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그 자체 - 교육에 관한 열아홉 편의 에세이 함께 걷는 교육 4
권재원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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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평생 가장 길었던 한 학기를 마치고 힐링과 재충전을 위해 휴식하고 있는데 힐링은 커녕 우울증이 왔다. 두문불출할 수밖에 없으니 평상시 즐기던 책읽기와 리뷰 쓰기에 가장 좋은 조건인데, 입맛을 딱 잃은듯이 책들이 재미가 없다. 교육도서를 읽자니 읽어서 뭐하겠어 어차피 또 원격인데 하면서 부르르 진저리가 쳐진다. 이거 정말 큰일이다. 중증.ㅠㅠ

인기 높은 판타지동화와 이 책 중에서 저울질하다 이 책을 골랐다. 판타지가 날 더 우울하게 할 것 같았다. 그냥 건조한 책을 읽자.

읽다보니 이 책은 건조하다고 표현할 순 없는 책이었다. 끝까지 읽기 위해선 어쨌든 책을 따라가야 하는데 따라가다보면 의식의 흐름이 생겼다. 그게 때로는 위안도 되고 각성도 되고 도전도 주었다. 저자는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학자이고 저술가이다. 이 책에도 저자가 정의한 개념들, 해석들, 견해들이 가득 담겨있었고, 500쪽이 넘는 책을 내가 끝까지 읽었다는 건 어쨌든 웬만큼은 이해할 만했단 뜻이다. 내게 각성을 준 개념이나 견해들을 몇 개 골라 적어본다. (요약이나 생략 등으로 본문과 완전히 같은 문장이 아닐 수 있음)

• 교육의 목표는 좋은 삶과 행복이며 이것은 자신의 가능성과 역량의 확장에서 온다. (46쪽)
모든 구성원이 공동체 개선에 참여하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 즉 민주주의 사회에서만 사람은 완전한 행복에 이르며 온전한 의미의 교육이 가능하다. (47쪽)
공론에 참여할 때 배울 수 있는 방법과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교육이란 사람을 민주시민으로 바꾸는 것이며, 민주시민이란 교육받은 사람이다. (48~49쪽)

• 팔방미인과 홈파인 공간에 대한 설명 (62~81쪽) :
교육은 가능성을 확대하고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
교육은 기쁜 만남을 만들어 가려는 성향, 그리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역량을 길러 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 사람은 반복 속에 차이를 새기는 존재다. 배움의 즐거움을 복원하는 것, 반복에서 차이를 생성하는 과정으로서의 교육을 되살려야 한다.(137쪽)

• 이 외부로부터의 재료가 바로 교양이다. 아동기까지 주어지는 외부자극의 양과 질, 그리고 청소년기의 교양이 이후 인성과 역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청소년기야말로 교양을 쌓을 결정적 시기이다. (202~203쪽)

• 창조성을 기르는 교육은 결국 민주시민 교육, 기본교육, 호기심을 북돋는 교육, 그리고 도덕교육이다. 창조적인 교사는 학생의 동기를 소중히 여기며 학생이 호기심과 도덕심을 바탕으로 지루할 수 있는 인류의 지덕, 문화적 유산을 배우고 익히며, 이를 앞으로 마주치게 될 자신과 동료의 문제를 발견하는데 사용하는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는 교사다. (312쪽)

• 교육은 가치를 획득하는 방법을 보편화하고, 가치 자체를 다원화함으로써 사회가 전체적으로 평등해지는 데 기여한다. (517쪽)

아니, 이거 다 적고 있다간 너무 길어져서 안되겠다.ㅎㅎ 읽다가 메모해 놓은 부분을 보니 이런 생각들도 나를 지나갔었구나.

■ "믿고 맡겨두고 기다리면 아이들은 스스로 내면의 힘을 발휘하여 성장한다" 와 같은 착하디착한 성장의 교육관에 대한 지적. 나는 한참동안 이런 교육관을 갖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있었다. 나는 왜 아이들을 전적으로 믿지 못할까? 내게 존중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훌륭한 샘들은 아이들은 믿는대로 된다는데 왜 나는 20년을 넘게 해도 안 그런것 같을까?

