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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아방가르드 시대의 예술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대학 1학년 1학기때 일러스트레이션 이론이 필수교양이었다. 서양미술사는 선택교양이었고. 워낙에 외우는 것을 싫어했던 난 서양미술사를 최대한 피했더랬다. 하지만, 관심은 많았던지라, 강의서적은 구입해서 열심히 읽었었다.

 일러스트레이션을 어떤 분야에 넣느냐에 따라 그 출발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당시 내가 들었던 강의의 교수님께서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산업디자인의 범주에서 다루셨다. 아, 그 교수님은 산업 디자인과 전임 교수님이시기도 했고(ㅋㅋ) 기본적으로 그 분께서 말씀하셨던 '일러스트레이션' 이란 결국 '상업' 일러스트레이션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은 그 태생 자체가 상업과 긴밀한 관계이다. 요즘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단어 자체에 '오브제를 대중에게 설명하기 위한 그림' 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바우하우스에서 산업 디자인과 함께 시작되어 결국엔 키치로 함께 들어갔던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는 꽤나 흥미로웠다.

 한 학기동안 거대한 미술사의 한 부분, 한 흐름을 공부했기때문에, 그 시간은 생각보다 깊이있었고 정말 재미있었다. 1학년짜리가 맨날 맨 앞에 앉아서 잔뜩 필기를 하며 수업을 따라가곤 했기에, 교수님도 날 꽤 예뻐해 주셨지만, 우리 과 전임 교수님은 아니셨던지라 인연이 길게 이어지진 않았더랬다.
  

한편, 그 한 학기동안 베개만한 '서양 미술사' 를 들고다니던 녀석들도 있었다. 녀석들은 쏟아지는 과제들 속에서, 그림과 화가이름을 정신없이 외우며 다녀야 했다. 물론 사조의 순서 또한 외워야 했고, 후기 인상주의를 지나 야수주의에 돌입하며 머리를 쥐어 뜯기 시작했다. 사실 인상주의부터 주요 화가의 그림들이 비슷비슷해진다. 특징을 찾아 외우기가 만만치 않다. 심지어 마네, 모네 등은 이름부터 헷갈리고, 르누아르와 마네의 화풍도 상당히 닮아있다. 반면, 고흐, 고갱, 세잔같은 후기 인상주의의 그림들 또한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후기 인상주의를 지나 야수주의에 들어가면 대부분 시험을 포기한다. ㅋㅋㅋ 

 난 수업을 듣지 않았기때문에 흥미롭게 서양 미술사에 관한 책을 탐독했었지만, 부족한 도판과 딱딱한 저술은 개인적인 흥미를 반감시킬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모든 시대적 흐름에는 흐름을 주도하는 큰 사건과 인물들, 그리고 그 인물들의 개인사까지 망라되어야 한다. "히스토리" 란 결국 사람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서들은 모두 그렇다. 왕 중심으로 기록이 전개된다.
 

 하지만, 미술사는 다르다. "미술사" 라는 단어처럼 '미술' 중심의 역사가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림이 주인공인 역사이다. 당연히 그림을 그린 화가 역시 서브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상에 얼마나 많은 그림과 화가와 기록들이 있는가.  

 결국 미술사는 시대별로 기록되야 했고, 그 시대에 가장 우세했던 '화풍' 을 묶어내기 시작했다. 일종의 유행인 것이다. 특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좋아했던 화풍, 중세 이전까지는 왕의 초상화나 왕실화가, 혹은 성당 미술등의 그림을 '주류 화풍' 으로 구분할 수 있었지만, 근대에 들어서면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흐름을 이해하기 조차 쉽지 않았다.  

 특히 시대별로 나누면 야수주의, 입체주의가 거의 동일한 시대에 꽃피웠고, 바로 뒤이어 등장하는 추상주의와 절대주의, 표현주의도 거의 동시대에 걸쳐있다. 그렇기에 한 작가가 여러 화풍의 그림을 내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피카소 역시 화풍의 변화에 따라 그 작가 개인의 화풍을 구분해야 할 정도이니, 흐름을 따라가기조차 버거운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많은 책들이 현대 미술부분을 '모더니즘' 으로 묶어서 간략하게 기술하는 경우가 많다.  

 진중권 교수가 풀어내는 모더니즘은 지금껏 내가 읽어온 어떤 미술사보다 쉽고 명쾌하게 풀려있다. 그냥 읽기만 하면 술술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논리적 인과관계가 완벽하고, 작가와 작풍, 작품의 분배가 쉽고 뚜렷하다.  진중권 교수는 모더니즘을 '아방가르드의 시대' 로 명명하고, 그 안에서 화풍 - 사조가 생성된 순서대로 기술하고 있다. 당시 잡지나 신문등에 기고됐던 기록들의 인용도 상당한 양이고, 도판도 정말 풍부하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모더니즘의 특성들 중 하나는 '자아성찰과 그 표현' 이다. 여기서 '작가주의' 가 도래한다. 아방가르드 시대 자체를 작가주의의 시대라고 생각하고 보면 더 쉽다. 화가들은 더이상 남을 위해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 것이다. 인상주의 시기부터 이러한 색깔은 조금씩 보여왔었다. '야수주의' 라는 이름 자체가 주류 미술계에서 조롱을 담아 내뱉은 표현이었듯, 미술세계는 점차 진보적인 비주류가 주류가 되어가는 과도기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등 거대한 비극을 겪으며 주류와 비주류의 교체는 더욱 빨라지고, 변화에 대한 욕구는 거세졌다.

 당시의 화가들이 자연을 그대로 화폭에 옮기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화폭에 담아야 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영혼이라고 외쳤다. 심지어 우연의 효과를 기대하는 다다이즘은 현대인인 나에게도 충격이었으니, 당시의 주류 미술인들에겐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아방가르드의 시대는 전통적 화풍의 파괴를 불러온 시기이자, 재료의 파괴를 불러오기도 했다.

지금까지 모더니즘 이후, 네오 아방가르드의 시기를 다룬 미술사 서적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국에 출간되어온 대부분의 서양 미술사에 관련된 책들은 수십년 전의 책들이 번역되고, 중쇄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서양미술사에 대한 서적이 잘 팔릴 리도 없을뿐더러. ㅎㅎ  

이 책을 읽으며 특히나 독설로 유명세를 떨치는 진중권 교수가 입만 발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다. 이런 쉽고 명쾌한 정리에 술술 빠져드는 문장력이라니. 용어의 사용과 풀이도 대단히 친절하다. 완벽하게 독자 친화적인 글들이라, 솔직히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니 진중권 교수가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었어??' 라는 느낌이었달까. ^^

새삼 언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얼마나 무서운지 느낄 수 있었다.

책 말미에 저자는 아방가르드의 다음 시기인 '네오 아방가르드' 에 대한 글을 쓸 것임을 예고해 준다. 서양 미술사 시리즈의 첫 권이 나온지 3년만에 두번째 권이 나왔으니, 다음 권 또한 만만치 않겠지. 하지만, 정말 너무 기대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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