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초등학교에서 작은거인 37
오카다 준 지음, 양선하 옮김 / 국민서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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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다 준의 판타지는 참 매력적이다. 가장 큰 매력은 따뜻함이고 두 번째는 자연스러움이다.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놓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다르게 표현하면 천연덕스럽게?) 연결되는 판타지, 언제든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도 되는, 잠깐 꾸었던 꿈이라 말해도 될 듯한 소소한 판타지. 악인도 구원자도 없는 작고 따뜻한 존재들이 만들어가는 판타지.

    

그는 외로움을 잘 아는 사람일 것 같고, 그 외로움을 건강하게, 아름답게 견디는 법을 아는 사람일 것 같다. 이 세상의 존재 중 외롭지 않은 것이 있을까? 그러나 외로운 존재들이 서로를 위해 살짝만 웃어주어도, 혼자인 밤이 외롭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깨닫는다. 그것이 이 책의 주제는 아닐지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학교의 밤에 대한 상상은, 일반적으로 공동묘지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기원은 모르겠으나... 여고괴담 류의 영화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젊었을 때의 기억인데, 스카우트 뒤뜰야영을 하면서 조별로 극기훈련 코스를 돌게 했을 때(그런 걸 왜 했을까-_-) 다른 어떤 곳보다도 학교 안이 무섭다고 꺅꺅 비명을 질렀던 아이들이 기억난다. 과학실 해골로 대표되는 밤의 학교의 기괴함.

    

그러나 이 책에선 다르다. 나도 여고괴담 류에 길들여져서인지 제목을 보고는 소름끼치는 기괴함을 연상했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저 쪽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또각, 또각, 또각.... 그런 건 전혀 나오지 않는다. 같은 밤이라도... 여긴 너무 따뜻하다. 그리고 포근하다.

    

주인공은 이 일 저 일을 하다가 잠시 초등학교의 야간 경비원을 임시직으로 맡게 되었다. 밤의 학교... 아무도 없는 그곳을 순찰하고 임무가 끝나면 숙직실에 혼자 있으면 된다. 무섭고 외롭고, 때로는 단조로워 지루할 것도 같은 그의 일상(밤의 일상)에 가끔씩 새로운 존재들이 나타난다. 첫날은 거인이었다. 앉은키가 학교건물만 한, 운동장에 가만히 앉아 달을 쳐다보던 거인.

    

커다란 녹나무를 중심으로 주변에 몇 그루의 나무와 꽃밭과 작은 사육장이 있는 가운데뜰은 밤이면 숲처럼 변한다. 바로 판타지의 주 무대다. 어떤 날은 학생 두 명이 플룻과 클라리넷을 가지고 나와 아름다운 중주를 하고, 어떤 날은 엄마토끼가 나타나 맛있는 스프를 끓여주고 숲으로 사라진다. 요술볼펜을 찾으러 온 할머니는 분실물보관소에서 임무를 다 마친 볼펜을 찾아가지고 돌아가고, 조난당한 사람 놀이를 하는 시덥잖은 청개구리도 만난다.

    

어느 날 밤에 과학선생님이라는 분이 나타나 과학실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뭔가 미심쩍고 수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 순진한 경비원, 두말없이 문을 열어주려 한다, 이제 뭔가 사고 한번 치는 건가? 싶어 약간 긴장하며 읽고 있는데... 끝도 없이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자칭 과학선생님. 그가 한 일이라곤 과학실에 방치된 곤충채집통을 열어 풀벌레 몇 마리를 놓아준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라진다. 숙직실로 돌아온 경비원의 눈앞에 방아찧듯 허리를 굽신굽신하는 방아깨비 한 마리가 보인다.

    

그랬구나....^^

    

그 이후 몇 번의 판타지와 함께 봄은 지나고 여름방학이 되고, 방학이 끝나고, 가을이 온다. 이제 그의 임시직 기간이 끝날 날이 가까워졌다. 밤의 초등학교 마지막 무대는 도서실이었다. 도서실 벽은 무수한 계단과 문으로 되어 있었다.(도서실을 그렇게 상상한 작가는 처음 보았다. 나도 그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만 해도 설레는 장면. 어린 시절에 얼핏 꾸었을 것 같은 꿈) 문에는 책의 제목이 쓰여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 이 느낌을 뭐라 말해야 할까... 오래된, 잃어버린 기억의 사진첩을 다시 찾아 열어보는 느낌? 거기에 어린 시절의 내가 있다. 중년이 된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본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다. 그 아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 아이도 소중하고 지금의 나도 소중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빌빌하긴 마찬가지지만....  

 

주인공은 글을 쓰고 싶어한다. 어쩌면 아직 입문도 하지 못한 작가인 주인공은 바로 거장인 작가의 초기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학교를 바라보았더니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밤의 초등학교>에서 흘러나왔다.

    

3,4월 내내 바쁘고 일이 서툰 나는 별을 보며 퇴근을 했다. 구석교실에서 중앙현관까지 걸어나오는 길은 길고 깜깜하다. 휴대전화를 켜서 앞을 비추며 나는 내 발소리에 쫓기듯이 발걸음을 재촉했을 뿐이었다. 이젠 그렇게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진 않을 작정이지만, 퇴근하려 창문을 닫고, 화분을 살펴보고, 교실을 정리하며 좀 즐거운 상상을 해 볼 생각이다. 아이들이 정성으로 키우는 우리반 화분들은, 나비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날려줄 배추흰나비 애벌레들은, 우리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이야기들을 나눌까? 낮동안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지켜본 우리 교실은 아이들 하나하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밤의 교실에서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소리를 상상해도 이젠 무섭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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