이 책에서는 인간에게는 성장과 성숙 이상의 무엇이 있기에 교육이 소용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 무엇이란 바로 '발달'이다. 발달은 자연적인 과정이 아니다. 여기에서 여러 교육학자들의 발달 이론들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해 주었다. 그동안의 저서들에서 그랬듯 쉽고 명료하게 설명해 주어서 정리가 잘 됐다. 확실치는 않지만 내가 보기에 저자는 '발달에는 의도적이고 사회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즉, 교육자의 역할을 중요하게 보는 비고츠키의 이론과, 평생을 발달의 단계로 규정한 에릭슨의 이론에 비중을 둔 것 같다. 저자는 전작인 <그 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에서 평생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책에서도 그러하다. 매우 공감한다. 아, 이 대목에 오니 비로소 읽기에 탄력이 붙네. 아직 독서를 포기할 나이는 아닌 것이지. 나는 아직도 공부할 기회가 많이 남은 거지. 기회라기 보다는 필요성이.ㅎㅎ

■ 배움에 대해 정의하는 11장에서 "나는 내가 만든 이야기다" 라는 문장과 진실성(verisimilitude)의 중요성에 대해서 나온다. 내 친구 한 명이 "너의 경쟁력은 진정성이야."라는 말을 내게 했었다. 오~ 그럼 나는 배움의 중요 조건을 갖추고 있는거네? 보잘것 없는 삶이지만 나 자신과 연결해보려는 태도는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상당히 중요한거구나. 그걸로 어떤 열매를 맺은 바는 없지만 이게 장점이라니 다행이네.
"앎을 이야기로 진술할 수 있다는 것은 앎을 계속 삶 속에서 활용하여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뜻, 즉 진실하게 알고 그것을 진리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252쪽)
아이들을 지도할 때도 배운 것을 자꾸만 자기 이야기로 만들어보게 하는 시도가 필요하겠다.

이제 향후 약 10년 (되도록 정년까지는 가지 않을 생각임. 아니 내 역량으로는 갈 수도 없음) 남은 교직인생에서 내가 염두에 두고 추구할 것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 내 나름대로 나의 교육활동에 적용할 바는 이렇다.
1. 깊이 생각하게 하는 교육
끈기있게 생각한다는 말로 바꿀 수도 있다. 나 자신이 끈기있게 생각하지 못한다. 골치아프면 일단 덮기.^^;;;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심하다. 일부 특출한 아이들을 빼고. 이 책을 보면 언뜻 생소하거나 성급한 연결 같아보이는 명제들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창조성 교육이란 곧 민주시민교육이다." 같은. 그런데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설득이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의 끈기있는 사유와 그것을 차분히 펼친 전달력 덕분일 것이다. 교사들에게는 이런 면이 필요할 것 같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으로 이끌고 사유할 시간을 주고 사유의 산물을 건져올리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진을 빼는 과정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그 산물이 쥐꼬리같을 때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크게 마음을 먹어야 이런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런 수업이 좀더 일상화되도록 잘 안되어도 계속, 던져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생각의 연습. 교사도 필요하고 학생도 필요하다.

2. 감성을 일깨우는 교육
삶의 재미를 알게 하는 교육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나는 사실 이런 교육을 할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다. 내가 삶의 재미를 다양한 곳에서 맛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험도 극히 제한되어 있고...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안내해주고 싶다. 언젠가 독서교육 연수에서 송승훈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 목표는 이거예요. 아이들이 나이 들어서도 돈 안들이고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잊고 있었는데 이 책에도 비슷한 뜻의 내용이 나와서 기억이 났다. 소박한 행복거리는 도처에 많지만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감성은 단번에 생기지 않는다. 특히 인간이 긴 역사를 통해 남긴 예술적 유산들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소양을 갖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도 나도.

