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 개 삼년이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39
정하섭 글, 김규택 그림 / 길벗어린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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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아도, 아 서당개 삼년이가 풍월을 읊었구나, 라고 짐작을 할 수 있는 책이다. 그래도 궁금증이 이는 이유는 무얼까? 삼년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훈장님은 어떤 분일까? 학동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삼년이가 풍월을 읊었을 때 반응은 어땠을까?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되었을까?.... 등 즐거운 상상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닌가!^^


대충 알 것 같은 이야기지만 작가의 이야기 구성 능력은 독자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한 스님이 시큰둥하고 대충대충 가르치는 훈장님에게 삼년이를 맡기며 삼 년만 길러보면 복을 받을 것이라 했다. 복이라니? 벼슬자리를 가져올까? 돈보따리를 물어올까? 기대하는 훈장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화가 난 훈장님은 개장수가 오면 팔아버려야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무렵, 삼년이는 말을 알아들고 시도 읊을 수 있었다. 날마다 밖에서 되풀이해서 듣다 보니 스스로 깨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밝혀지고, 삼월이는 진짜로 훈장님에게 복덩어리가 된다. '개도 가르칠 정도니 아이들은 오죽 잘 가르치겠냐'는 평판이 나면서 서당도 크게 다시 짓게 된 것이다. 훈장님은 그동안 대충 가르친 것을 후회하며 성심을 다해 가르치게 되었다. 


그래서 오래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끝나도 무리는 없었겠건만, 작가는 삼월이가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 뒤로 삼년이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대.... 헉! 삼월이는 정말 개는 개였을까?


이 이야기의 주제가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의 뜻 그대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거야 읽는 사람 느끼기 나름이니까... 그런데 난 이 속담에 한 가지 이의를 제기한다. 오랫동안 접하고 듣는다고 그것이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마음'을 다해야 되는 것이다. 삼년이는 그랬던 거다. 공부방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들었을 뿐이지만, 공부방 안에 있는 아이들보다 더 마음으로 들었던 거다.


무엇을 익히기 위해서는 지난한 세월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수박 겉핥기로 세월만 보내봤자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이런 잔소리를 하는 편은 아닌데,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은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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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 수술 보고서 시공 청소년 문학 56
송미경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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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익숙하지 않은 것을 참 힘들어하는 성격이라서... 이 책의 전반부는 읽기가 좀 힘들었다. 이것 제법 난해하네... 실험적인 건 나한테 너무 어려워...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실험정신을 가진 작가에 대한 예의와 존경으로 끝까지 읽어나갔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노력으로 작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작가는 타고 나야 하겠구나...라는 감탄이 첫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이 사회에 무수히 존재하는 광인 이연희들에 대한 가슴아픔 때문이고, 세번째는 무심코 흘려보내 기억도 나지 않는 내 행위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열일곱 이연희는 더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광인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 아이는 한 가지에 집착하고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해서 주변인을 미치고 환장하게 만든다. 발톱이 깨졌을 때 연고를 바르다 안되니 매니큐어, 그것도 안되니 순간 접착제, 그것도 안되니 공업용 강력 접착제를 들이붓는 모습을 보고 나는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것들이 흘러 손가락이 다 붙어버렸고 그 아이는 손가락을 떼어내려다 피를 철철 흘린다. 그런데 그 아이는 말한다.  이 고통이 오히려 마음의 평온을 가져왔다고. 그 아이는 그동안 얼마나 아팠던 것일까?

 

이 소설은 '보고서'라는 아주 이례적인 형식으로 쓰여졌다. 환자 이연희가 본인이 광인수술을 받은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거기에 집도의 김광호가 각주를 단 형식이다. 이연희의 의식은 혼미하다 볼 수 있으니 객관성을 유지해 주는 것은 의사 김광호의 각주이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객관성을 가진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객관성은 역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친구들의 놀림과 괴롭힘은 끝이 어딘지 몰랐고 이연희는 그 아이들의 개가 되어 실제로 개처럼 짖고 먹으며 지내야했다. 담임선생님은 그 광경을 보고도 묵인했고 연희에게는 잊으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여기에서 담임선생님에 대한 비난은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왜 선생님은 놀리는 아이들을 불러 타이르지도,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게 친구에게 상처를 주는 일인줄 정녕 모르는지 묻지도 않았을까? 왜 연희를 불러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나는 문득 불안해진다. 아이들은 때로 어른보다 악하다. 그 칼날은 순도 100%의 다이아몬드 같고 날카롭기 이를데 없다. 앞뒤 안가리고 찌른다. 그럴 줄 몰랐다는 변명을, 순수함 가득한 얼굴에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해댈 때는 귀싸대기 한 대 올려붙이고 싶으나 그럴 수도 없고 할 말도 잃는다. 때론 그런게 아이들이다.  

