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일기 - 모래알 속에서 찾아낸 금과 같은 일기
호연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웹툰] 이라는 장르는 어느날 갑자기 뿅 하고 솟아 올라왔다.

일본 문화 전면 개방과 맞물려 질적으로 양적으로 내리 꽂히던 일본 만화의 홍수 속에 한국 출판 만화계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만화는 한두시간만에 뚝딱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화가는 두명에서 수명의 어시스턴트를 두고 끼니도 제대로 못 떼우며 밤샘을 밥먹듯이 해야 일주일에 16~18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간신히 맞춰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한명의 한국 만화가를 발굴해서 키우는 비용보다 일본에서 흥행성이 검증된 새롭고 재미있는 만화들의 판권을 수입해서 찍어내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힌다. 게다가 간신히 발굴하고 지면을 할애해서 기껏 키워놓은 작가의 작품들이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만화 시장은 만화방이라 불리던 대본소 체제가 무너진 이후 반짝 했지만, 대여점이 등장하면서 다시 옛 시절로 돌아갔다. 만화는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닌 것. 그냥 빌려보거나 공짜로 보는 것이라는 인식은 대본소때로 돌아갔다.

 만화는 딱 대여점 수만큼 팔리는 시장이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단행본 한 권을 내는데 짧게는 6~8개월, 길게는 1년~1년반이 걸리는 한국 만화가보다 이미 수십권의 시리즈가 팔린 일본 만화의 판권을 사서 한달 단위로 시리즈 전체를 빨리 찍어서 빨리 팔아버리는 것이 자금 회수에 용이하고, 누적 판매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당연한 규칙이다. 요즘도 꾸준히 출판 만화계에선 신인 만화가들이 가물에 콩나듯 등단하고 있지만, 그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여전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솟아나온 웹툰은 초기엔 출판 만화계에 등단하지 못한 만화가 지망생들과 아마추어, 혹은 취미로 만화를 그리던 네티즌들에 의해 탄생했다. 물론 웹툰이라는 장르는 말 그대로 '신생' 장르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국 만화계의 범주 안에는 들어가겠지만, 출판 만화의 연장선에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웹툰은 만화적인 문법은 사용되지만, 웹툰 그대로 새로운 컨텐츠인 것이다.

 

 초기 웹툰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단점은 수익 창출 구조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림의 완성도는 둘째 치더라도, 개성적인 연출과 매력적인 구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뛰어난 스토리의 작품들이 꽤 많았으나 여전히 독자들은 '만화는 공짜로 보는 것' 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웹툰을 사업적으로 받아들이던 대형 포털들 또한 네티즌들을 자사 포털에 묶어두기 위해 양질의 컨텐츠들을 무료로 공급해야만 했다. 웹툰 작가들은 출판 만화가보다 경제적으로 더욱 열악한 환경속에서 작품 활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화해갔다. 비로소 '이야기' 의 시대가 도래했고, 스토리의 중요성은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웹툰들은 드라마나 영화의 원소스 역할을 하기도 했고, 출판사들과 직접 계약을 맺고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수익창출의 구조가 어느정도 해갈된 이상, 웹툰은 인터넷 인프라가 굳건한 이상 하나의 장르로서 쭉쭉 뻗어나갈 것이 자명하다.  

 

 호연 작가의 [사금일기] 는 웹툰이 아니었으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작품이다.  

아니, 인터넷이 없었으면 영원히 공책 안에 잠자고 있었을터다. [도자기] 라는 작품으로 사물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력과 그것을 이야기로 녹여내는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던 호연 작가는 꾸준히자신의 사이버 공간 안에 자신의 이야기를 3컷으로 그려넣고 있었다. 마치 일기를 쓰듯 꾸준히 그려넣던 이 이야기들은 작가가 밝혔듯 '그리고 싶을때 슥슥 그리던' 진짜 일기였던 셈이다. 일기를 돌려보는 사람은 없다. 만약 인터넷이 없었다면 이 일기는 빛바랜 공책으로 책장과 함께 먼지속에서 서서히 잊혀갔을터다. 하지만, 인터넷과 블로그가 있었기에 그녀의 일기는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졌고, 결국 이렇게 책으로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위에 언급했지만, 호연 작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깊이있는 통찰력과 그것을 글이아닌 만화로 풀어내는 능력이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한, 평범한 이야기들이 그녀의 붓끝을 통해 특별하고 중요한 것으로 재탄생한다.