긴 교직경력에도 불구하고 교육 그 자체에 대한 나의 인식은 교대 1학년 첫 교육학 시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 책은 나의 생각 확산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일단 아이들이 공부는 왜 해요? 라고 묻는다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해야지." 보다도
"너의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서 하는거야. 사람은 자신의 가능성이 확장될 때 행복해지는 존재거든." 하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

난 이 책이 교사들이 읽어야 하는 책인 줄로만 알았다. 왠지 안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교사로서의 삶이 아주 많이 남은 것이 아닌데다가 난 이제 가소성이 많이 떨어져서.... 읽은들 뭐하겠나 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꼭 교사로서만 읽게되진 않았던 것 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시민'으로 읽었다고 할까? 교육이라는 개념 하나로 이렇게 구석구석을 비출 줄은 몰랐다. 교육이 이렇게 크고 중요한 개념인 줄 교육자인 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민망함.... 동료샘들과 천천히 다시 한번 읽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20대의 시민인 내 자식들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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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초 대나무 숲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황지영 지음, 백두리 그림 / 우리학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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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영 님도 이제 무조건 읽고보는 작가님이 됐다. 이 책을 읽고보니 더욱 그랬다. 전작 <우리 집에 왜 왔니> 리뷰에서 심리묘사와 긴장감을 장점으로 꼽았는데 이 책에서도 그 두 가지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정말 큰 힘이다. 한 번도 끊지 않고 한 호흡에 끝까지 가게 만드는 힘.

차분한 색채의 표지와 제목은 초등용 동화라기보다는 청소년소설 정도 되는 느낌을 준다. '대나무숲'이라는 소재도 그렇다. 하지만 본문의 삽화에는 원색이 많이 사용됐고 이야기의 주인공은 6학년 여학생들, 배경은 신도시의 신설 초등학교다.

세 아이가 번갈아 화자로 등장한다. 유나는 아이들말로 '인싸'라고 할까? 팔방미인에 성격도 좋다. 건희는 유나의 짝이다. 지난 학교에서 아픈 기억을 남기고 전학왔다. 일부러 이사 온 것이니 그정도의 어두운 사연이 있는 것.... 민설이는 유나의 5학년때 단짝이지만 지금은 옆반이다. 유나를 잊지 못해 쉬는시간마다 찾아온다. 말하자면 삼각관계인 셈. 그 삼각형은 매끈하진 못해도 어느정도 모양을 유지했지만, 보다못한 건희가 새 반에서도 친구를 사귀어야하지 않겠냐고 한마디 했다가 완전히 어그러져 버린다. 이 갈등을 발단으로 해서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며 갈등은 심연으로 소용돌이쳐 들어간다.

등장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대표하여 보여준다. 쾌활하고 이해심 많은 아이가 사건에 휘말리며 억울함과 분노가 쌓여 전에 없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거칠게 던지는 말습관 때문에 찬사를 받다가 어느 순간 학폭 가해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정신이 돌아온 아이도 있다. 그리고나서 보니 박수를 보내던 친구들은 모두 모른척 입을 씻고 있다. 물귀신처럼 붙들고 늘어져도 내꼴만 사나워질 뿐이다. 결국 포기하고 이사를 결심해 이곳으로 왔다. 새 학교에선 모든 걸 새롭게 하리라 결심하지만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자신의 캐릭터에 낙담한다.
폭력적인 아빠와 이혼하고 엄마와 단둘이 신도시에 자리잡은 아이도 있다. 환경은 새로우나 상처는 아직도 남아있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너무 어렵고 내가 잘하고 싶은 것도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 일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고 마음과 다르게 사고는 터지고 관계는 꼬이기만 한다.

이 세 주인공 외에도 생각없이 말 옮기는 증폭스피커들, 고립된 친구를 돕는다는 사명감에 심취하여 어느새 그 포지션을 즐기고 있는 아이, 동네 축구처럼 이리 몰려갔다 저리 몰려갔다 하는 아이들 등 수많은 아동 군상들을 볼 수 있다. 아니 꼭 아동이라 제한할 것도 없겠다. 인간군상이라 하면 되겠다. 그러면 어른 등장인물들도 포함시켜 볼까? 사면초가에 빠진 아이들에게 잠시의 휴식을 제공해주며 과하지 않은 조언도 해주는 보건선생님, 새로운 생활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모든걸 방어하려 하다가 결국 딸 때문에 용기를 낸 민설 엄마 등.

