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하양 그리고 완전한 하나 - 2022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라자니 라로카 지음, 김난령 옮김 / 밝은미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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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이다. 그것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문학의 매력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리고 공감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이. 화자인 레하는 인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고 있다. 이민자 2세로 살면서 느끼는 정체성의 고민이 이 책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이 책은 내가 거의 접해보지 못한 운문 소설이다. 운문과 산문 중에 더 편한 걸 고르라면 나는 산문이다. 시는 써본 적도 거의 없고 함축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문장을 더 선호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처음부터 썩 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몇 장 넘기다보니 어려움 없이 빠져들었다. 운문이라는 느낌도 크게 들지 않았다. 형식은 운문이지만 그 안에 서사는 충분히 들어있었다. 글자가 빨강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처음만 그런가 했는데 끝까지 빨강이었다. 제목의 의미를 살리려는 의도인 것 같다.

 

레하가 미국에서 적응해 사는 일이 아주 처절한 것은 아니었다. 이민자라고는 하지만 부모님은 학력도 능력도 좋은 사람들이었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 레하를 잘 키우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레하를 좋은 사립학교에 보냈고, 큰 기대를 걸고 관심 속에 아이를 키웠다. 인품도 훌륭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레하가 미국이라는 큰 사회에서 능력을 마음껏 펼치며 살기를 바랐다. 동시에 인도라는 그들의 뿌리를 잊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주중에는 미국인들의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주말에는 인도인들과 교류했다.

우린 이 소중한 기회를 낭비해서도

우리의 본성을 잃어버려서도 안 돼.”

 

레하 또한 열심히 공부하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 한다. 하지만 두 세계 중 어디에서 완벽히 속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가끔은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즐기면서 살고 싶기도 하다. 또래 아이들이 즐겨 입는 옷을 입고 댄스파티에 가는 일 같은 것들.... 그럴 때 엄마에게서 벽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를 미워할 수는 없다. 엄마는 너무 좋은 사람이고, 그리고....

 

엄마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허락을 받아내 댄스파티에 참석한 레하. 거기서 느꼈던 해방감, 썸타는 피터와 손잡을 때의 그 짜릿했던 감각... 그 사소한 행복을 없던 것들로 되돌려버리고 싶은 일이 생겼다. 엄마가 아프다. 너무 큰 병에 걸렸다. 그때부터 마지막 장까지 레하의 시들은 아프고, 너무 큰 슬픔을 안고 있으면서도 결국 조용하고 차분하게 마무리된다. 마지막에 읽는 엄마의 편지는 감동적이다. 엄마의 편지는 책의 끝부분이지만, 그 편지가 책을 시작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품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길잡이가 되고 용기와 격려를 지속적으로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모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이 책은 일부분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인 것 같다. 그런데 작가가 나와 비슷한 또래인가? 내가 그 또래일 때 듣던 팝송들이 대거 등장한다. 신디 로퍼, 듀란듀란, 유리스믹스, 보니 테일러 등.... 반가웠다. 그리고 썸타는 사이에서 좋은 친구가 된 피터가 녹음해 선물한 믹스테이프. 그것 역시 내가 그 또래일 때 숱하게 만들던 것인데, 추억 돋네.^^ 노래의 가사와 책의 내용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점도 책의 매력 중 하나였다.

 

제목 또한 그렇다. 빨강, 하양 그리고 완전한 하나. 이것이 책에서 여러 의미로 사용되었다. 상당히 정교한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뉴베리상을 받은 작품이네. 다양한 상황,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함께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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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저학년은 책이 좋아 23
김은아 지음, 박재현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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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주인공인 책은 꽤 많지만, 많이 비슷한 얘기가 아니라면 저마다 매력과 재미가 있다. 이 책도 그렇다. 제목부터 멋지다. 집으로 가는 길. 많은 의미가 담겼을 것 같은 제목이다.

이 책에는 두 마리의 개가 나온다. 일단 화자인 마루. 삽화상으론 푸들 계통인 것 같은 미모견인데 어쩌다 거리의 개가 되어 며칠째 집을 찾아 헤맨다. 두 번째 개는 유기견인 점박이. 닥스훈트처럼 다리가 짧고 전체적으로 길쭉하다. 어쩌다 애견인(?)이 되어버린 내 눈엔 둘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집을 찾아 허둥대는 마루에게 점박이는 냉정한 현실을 말해준다. “너 아직 모르겠니? 넌 길을 잃은 게 아니야. 버림받은 거지. 그러니까 집으로 가 봐야 소용없어.” 점박이는 심술궂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빨리 체념하는 게 그나마 상처를 덜 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이기도 한 상황. 하지만 마루는 믿을 수 없다. 집을 찾아 가는 길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길에 점박이가 계속 나타나 슬쩍슬쩍 도와준다. 굶주린 마루에게 소시지 하나를 무심히 툭 떨어뜨려 주기도 하고.

