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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 피할 수 없는 내 운명을 사랑하는 법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그저 달콤하게 '네 운명을 사랑하라'고 얘기하는 책이 아니다.
그랬다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 니체의 인생수업'이란
띠지의 말도 필요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2014년에 출간된 <초인수업>의 개정판이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 및 실존철학이 주요 연구 분야인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박찬국씨가 저자라서 그런지
'니체'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니체의 말을 이용한 시대의 상황을
솜씨좋게 직조해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니체의 일갈이다.
니체는 모든 인간을 말없이 잘 기능하는 하나의 나사 부품으로 길들이려는
사회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
정정당당한 경쟁과 대결이 아니라 온갖 편법을 통해서 쉽게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진저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 스스로도 우주의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말하는 것도 한갓 독백이나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닌,
자기가 속한 어떤 공동체에 말을 건네는 것처럼 느꼈다는 니체.
니체가 들려주는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인생의 의미를 찾지 마라
놀이에 빠진 어린아이처럼 살아라
혼자 있을 때에도 생각과 행동을 바르게 하라
시련을 극복하려는 자기 자신을 존경하라
약점조차 눈부신 것으로 만들어라
는 것이다.
언뜻 읽으면 아무 생각없이 어린아이처럼 즐거움을 추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무구한 애정으로 가득 차되,
굳이 어렵게 인생의 의미를 찾으며 살진 말라는
쾌락적이거나, 허무적이고도 염세적인 사상 같지만
중간에 '혼자 있을 때에도 생각과 행동을 바르게 하라'라는 말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바르게'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남들이 보기 좋게', '어긋나지 않게'와는
또 다르다.
도대체, 니체는 어떤 말을 하는걸까?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
니체의 말은 정말이지 여러가지 색깔로 해석이 된다.
달리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사상가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다.
무정부주의와 같은 극좌적인 사상에서부터
나치즘이나 이나파시즘같은 극우적인 사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조가 니체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고
그럴만한 근거를 제공했다고 하는 니체.
하지만 니체의 사유도정에 핵심사상은 바로
'그리스 로마의 강건한 정신을 회복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찾아다니고
그것과의 대결을 통해 자신을 강화하고 고양시키는 것.
자신에 필적하거나 자신보다 우월한 자를 찾아
그들과 대결함으로써 자신 뿐 아니라 상대방도 고양시키는 것.
도전적이고 패기에 찬 정신으로
고통과 험난한 운명을 자신의 고양과 강화를 위해 오히려 요청하는 것.
이것이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정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는 게 힘들었니? 하고 우쭈쭈 하며 위로와 힐링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은 원래 힘든 것이고, 그 힘듦을 피하지 말라고
엎어져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말하는 니체.
'힘에의 의지'가 쇠약해지고 지쳐 병들어있어
자신과 투쟁하지 않으면서 편안함과 만족을 찾게 되는 것을 택하려 할 때
고난과 고통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행복이라는 생각을 부수고
그런 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평정과 충일함을 느끼라고 한다.
파괴와 창조,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슬픔이 반복되는 이 세계를
웃으면서 긍정하는 '춤추는 디오니소스처럼'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러한 세계의 한가운데에서
환희에 차 춤추라는 니체.
읽을 수록 어려웠지만, 읽다보니 어렴풋하게 이해가 된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좀 더 힘들고 어렵게 사는 것 같다고
우울해하거나, 염세적으로 살지 마라.
삶은 원래 그런 것이다. 특별히 나에게만 그렇게 구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고통을 성장과 단련으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기꺼이 그것들을 찾아나서라는 니체의 말은
솜사탕처럼 달지 않고, 아이스 버킷처럼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올해를 마무리하고 (그러면서 반강제로 한 해를 회고하고)
내년을 준비해야 할(어떻게든 지금보다는 나아지는 것을 꿈꾸며)
요즈음에 벼락같은 한마디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