그러고보니 이 책에서 그려낸 어른들은 모두 평균 이상이구나. 그래서 이 책은 갈등의 토네이도가 잠잠해질 무렵 훈훈한 결말로 끝맺을 수 있게 된다. 초중반의 올라가는 피치에 비해서는 좀 급격히 떨어지는 느낌일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최대한의 긍정적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상처를 겪었다. '흉터'는 이 책의 키워드이며 중의를 띤 상징이기도 하다. 나는 상처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상처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미 난 상처라면 어떻게 봉하고 치료하는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몸에 난 상처는 의사선생님들이 워낙 잘해주시니 믿고 따르면 되지만 마음과 관계에 난 상처는.... 미련스럽게도 인간은 상처를 헤집고 나을만하면 또 헤집어 키우고 키워서 결국 회복불능으로 만들어 놓을 때가 많다. 그걸 옆에서 부추기고 같이 헤집는 사람들도 많고 심지어 부모가 그러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정말 다행이다. 그 결말을 위해 평균 이상의 어른들이 등장한 것은 필연이다. 물론 그 일을 모두 어른들이 한 것은 아니다. 어른은 조연일 뿐이다. 아이들이 이 토네이도를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제야 나는 하루 종일 흉터를 잊고 지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걸까?" (170쪽)

어른 독자로서의 나는 이 책의 보건선생님 정도의 어른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상처는 단시간에 낫지 않지만 나을 방법과 방향이 있다. 그걸 알고 간다면 회피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좀 멀리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상처를 내지 않는 것도 가르쳐야 하지만 났을 때 회복시키는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도 교육일 것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일단 재미없어서 못 읽겠다는 아이는 없을 것 같고^^, 아이들끼리도 멍석만 깔아준다면 이야기를 꽤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도 대부분 '흉터'를 가지고 있을테고 어떤 아이는 현재 통증이 극심할 수도, 어떤 아이는 지나간 흉터를 매만지고 있을수도 있다. 그 아이들에게 책 속 친구들이 겪는 이야기는 참고가 되는 한편 위로도 된다.

좋은 고학년 장편이 무수히 많은데, 이 책도 끼어드네. 아 경쟁율이 넘 치열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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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 스파이 1 : 사라진 보물 키드 스파이 1
맥 바넷 지음, 마이크 로워리 그림, 이재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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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유명한 그림책을 많이 쓴 분인데, 제목만 들어보고 실제 읽어본 책이 거의 없네....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정도만 읽어봤다. 모자 시리즈를 쓰고 그린 존 클라셴 그림작가와 협업한 작품이 많구나. 이 책은 작가의 동화책으로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책이라고 한다.

그림책 작업을 많이 한 작가라서인지 동화책이라도 그림이 반... 좋다.ㅎㅎ 글자체도 일반적인 명조체가 아닌 조금 더 두껍고 네모진 폰트인데 읽기 편하고 눈에 잘 들어온다.

작가는 이 이야기가 자신의 어린시절 실화라며 너스레를 떤다. 미국의 한 평범한 소년이 영국여왕의 전화를 받아 스파이의 임무를 띠고 프랑스를 거쳐 소련(지금이 아니고 작가의 어린 시절이라서)까지 가서 벌어지는 이야기.

내가 좀 이해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유머코드에서도 그러한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이런 유머다. 요즘 순위권에 올라있는 책이라 아이들의 선호 경향도 알아볼 겸 읽었는데 나한테는 재미가 없었다. 마치 모임에서 엄청 황당한 얘기로 너스레를 떠는데 나 혼자만 안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ㅎㅎ
마지막에 "그래서?"라고 세상 멍청한 얼굴로 질문을 해서 모임의 분위기를 깨는 일은 없도록 하자.^^;;;

어쨌든 맥은 어린 나이에 영국 여왕에 프랑스 대통령에 소련의 KGB 요원까지 만나게 되었으니 이런 횡재가 있나. 물론 그걸로 얻게 된 건 영국여왕이 보내준 비스킷 선물 뿐이었지만. ("지난번에 먹은 그 맛이었다." 부분에서 한 번 풋, 하고 웃음)

어린이 탐정 이야기는 많지만 스파이 이야기는 처음인데, 결과적으로 맥은 임무를 달성했지만 본인의 역할이 무엇이었나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ㅎㅎ 그러니까 가슴 졸이는 추리물, 어린 주인공의 기지와 활약, 이런 걸 기대해서는 안되는 책이다. 하지만 마지막장에서 영국 여왕에게 또 전화를 받는 걸 보면 맥의 모험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걸 알 수 있다. 시리즈가 몇 권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맥은 점점 성장해 갈테고 맥의 활약 또한 더욱 흥미진진해겠지.^^

