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는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와 예술가에게 고독과 공동체의 결정적 배합을 제공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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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지만 두드려맞으면서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이해하고 싶은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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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닉의 신간. 독후 에세이인데 어쩐지 회고록을 읽은 기분이 든다. 고닉 본인이 시간을 두고 여러 번 반복해 읽은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읽는 행위, 특히 "다시" 읽는 것은 과거의 자신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면을 톺아 보는 작업으로 화한다는 걸 노작가가 직접 보여준다는 게 사뭇 감동적이었다. 동시에 자아와 인물, 특히 시대와 불화하는 인간 군상에 대한 이해로 이끌어 주는 책이기도 했다. 


그래서 낭만적이다. 바깥에선 별 관심없겠지만 우리 각자가 책과 맺는 열렬하고 내밀한 관계. 일생을 거쳐 여든의 작가가 토로하는 아직도 끝나지 않는 일. 열렬히 매혹되었던 시절은 지났을지라도 우리를 들뜨게 했던 문학을 다시 소환한다. 어째서 이런 게 그동안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는지 의아해하며 놓쳤던 장면을 살피고 인물의 행적을 되짚어 본다. 작가의 경험과 인식이 어떻게 소설을 직조했는지에 대한 고닉의 분석도 적절하게 곁들어 있다. 젊은 날 빠져 지냈던 콜레트의 작품을 다시 읽으며 한편으로는 아쉬워하는 작가의 탄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에 대한 마음을 새로이 달아오르게 한다.




콜레트가 아니면 누가 오로지 여자만을 위해 따로 마련된 지옥을 들여다보는 이 초상을 - 아연판에 산으로- 에칭해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콜레트가 아니면 누가 그 초상을 풀어내는 데 그토록 철저히 실패할 수 있었을까. 나는 어느새 그에게 따져 묻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당신은 더 큰 의미를 보지 못한 걸까? 나는 당신한테서 낭만적 집착에 사로잡힌 지적인 여자가 되는 것의 유일무이한 느낌을 알게 되었고, 그건 강렬한 소재였다. 그러나 오늘날 성적인 열정은 그 자체만 가지곤 단지 하나의 상황일 뿐, 은유가 되지 못한다. 혼자 시작되고 끝나는 이야기일 뿐 아무 의미도 담을 수 없게 되었단 얘기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요즘 세상에 어떤 여자가 젊은 날의 나처럼 콜레트를 읽을 수 있을까? 이 질문 자체가 답이다. 71



고닉이 문학에서 얻은 카타르시스가 어떤 형태였든 삶과 상처를 들여다 보는 도구가 되기 시작하면서 이 재독의 연대기는 존재 가치를 획득한다. 책이 “혼자 시작되고 끝나는 이야기”로 남지 않고 살아남아 한 사람의 고유한 내면 세계를 조형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여러가지 즐거움 중의 백미였다. 기록하기에 게을러서 읽고 흘려 보내기만 하는 나 같은 사람도 감화될 정도라니 말 다했다. 서평이라기에는 열렬하고 끈질기잖아, 싶기도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거야말로 읽기의 본질일까? 다시 읽을 책과 그 책에 새로 밑줄 그을 것을 여전히 기대한다는 고닉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 그러한 것도 같다.




몇 달 전 어느 늦은 겨울 오후, 세월이 한참 지나 <<고양이에 대하여>>를 다시 꺼내들었고, 이번에는 그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독파했다. 읽다 보니 예전에 이 책을 손에 들고도 이만큼 몰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번에도 나는 책이 처음에 상정한 독자가 되기까지 성장해야 했고, 책은 그런 나를 내내 기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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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5-17 15: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우…오랜만에 깨어나서 사자후 같은 걸 잘도 써내셔 우리 유수님 짝짝짝짝짝짝짝 (일어서서 쳤음)

유수 2024-05-17 15:40   좋아요 2 | URL
반이 밑줄인데 알라딘 서재랑 안친해서 버벅거리느라 밑줄이 다 사라졌어요. 반님 방금 고닉한테 일어서서 박수쳤다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5-17 16:09   좋아요 2 | URL
아니 블라인드 테스트 해서 구별 안 되게 썼으면 그게 더 대단한 거 아님? ㅋㅋ유수 고닉 동급설 (내가 고닉을 잘 몰라서 다행이다….고닉을 아냐구요? 유수는 압니다만…ㅋㅋㅋ그들은 훌륭한 타짜였어요… )

