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찌는 엄마가 셋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유승희 지음, 윤봉선 그림 / 우리학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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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유승희 작가님 책이 또 나왔네! 꼭 챙겨보는 작가님 중 한 분이다. 책의 판매지수가 아주 높진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짚는 매력 포인트는 이런 거다.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지?' 어떤 작가는 스케일이 엄청나고, 어떤 작가는 소재와 그에 따른 취재가 대단하고, 어떤 작가는 상상력이 놀랍고.... 내 머리론 닿아본 적 없는 그런 생각들을 펼쳐놓을 때 역시 모든 것은 타고나야 하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유승희 작가님은 어떤 쪽인가 명확히 말하긴 어려운데 내게는 '새로운 재미'를 준다고 할까? 우화로 표현하는 방식과 웃음을 주는 대화글 때문인 것 같다. 작가님 책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불편한 이웃>이 내게는 썩 재밌지 않았고 <별이 뜨는 모꼬>나 <지구행성 보고서> 같은 책들이 좋았다.

이 책도 처음부터 입맛을 짭짭 다시며 읽었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의 영상을 보며 아이들과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가장 경악했던 건 갓 태어난 뻐꾸기 새끼가 다른 알들을 밀어 떨어뜨리는 장면. 아니 저게 본능이라니 무슨 저런 못돼처먹은 유전자가 있단 말이야? 하지만 그게 자연이다, 그게 세상이다.... 생각하면 호들갑 떨 일은 아니겠다. 그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만드셨나 너무 궁금해서 빨리 책장을 넘겼다.

역시나 이 책은 동물의 이야기이자 사람의 이야기였다. 동물의 이야기로서 터무니없지 않으려면 어느정도 생태 지식을 갖추어야 했을 것 같고, 사람의 이야기가 되기 위해선 세상의 많은 사연에 귀를 기울여야 했을 것 같다. 저학년 동화스러운 제목이나 표지와는 다르게, 이 책은 전 세대의 동화라고 생각한다. 같은 사연을 가진 이들이 읽으면 가슴을 부여잡을 그런 이야기.

나에게는 그런 사연이 없다. 마지막장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저 아이가 자연의 섭리를 이긴 건가."
생각해보면 나는 본능 이상의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내새끼도 꼴보기 싫을 때가 있는데 남의 새끼 키우다 미워지면 그때는 어떡해?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마 어떤 상황에 처했더라도 저런 선택지는 내게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같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성인군자는 흔히 있는게 아니니, 등장인물(동물)들도 나름 고민과 방황을 하곤 한다. 먼저 뻐꾸기 새끼를 키운 뱁새. 그 사실을 알게 되어 갈등한다.
"그날 밤, 뱁새는 컴컴한 숲 가운데 앉아 있었어요. 이미 사라진 자신의 알들과 수컷이 그리웠어요. 그 그리움은 세찌에 대한 미움이 되었어요. 미움으로 불타는 마음에 잠도 오지 않았어요. 뱁새는 이 숲을 멀리 떠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곳으로 가려 마음먹었어요."
이 대목이 없었다면 이 책에 공감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뱁새는 자기보다도 덩치가 큰 새끼에게로 돌아오고 만다. 그리고 날려보낼 날이 올 때까지 곱게 키운다.

"너도 이미 알고 있잖니. 네 엄마가 저기서 널 기다린다는 걸."
"엄마, 엄마는 그걸 알면서도....."
세찌와 뱁새의 눈에서 동시에 눈물이 흘렀어요.
뱁새가 세찌를 가만히 안았어요.
"너를 키우면서 행복했어. 나는 그거면 충분해."

본능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본능을 넘어서는 것이 없었다면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깨졌을 것이다. 인간의 얼키고 설킴에는 본능과 본능아님이 혼재해 있는 것 아닐까. '자연의 섭리와 그걸 넘어선 그 어떤 것'

그리하여 세찌는 친엄마인 뻐꾸기에게 갔지만, 그래서 얼마간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냐. 뻐꾸기야. 너도 이제 뱁새 엄마의 심정을 알겠지? 그런 주제에 계속 자연의 섭리 타령만 하고 있을래? 다행히도, 이야기는 행복하게 잘 끝났다.

세상은 훨씬 복잡하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해피엔딩도 있고 차마 맘이 아파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참혹한 일들도 있다. 이 작은 동화는 사랑을 지키려 애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를 줄 것 같다. 나같은 사람에게는 웃음과 함께 이해의 영역을 조금 넓혀 주었다. 아이들에게는.... 모르겠다. 재미있게 읽을 것 같은데, 무엇을 느낄지는. 그 느낌 하나하나도 다 소중하다 믿는다.

출판사 안내글을 읽어보니 제목에 대한 논의가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제목은 너무 저학년 느낌이라서 난 좀 살짝 아쉬웠다. 가제였다는 '새 엄마, 세 엄마, 새엄마'가 주제에 더 맞는 것 같지만 이 역시 제목으로 최종 결정하긴 어려웠겠다고 수긍은 된다. 뭔가 다른 제목은 없었을까? 라는 쬐끔의 아쉬움이.... 하지만 저학년 동화인 줄 알고 펼쳤다가 훅 들어오는 인생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해지는 경험도 좋은 것이다. 세상의 아픈 이야기가 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모두들 조금씩만 편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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