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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는 모두 귀여워 ㅣ 작은 스푼
아시하라 가모 지음, 나카다 이쿠미 그림, 김윤수 옮김 / 스푼북 / 2025년 4월
평점 :
특별한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쓴 작품들을 보면서도 놀라지만 이렇게 사소한 일상을 가지고 쓴 작품들도 못지않게 놀랍다. 이런 걸 보면 ‘이런 일도 책이 돼? 그럼 나도 쓰겠네’ 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런 게 더 어려울 것 같다. 일상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순간을 특별하게 포착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으니까. 일상을 특별하게. 이게 진짜 대단한 능력인 것 같다.
처음 보는 일본 작가의 책이다. (국내에 이 책만 번역되어 있음) 초등학교 3학년 교실의 세 가지 사건을 엮어 한 권의 동화로 만들었다. 주인공은 아야라는 여학생이다. 수줍어하고 소극적인 면도 있지만 속으로는 잘해보고 싶어하는 의욕이 충만하기도 하다. 첫 번째 이야기, [평소와 다른 특별한 나]에서는 연극 발표회, 두 번째 [병아리가 되지는 못하지만]에서는 모둠별 춤 발표회를 한다. 아야가 잘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 망설일 때, 그 마음을 알아본 친구들이 추천하고 응원해주어 아야는 열심히 연습한다. 위에서 내가 사소한 일상이라고 했는데, 사실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야도, 아야네 반 아이들도 어떻게 보면 평범하지 않다. 평범하다기에는 너무 좋은 성품들을 갖고 있다. 일단 주어진 학급의 행사에 시큰둥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배역을 정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시기하거나 불만을 품지 않고 친구들을 격려하거나 축하해 준다.(이게 특별히 인상 깊었다. 교사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서) 그리고 맡은 일을 잘해내려고 스스로 찾아보며 기본 이상의 노력을 한다. 도서관에 가서 관련된 책을 찾아본다든가, 집에 가서 영상을 찾아본다든가 등등 시킨 일 이상으로 스스로의 정성을 더 들인다.
첫 이야기의 주요 소재는 율무열매인데, 아야는 실수로 그걸 귓구멍에 넣어버렸다. 걱정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특별한 일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표시로 생각한다.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귓구멍에 들어있는 율무열매 때문인가 생각하는 아야가 허당 같으면서 귀엽다. 아이들의 책임만은 아니겠지만 요즘은 해맑은 아이들보다 어둡거나 꼬였거나 예민하거나 거칠거나 퉁명스럽거나 부정적이거나 하는 아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이런 아이, 이런 교실이 오랜 추억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너무 완벽하면 아이들이 아닌 것, 세 번째 이야기 [어떤 딸기도 모두 귀여워]에서는 남학생 두 명과 아야가 빈 미술실 구멍난 천장 속에 기어들어가 한바탕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ㅎㅎ 그리고 이 편에선 아야가 ‘딸기 경연 대회’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경연 대회가 뭔가 했더니 그냥 혼자서 딸기 한 팩을 놓고 어떤 딸기가 예쁜가 뽑는 일이었다.ㅎㅎ 나도 어렸을 때 딸기는 아니었지만 이런 비슷한 걸 혼자 하면서 놀기도 했었는데, 요즘 이러면서 노는 아이가 있으려나? 아야도 어릴 때 이후 아주 오랜만에 해보았다. 응? 그런데 어릴 때와 달라진 점이 있었다. 챔피언을 뽑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 딸기는 이래서 예쁘고, 저 딸기는 저래서 예쁘고. 결국 아야는 새로운 생각 하나를 갖게 되었다. 이럴 때 아야는 자기만의 공책을 꺼내서 적어놓는다.
딸기는 모두 모양이 달라.
그래서 모두 귀여워.
그래서 모두 맛있어.
-괴테
(괴테가 왜 나와? 이건 아야의 귀여운 무식과 허당력을 보여줌^^)
이렇게 사소한 일로 이런저런 궁리와 상상을 하고 그걸 글로든 뭐든 표현하는 게 내가 느끼는 이 아이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건 큰 장점이자 역량이기도 하지 않을까? 난 교실에서 이런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또하나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아야의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아야와 친구들을 마주치자 장난을 걸었다. 아야가 무반응이자 “에이, 아야는 상상력이 없구나.” 라고 하셨는데, 아야는 내심 이 말씀이 속상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부모님이 웃으며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려 아이에게 일러주었다. 그 말을 듣고 오해를 풀며 선생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아야. 몬스터 부모는 일본이 원조이니 일본에도 “아이 마음에 상처를 주다니, 정서 학대 아닌가요?” 하면서 화를 내는 부모들이 있지 않을까? 고의적 잘못이나 치명적 실수가 아니라면 서로 이해할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말이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장면인데 나는 부러움을 느끼며 읽었다.
이 책은 빵으로 치면 그냥 식빵 뜯어먹는 맛이라고 할까. 누군가는 참 밋밋한 이야기네, 이게 재밌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오랜 기간 읽다보니 이제 나의 취향이 보여. 충격적 반전이나 스펙터클한 사건도 좋지만 평범하고도 살짝 별나고 기특한 이런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작은 이야기들이 좋아. 수없이 많은 작품 중에 이 작품을 출간하려고 번역하신 이유도 그래서일까? 덕분에 잔잔하고 평화로운 동화를 한 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