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인디스쿨 - 어쩌다 14만 초등교사 커뮤니티가 되어버린 인디스쿨, 그 20년간의 실험기
인디스쿨 20주년 기념 아카이브 팀 지음 / 진저티프로젝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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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생활 내리막길을 걷고있는 이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면 나의 전성기는 인디스쿨과 함께하던 때였다. 30대와 40대. 하루도 인디스쿨에 접속하지 않은 날이 없던 날들. 인디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 인연 속에서 성장하던 날들. 받기만 하던 내가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나눔의 희열을 느끼던 날들. 그 배경엔 말없이 고생하신 운영진들의 노고가 있었다.

그 인디스쿨이 벌써 21년이 되었다니. 이 책의 펀딩에 참여하지 못했던 건 내 무심함 탓도 있지만 예전처럼 인디에 자주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업무포털보다도 자주 들어가던 인디.ㅎㅎ 지금은 찾아볼 자료가 있을 때만 들어간다. 다운로더 -> 업로더 -> 다운로더의 사이클을 거치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인디에 기여하는 건 월 만원의 자발적 후원회비 뿐이다. 이제 다운로더도 아닌 비회원의 시기가 다가오겠지. 오, 갑자기 그 생각을 하니 쓸쓸해지는걸?^^;;;;

인디스쿨은 참 다양한 성격을 지닌 온라인 커뮤니티다. 일단 초등교사들의 커뮤니티라는 것, 교육청 등의 공적 기관에서 만든 홈페이지가 아니고 뜻있는 소수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홈페이지가 거대규모로 커졌으며 여전히 자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이다. 그런데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누구에게는 단순한 자료창고이다. 이분들은 메뉴 중에서 자료실로 직행하며 다른 곳에는 들어갈 이유를 찾지 못한다. 누구에게는 소통의 공간이다. 실제 교직집단(자신의 학교나 동학년 등)에서 소통의 답답함을 느낀 교사들은 이곳에서 신세계를 만난다. 여기에는 '내 생각이 틀린게 아니구나'를 확인할 수 있도록 내 글에 공감이나 댓글을 남겨주는 분들이 있다. 나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 아낌없이 나누는 분들이 있다. 저런 분들도 있는데....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와 위안을 얻는다.

위의 것들을 넘어서면 실제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지난 2년간은 코로나 때문에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지만.... 인디의 진짜 매력은 오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서울오프, 부산오프 등의 지역모임, 각종 주제의 수업연구모임, 다달이 이루어지는 정기연수나 번개연수.... 이곳에서 사람을, 동료를 만났다. 주5일 되기 전 놀토, 갈토가 있던 시절 놀토마다 쉬지 않고 연수를 찾아다니던 30대의 내가 이젠 낯설다. 그렇게 소통과 배움을 갈구했던 건 오직 인디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나의 교직인생을 인디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눔의 은혜를 받으면서 30대를 보내고 40대가 되자 나도 받지만 말고 작은 것이라도 공유하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업로더의 시대가 된 것이다. 교과전담을 맡았던 어느 해, 매차시 수업 내용과 자료를 올리기 시작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조회수와 추천수를 기록하다가 '금별'을 다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ㅎㅎ 지금은 업로드 안한지 몇년 됐고 '금별샘'들의 은혜만 받아 누리는 중이다. 특히 프리젠테이션이 꼭 필요한 줌수업에서 제작기능이 좋으신 선생님들의 자료는 단비와 같았고, 10년전 내가 올린 아날로그 자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인디도 수업자료도 이렇게 진화한다.