영국, 프랑스, 소련 같은 실제 국가들이 배경으로 나오고, 실제 인물이 아닌 주인공들도 나오지만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들과 관련 사건들이 언급되기도 한다. 관심있는 아이들은 작가의 관점과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며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물론 그냥 사건만 따라가며 읽어도 되고. 머리에 쥐나지 않고 감정 소모도 없이 가볍게 읽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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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 - 2020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미래주니어노블 5
크리스천 맥케이 하이디커 지음,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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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봐도 끌리는데 2020 뉴베리 아너상을 받은 책이라니, 게다가 '무서운 이야기'라니 요즘 읽기 딱이잖아? 나는 무서운 걸 싫어한다. 영화 중에선 공포영화를 가장 싫어한다. 하지만 이 책의 무서움은 내가 싫어하는 칼질, 도끼질, 피 낭자... 이런 잔인함 쪽은 아니었고 으시시... 귀신... 이런 괴기 쪽도 아니었다. 그런데 무서운 건 맞았다. 제대로 무서웠다.

여우 일곱 남매는 밤마다 엄마한테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데, 엄마는 밑천이 다 떨어졌다. 새끼여우들은 엄마가 잠든 틈을 타 '습지동굴의 늙은 이야기꾼'을 찾아간다. 겁먹어 주저하던 막내까지 함께.

늙은 이야기꾼은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의 전제와도 같은 아주 중요한 말을 먼저 했다. 끝까지 읽고 나서 다시 돌아와보게 되었던 그 말은 이런 것이다.
"모든 무서운 이야기는 두 가지 면을 갖고 있다. 달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처럼 말이지. 너희가 끝까지 들을 만큼 용감하고 슬기롭다면, 그 이야기는 세상의 좋은 모습을 밝혀줄거야. 너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고, 너희가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주겠지."
"하지만 말이야. 너희가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무서워서 끝까지 듣지 않고 꽁무니를 뺀다면, 이야기의 어둠이 모든 희망을 집어삼킬 수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너희는 두 번 다시 굴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야. 엄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영원히 젖내를 풍기며 삶을 허비하게 되겠지."

이야기꾼은 미아와 율리라는 두 어린 여우가 겪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가 한 편 한 편 끝날 때마다 새끼여우들은 한마리씩 집으로 슬금슬금 내뺀다. 마지막 이야기까지 남은 아이는 막내 뿐.) 두 어린 여우는 도와줄 누구도 없는 미지의 험난한 세상에 내팽겨쳐진다. 미아의 스승님은 어느날 '노란악취'에 물든 후, 이빨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여우가 되어 미아 남매들을 물어뜯었고 꼬리털만 물린 미아는 겨우 도망쳐 길을 떠났다. 앞발 하나가 짧게 태어난 율리는 누나들의 괴롭힘 속에 엄마의 사랑만으로 근근히 살다가 어느날 발톱마왕의 출현으로 그 가는 행복의 끈마저 끊어졌다. 그런데 그 발톱마왕은 바로 아빠였다는 사실.

둘의 만남은 미아가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걸 율리가 도와주면서부터다. 그런데 미아를 그렇게 만든 건 그림책 작가인 인간이다. 그녀는 토끼 등의 동물들을 잡아 가두고 그림작업이 끝난 후에는 죽여서 내장을 꺼내고 짚을 넣어 박제로 만든다. 섬뜩한 한 마디. "내가 이야기를 쓰면 넌 그 속에서 영원히 살게 돼."
근데 그 작가의 이름이 베아트릭스 포터? 피터래빗 시리즈를 만든? 아니 실존했던 작가를 이렇게 악인으로 등장시켜도 되는 건가? 무슨 사연이 있는 거지? 어리둥절하다. 인간이 보기에 고상하고 아름다운 인간도 동물 입장에서는 얼마나 끔찍한지 말해주려는 건가? 하여간에 이 장은 여우 입장에서 진짜 숨막히도록 무서움.ㅠ

둘이 만난 후로부터의 이야기는 여전히 잔인하도록 험난한 세계에서 서로를 지켜주며 닥치는 일을 겪어내는 이야기다. 산사태처럼 밀어닥치는 고난에 여유있게 생각할 틈은 없다. 그래도 둘은 서로를 버리지 않았다. 작가 인간에 이어 가장 무서운 존재가 그들에게 다가왔는데, 그는 동족(여우)이었지만 '약한 자를 경멸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폭력적인지 절절히 느낄 수 있다. 그는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따라붙어 그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결국은....