 

그러니 교사의 레이더는 기능이 좋아야 한다. 자칫 너무 바빠 레이더를 꺼 놓고 있거나 우리반 애들은 착하다며 방심하다 꺼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면 큰일이다. 늘 세심한 관찰, 적확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세심한 관찰도 쉽진 않지만 적확한 대응은 더더욱 어렵다. 특히 여자아이들의 관계는, 함부로 손댔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예 교사의 레이더 밖으로 숨어버린다. 보는 앞에서는 멀쩡하다. 이게 정말 어려운 점이다. 이만큼까지 당돌한 아이는 없기를, 그저 나의 호소에 마음이 움직이는 착한 아이들이기만을 바라는 것이 나처럼 별볼 일 없는 교사들의 상황이라 하겠다. 

 

그래서 나는, 일일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의 교실에서 힘들었던, 상처받았던 아이들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죄하고 싶다. 니가 얼마나 아픈지를 잘 몰랐어. 어쩔 수 없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너한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 네가 헤쳐나갈 일이라고 생각했어. 모든 건 니가 할 탓이라고 생각했어. 너에게 극복할 힘이 있다고 생각했어. 때로는, 아이들은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생각했어. 혹시 그 그늘에서 신음했던 아이들이 있었다면, 미안하다... 내가 어떻게 해줬어야 했을까?

 

환자 이연희와 의사 김광호의 객관성이 어느 순간 모호해지듯이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과연 누가 광인인가" 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강력하게 던진다. 연희더러 헛소리한다고 미친년이라고 욕하는 니들아, 너희들은 미친년이 아니니? 라고 묻는다. 친구를 개로 만들어 놓고 낄낄거리는 니들 말이야. 니들이 미친년이지 누가 미친년이냐고!! 라고 따진다. 여기에서 자유로울 자가 거의 없다. 우리는 스스로의 언행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내가 무심코 했던 행위들까지 다 돌아봐야 한다. 과연 누가 광인인가?

 

광인 수술의 과정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었는지는 내가 독해력이 부족하여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이연희가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수술을 받았고, 그 수술 과정을 감각으로 모두 느꼈고, 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억들을 모두 끄집어 내어 한번 처리(?)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연희는 비로소 똑똑하게 자기의 할 말을 한다.

 

나는 교실에서 푸들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니거나 혀를 길게 빼거나 짖어 대긴 했지만

누군가를 괴롭힌 적은 없어요.
나는 비웃음거리가 된 적은 있지만 누군가를 비웃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기억을 다 내 뇌 속에 정확히 저장하고 있지만
아무에게도 원수 갚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어요.
도대체 이 수술은 어떤 사람이 받아야 하는 거지요?
누가 광인이고 누가 정상인이라는 걸까요?
수술을 받아야 할 사람은 개 짖는 소리를 내다가 심지어 쥐를 물어오기까지 한 내 자신이 아니라
그런 나를 보며 즐거워한 우리 반 아이들이 아닌가요?

 

이제 이연희는 의사 김광호가 진단한 병명 '강박증'에서 벗어나 자유로움과 평안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이 책을 덮는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거나 완전히 평범해지는 것은 힘들겠지만 고통이 자신을 갉아먹도록 놔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이런 아이들을 지켜주고 있지 못한 나 같은 어른들에개 채찍질과 함께 위안을 준다. 그리고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용기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을 돌아볼 용기. 자신을 찾을 용기. 그리고 자신을 지킬 용기.
 
나는 많은 작가들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이 작가의 <복수의 여신>을 읽었을 때 그 상큼함에 반했었고 작품이 나오는 족족 읽어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색다른 작품이 나온 것은 충격적이다. 참 대단하고 고마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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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공장을 지켜라! 그림책이 참 좋아 18
김영진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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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와 펄럭이의 모험 3탄이다. 1탄을 읽고서 작가의 상상력과 그림 표현력에 감탄했었다. 그림책 작가들을 보면 존경스러운데 특히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는 작가는 더 존경스럽다. 그림실력에 이야기 구성능력까지.... 본인이 만들어낸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고, 애써 집어넣은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닿는 것을 느낄 때 얼마나 행복할까.

