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정의하는 것은 우리의 행동입니다 - 화폐 속 여성 인물 이야기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콜라보 4
권재원 지음 / 서유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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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교양도서로 매우 적합하고 훌륭한 책을 만났다. 다방면에 지식수준이 높은 편은 아닌 나같은 어른들에게도 아주 좋다. 독서수준이 높은 초등 고학년에게도 좋겠다. 대상 독자가 아주 넓은 책이다.

제목만 보아서는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다. <화폐 속 여성 인물 이야기> 인물이야기책인데 특별히 화폐 속 인물을 다루고 그중에서도 여성을 다룬다! 매우 흥미로운 컨셉이다. 화폐 속 여성 인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은 짐작이 가능한 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린 인물들의 면면이 궁금하고 그들의 생애는 더욱 궁금하다.

차례를 보니 익히 아는 인물도 있었고 이름만 아는 인물이거나 잘 모르는 인물도 있었다. 특히 가장 먼저 실린 곤충생물학자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을 잘 몰라서 좀 부끄러운 마음이....^^;;; 읽다보니 익히 안다고 생각했던 클라라 슈만이나 나이팅게일, 몬테소리도 그리 잘 알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것을 알게되는 재미가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나이팅게일을 꼽겠다. 원래 알고 있던 고정된 이미지와 다르다는 점이 뭔가 통쾌하고 신선했다고 할까. ‘백의의 천사’로 대표되는 나이팅게일의 이미지는 착하고 순결한 희생정신과 함께 순종적인 여성스러움도 연상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 그녀는 일종의 투사였다. 그 대상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그 당시 모든 권한을 가진 이들이 남성이었고 나이팅게일은 그것들에 도전해야 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나이팅게일은 하녀나 다름없는 간호직을 전문직의 위치로 올려놓은 근대 간호학의 창시자다. 엉망진창 주먹구구로 돌아가는 병원 업무에 명확한 표준과 체계를 잡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일을 하는데 전통적인 여성의 순종적 이미지는 가당치 않았다. 그녀는 싸워야 했고 대단한 강단과 고집도 필요했다. 무엇보다 실력있고 똑똑해야 했다. 데이터를 표준화하기 위해서는 통계학이 필요한데 그녀는 바로 이 통계학에 능통했다.

다른 인물들도 모두 매력적인데 왜 나이팅게일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을까 생각해보니, 현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할 것 같은 인물이라서인 것 같다. 나는 자기 파트는 확실히 커버하는 사람이 좋다. (본인은 그러지 못함시롱...ㅠ) 입 잘 터는 사람보다는 실력과 책임감으로 말하는 사람이 좋다. 지엽적인 연민보다도 체계를 바꾸는 안목을 가지고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이 좋다. 이 책에서 본 나이팅게일은 그런 사람이었고 진취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성취해 나갔다. 여성이라는 제약 때문에 남성들에 비해 훨씬 더 높은 벽을 넘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가능했던 것은 그녀의 집안이 고위층이어서 나름의 힘을 발휘할 언덕이 있었기 때문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이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편하게 살 인생이 보장되는데 뭐하러 이런 고생을?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이 높은 사람이 일신의 안위를 포기하고 대의에 헌신하는 것은 귀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지......

나이팅게일과 결이 가장 비슷하게 느껴진 사람은 교육학자 마리아 몬테소리다. 몬테소리. 정말 수도 없이 들어본 이름인데 그 인생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망명까지 해야했던 파란만장한 인생 속에서 혁신적인 교육학의 체계를 세우고 널리 전파한 대 교육학자. 나같은 일개교사와 비교를 해서는 안되겠지만, 30년이 다 되도록 교육이 뭔지 모르겠고 학급교육과정 하나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나로서는 정말 존경스러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클라라 슈만은 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천재 중의 천재였던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굴레를 놓지 못했다. 그녀는 왜 남편 슈만의 그림자로 만족했을까. 여성이라는 굴레 속에서도 그녀의 천재성은 빛이 났지만, 그것마저 벗어버렸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지금 그녀의 음악세계를 훨씬 더 많이 접하고 있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외에도 앞에서 말했던 곤충생물학자 메리안, 소설가 제인 오스틴,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 일본의 문학가 히구치 이치요가 나온다. 그리고 우리나라 오만원권의 인물 신사임당! 오만원권 나올 당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낙착된 인물. 저자는 신사임당의 생애를 꽤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그걸 읽으니 인물에 대해 꽤 호감이 간다. 하지만 저자의 최종 시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폐 인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도 공감한다. 그러면 누가 적당할까? 선뜻 생각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여성의 역량이 그렇게 남성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도 인물 한명 뽑기가 어렵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여성의 기회가 얼마나 차단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 아마도 한 세기 이상 지난다면 남성보다 더 많은 여성 인물이 나오게 될지도.....

시간 보내기용 가벼운 책은 아니고 꽤 많은 정보가 들어있는 책인데도 머리 복잡한 중에 큰 어려움없이 읽었다. 저자 책들의 큰 장점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권하기 좋고, 동료샘들과 쉽게 읽고 대화 나누기도 가능하다. 이 책이 여학생과 남학생으로 구성된 독서모임에서 읽힌다면 가장 보기좋은 풍경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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