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배프! 베프! - 제2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반달문고 40
지안 지음, 김성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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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보고 얇은 두께에 ‘저학년용인가?’ 했는데 펼쳐보니 글자 크기가 작은 편이었다. 읽어보니 중학년용으로 추천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고학년이 읽지 말란 법은 없다. 어른인 나도 재미나게 읽었으니까.

아동 급식카드가 소재로 등장한 책은 두 번째 읽는다. 첫 번째는 윤숙희 작가님의 <꼬르륵 식당>이었다. 그 책에선 세 주인공 중 한 명이 이 급식카드를 갖고 있었다. 사용할 때마다 누가 볼까 싶어 눈치를 본다.

이 책의 서진이는 좀 다른 캐릭터다. 순수하고 해맑다. (흔히 비꼬아서 사용하는 ‘뇌가 청순하다’... 류의 뜻이 아니고 좋은 뜻이다.) 그렇다고 눈치없고 염치없어 민폐를 끼치는 유형도 아니다. 어떻게 이런 인물을 창조하셨지? 이것도 작가의 능력일 것이다.

두 번째 인물, 서진이의 베프 유림이도 이쁘다. 서진이에게 먹을 것을 잘 사주고 용돈이 들어있는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걸 보면 서진이와 집안 형편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런 경우 양쪽 아이들이 극단적인 캐럭터로 설정되어 갈등을 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선 그렇지 않았다. 그런 점이 너무 맘에 들었다. ‘갈등 없이 기승전결이 되겠나?’ 그런 염려는 뚝!!^^

세 번째 인물, 김소리는 셋 중 가장 어른스럽다고 보겠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세상 쓴맛을 좀 안다고 할까. 소리도 급식카드를 갖고 있다. 서진이는 이제 막 받은 초짜고 소리는 오래된 경력자다. 아주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어서 서진이에게 참고가 된다. 다만 눈치를 보는 면은 좀 있다. 편의점에서 산 것을 거기서 당당히 먹지 못하고 공원으로 가져와서 먹을 정도로.... 그 바람에 길고양이에게 참치를 나눠주고 자신의 성을 붙여 김소망이라는 고양이 이름을 지어주기도 한다.

작가님은 서진이를 통해 도움 받는 아이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받기만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호구를 뜯어먹는 몰염치한 인간도 많다고는 들었는데, 보통의 심리는 서진이와 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여기서 떡볶이 먹을 건데, 그럼 너 나 먹는 동안 안 먹고 있을 거야? 떡볶이 먹고 싶다며? 나도 먹고 싶단 말이야. 네가 많이 사줬으니까 나도 사 주고 싶단 말이야. 맛있는 거 같이 먹고 싶단 말이야. 친구는 그러는 거거든!”
유림이 엄마는 교양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서진이 앞에서 절대 내색하지 않았고 대신 유림이한테 “서진이 밥 뺏어먹지 말라.”고 혼을 냈다. 하지만 그게 서진이에게는 상처다. 나도 유림이 사주고 싶다고~~ 비록 급식카드지만, 그래도 나눠먹고 싶다고~~~

솔직히 나라도 유림이 엄마처럼 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꽤 교양있다고 안심하며 살았을 테지. 음 하지만 안심하면 안 돼~~ 다 티 난다고~~~ 유림이가 “그럼 이거 우리 엄마한테 비밀이다. 약속.” 하고 귓속말을 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딸기우유 원 플러스 원에 뛸 듯이 기뻐하는 두 아이. 너무 이쁘다. 편의점 원 플러스 원은 정말 너무 사랑스럽다니까.ㅎㅎㅎ

나는 뻔뻔하고 못된 아이도 싫지만 너무 눈치보는 아이도 보기 딱하다. 윤가은 감독 작품 <우리들>에서의 선이처럼. 물론 선이는 착한 아이다. 하지만 별로 친구가 되고 싶진 않다 솔직히. 비교해서 좀 그렇지만 친구를 사귀라면 난 서진이! 우리 아이들이 상황에 따라 도움을 받을 줄도 도와줄 줄도 고마워할 줄도 당당할 줄도 아는 아이들이었음 좋겠다.

