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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 암만 혀도 자네는 유물론자가 아니구만.
오랫만에 피식거리며 읽은 현대 소설이었다.
표지 첫 장에 실린 정지아씨의 사진을 보고 책을 읽어나가며, ‘아니 나보다도 어린 사람이 어쩜 이렇게 사투리를 맛깔나게 섞어가면서 이야기의 완급 조절을 노련하게 해나갈 수가 있지?‘ 그랬는데, 찾아보니 낼모레 예순이라는 것 까지 웃음 포인트. 어쩐지.
빨치산이었던 덕에 연좌제로 친인척들을 고통으로 몰아 넣고, 한 켠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고 오지랖 넓은 삶으로 주변에 널리 영향을 끼친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의 장례식을 중심으로 회고의 형식을 빌어 전개시킨다.
재밌게는 읽었는데 그런 후에 알아야 했던 것들이 있었다. 우선 빨치산.
정의: 6·25 전쟁 전후에 전라북도 순창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공산 게릴라.
개설: 빨치산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48년 여순 사건과 1950년 6·25 전쟁을 거쳐 1955년까지 활동했던 공산주의 비정규군......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zan), 곧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비정규군을 일컫는 말로 유격대...... 좌익 계통을 통틀어 비하하고 적대감을 조성하는 용어로 표현된 것이 빨갱이다. 흔히 조선 인민 유격대... 남부군이나 공비, 공산 게릴라.......
-네이버지식백과펌.
난 빨치산이라고 해서 빨갱이와 지리산의 합성어 쯤으로 생각을 했었는데, 빨갱이의 어원 자체가 러시아어였다니. 애초에 색깔이랑은 상관없는 문제였잖아.
다음에 찾아본 것이 ‘여순사건‘ 이었다.
여순이 뭔가 궁금했는데, 여수와 순천 합쳐서 여순.
- 위키가 할 일 없는 사람들의 기여(?가 많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현대의 정치 권력과도 얽혀있는 근현대 역사 같은 것들을 찾아볼 때는 정말 곡식인지 쓰레긴지 진위를 알기가 힘든 도구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어쨌거나 대충 추려보면 당시 이승만 정권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약칭 반민특위를 만들어서 말 나온대로 친일파숙청을 했어야 하는데 흐지부지 되니까 가뜩이나 권력의 중심이었던 부패경찰들과 남로당 기반의 군인들 사이에서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그 와중에 정부에서 군인들에게 제주4.3 사건을 명령하니까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일부 군인들이 반발하고 일어나서 여수 순천 지역을 점령하고 무력시위를 했고,
이승만이 계엄령 내려서 맞서 싸우는 가운데 그 지역의 민간인들만 무고하게 떼죽음을 당한 사건.
참고로 제주4.3 사건 역시 비슷하게 이승만이 공산당원 몇 잡겠다고 도민들을 얽어서 씨가 마를 정도로 도민들을 몰살시킨 사건.
덧붙이면 지금도 제주도 사람을 만나면 99프로 연좌제에서 자유로운 집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내 남편의 어머니의 아버지도 젊었을 때 행방을 알 수가 없게 되셨다고 하고, 그렇게 할아버지 대에선 시신이 안치되지 않은 가묘가 드물지 않다고 들었다.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야 복권 문제가 불거지고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간단한 소감.
오랫만에 아빠네 고향에서 친척들에게 둘러쌓인 기분이 들었을 정도로 리얼한 전라도사투리의 향연.
영화에서 깡패들 말하는 거 말고, 이 지역 방언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어디서 봤던가 싶다.
(엄마가 별로 안좋아했던 억양...) 어쨌거나 난 경상도 엄마와 전라도 아빠를 둔 덕에 양쪽 사투리가 꽤 익숙한 편이라 방언들이 싫지 않다. (하지만 제주도방언은...)
싫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친척들을 만나면 강한 운율이 있는 억양들이 웃음소리와 함께 노랫가락처럼 들려서 그냥 듣는 것만으로 유쾌했었다. 근데 나중에 여동생 얘길 들어보니 어릴 적엔 마음을 졸일 정도로 무서운 말씨로 들렸다고.
책 속에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냥 겉으로 보면 세상의 소금같은 존재로 살아간 사람이다.
넓은 인맥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돕고 동네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솔선 수범하여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집안에선 딱히 큰 소리 내지않고 사는(자기가 하는 정의로운 일들이 부인과 가족에게 얼마나 폐가 되는지 생각해보지 않고 논의 없이 밀어부치는 조선시대 양반같은 면이 있었지만) 그냥 현명하고 부지런한 사람.
근데 젊었을 때 사회주의자였다는 것이 더해져서 얘기에 색이 입혀진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터 마르크스 얘기가 자유로웠지? 싶다.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최소한 이념의 선에선 사회주의를 논할 때 더이상 눈치 볼 필요가 없어졌는데,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가져온 10년이 지난 후 정도였을까.
-물론 아직도 우리 웃대들은 입 밖에 내는 것을 뭔지도 모르면서 꺼려하고 뭔지 모르니까 꺼려하는 듯하다. 제주도같이 지방으로 갈수록 더 심하다. 그 중심엔 변하지 않고 협박으로 권력을 탐하는 언론매체들(그 뒤엔 대기업들)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시대를 훑는게 쉽지 않다. 훑어 놓은 자료를 접하고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좋은 소설은 보통 개인사로 시대를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소설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덕에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빨리 가지게 된 딸은 슬픈 현실을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미소지으며 볼 수 있는, 못지 않게 현명한 사람으로 자랐고,
아마도 작가의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마지막에 쓸데없는 신파로 흐를 기운이 살짝 보였으나
작가는 마지노선을 밟는 듯 하며 균형을 잡았고,
나는 아들에게 차분하고 음전하게 책을 패스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