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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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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아는 만큼 보인다.' 이 의견에 딱히 반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림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맞다. 그림은 시와 같다. 시 또한 아는만큼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사람들이라면, 학교다닐때 배웠던 시의 내용들을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화자가 처한 입장이라느니, 단어가 가지고 있는 함축적 의미라느니, 시 속에 들어있는 화자의 심정이라느니, 작품의 외적 상황과 내적 상황이 어떻다느니 등등은 기억할 것이다. 그런 작품에 관한 '지식' 들을 알고 시를 접하면, 새삼 그 시가 가지고 있는 깊은 내용들이 또렷하지는 않더라도, 비교적 쉽게 이해되곤 했다.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단어 하나가, 이중, 삼중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인이 처한 환경을 알아내고, 그런 상황속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문장들을 적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탄과 경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도 시와 같다.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된 재료와 기술까지 알 필요는 없다. 붓질을 어떻게 했고, 색을 어떻게 혼합했으며, 어떤 모질의 붓을 사용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이다. 광활한 네모난 백지를 채운 수많은 것들. 그것들이 모두 화가의 마음이고, 정신이고, 대화이다. 시인이 문장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했다면, 화가는 하얀 백지 안의 그림들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낸다. 시의 단어 하나 하나가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듯 고르고 고른것들이듯, 그려진 사물 하나 하나가 혈관을 찢어 선혈을 붓에 찍어 그려내듯 고르고 고른 것들이다. 화가의 눈에 보여진 세상이 화폭 안에 그대로 담겨있다. 

 '눈' 은 '뇌' 와 같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가장 먼저 뇌가 만들어지고, 그 다음에 눈이 만들어 지는데, 마치 뇌에서 더듬이처럼 두개의 눈이 비죽이 솟아나온다. 눈은 피부 밖으로 돌출되는 뇌인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보고싶은 것' 만 보고, 때로는 보이는 것을 자신의 머리속에서 재구성 하기도 한다. '생각하는 대로 보이는 것' 이다. 그렇기에, 화가가 보고, 화폭에 옮긴 그림들은 화가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세상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그려진 그림을 '보는' 사람들 또한, 자기가 보고싶은 대로 그림을 보게 된다. 화가의 머릿속에서 재구성 된 세상이, 그림을 보는 관객들의 눈을 통해 머릿속에서 또다시 재구성 된다. 당연히 보는 사람들의 지식과 감정에 따라 그림의 인상은 변화될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림과 글자를 동일시 했다. 선비들은 의관을 정갈히 하고, 정성스레 먹을 갈아 글을 쓰듯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썼다. 획 하나 하나에 넋을 담듯, 매화 가지와 대나무 줄기를 그려내고, 난을 쳤다. 화폭에 담긴 그림들은 화가의 넋이 담겨 살아있는 듯 했다. 우리 조상들의 그림은 비슷한 시기 서양의 그림들과는 완벽하게 그 궤를 달리한다. 서양의 그림은 기법 위주로 발달했다. 캔버스 전체를 꼼꼼하게 메꿔나갔고, 그 안에 그려질 사물들에 정신을 투영했다. 동양의 그림은 정서 위주로 발달했다. 시원하게 뻗어나간 매화는 하얀 여백 위에 둥실 떠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속에서 선비 정신의 웅혼함이 담겨져있다. 

  

 

 

 

이 책은 우리 조상들의 옛 그림들을, 그림의 화제에 따라 사계절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작품의 소개 방식은 위의 그림처럼, 먼저 한페이지에 도판이 실려있고, 뒤에 그 도판에 대한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는데, 간단히 작가에 대한 소개와 그림에 그려져 있는 화제들에 지면을 할애한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이 책의 저자이신 손철주 선생의 감상이 자리잡고 있다. 즉, 그림에 대한 강의나 상세한 설명이 아니라, 저자 자신의 감상이 대부분인 것이다.  

 손철주 선생은 그야말로 미술에 대해 대단히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아는 사람' 이다. 그런 저자가 자신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림을 보며 받은 감상을 그대로 가감없이 적어 내려감으로써, 자연스럽게 '그림 보는 법' 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고수의 감상법' 을 어깨 넘어로 배워나가는 기분이다. 저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아쉬운 점, 벅차 오르는 점, 연상되는 것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저자의 풍성한 감성과 지식에 경도되어, 즐겁게 화랑을 함께 거니는 기분이었다.  

 예술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어떤 감성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동양과 서양의 문화는 그 뿌리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당연히, 서양화와 동양화를 감상하는 방식 또한 꽤나 다를터다. 이 책은 특히 우리 조상들의 그림이 실려있고, 그림 속에서 우리 문화가 가지고 있는 정신과 감정선을 좇는 감상법을 따뜻한 말투로 알려주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전에 보이는 만큼 보인다. 이 책 안에 실려있는 수많은 도판들은 우리에게 먼저 보는 눈을 길려줄 것이다. 그리고, 글들 또한 잘 읽어 나가다 보면, 그림을 '읽는 눈' 또한 충분히 길러주리라고 본다. 

 따뜻한 우리 조상들의 그림과, 세상을 보는 조상들의 따뜻한 시각. 그것들을 배울 수 있는 최고의 책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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