일들이 대부분 남을 위한 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열심히 책 읽고 리뷰 쓰는 행위만 해도 그런데, 나는 언제나 리뷰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책 읽은 감상을 잊지 않고, 나중에 돌이켜 보려고 쓰는거였다.
하지만, 네이버 블로그 사업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중쇄를 찍자!]의 원 저작자 쇼가쿠칸과 마츠다 나오코, 한국 저작권자 애니북스와 애니북스 마케터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 어쩌면 이 리뷰를 읽고 책을 사는 독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겠고.
혼자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정말로 새삼스럽지만, 책을 읽다 보니 그런 메시지들이 와닿았다. 
다른 이의 작품을 팔기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노력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니.
그러고 보면 당신도 그렇고 있고, 거기 당신도 그러고 있는데.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만들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팔고, 다른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청춘을 바치고 있었지. 
우리 모두는, 비록 어쩔 수 없을지라도,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서로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거였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간만에 보는 참 착한 만화였다.
한없이 밝은 코코로를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고. 



그래, 누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누구나 '하고 싶은 일' 과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한다.

모든걸 충족시킬 수는 없으니, 하나씩, 포기해 가는 것이다.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잡을지는 오롯하게 자기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

당신과 나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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