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을 읽는 기술 - 문학의 줄기를 잡다
박경서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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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 지혜? 명작 읽는 방법? 오디오북으로 책을 들었는데 검색창에 입력할 때마다 제목이 헷갈렸다. 아마도 고전, 명작, 지혜, 기술, 방법 등을 혼용하거나 한 덩어리로 묶어 둔 내 얕은 범주 탓일 것이다.
문학 작품의 시대 사회적 배경도 잘 모르고, 무슨 무슨 사조도 잘 익히지 못한 내 구멍을 메우려는 사심에, 서재 이웃님이 호평하신 걸 보고 찾아 읽었다.
이런 류의 책들이 보통 그러하듯 어디서 들어본 말을 주욱 듣고 이 정도면 됐겠다, 하고 덮었더니 돌아서자마자 아무것도 머릿속에 남지 않는.. 책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내용상 자칫 줄거리를 읊으며 설교조로 늘어지거나, 작가나 작품에 대한 예찬에 그치고 말 수도 있을텐데 책의 장점은 지식과 감상을 배합하고 나아가서는 감상’법‘을 슬쩍 얹어주는 균형감이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 5 도살장> 같은 책도 이렇게 전달할 수 있구나, 그 정연함에 끌린 것도 있다.

책에 언급된 명작을 읽었을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인생이 괴롭고 답이 없(다 느껴져)어서 책에 머리나 처박아야지 생각했던 때다. 한꺼번에 읽은 것도 아닌데 하나같이 그랬다. 매 장에서 다루는 책마다 결론에 이르러서는 현실을 견주며 독법을 제시하는 책을 읽으려니… 그런 뻔한 이유로 고전을 읽는 것이 내 얘기만은 아니군. 근데..더듬대며 손을 뻗는 마음으로 찾은 책에 펼쳐진 외려 더 답없고 절망적이고 치열하고 통속적인 이야기라니. 고개를 들면 그야말로 “소설보다 소설같다“는 뉴스들이 버거운 중에 책으로 도망친다는 것만큼 속편한 짓도 없는 거 같아 기껏 배운 읽는 기술도 잊어버리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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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0-17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쵸 이거 생각보다 많이 재밌고 유익하죠?! 😆

유수 2023-10-17 21:58   좋아요 1 | URL
덕분에 잘 읽었어요. 땡투못해서 벼르고 있음 ㅋㅋ

은오 2023-10-17 22:0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수님이 잘읽었다하시니 그걸로 충분하다! ㅋㅋㅋㅋ💕
 

도착했다는 문자 받고 편의점에 달려가 신나서 택배 뜯었다. 책을 꾸역꾸역 소아과까지 들고갔고 어린 식구들 수발에 치이며 앞부분 읽는다. 데버라 리비. 소설. 2016년작. 그 외에는 정보 없이 열었는데 이거 모녀서사인가 봐. 지독한 문장들.

“내가 살아온 스물다섯 해 중 스무 해는 어머니를 조사하고 관찰하는 나만의 연구 기간이었다. 아니, 아마 더 길 것이다. 네 살 때 어머니에게 두통이 뭐냐고 물었었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문이 쾅 닫히는 것 같은 거라고 말했다. 타인의 마음을 잘 읽는 사람으로 자란 나에게 그녀의 머리는 곧 내 머리였다. 언제나 아주 많은 문들이 쾅쾅 닫혔고, 나는 그 광경의 주요 목격자였다.“ 25

“스물다섯 살인 내가 어머니와 걸음을 맞추려 같이 절룩거리고 있다. 내 다리는 그녀의 다리다. 이게 우리가 찾아낸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명랑한 걸음이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어린아이와 어른이 함께 걷는 방법이고, 어른이 된 자식이 한쪽 팔을 부축 받아야 하는 늙은 부모와 함께 걷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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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 2023-10-13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넘 좋네뇨!! 저도 읽어볼래요 !!!
유수님이 지독하다고 말한 문장에 좋다고 열광한 저도 지독한 사람..???ㅋㅋㅋㅋㅋ

유수 2023-10-13 22:27   좋아요 2 | URL
데버라 리비.. 에세이가 두권 번역돼 나와있어요. 아직이시면 읽어보세요💛💙

2023-10-13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3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4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곡 2023-10-14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 아픈 문장들입니다...아직 다 물들지 않은 단풍 사진이 묘하게 아름답고 희망적이네요 토요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어머니에게는 어머니만의 강렬한 에너지가 있었지만 그것은 억눌려 있었다. 특히 우리하고만 있을 때는. 어머니는 솔트레이크시티 무어몬트드라이브에서 살던 시절에 남동생 스티브와 나에게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를 알려 주었다. 우리는 오후 내내 이 음악동화에 귀를 기울이며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는 앉아 있었다. 레코드판이 끝까지 가면 우리는 바늘을 처음으로 돌려 다시 듣곤 했다.
우리가 프로코피예프의 마법에 걸려 있던 그 시간 동안 어머니가 무엇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지만 나는 그게 핵심이었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피터와 함께하는 시간은 어머니가 어머니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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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10-14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읽은 그림책 ‘한나 아렌트의 작은 극장‘에 늑대가 나와서 뭔가 늑대 관련 더 읽거나 보고 싶었는데 맞아요 피터와 늑대가 있었어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유수 2023-10-14 11:54   좋아요 1 | URL
저도 서곡님 터프 이너프 글 잘 보고 있어요. 늑대책을 찾아보신다니 궁금하고욯ㅎ 오늘 도서관 가는데 <한나 아렌트의 작은 극장> 비치 확인하고 갑니다!! 토요일 오후 여유롭게 보내세요 ㅎㅎ
 

대상화를 향한 길 위에 고통 자체를 올려놓음으로써 고통의 탈-대상화 작용을 뒤집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실질적이고 윤리적인 중요성으로 가득 찬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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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째서 어머니가 매년 일기장을 한 권 한 권 사 놓고 아무것도 적지 않은 채 물려주었는지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알 길이 없으리라.
백지 일기장이 안긴 충격은 두 번째 죽음이 되었다.

어머니의 일기장은 종이 묘석이다.

나는 54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이다. 20대 여성이던 시절에는 지금 내가 품고 있는 질문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얼마나 젊은지 깨닫지 못했지만, 그게 어머니들의 자부심 아닌가? 자신의 젊음을 숨기고 아이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말이다. 자기 자신의 문제로 괴로워하지 않는 것은 어머니들의 전문 분야다. 자신의 문제에 면역이 된 어머니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위기만을 짊어진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욕구를 다른 사람의 욕구로 덮는다. 그늘이 없는 이야기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런 식일것이다. 여성으로서 우리는 직사광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여자들이 새였을 때, 우리가 아는 것은 달랐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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