위기와 진통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책에 나온 서버의 문제는 오히려 아름답게 해결하고 결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나도 몇 건 기억나는 게시판 진통의 문제는 어려웠다. 순진했던 그때는 댓글을 달까 말까, 어떤 말로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할까 늦은 밤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사람 사는 세상 다 비슷하니까. 교사만 고고하라는 법이 어딨어. 하지만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 욕을 먹어야 할 때 운영진들은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서평이라고 시작한 글에 왜 내 얘기만 잔뜩 쓰고 있는거지....^^;;; 그만큼 이 책을 읽으니 기억이 새롭다. 인디는 소중하고도 신기한 생명체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디로 흘러갈지 누구도 미리 알 수 없지만, 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고생과 진통도 발생할테지만 길을 만들며 흘러갈 것이다. 그 길을 돌아보는 이 책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인디가 지금까지의 정체성을 변치말고 가져갔으면 좋겠다. 그 정체성은 이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자발성과 소통, 공유와 나눔이다. 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분들의 노력은 이루 말로 다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며 그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실친이나 페친도 있고 모르는 분도 있지만, 이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내 교직인생에 전환점이자 진정한 동료들을 만들어주었던 인디스쿨. 고마워요. 늘 새로워지되 소중한 가치는 끝까지 지키길 바라고 응원해요. 이곳을 떠나게 되는 날, 교실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서운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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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감정툰
옥이샘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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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도가 아주 높을 것 같은 귀한책이 나왔다. 예산만 된다면 새해에 학급용으로 한반치 들여놓고 싶다. 그동안 나 포함 교사들이 수업이나 특별활동에 여러모로 유용하게 써먹었던 책의 계보를 잇는 느낌이랄까? 아름다운 가치사전(채인선) - 아홉살 마음사전(박성우) - 그리고 이 책이다.

옥이샘은 초등교육계의 고마운 인재다. 초등교사 중에는 나처럼 성적에 맞춰 교대에 진학한, 평범한 교사들이 있는가하면 어떤 분야에 특출한 재능을 지닌 교사들도 있다. 후자가 그 재능을 숨기지 않고, 그걸 자신의 입신을 위해서만 쓰지도 않으며 널리 나누면 이와 같이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전자의 교사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그걸 자신의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 내 능력도 아님시롱 자랑스러워하면서.^^

그림을 잘 그리는 능력은 참 부럽다. 저자는 한때 만화가를 꿈꾸던 사람이라고 하니.... 표현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이미 고유의 캐릭터와 그림체를 구축했다.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그림체이고 표정도 풍부하다. 바로 이 책을 만들기에 딱 적당하다. 감정툰!

다섯 개의 영역으로 다양한 감정을 풀었다. 다섯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들! 기쁨이, 버럭이, 슬픔이, 소심이, 까칠이. 같은 분류와 같은 주제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영화수업과 병행해서 지도해도 참 좋겠다. 나는 솔직히 그 영화가 쉽지 않다고 생각해서 아직 도전을 못해봤다. (한 번 밖에 안봐서 잘 생각이 안나기도 하고) 이 책과 병행해서 본다면 아이들이 좀 더 편하게 이해하고 자신에게 적용점도 쉽게 찾을 수 있겠다.

영화와의 연계도 좋지만 그와 상관없이 책 자체만으로도 좋다. 매 영역마다 5~10개의 감정들을 만화로 풀었다. 만화 뒤에는 이런 뜻이에요, 이럴 때 쓸 수 있어요, 넓혀 보세요라는 제목으로 심화 페이지가 이어 나온다. '이런 뜻이에요'는 낱말 자체의 뜻을 기본적으로 알기에 좋고, '이럴 때 쓸 수 있어요'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더욱 명료화하기에 좋다. '넓혀보세요'는 저자가 제시해 준 '활동'이라 하겠는데, 개인책을 소장한 아이들은 책에 직접 해도 되지만 교실에선 활동지를 따로 제작해서 하면 좋을 것 같다. 책은 판형이 작은 편이라 공간이 좀 아쉽기도 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저자가(교사가) 가진 감정에 대한 생각을 여러모로 차근차근 알려준다는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의 주제와도 같이 감정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으며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쁘지는 않다. 다만 우리에게는 그 감정을 슬기롭게 표출하고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갈등과 다툼이 거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교실이야말로 바로 감정의 북새통이다. 이 현장에서 부정적인 감정의 표출들이 난무하면 교사는 현기증을 느끼고 교실은 평화롭지 못한 공간이 된다. 이 책의 조언들은 모든 교실에서 꼭 필요한 조언들이다.

감정에 무방비로 휩쓸리지 않고 잘 조절하기 위한 첫 단계는 바로 '알아차림'이다. 이 책은 그 중요성을 잘 설명해 주었고 이 책 자체가 그 '알아차림'을 돕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일단 이 책을 읽었고 이렇게 리뷰도 썼으니 어떻게 아이들과 읽을지 고민을 더 해봐야겠다. 아이들이 좋아할까 이런 고민이 필요없어서 좋네. 딱 보는 순간 환호할 만한 모양새로 되어 있으니.^^

'아홉살 마음사전' 처럼 이 책도 특정 연령대를 제목에 넣었다. 11살, 4학년. 가장 적정 연령대인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아홉살...'이 그랬듯이 이 책도 전 학년에 모두 통용될 수 있겠다. 운영의 묘는 적절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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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이샘 2021-12-31 1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귀한 리뷰 감사드려요 ^^