쓰고나니 내 리뷰가 작품을 너무 평면적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네. 이게 다가 아니에요. 읽어야만 알 수 있는 밀착취재 생활 다큐 같은 느낌의 동화. '설정'은 다큐보다도 훨씬 적어요. 거기다 심리묘사는 보너스죠. 감정 낱말을 직접 사용하지 않은 심리묘사가 오히려 더 생생합니당.

잘 쓰는 작가들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시는 거지. 너무 노력하는 사회인 것 같아. 좀 안그랬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 덕에 오늘도 재미난 동화 한 권을 읽고 학급문고에 추천책이 한 권 더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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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저어써 2022-01-13 13: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감정어 없는 문장으로도 깊이 공감하게 된다는 말씀에 책을 다시 보려 합니다. 그 비밀은무엇인지 혹시 찾으셨나요?

기진맥진 2022-01-14 02:44   좋아요 1 | URL
슬프다 기쁘다와 같은 직접적인 감정 낱말을 잘 사용하지 않지만, 대화글과 행동 묘사로 충분히 느껴져서 그렇게 썼습니다. 이 책 좋게 읽으셨나봐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설아가 달라진 이유 별숲 동화 마을 30
최은영 지음, 김다정 그림 / 별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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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참혹한 일이 얼마나 일어나고 있는 건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세상에 악마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내가 살면서 직접 보진 못했으니 그 수가 많은 건 아니겠지만 존재는 한다. 아니 나는 평탄하게 살아왔으니 내 느낌보다는 훨씬 많을 수도 있겠다. 그 악마는 태어나는 걸까 길러지는 걸까. 악마의 갱생은 가능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 악마의 손아귀에 속수무책으로 내팽개쳐진 어린 목숨들을 어찌해야 할까. 정말 그런 데서 태어났다는 죄밖에는 없는, 아무 힘도 방법도 없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고통당하고 있을 아이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다. 표지에서부터 딱 느낌이 왔다. 공포와 고통 속에 오래 내팽개쳐진 아이의 표정. 절대 기분 좋게 읽을 수 없는 책임을 느낄 수 있다. 그 공포는, 악마는, 낯선 곳에서 오지 않았다. 바로 집 안에 있었다. 실제로 상당히 많은 경우 성폭력과 학대는 근친간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설아의 경우에는 나이 차이가 좀 있는 오빠였다. 그 사이에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오빠의 마수는 언니에게 먼저 뻗쳤고, 절망한 언니는 세상을 떠났다. 쓰던 휴대폰을 아무도 모르게 설아에게 남겨주고. 부모님도 계셨지만 딸들의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바빴고 집을 자주 비웠다는 이유도 있지만 핑계에 불과할 것이다. 부모는 아들을 감싸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가 실제로 있다는 얘기를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이 책의 화자인 가윤이는 설아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층에 산다. 3년 전 설아네가 이사왔을 때 만나 한때는 꽤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설아는 돌변했고 가윤이와 멀어졌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손댈 수 없는 문제아가 되고 말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하고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으며 때로 공격성이 폭발하는 이 아이를 위해 학교가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하지만 본인과 부모가 동의하지 않는 이상 어떤 조치도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더구나 담임교사는 어머니와 연락을 취하려 나름대로 애를 썼고, 그때마다 엄마는 여러가지 거짓말로 핑계를 댔으니. 하지만 좀더 세심히 살폈다면 몸의 상처를 발견할 수 있었을 테고 그러면 아동학대 신고는 할 수 있었을 테고 엄마를 좀 밀어붙여 설득할 수도 있었겠지. 나를 거쳐간 아이들 중에 내가 모르고 지나간 아이는 과연 없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ㅠㅠ

다행히 설아의 멍자국은 동규라는 친구의 눈에 띄었고, 가윤이도 알게 되었고, 마침 가윤이 엄마는 복지 담당 공무원이었기에 힘을 합해 설아의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현실이었다면 훨씬 더 어려웠으리라. 남의 개인사에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ㅠㅠ

가해자에 대한 이야기는 설아 오빠가 경찰들에 붙잡혀 가는 것까지만 나왔다. 이야기에서는 그정도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에서는 어떤지 궁금하다. 가해자는 충분한 처벌을 받는지, 피해자와의 영원한 분리는 보장될 수 있는지, 재범이나 보복의 여지는 없는지, 앞에서 말한대로 가해자의 변화 가능성은 있는지, 있다면 비율은 어느정도 되는지.... 궁금하다.