그러니까, 이 책에서의 무서움은 환상 속의 공포가 아니었다.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현실의 두려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의 무서움이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에서 '레질리언스'라는 낱말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미도서관사서협회에서 일하는 크리스나 그라디는 이 작품에 대해서 레질리언스(회복탄력성)를 언급하였다.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모든 책을 선택한 후에 깨달았어요. 이 책의 각각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레질리언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요."
이 책은 보통의 어린이들이 읽는 무서운 이야기와는 다르다. 이 책은 여우들의 모험과 삶을 통해 인간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극한 상황, 무서운 상황, 두려운 상황에서도 그것을 견뎌내며 사는 율리와 미아의 모습을 지켜본다. 끔찍한 슬픔 속에서도 자신이 그것을 감당해 내면서 책임감 있는 어른 여우가 되어 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 전개 방식이 아이들에게 레질리언스를 기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눈 앞에 닥친 나쁜 상황에서 숨거나 도망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히 바라보고 견뎌내며 이겨내는 마음을 키워줄 것이다.]

나도 책의 어떤 대목에서 그걸 느꼈기에 해설에 더욱 공감이 갔다.
"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두려움을 이겨내고 꼭 필요한 일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구했다고 생각해."
"너는 오랫동안 싸워 오며 살아남았단다.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모를 뿐이야." (329쪽)

인생은 고해라는 흔한 말을 곰곰히 되새겨 봐도 인간의 탄생은 공포영화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또는 아이들의 인생이 두 여우만이야 할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무서운' 이야기임과 동시에 '용기를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4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읽기에 크게 부담은 없을 것 같다. 중간정도 독서력을 가진 고학년이면 무난히 읽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하고 묻는 아이들처럼, 뒷장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장점이라고 내가 생각하는점, 예측이 안된다. 기시감 같은 것도 없고 아 이렇게 끝나겠구나 싶은 느낌도 없다. 마지막장까지 전혀 열리지 않는 상자를 들고 여행하는 느낌이다. 그 상자를 중간에 버리긴 싫고 말이다. 그래서 끝까지 읽게 될 것이다. 작가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한 것이다. 뉴베리 아너라는 묵직한 상은 그래서 주어진 것이 아닐까.

동화를 읽고 가끔 드는 생각.
'이거 애니메이션으로 안 만들어지나?'
이 책은 특히, 머리 속에 영화 속 장면이 그려진다. 무섭고, 휘몰아치고, 벗어나고, 애틋하고, 또 휘몰아치고... 그리고 잔잔한 관조까지. 화면의 주 색조가 바뀌어지는 것까지 느껴지는 이 생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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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보름달문고 80
이나영 지음, 유경화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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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년 단편집을 오랜만에 읽었다. 히죽 킥킥 웃음이 나는 대목도 있었지만 대체적인 코드는 웃음이 아니었다. 색깔로 표현한다면 이 책의 표지와 같았다. 어두운 푸른색.

6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첫 편이자 표제작인 [블루 마블]의 화자 '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혜나를 동경하고 친해지려 노력한다. 그반에 전학온 은서는 혜나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능력치는 혜나 못지않은 것 같은데 집안 환경은 베일에 싸인 느낌? 혜나는 '나'를 시켜서 은서네 집을 알아내고 놀러가겠고 청한다. 흔쾌히 승락하는 은서. 주소에 쓰인 '초원빌라'는 재개발지역의 허름한 빌라였고 은서네 집은 지하 원룸이었으며 은서는 할머니랑 둘이 살면서 구슬로 머리핀을 만드는 부업을 했다. 이 모든걸 은서는 스스럼없이 공개한다.
이러기 쉽지 않은데 은서가 이럴 수 있는 이유는 독자의 상상에 달렸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 자존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한 애를 썼을 것 같은데.... 은서는 친구 손님들에게 '블루 마블' 게임을 제안한다. 가상의 세계 여행에서 은서는 당당하고 모르는 것이 없다. 오히려 "거짓말! 너 미국, 영국도 다 다녀왔냐?"하고 묻는 혜나 얼굴이 벌게졌을 뿐.