기진맥진 2022-01-10 01:47   좋아요 1 | URL
좋은 책 만들어 주셔서 독자가 더 감사하죠.^^
 
숨고 싶을 땐, 카멜레온 하늘을 나는 책 5
정유선 지음, 신민재 그림 / 그레이트BOOKS(그레이트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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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로는 별 다섯 개, 재미로는 별 세 개 주고 싶다. 솔직히 재미가 좀 없었다. 하지만 중간에 책을 덮고 싶지는 않았다. 작가가 제시하신 결말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소재도 신선하다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의 특성(욕구)에 따라 동물로 변하는 아이들. 누구나 크든 작든 내면의 문제가 있을 것이고 이 책과 연결하여 되고 싶은 동물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면 상당히 의미있는 대화, 혹은 집단상담이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다. 그런 흑심(?)에서 끝까지 읽었다.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는 저마다 다르니까, 어른인 나에게 의미 점수를 높게 받았다면 아이들에겐 재미 점수를 높게 받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혹은 어떤 '해소'의 역할을 해줄수도 있지 않을지.

주인공 미소는 나랑 비슷한 성향이다. 미소가 극단적이라면 나는 직업 때문에 대외적으론 많이 극복한 케이스다. 눈에 띄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 아이. 그런 미소에게 담임 선생님의 연극 열정은 하나도 고마운 게 아니다. 오히려 원망스럽기만 하다. 토끼도 자라도 아닌 오징어라는 단역을 맡았는데도 말이다. (일반 독자들에겐 중요한게 아니겠지만 내 눈엔 선생님의 열심이 보였다. 대단히 훌륭한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심이 모두에게 좋을 수는 없다는 사실, 이건 참 난감하고도 어렵다.)

미소는 도서실에서 '수상한 동물도감'을 보다가 카멜레온과 눈이 맞았다. 미소는 카멜레온의 특성(보호색으로 몸을 숨기는)을 갖게 됐고 끝내는 카멜레온으로 변신도 하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다. 자기 말고도 그 책에 눈이 맞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고슴도치가 된 아이, 기린이 된 아이....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내가 미소에게 완전히 공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미소는 주목받기 힘들어하고 때로는 숨고 싶어한다. 하지만 완벽히 잊혀지고 싶은 건 아니다. 존재감이 필요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미소도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한다. 결국 미소는 오징어 대사를 잘 해냈고, 다시 카멜레온이 되어 앙숙이던 은후의 대사까지 도와주었다. 미소에게 카멜레온은 숨통이었다. 그걸 틔워주어야지 틀어막으면 안된다. 고슴도치도, 기린도, 마지막장에 그림으로만 살짝 등장한 독수리도... 다 마찬가지다. 작품 속 인물 중에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척하면 척, 알고 계셨는데, 그런 역할이 현실에서도 매우 중요할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의미는 꽤 중요하게 느껴져서 오래 기억하고 싶다. 좋은 실마리를 준 이 작품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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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찌는 엄마가 셋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유승희 지음, 윤봉선 그림 / 우리학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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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유승희 작가님 책이 또 나왔네! 꼭 챙겨보는 작가님 중 한 분이다. 책의 판매지수가 아주 높진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짚는 매력 포인트는 이런 거다.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지?' 어떤 작가는 스케일이 엄청나고, 어떤 작가는 소재와 그에 따른 취재가 대단하고, 어떤 작가는 상상력이 놀랍고.... 내 머리론 닿아본 적 없는 그런 생각들을 펼쳐놓을 때 역시 모든 것은 타고나야 하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유승희 작가님은 어떤 쪽인가 명확히 말하긴 어려운데 내게는 '새로운 재미'를 준다고 할까? 우화로 표현하는 방식과 웃음을 주는 대화글 때문인 것 같다. 작가님 책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불편한 이웃>이 내게는 썩 재밌지 않았고 <별이 뜨는 모꼬>나 <지구행성 보고서> 같은 책들이 좋았다.

이 책도 처음부터 입맛을 짭짭 다시며 읽었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의 영상을 보며 아이들과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경악했던 건 갓 태어난 뻐꾸기 새끼가 다른 알들을 밀어 떨어뜨리는 장면. 아니 저게 본능이라니 무슨 저런 못돼처먹은 유전자가 있단 말이야? 하지만 그게 자연이다, 그게 세상이다.... 생각하면 호들갑 떨 일은 아니겠다. 그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만드셨나 너무 궁금해서 빨리 책장을 넘겼다.