그러다 두 개는 훈이라는 아이를 만난다. 공원의 개와 고양이들을 괴롭히는 천하에 못된 녀석. 마루도 그 녀석의 돌에 맞는다. 그런데! 그 녀석은 초면이 아니다? 바로 마루 주인인 민호의 옆집에 사는 아이다. 훈이를 따라가면 집을 찾을 수 있다!

못된 녀석을 외면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개들의 시선을 통해 독자들도 훈이를 관찰할 수 있다. 훈이가 거리를 떠도는 이유. 아무 데도 맘을 못 붙이고 심통을 부리는 이유를. 그리고 괴롭힘을 당할 때의 연약함을. 못된 행동을 정당화해서는 안되지만 훈이의 심통이 풀어지는 지점을 보면 생각할 점이 많다. 정말 악한 아이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못된 아이는 그 지점이 있다. 그걸 찾기도, 풀어주기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능성은 있다. 이 책의 훈이처럼 말이다.

나는 서평을 쓰면서 스포를 그닥 고려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여기서 더 썼다가는 재미를 다 까먹을 것 같아 여기까지만....^^ 집으로 가는 길, 마루는 집을 찾았을까? 산책 나왔다가 잃어버렸다는 마루의 말이 맞을까? 버려진 거라는 점박이의 말이 맞을까? 마루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점박이는?

이 책은 ‘저학년은 책이 좋아’ 시리즈 중 한 권이다. 3학년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고, 읽어주기에도 흥미진진할 것 같다. 특히 마루의 활약 부분에서 아이들이 숨죽이고 신나할 것 같다. ‘마루의 활약’이 무엇인지는 직접 확인하시길. 저학년인 아이들이 좋아할 포인트가 참 많은 책이고, 어쩌다보니 애견인인 나도 퍽 재미있고 훈훈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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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글와글 세계지리 속으로 - 세계 지리 알고 있나요? 8
클라우디아 마틴 지음, 서지희 옮김 / 다섯수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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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인물들 중 어린 시절 세계지도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본 것 같다. 나도 우리 애들 어릴 때 벽면 가득 차는 큰 세계지도를 붙여놓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그게 뭐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근데 애들이 다 커버린 지금도 가끔 세계지도가 아쉬울 때가 있다. 대충 어느 나라가 어디쯤 붙어있는 줄은 아는데 정확히는 모를 때, 주변 지형이 정확히 생각나지 않을 때, 해협이나 만 등등 생소한 곳의 이름이 나오는데 궁금할 때, 아무 때나 가서 확인할 수 있는 커다란 세계지도가 집에 붙어있으면 좋을 것 같다. 보고 또 봐서 익숙한 지도라면 더욱 좋겠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말하자면 소장하면 좋을 책. 한 번에 봐버리긴 너무 아깝고, 본다 해도 한 번에 다 숙지할 수도 없는 책이다. 두고두고 뒤적뒤적 보면 좋을 책, 궁금할 때 찾아보면 좋을 책이다. 학생시절 ‘사회과부도’를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 이 책은 훨씬 재미있고 아름다운 ‘사회과부도’라 하겠다. 대륙별, 지역별 지도들의 퀄리티가 엄청나다. 이런 지도들이 가득 모여있는 책. 일반 책들보다 약간 비싸지만 절대 비싼 가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딱 하나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나라 이름이 들어간 세계 전도가 맨 앞이나 뒤에 하나 들어갔으면 좋았겠다. 인구, 언어, 산업 등을 나타낸 세계지도들이 앞에 나오기는 하는데 나라는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나라 이름만 들어간 지도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지역별 지도를 보다가도 전체에서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일 수도)

대륙별 구성으로 6장으로 되어있다. 각 장의 첫 장은 대륙 전체 지도이고, 이후로 지역별 좀 더 자세한 지도가 나온다. 아시아라면 대한민국과 일본, 중국과 몽골, 러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이런 식이다. 화면 가득한 양질의 지도 주변에 그 지역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을 배치해 놓았다. 상세한 내용을 담을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도 꽤 많은 정보를 준다. 전 세계를 다 담았다는 점에서 상당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각 지역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면 다른 책을 더 찾아보며 독서를 이어가야겠지. 이 책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책이다.