 

이번 편의 메시지도 상상의 힘이다. 상상은 괴물을 물리친다. 거기에 한 가지 추가된 게 있다면 그것은 '꿈'이다. 이루리아에는 '꿈공장'이 있다. 현실을 떠나 꿈을 빚는 곳이다. 꿈공장 할아버지는 여기서 만들어진 꿈을 현실세계로 보내준다.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어둠의 비행단은 꿈공장에 사람들을 가두고 악몽만을 만들고 있다. 펄럭이는 동네 모든 개들과 함께 어둠의 비행단에 잡혀 갔다. 이 위기를 해결할 사람은 나로 뿐! 그래서 오늘도 나로는 이루리아에 가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결국은 상상의 힘이었다. 그 과정은 1,2편을 봐서인지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다. 내게는 솔직히 싱겁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1편은 우리반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는데, 3편의 반응도 흥미롭게 지켜봐야겠다.

 

우린 현실세계에서 살지만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 -꿈의 세계-가 없다면 현실세계는 팍팍하고 살기 힘든 곳이 된다. 이루리아라는 작가의 가상공간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작가가 3편까지 그려내며 간절히 말하고자 하는 바-거기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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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치기로 시작한 세계 지도 여행 초등학생이 보는 지식정보그림책
이혜정 지음, 김우선 그림, 조지욱 감수 / 사계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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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2학년을 가르쳤는데 통합교과서에서 세계 여러나라를 다루는 내용이 꽤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도 잘 모르는 아이들인데 웬 세계야.... 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지도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리고 같이 읽을 책들을 찾아 보았는데, 저학년 눈높이에 맞는 책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 책이 작년에 나왔더라면 꽤 유용하게 활용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이 많고 색이 예뻐서 아이들의 눈길을 끈다는 점이 첫번째 장점이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를 광범위하게 다루었다는 점도 낮은 학년 아이들에게 읽히기 좋은 점이다. 책 한 권에 대륙별 소개, 대양별 소개, 자연적 환경, 문화적 환경이 골고루 들어가 있다. 의식주별 특징도 간단하게 다루었고 명절과 축제, 종교, 운동경기에 대한 내용도 있다. 마지막으로 함께 지켜야 할 환경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책을 마무리한 것도 매우 사려깊은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 앞에서 휘리릭 몇 쪽을 넘겨주었는데 아주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놀이처럼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설명 문장은 길지 않고 지도 안에 구석구석 들어가 있다. 어른인 나는 사실 이런 구성이 더 정신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것을 참 좋아하고 구석구석 내용 파악도 어른보다 훨씬 잘한다.  


넓은 범위를 다루다보니 내용이 아주 심도있지는 않지만, 이 책을 놀이삼아 뒹군 아이들은 꽤나 많은 상식을 갖출 수 있겠다. 사실, 그렇게 쌓은 상식이 무서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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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초등학교에서 작은거인 37
오카다 준 지음, 양선하 옮김 / 국민서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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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준의 판타지는 참 매력적이다. 가장 큰 매력은 따뜻함이고 두 번째는 자연스러움이다.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놓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다르게 표현하면 천연덕스럽게?) 연결되는 판타지, 언제든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도 되는, 잠깐 꾸었던 꿈이라 말해도 될 듯한 소소한 판타지. 악인도 구원자도 없는 작고 따뜻한 존재들이 만들어가는 판타지.

    

그는 외로움을 잘 아는 사람일 것 같고, 그 외로움을 건강하게, 아름답게 견디는 법을 아는 사람일 것 같다. 이 세상의 존재 중 외롭지 않은 것이 있을까? 그러나 외로운 존재들이 서로를 위해 살짝만 웃어주어도, 혼자인 밤이 외롭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깨닫는다. 그것이 이 책의 주제는 아닐지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학교의 밤에 대한 상상은, 일반적으로 공동묘지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기원은 모르겠으나... 여고괴담 류의 영화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젊었을 때의 기억인데, 스카우트 뒤뜰야영을 하면서 조별로 극기훈련 코스를 돌게 했을 때(그런 걸 왜 했을까-_-) 다른 어떤 곳보다도 학교 안이 무섭다고 꺅꺅 비명을 질렀던 아이들이 기억난다. 과학실 해골로 대표되는 밤의 학교의 기괴함.