역시나 이 책은 동물의 이야기이자 사람의 이야기였다. 동물의 이야기로서 터무니없지 않으려면 어느정도 생태 지식을 갖추어야 했을 것 같고, 사람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선 세상의 많은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 했을 것 같다. 저학년 동화스러운 제목이나 표지와는 다르게, 이 책은 전 세대의 동화라고 생각한다. 같은 사연을 가진 이들이 읽으면 가슴을 부여잡을 그런 이야기.

나에게는 그런 사연이 없다. 마지막장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저 아이가 자연의 섭리를 이긴 건가."
생각해보면 나는 본능 이상의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내새끼도 꼴보기 싫을 때가 있는데 남의 새끼 키우다 미워지면 그때는 어떡해?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마 어떤 상황에 처했더라도 저런 선택지는 내게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성인군자는 흔히 있는게 아니니, 등장인물(동물)들도 나름 고민과 방황을 하곤 한다. 먼저 뻐꾸기 새끼를 키운 뱁새.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갈등한다.
"그날 밤, 뱁새는 컴컴한 숲 가운데 앉아 있었어요. 이미 사라진 자신의 알들과 수컷이 그리웠어요. 그 그리움은 세찌에 대한 미움이 되었어요. 미움으로 불타는 마음에 잠도 오지 않았어요. 뱁새는 이 숲을 멀리 떠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곳으로 가려 마음먹었어요."
이 대목이 없었다면 이 책에 공감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뱁새는 자기보다도 덩치가 큰 새끼에게로 돌아오고 만다. 그리고 날려보낼 날이 올 때까지 곱게 키운다.

"너도 이미 알고 있잖니. 네 엄마가 저기서 널 기다린다는 걸."
"엄마, 엄마는 그걸 알면서도....."
세찌와 뱁새의 눈에서 동시에 눈물이 흘렀어요.
뱁새가 세찌를 가만히 안았어요.
"너를 키우면서 행복했어. 나는 그거면 충분해."

본능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본능을 넘어서는 것이 없었다면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깨졌을 것이다. 인간의 얼키고 설킴에는 본능과 본능아님이 혼재해 있는 것 아닐까. '자연의 섭리와 그걸 넘어선 그 어떤 것'

그리하여 세찌는 친엄마인 뻐꾸기에게 갔지만, 그래서 얼마간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냐. 뻐꾸기야. 너도 이제 뱁새 엄마의 심정을 알겠지? 그런 주제에 계속 자연의 섭리 타령만 하고 있을래? 다행히도, 이야기는 행복하게 잘 끝났다.

세상은 훨씬 복잡하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해피엔딩도 있고 차마 맘이 아파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참혹한 일들도 있다. 이 작은 동화는 사랑을 지키려 애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를 줄 것 같다. 나같은 사람에게는 웃음과 함께 이해의 영역을 조금 넓혀 주었다. 아이들에게는.... 모르겠다. 재미있게 읽을 것 같은데, 무엇을 느낄지는. 그 느낌 하나하나도 다 소중하다 믿는다.

출판사 안내글을 읽어보니 제목에 대한 논의가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제목은 너무 저학년 느낌이라서 난 좀 살짝 아쉬웠다. 가제였다는 '새 엄마, 세 엄마, 새엄마'가 주제에 더 맞는 것 같지만 이 역시 제목으로 최종 결정하긴 어려웠겠다고 수긍은 된다. 뭔가 다른 제목은 없었을까? 라는 쬐끔의 아쉬움이.... 하지만 저학년 동화인 줄 알고 펼쳤다가 훅 들어오는 인생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해지는 경험도 좋은 것이다. 세상의 아픈 이야기가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모두들 조금씩만 편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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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개가 되었어요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11
김태호 지음, 장경혜 그림 / 서유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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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작가님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제후의 선택>은 읽은지 꽤 되었지만 단편집 중에서 아직도 손꼽고 있는 책이다. 이번에 인상적인 제목의 단편집이 또 나왔다. 역시 좋다. 간결한 문체 안에 담아놓은 감정들이 출렁거린다. 그리고 어떤 작품은 꽤 어렵기도 하다.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며, 머리로 해석하며 읽어야 할 작품이다.

