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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으로 ㅣ 작은 곰자리 86
브라이언 플로카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5년 8월
평점 :
현실적으로 보자면 위험천만한 내용이다. 이 책을 어린이들에게 읽어주고 어린이들이 “저렇게 해도 돼요?” 하고 물으면 “아니 그래서는 절대 안 돼.” 하고 안전교육을 해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ㅎㅎ 현실에서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위험의 요소가 있는 일은 사전에 방지하라고 가르치니까. 사실 그게 맞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하는 책이다.^^
섬에 사는 어떤 남매가 있다.
“자, 내 손을 잡아.
폭풍우가 치기 전에
바다를 보러 갈 거야.”
이미 화면은 어두운데, 신을 신고 있는 동생에게 오빠가 손을 내민다. 무겁게 내려앉은 날씨의 느낌을 불투명한 채색의 그림이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남매는 점점 거세어지는 바람에 맞서며 걸어가, 바닷가 바위 위에 선다. 그 장면은 장관이면서 동시에 두렵다. 자연의 속성은 그렇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너는 내 손을 꼭 잡고, 나는 네 손을 꼭 잡고, 우리는 계속 가 보기로 해.”
아이들은 섬 가장자리로 난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간다. 만나는 모든 풍경이 어둡게 내려앉아 있고, 습기와 바람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폭풍 전야’의 위기감이 감돈다.
등대가 위험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계속 걸어간다.
“온 마을이 텅 비어서 으스스해. 공연이 없는 날의 무대 같아.”
이런 표현들이 매우 실감난다.
화면이 더욱 어두워졌다. 급기야!!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폭풍우가 시작되었다. 남매는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난 지름길을 달려간다.
“우리는 낮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컴컴한 어둠 속을 달려가. 어둠과 바람과 빗속에서는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낯설게 느껴져.”
이런 식의 문장들이 참 좋다.
가까스로 (다행히도) 불 켜진 집을 향한 아이들의 뒷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손전등을 든 엄마와 끌어안는 장면. 집 안에서 바라보면 창밖의 풍경은 방금 그들이 지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납고 무섭다. 폭풍우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밤이 지나가듯 폭풍도 지나가.”
“천둥도 잦아들다 저 멀리로 사라지고, 밤은 새벽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반가운 산들바람이 마지막 남은 구름 한 조각까지 멀리멀리 밀어 보내.”
남매의 위험천만한 모험은 독자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작가의 설정이었겠다. 남매의 모험은 선택이었으나 우리는 선택하지 않아도 폭풍우 아래 있게될 때가 있다. 그러나 찾아올 집이 있고(집안은 따뜻하고 비바람 속에서도 안전하게 잠들 수 있고), 내 손을 잡고 함께 걷거나 뛰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폭풍우는 영원하지 않다.
“그래서 너와 나는 계속 가 보기로 해.”
여러번 반복되었던 이 문장으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인생은 없다. 하지만 나아가려는 인생은 안주하지 않는다. 폭풍우가 예상될지라도 ‘계속 가 보기로’ 한다.
비오는 날 아침이 휴일이면 “비오는데 안 나가도 된다” 면서 기뻐하는 나. 실내에서 보는 비만 좋아하는 나. (비멍은 뷰 좋은 까페에서) 이 책을 읽으며 “세상에나, 이런 큰일날 일을!” 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는 이제 인생에서 도전을 졸업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희망사항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어둠을 뚫고 나가는 용기를 갖길, 그러다 눈앞에 따스한 집의 불빛을 발견하는 환희도 경험하길 응원한다.
이 책은 저명한 두 작가의 협업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글작가 브라이언 플로카는 늘 그림작업을 함께 해오다 이번에 처음으로 다른 작가에게 그림을 맡겼다고 한다. 그림작가 시드니 스미스는 읽은 그림책이 그리 많지 않은 나도 알아볼 만큼 인상적인 책을 많이 남긴 작가다. 두 분의 협업은 매우 성공적인 것 같다. 문장도 그림도 다 느낌이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