무엇보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전작인 [도자기] 에서도 충분히 보여졌던 한국의 고고미술사학과 학생 시절 이야기부터 최근의 이야기까지 실려 있다. 그녀의 페르소나인 '사금군' 을 통해서 전해오는 '삶' 의 이야기. 특히 호연작가가 몸이 아팠던 시기를 겪고 난 뒤 세상을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지게 된 부분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2008년까지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조금은 어둡고 지나치게 감상적인 이야기들도 많았다.
깨달음이나 통찰에 대한 부분은 여전했지만, 재기넘치고 발랄한 20대의 이야기라기엔 감상적이고 조금은 우울한 단상이라고 해야 옳을것이다. 통찰력은 더 깊이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예민하고 날카롭게 상황들을 파악하고, 타인의 감정을 읽는다. 그것은 자신이 타인보다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생각한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상처를 더 많이, 더 자주 받고, 더 깊은 고통을 느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자연스레 그의 이야기들엔 보다 어둡고 농밀한 아픔이 있었다.

 

 



 

 

허나,  본인도 밝히듯, 2009년 이후의 이야기들은 보다 밝고 경쾌하며 따뜻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게 된다.


책을 넘기다 보면 등장하지만, 호연작가는 아팠던 시기가 있었다.

언제나 고통은 사람을 성숙케 한다.
육체적으로 건강했던 시기에 완성된 그의 작품 [도자기] 와 이 책의 초~중반부가 겹쳐지고, 육체적인 병마를 떨쳐낸 최근 네이버 연재작인 [단군 할배요!] 와 이 책의 중~ 후반부가 겹쳐진다.
[도자기] 는 일상툰에 가까운 옴니버스 작품이고, [단군할배요!] 는 보다 연결성이 강한 연속극의 작품이지만 충분히 비교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언제나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이긴 하지만, 확실히 최근의 그의 작품은 보다 더 따스하고 경쾌함을 느낄 수 있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달라진 시각이 작품에 그대로 녹아든다.

 그렇게 사금일기들을 천천히 넘기다 보면, 조금은 특이하다는 말을 들었던, 감수성이 풍부한 고고미술사학과 학생이 독자들에게 따뜻함을 전달해주는 작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보인다.

 

언듯, 삶이란 엄청 거창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람은 생의 대부분을 잠자거나, 음식을 먹고, 그것을 소화시킨 뒤 배설하고, 멍때리거나, 낙서를 하거나 하며 보낸다. 이렇듯 엄청 작고, 소소하고, 가벼운 일상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꼭 거창한 것만이 삶은 아니라는 것이다. 모래처럼 자잘한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하루를 이루고, 그런 하루들이 모여 삶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잘 살펴보면 그 모래들 속에 반짝이는 금들이 있다.
아니, 어쩌면, 그 모래들 전부가 반짝거리는 금들일지도 모른다.
한 번 들여다 보자.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의 일상들을, 나의 삶들을.
그 모두가 사금이리라.

 

 


 

 

요건 나의 첫 3컷 만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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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9-22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롸잇나우!
^^ 열혈명호님의 사금일기, 기대됩니다!!
나오면 꼭 사서 볼께요. 꼭이요^^

열혈명호 2011-09-22 20:13   좋아요 0 | URL
ㅋㅋ 넵 감사합니다. 그리 쉽게 책으로 나올 수 있을것 같지는 않지만, 정말 감사해요. ㅎㅎ 요 짦은 만화들도 여기에 올리긴 힘들어서 네이버 블로그에는 며칠 올린게 있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