유수 2024-05-17 21:00   좋아요 2 | URL
내가 수렁을 팠지..싶습니다 ㅎㅎㅎ 걸음마 오구오구 짝짝짝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공쟝쟝 2024-05-18 1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너무 잘썼다… 아 진짜!!! 유수님 글재주 어쩔 것이냐!!! ~!!!! 고닉 접신 하셨으니 독후가미스트 (악성 독후가미스트에 반렬님 계시니) 진성독후가미스크 ㅋㅋㅋ 되시어랏!! 책만 당신을 기다린 것은 아니랍니다 ^^ 삶도 글도 유수님이 써야할 것들도 기다리는 중입니다! 나도요!!

반유행열반인 2024-05-18 14:38   좋아요 2 | URL
나 공쟝쟝 공인 악성 독후가미스트로군요 ㅋㅋㅋ 유수님께 맑고 고운 분야, 공쟝쟝님께 생존철학 분야 잘 부탁 드립니다…난 으둠을 맡을게 니들이 밝은 거 맑은 거 해라 다 해라…

수이 2024-05-20 15:29   좋아요 1 | URL
유열님이랑 니 댓글 읽고 미친듯 길거리에서 웃었음 ㅋㅋㅋㅋㅋㅋㅋ

유수 2024-05-20 23:50   좋아요 2 | URL
이렇게 다들 오셔서 즐겁게 보내시면 저도 좋습니다.

공쟝쟝 2024-05-21 09:39   좋아요 2 | URL
반님아 우리 맑고 밝기만 하기에는 때가 많리 묻엇다 ㅋㅋㅋ 저는 생존철학 ㅋㅋㅋ 심하게 정치적인 반골페미하겠습니다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5-21 10:45   좋아요 2 | URL
아 저기 맑은 맑스의 맑이야… 푸코 처돌이라고 푸짐한 거 하긴 좀 그래서…

공쟝쟝 2024-05-21 10:49   좋아요 2 | URL
맑ㅋㅋㅋㅋㅋ 뱉지마요! 주우ㅏ담아! 조심해!!! 이 나라는 사기꾼 천지라서 빨갱이 들키면 잡혀간다.

반유행열반인 2024-05-21 10:54   좋아요 1 | URL
아니 장기하는 부럽지가 않다는데 난 요새 뭘 어찌 말하든 두렵지가 않어… 빨갱이도 파랭이도 어우렁더우렁 싸우지 말고 oo해… 독서허라고…

공쟝쟝 2024-05-21 10:5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물러가랏!! ㅇㅇ 마귀들 ㅋㅋ 전 애이섹슈얼입니다!

유수 2024-05-21 11:00   좋아요 1 | URL
맑나온 김에 저한테 맑 갈겨줄 귀인을 찾습니다. 그 근처에 가보신 분 초심자를 위한 리뷰 부탁드립니다. 언제고 예예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4-05-21 11:11   좋아요 1 | URL
저는 빼고요…저 맑처돌이한테 원숭이도 아는 자본론인가 뭔가 추천 받아 읽고 시벌 난 원숭이만도 못혀 하고 버럭질해서 의 상하진 않았고 하여간에 그렇습니다…

유수 2024-05-21 11:2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원숭이 책 저도 제목은 들어봤는데 반님한테도 그렇다구요???😭

반유행열반인 2024-05-21 12:43   좋아요 1 | URL
그 작가님이랑 저랑 결이 안 맞는 것도 같고 ㅋㅋㅋ막스랑도 안 맞는 걸지도 ㅋㅋㅋ 누가 본대면 그책은 비추요… 이진경이 쓴 자본을 넘어선 자본은 전생(이십년 전?!) 어렵지만 흥미롭게 본 거 같은데 하도 여러번 다시 태어나서 정확하지 않은 기억이고 다 까먹음요 ㅋㅋㅋㅋ

공쟝쟝 2024-05-21 13:49   좋아요 0 | URL
원숭이 ㅋㅋㅋㅋ 잘 지내시나요 임승수 작가님! 카드할부로 여행다니시는 거 보고 소식업데이트 못했내요… 여기서 망 댓글 ㅋㅋㅋㅋ

수이 2024-05-20 15: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잘 썼네, 우리 유수님이 이렇게 잘 쓰시는 분이라는 걸 제가 몰라봤습니다. 용서하세요.