첫 작품 [초콜릿 샴푸]에선 설명서가 먼저 나온다. ‘천연 초콜릿 샴푸 만드는 법’이다. 그런데 앞부분만 조금 나오고 끊겨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뒤에 계속 나온다. 설명서와 이야기가 함께 가고 있다. 이런 구성들에서도 작가의 센스를 느낀다. 샴푸 만들기라는 소재도 그렇다. 작가가 이것을 포착하지 못했다면 이런 작품은 나오지 않았겠지.... 작가는 아는 것과 경험이 많을수록 좋겠구나, 소재를 포착하는 감이 뛰어나야겠구나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소재 안에 흐르는 감정은 돌아가신 엄마(아내)에 대한 그리움..... 엄마 없이 남자들끼리 남은 집안에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채우기는 얼마나 힘들까? 눈물겹지만 그래도 절망적이진 않은 작품이어서 좋았다.

두 번째 [요즘 자꾸 까먹는 일]에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등장한다. 사고로 다리를 못쓰게 되어 휠체어를 타는 강주다. 강주가 휠체어를 탄 채로 농구경기에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농구의 감각을 갖고있는 걸 보니 강주의 장애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얼마나 안타까울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같은 반 친구들은 평범해 보인다. 강주를 끼워주고, 격려해주고 편들어준다. 다만 주장 격인 태하가.... 승부욕이 과하다보니 졌을 때의 반응이 강주를 주눅들게 만든다. 그리고 상대편 반 아이들은 아주 비겁하고 매너없고 못됐다. 강주에게 상처가 퍼부어진 채로 경기는 끝났고, 아이들은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는 사실을 까먹고 자기들끼리 교실로 들어오고.... 총체적인 난국이다. 강주는 서러움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친구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결말은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그게 엄청 안도감을 주었다.

세 번째 작품이 표제작인 [엄마가 개가 되었어요]다. 제목에서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웃긴 이야기려나? 아니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중 가장 아프고 괴로웠다. ‘개’가 되어가는 엄마는 이미 ‘개’인 아들을 채근하여 학교로 왔다. 학교 회의실이었다. 가만 보니.... 그건 학폭위였다.ㅠㅠ 아 읽고 싶지 않다.... 하지만 외면하면 안된다.

아들은 학폭 가해자의 위치로 그곳에 섰다. 아이는 친구들을 물어뜯었다고 한다. 폭력 맞다. 하지만 학폭에는 이런 경우가 정말 많다. 오래된 피해자가 그동안 참았던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되돌리고 단번에 가해자로 규정되는 일. 가해자로 여기저기 눈치봐야 했던 부모가 피해자의 자리에 앉아 태도가 돌변하여 고래고래 다그치는 일. 저간의 사정보다도 규정에 따라야만 하는 무능한 학교, 불합리하지만 여간해선 고쳐지지 않는 규정..... 익히 들어봤던 일이라 더 얼굴이 뜨겁고 마음이 괴롭다.

이 상황에서 엄마 혼자만 몸부림을 치고 있다. 아들을 대변하려 하다 남탓만 한다고 비난을 받는다. 항변을 마친 엄마는 누구보다 가장 큰 잘못을 한 사람은 자신이라며 울부짖는다. 그리고 자신 뿐 아이라 당신들 모두도 아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점점 알아들을 수 없는 짖음으로 울부짖는다. 엄마 말이 맞다. 아이가 고립될 때까지 살펴주지 못한 어른들, 고립된 친구를 불러주긴 커녕 사냥감마냥 괴롭힌 친구들, 때는 이때다 하고 심판대에 놓고 비난해대는 어른들, 모두 사과해야 한다. 물론 아이도 자신의 폭력을 사과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자리는....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저마다 눈감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 상대를 가해자라 규정하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사과하면 그 프레임이 무너지기 때문에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다. 자식에게도 절대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문제 해결의 출발점인 ‘인정’과 ‘사과’는 그래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두 함께 진흙탕 속을 뒹군다.ㅠㅠ

[사냥의 시대]는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대충 읽었다가 엥? 무슨 얘기지? 하고 다시 읽었다. 배경은 지금보다 훨씬 뒤의 미래다. ‘돼지가 멸종한지 50년도 더 지났다’고 하고 남북통일도 되어있는 걸 보면 말이다. 첨단 기계화된 도시에서 살던 빈이는 할아버지 동네에 와서 낯선 체험을 많이 하게 된다. 그곳은 자동화되어있지 않으며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손으로 자연을 일구며 살아가는 곳이었다. 빈이와 할아버지는 산속에서 돼지를 만난다. 할아버지는 뛸 듯이 기뻐하시며 마을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신다. 어느날 마을로 내려온 돼지는 주민들에게 생포되고 어른들은 심각한 회의를 오랫동안 한다. 돼지가 불쌍해진 빈이는 도망시켜주려고 하지만 결국은....ㅠ