이런 음지와 그 음지에서 서식하는 곰팡이들이 사라진 사회가 진정 밝은 사회일 것이다. 햇살이 골고루 구석구석 퍼지는 사회이길 소망하며 마음아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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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같은 제사장 - 베드로전서 2:9의 관점에서 본 창세기
권오윤 지음 / 바라봄(barahBOM)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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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책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신학생이나 목회자만 읽을 수 있는 무겁고 어려운 책도 아니다. 저자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문장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출판사의 깔끔한 편집은 가독성을 극대화시켰다. 현장 예배가 현저하게 적어진 이 시기에 평신도들도 묵상하며 읽기에 적당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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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교 가위 - 2022 읽어주기좋은책 선정도서 마루비 어린이 문학 6
신은영 지음, 김현주 그림 / 마루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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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단순 명확한 상상으로 된 동화를 읽었다. ‘관계’를 자르는 가위가 있다면?‘ 이라는 상상이다. 이름하여 절교 가위!

이 작가님의 책을 이것 말고 두 권 더 읽었는데 주제의식이 분명하고 그것과 딱 맞게 대입되는 상징이나 상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특징이 있다고 느꼈다. 장점이자 단점이지 않을까 싶다. 주제를 잘 전달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너무 도식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단짝 유리와 다정하게 지내던 다운이는 지민이가 전학오면서 위기를 맞는다. 다운이 엄마는 동네 친구 아줌마들의 다툼 중간에 끼어 괴롭다. 동생 다로 또한 사이가 나쁜 두 친구 사이에서 늘 입장이 곤란해 속상해한다. 말하자면 모든 가족이 각각 ’관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쯤에서 핵심적인 소재이자 상상인 ’절교 가위‘가 등장한다. 어떤 언니가 이 가위를 사용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을 다운이가 목격했고, 그 가위를 주워 자기 서랍에 넣어두었다. 갈등은 절정으로 치닫고.... 결국 다운이는 그 가위를 사용하고 말았다.

처음의 반응은 좋다. 모두가 시원함과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온다. 결국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게 되지만 방법을 알 수 없어 애태운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방법! 정말 좋은 방법이자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반이 배우고 있는 국어 단원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닌가! 작가님의 특기는 확실히 ‘맞아 떨어지도록 하기’ 인가보다.^^

스포가 되겠지만 그 단원 제목을 말한다면 <마음을 전하는 글을 써요>이다. 이 책이 매우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겠다. 이 책은 솔직히 나에겐 ‘순수 독서’로서는 큰 매력을 주진 못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읽어주거나 소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목록에 잘 챙겨놓아야겠다.

단순한 상징의 장점은 명확함이지만 다양한 양상을 다 담을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다. 세상 꽤 살아본 나는 ‘관계를 끊는 것’이 꼭 나쁜가? 라는 반론을 마음속으로 하게 된다. 끊어서 후회하는 경우도 있지만 안 끊어서, 못 끊어서 인생 낭비하거나 망치는 경우도 그 못지않게 많지 않은가? 그야말로 ‘절교 가위’를 선물해주고 싶은 관계.

그러나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아이들은 관계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잘 가꾸는 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 소중한 관계 속에서 당당히 위치할 수 있도록 자신을 잘 돌아보는 태도도 중요하고. 비대면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더욱 필요한 가치가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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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정의하는 것은 우리의 행동입니다 - 화폐 속 여성 인물 이야기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콜라보 4
권재원 지음 / 서유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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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교양도서로 매우 적합하고 훌륭한 책을 만났다. 다방면에 지식수준이 높은 편은 아닌 나같은 어른들에게도 아주 좋다. 독서수준이 높은 초등 고학년에게도 좋겠다. 대상 독자가 아주 넓은 책이다.

제목만 보아서는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다. <화폐 속 여성 인물 이야기> 인물이야기책인데 특별히 화폐 속 인물을 다루고 그중에서도 여성을 다룬다! 매우 흥미로운 컨셉이다. 화폐 속 여성 인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은 짐작이 가능한 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린 인물들의 면면이 궁금하고 그들의 생애는 더욱 궁금하다.