    

그러나 이 책에선 다르다. 나도 여고괴담 류에 길들여져서인지 제목을 보고는 소름끼치는 기괴함을 연상했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 쪽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또각, 또각, 또각.... 그런 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같은 밤이라도... 여긴 너무 따뜻하다. 그리고 포근하다.

    

주인공은 이 일 저 일을 하다가 잠시 초등학교의 야간 경비원을 임시직으로 맡게 되었다. 밤의 학교... 아무도 없는 그곳을 순찰하고 임무가 끝나면 숙직실에 혼자 있으면 된다. 무섭고 외롭고, 때로는 단조로워 지루할 것도 같은 그의 일상(밤의 일상)에 가끔씩 새로운 존재들이 나타난다. 첫날은 거인이었다. 앉은키가 학교건물만 한, 운동장에 가만히 앉아 달을 쳐다보던 거인.

    

커다란 녹나무를 중심으로 주변에 몇 그루의 나무와 꽃밭과 작은 사육장이 있는 가운데뜰은 밤이면 숲처럼 변한다. 바로 판타지의 주 무대다. 어떤 날은 학생 두 명이 플룻과 클라리넷을 가지고 나와 아름다운 중주를 하고, 어떤 날은 엄마토끼가 나타나 맛있는 스프를 끓여주고 숲으로 사라진다. 요술볼펜을 찾으러 온 할머니는 분실물보관소에서 임무를 다 마친 볼펜을 찾아가지고 돌아가고, 조난당한 사람 놀이를 하는 시덥잖은 청개구리도 만난다.

    

어느 날 밤에 과학선생님이라는 분이 나타나 과학실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뭔가 미심쩍고 수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 순진한 경비원, 두말없이 문을 열어주려 한다, 이제 뭔가 사고 한번 치는 건가? 싶어 약간 긴장하며 읽고 있는데... 끝도 없이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자칭 과학선생님. 그가 한 일이라곤 과학실에 방치된 곤충채집통을 열어 풀벌레 몇 마리를 놓아준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라진다. 숙직실로 돌아온 경비원의 눈앞에 방아찧듯 허리를 굽신굽신하는 방아깨비 한 마리가 보인다.

    

그랬구나....^^

    

그 이후 몇 번의 판타지와 함께 봄은 지나고 여름방학이 되고, 방학이 끝나고, 가을이 온다. 이제 그의 임시직 기간이 끝날 날이 가까워졌다. 밤의 초등학교 마지막 무대는 도서실이었다. 도서실 벽은 무수한 계단과 문으로 되어 있었다.(도서실을 그렇게 상상한 작가는 처음 보았다. 나도 그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만 해도 설레는 장면. 어린 시절에 얼핏 꾸었을 것 같은 꿈) 문에는 책의 제목이 쓰여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 이 느낌을 뭐라 말해야 할까... 오래된, 잃어버린 기억의 사진첩을 다시 찾아 열어보는 느낌? 거기에 어린 시절의 내가 있다. 중년이 된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본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다. 그 아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 아이도 소중하고 지금의 나도 소중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빌빌하긴 마찬가지지만....  

 

주인공은 글을 쓰고 싶어한다. 어쩌면 아직 입문도 하지 못한 작가인 주인공은 바로 거장인 작가의 초기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학교를 바라보았더니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밤의 초등학교>에서 흘러나왔다.

    

3,4월 내내 바쁘고 일이 서툰 나는 별을 보며 퇴근을 했다. 구석교실에서 중앙현관까지 걸어나오는 길은 길고 깜깜하다. 휴대전화를 켜서 앞을 비추며 나는 내 발소리에 쫓기듯이 발걸음을 재촉했을 뿐이었다. 이젠 그렇게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진 않을 작정이지만, 퇴근하려 창문을 닫고, 화분을 살펴보고, 교실을 정리하며 좀 즐거운 상상을 해 볼 생각이다. 아이들이 정성으로 키우는 우리반 화분들은, 나비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날려줄 배추흰나비 애벌레들은, 우리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이야기들을 나눌까? 낮동안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지켜본 우리 교실은 아이들 하나하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밤의 교실에서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소리를 상상해도 이젠 무섭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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