빈이는 치명적으로 맛있는 고기를 씹으며 운다. 어린이 독자들은 여기서 ‘잔인하다’ ‘할아버지가 나쁘다’고 하기 쉬울 것 같다. ‘교훈이 뭔지 모르겠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할아버지의 이 말씀을 읽고서 나는 알아들었다.
“인간이 욕심을 부릴수록 돼지가 아팠어. 살아있는 돼지들을 땅에 묻고, 또 묻고, 그래도 돼지들은 아팠지. 모두 사라져버릴 만큼 너무 아팠던 거야. 우리 때문에 돼지들이 또 아프면 안 되잖아!”
“지구가 키워서 선물처럼 보내주면 우린 이제 사냥해서 잡아 먹을 거야.”
이제 제목의 의미가 이해된다. 아, 우리는 이만큼의 시대를 거슬러야 하는 것인가. 거의 원시시대에 가깝도록?
“너희들의 시대는 너희가 선택해서 만드는 거야.”
이 말씀을 잘 기억해두도록 하자. 강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보다는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바틀비]는 정말 애를 태우며 읽었다. 섬에 버려진 개 바틀비. 아마도 처음에는 미친듯이 헤매며 주인을 찾고 기다렸을 것이다. 선착장에 배가 들어올때마다 목을 빼고 주인이 내리나 살폈을 것이다. 얼마나 그걸 반복했을까. 이제 바틀비는 아무것도 안하는 것을 선택했다. 길위에 죽은듯 엎드려버렸고 그러다 풀숲으로 던져졌다. 안타깝게 보던 해찬이 다가가 말을 걸고 먹을 것을 가져다 주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해찬이 할머니가 내뱉는 거친 말로 아이의 형편을 짐작할 수 있다. "지 새끼도 버리는데 개야 오죽허겄어!" 애태우며 바틀비를 보살피던 해찬이가 어느날 육지로 나갔다. 이후 태풍이 불어 한참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바틀비는 내리는 비와 함께 녹아들어 그대로 꺼져버리는 듯했다. 마지막이 가까워져가는 순간에 바틀비는 해찬이를 떠올린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생명이 그토록 끈질긴가. 다시 찾은 해찬이가 발견한 것은 반쯤 썩은 시신일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래 보였다. 그런데.... 꼬리가, 꼬리가 움직였다. 개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개가 꼬리로 어떻게 말을 하는지. 울컥 눈물이 났다. 개야. 이제 함께 해라. 너와 같은 처지의 소년과. 이제 버려질 일 없을거야. 해찬이가 용기있게 살아가게 곁을 지켜줘.

[산을 엎는 비틀거인]은 폭력가정의 이야기다. 아빠는 술에 취해 들어와 트집을 잡고 끝내는 밥상을 엎는다. 세상에 이런 남자들이 많다는 걸 난 꽤 나중에 알게됐다. 못난 새끼들. 아껴줘야 할 가족들에게 오히려 분풀이하는 찌질한 루저들. 분노가 인다. 엄마는 안계신 것 같고 (집을 나가지 않았을까?) 할머니와 연우가 그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낸다. 할머니는 연우에게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준다. 제목인 '산을 엎는 비틀거인' 이다. 잘 들어보면 이건 바로 '상을 엎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 속엔 희망이 있다. 연우는 그 희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고작 그게 희망이라는 게 슬프지만.....

여섯 편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다 좋아서 쓰다보니 다 쓰게 되었네. 슬프고 외롭고 약한 존재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사랑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상실을 경험했거나, 폭력을 당하고 있거나, 버려졌거나, 결핍이나 장애를 갖고 있거나, 인간의 욕심 때문에 희생되었거나....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독자들의 마음에도 빛을 준다. 장경혜 그림작가의 노란 표지와 빛나는 햇살 또한 이런 공감 때문이지 않을까.

찬찬히 읽고, 음미하고, 이야기 나눠볼 책 한 권을 더 소장하게 되어 든든하다. 무게감이 남다른 책이라 생각한다. 여운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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