유수 2024-05-20 23:50   좋아요 2 | URL
이거시..놀림인가?? 둔하다고 한다..

수이 2024-05-21 10:37   좋아요 2 | URL
언니는 못 놀려 알면서 ㅋㅋㅋ 진심 이백프로 찐이다

단발머리 2024-05-22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에 후덜덜하신분들 땜에 댓글 늦게 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임)

이 쯤에서 우리 알라디너들은 이렇게 잘 쓰는 유수님이, 이렇게 잘 쓰는데, 왜 자주는 안 쓰느지를 심각하게 고민하며, 특단의 대책을 유수님에게 요구해야 하는지, 남편분에게 요구해야하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과 각성의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라 마지 않으며....

많이 좀 쓰세요, 유수님!
더 자주요.
더 길게요.

유수 2024-05-22 12:36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저에게 늘 더 자주, 더 길게를 목놓아ㅋㅋㅋ 부르시는 단발머리님.

오늘 읽은 책에서 보부아르가 말했습니다. 주부가 불행한 어린 시절을 주로 글로 쓰면서 그들은 그게 흥미롭다고 믿어요..하고 ㅋㅋㅋ특히 그 말줄임표에 다쳤습니다만ㅋㅋㅋㅋㅋ그래도 그래듀.. 저한테는 단발머리님이 보부아르보다도 힘이 세죠ㅋㅋㅋ 채찍도 좋지만 단발머리님 당근이 좋더라. 짜내다 안돼서 풀 죽을 때 여기 후덜덜한 댓글들 생각할게요. 고맙습니다.
 

고닉의 신간, 며칠 전에 다 읽고도 몇 꼭지 돌아가서 다시 읽게 된다. 읽기, 그중에서도 세월을 경유하며 문학을 다시 읽는 행위에의 감격을 돋우는 책이다.

오늘 다시 읽은 부분은 엘리자베스 스탠턴의 연설문을 다루는 부분. 인간에게 연결은 이상일 뿐 존재의 본질은 고독이며, 서프러제트 운동 말미에 그걸 깨달았을 스탠턴이 연설에서 그 통찰을 여성의 정치적 평등과 결부시킨다. 고닉 본인에게 이 연설문은 그래서 ”자아 감각“, ”인간 조건의 총체“를 직시하게 했다는 면에서 시적이며 충격적인 글이었다고 한다.


The Solitude of Self 원문
https://www.loc.gov/resource/rbnawsa.n8358/?st=pdf

연설문에 대한 고닉의 사유는 역시 책으로 출간되었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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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5-15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네요. 제겐 고닉이 작년의 발견이라 고닉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을 주의해서 봅니다.
당신.... 당신도 발견한 건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휴일 잘 보내요, 유수님! 아, 주부들에게는 성수기인가요........

유수 2024-05-15 11:15   좋아요 1 | URL
공휴일 가정행사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네요. 맞아요, 저도 이제야 발견했습니다. <상황과 이야기> 말씀이시죠? 써주시길 기다리고 있을게요🥹

공쟝쟝 2024-05-15 1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몇 꼭지 읽고 돌아서 읽으시다니. 저도 넋을 잃었어요. 여든 살의 고닉은 진짜 리스펙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부만 읽고 저도 진짜 진짜 황홀했어요. 독후가미스트들의 표본 고닉 ㅠㅠㅠㅠㅜ 저 읽다가 앗 이거!!! 유수님 생각햇는데 이미 사서 보고 꼭지 돌아 계신다 ㅋㅋㅋㅋ

유수 2024-05-15 11:27   좋아요 2 | URL
저는 그 전 책들은 오.. 글 좋다..(근데 다른 사람 얘기가 넘 많아-진입벽)라고만 생각하고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푹 잠기게 된 거예요. 쟝님 글 보고 그랬듯이 고닉 서평이 담고 있는 삶을 통과하는 앎, 입체적 결정체에 경탄하게 됐어요. 그전 책들도 읽어보려고 해요. 고닉 로드 입성! 꼭지 돌아버림ㅋㅋ

공쟝쟝 2024-05-15 23:30   좋아요 1 | URL
The Solitude of Self 원문 가져오는 구글링력! ㅋㅋㅋ 로드 입성 축하하며 환영의 춤을 춥니다~ 덩실덩실~
 

잘 웃는 성격이라거나 붉은 머리칼처럼 고독도 존재의 일부분이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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