차례를 보니 익히 아는 인물도 있었고 이름만 아는 인물이거나 잘 모르는 인물도 있었다. 특히 가장 먼저 실린 곤충생물학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을 잘 몰라서 좀 부끄러운 마음이....^^;;; 읽다보니 익히 안다고 생각했던 클라라 슈만이나 나이팅게일, 몬테소리도 그리 잘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것을 알게되는 재미가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나이팅게일을 꼽겠다. 원래 알고 있던 고정된 이미지와 다르다는 점이 뭔가 통쾌하고 신선했다고 할까. ‘백의의 천사’로 대표되는 나이팅게일의 이미지는 착하고 순결한 희생정신과 함께 순종적인 여성스러움도 연상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 그녀는 일종의 투사였다. 그 대상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그 당시 모든 권한을 가진 이들이 남성이었고 나이팅게일은 그것들에 도전해야 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나이팅게일은 하녀나 다름없는 간호직을 전문직의 위치로 올려놓은 근대 간호학의 창시자다. 엉망진창 주먹구구로 돌아가는 병원 업무에 명확한 표준과 체계를 잡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일을 하는데 전통적인 여성의 순종적 이미지는 가당치 않았다. 그녀는 싸워야 했고 대단한 강단과 고집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실력있고 똑똑해야 했다. 데이터를 표준화하기 위해서는 통계학이 필요한데 그녀는 바로 이 통계학에 능통했다.

다른 인물들도 모두 매력적인데 왜 나이팅게일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을까 생각해보니, 현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할 것 같은 인물이라서인 것 같다. 나는 자기 파트는 확실히 커버하는 사람이 좋다. (본인은 그러지 못함시롱...ㅠ) 입 잘 터는 사람보다는 실력과 책임감으로 말하는 사람이 좋다. 지엽적인 연민보다도 체계를 바꾸는 안목을 가지고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이 좋다. 이 책에서 본 나이팅게일은 그런 사람이었고 진취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성취해 나갔다. 여성이라는 제약 때문에 남성들에 비해 훨씬 더 높은 벽을 넘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가능했던 것은 그녀의 집안이 고위층이어서 나름의 힘을 발휘할 언덕이 있었기 때문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편하게 살 인생이 보장되는데 뭐하러 이런 고생을?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이 높은 사람이 일신의 안위를 포기하고 대의에 헌신하는 것은 귀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지......

나이팅게일과 결이 가장 비슷하게 느껴진 사람은 교육학자 마리아 몬테소리다. 몬테소리. 정말 수도 없이 들어본 이름인데 그 인생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망명까지 해야했던 파란만장한 인생 속에서 혁신적인 교육학의 체계를 세우고 널리 전파한 대 교육학자. 나같은 일개교사와 비교를 해서는 안되겠지만, 30년이 다 되도록 교육이 뭔지 모르겠고 학급교육과정 하나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나로서는 정말 존경스러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클라라 슈만은 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천재 중의 천재였던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굴레를 놓지 못했다. 그녀는 왜 남편 슈만의 그림자로 만족했을까. 여성이라는 굴레 속에서도 그녀의 천재성은 빛이 났지만, 그것마저 벗어버렸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지금 그녀의 음악세계를 훨씬 더 많이 접하고 있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외에도 앞에서 말했던 곤충생물학자 메리안, 소설가 제인 오스틴,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 일본의 문학가 히구치 이치요가 나온다. 그리고 우리나라 오만원권의 인물 신사임당! 오만원권 나올 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낙착된 인물. 저자는 신사임당의 생애를 꽤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그걸 읽으니 인물에 대해 꽤 호감이 간다. 하지만 저자의 최종 시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폐 인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도 공감한다. 그러면 누가 적당할까? 선뜻 생각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여성의 역량이 그렇게 남성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도 인물 한명 뽑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여성의 기회가 얼마나 차단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아마도 한 세기 이상 지난다면 남성보다 더 많은 여성 인물이 나오게 될지도.....

시간 보내기용 가벼운 책은 아니고 꽤 많은 정보가 들어있는 책인데도 머리 복잡한 중에 큰 어려움없이 읽었다. 저자 책들의 큰 장점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권하기 좋고, 동료샘들과 쉽게 읽고 대화 나누기도 가능하다. 이 책이 여학생과 남학생으로 구성된 독서모임에서 읽힌다면 가장 보기좋은 풍경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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