잘사는 못된 아이, 못사는 착한 아이를 이분법으로 갈라놓는 구분은 싫다. 하지만 주눅들기보다 자신의 세계를 세워나가는 건강한 아이를 보는 느낌은 좋았다. 이 나라에서 이 아이가 살아나가며 얼마나 좌절을 겪어야할까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그래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긴 싫다. '나'도 살며시 은서와 우정의 눈빛을 나눈 것처럼, 그렇게 부드럽고 친절하면서도 당당하게, 세상을 헤쳐나가며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두번째 작품 [노란 포스트잇] 노란 포스트잇 하면 생각나는 것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열린 결말에 간절한 바람을 얹어 보지만 우리의 트라우마가 먼저 슬픔을 몰고 오는 것 같다.

[봄날의 외출]은 흐뭇하다. 귀엽지만 건사하기 힘든 쌍둥이 남동생들과 아빠차를 타고 춘천에 닭갈비를 먹으러 가.....는 장면은 TV속 장면이다. 아빠는 연예인이 아니고 화물트럭 기사다. 쉬는 날엔 놀러다니기보단 푹 쉬어야 한다. 그런 아빠랑 데이트하러 모처럼 나온 봄날, 부녀는 춘천이 아닌 어디에서 닭갈비가 아닌 무엇을 먹었을까? 마치 첫사랑의 연인들이 보잘것 없는 것을 먹으며 데이트를 해도 서로가 있으면 웃음만 나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현실에서 그건 오래가지 않는다지? 그래도 이 부녀의 행복은 탄탄하다고 믿는다. 그들의 만족에서 나온 에너지 덕분에. 그게 큰 추진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 남자의 그녀] 이게 젤 웃긴 이야기였다. 연수는 동원이에게 반했다. 적극적인 연수는 동원이를 쫓아다니려 하지만 '그녀'에게 번번히 막힌다. '그녀'는 바로 동원이의 기사이자 매니저인 엄마다. 말하자면 동원이는 마마보이였던 것이다.
연수는 위험한 상황에서 동원이 엄마를 구하고, 그 야무짐에 감탄한 엄마는 연수를 여친으로 (적극) 인정한다. 하지만 이 일을 어째? 이제 정이 떨어져버렸으니. 아들 가진 엄마들 꼭 보세요. 아들 장가보내고 싶으시면.ㅎㅎㅎㅎ

[검정 가방] 가장 읽기 힘든 이야기였다. 나는 엄마품에서 온실속 화초처럼 자라나 험한 일을 겪어보지 못했다. 고생 안했으면 좋은거 아니야? 공감능력 면에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화가 나고 답답하지만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 유년기 성폭행(추행)은 실제로 상당한 비율로 일어난다고 한다. 이걸 막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이런 인간들은 다시는 세상 빛을 못보게 해주든가 피를 토하며 후회하게 해주면 좋겠다.

마지막 이야기 [어느 날 고래가]도 힘들고 답답하다. 공부 압박이 너무나 심한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유유상종이어선지, 내가 서울 변두리 별볼일 없는 동네에 살아선지 주변에서 이런 케이스를 보진 못했다. 하지만 상당히 있는 사례라고 한다. 드라마 못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 이야기엔 상징과 비유도 사용되었지만 민낯의 이야기들은 정말 끔찍할 거 같다.
"왜 저러고 살까."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보고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뭐하고 있냐. 한심하다."
이 간극이 좁혀지기 전까진, 아니 이렇게 유소년 시기를 담보해야만 남을 이기고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이런 작품은 계속 쓰여지겠지.ㅠㅠ

이 책을 잘 읽었고 추천하지만, 이런 책을 아이들과 깊이 읽을 자신은 잘 생기지 않는다. 그저 읽고 스스로 생각해보고 깊어지길 바랄 뿐이다. 무슨 말을 보태고 싶지가 않다. 나부터가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부족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무슨 답을 아는 것도 아니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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