각 가정에 이런 책이 한 권씩 있고, 세계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녀와 부모가 함께 책을 찾아가며 확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참 부러운 광경이다. 예를 들면 요즘처럼 월드컵 시즌에는 월드컵 출전국들이 각각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 어떤 나라인지도 알아본다든지.... 또 학교도서관에도 한 권씩 비치하면 쓸모가 많을 책이다. 출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런 정도의 책을 만드는 데는 제작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일부 인기 있는 책들 뿐 아니라 이런 책도 골고루 잘 팔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좋아보인다. 한 번 쭉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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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치 인형 - 제11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샘터어린이문고 70
소연 지음, 강나율 그림 / 샘터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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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 문학상 수상작으로 출간되었을 때부터 읽고 싶다 생각하다가 이제야 손에 잡게 되었다. 제목이나, 표지의 분위기나, 나바호 족이라는 원주민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상당히 독특할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얇은 책이었다. 그리고 두 편이 담겨있었다. 두 편은 별개의 이야기는 아니다. 전체는 두 친구의 이야기고, 두 편은 각 주인공을 화자로 하여 쓰여진 이야기다.

단 한 번의 만남에서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가끔 만난다. 겪어본 적은 없지만 그런 사랑도 있구나 한다.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니까.... 우정도 그럴 수 있다. 이 책에서 보여준 우정이 그렇다. 물론 미래는 열려있으니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기약 없는 이별이 주는 아쉬움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첫 편 「루이치 인형」은 아빠 회사 일 때문에 미국에 온 한국 소녀 소리의 이야기다. 서툰 언어 때문에 학교에서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럴수록 입은 더더욱 닫혀 언제나 홀로 지냈다. 어느 날 엄마와 자동차 여행 중에 기름이 떨어진 상태에서 나바호족 마을에 도착했다. 엄마가 저렇게 대책없을 수가 있나 라는 생각이 솔직히 들긴 했다. 세상에, 딸을 데리고 하는 여행에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이런 길을 떠날 수가 있나? 한국처럼 땅이 좁고 어디서나 핸드폰으로 연락을 할 수 있는 그런 곳도 아닌데.... 하지만 내 기준으로만 생각하면 안되니까. 어쨌든 이야기 시작부터 긴장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녀는, 루이치 모녀를 만났다!

주유소는 내일이 되어야 갈 수 있기에 소리 모녀는 루이치네 집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했다. 바로 이 하룻밤이다. 하룻밤 사이에 쌓은 우정. 일년이 지나도록 한 명도 사귀지 못하던 소리가 루이치와 하룻밤에 쌓은 우정은 아름답고 신비롭고 탄탄했다. 엄마들이 잠든 사이, 두 소녀는 호간(나바호 족의 집)을 빠져나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고 마을의 여기저기를 함께 다녔고, 회색늑대 ‘이스다’도 만나보았다. 그리고 루이치는 소리에게 인형을 선물했다. 루이치가 만든 인형. 치마에 ‘시끼스’라고 적어서 준 인형. 그건 ‘친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기약없는 이별을 했다.

두 번째 편 「바람이 부르는 노래」는 소리가 하룻밤 만난 친구 루이치가 화자인 이야기다. 혼자였던 루이치는 소리의 우연한 방문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 마지막 남은 친구 ‘디야니’까지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마을은 척박해져서 모두들 떠나는데 루이치네는 떠날 수 없었다. 돈 벌러 떠난 아빠와 소식이 끊겼기 때문이다.

루이치의 이야기는 주로 디야니와의 이별 이야기다. 마을도 계절도 모두 스산하고 찬바람이 몰아치는데, 둘의 이별은 슬프면서도 허망하진 않았다. 뭔가 바탕을 떠받치고 있는 마음의 힘이 느껴진다. 조그만 상심에도 바닥이 없는 구멍에 빠지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우리에게도 저 힘이 필요하다.

작가의 말에 보니 이 책은 작가님의 미국 여행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았을 것 같다. 나바호 족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하지 않았을까? 특히 그들의 전통 민요가 삽입된 부분에서 내겐 큰 울림이 왔다. 이 책의 절반은, 아니 전체가 그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는 듯했다.

나는 땅끝까지 가 보았어
물이 있는 끝까지 가 보았어
하늘 끝에도 가 보았지
산 끝까지 가 보니
그곳에서 깨달았어
나와 연결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음을

이런 노랫말부터 시작해서,

나무가 제 홀로 섰듯이
우리에게 용기를 가르치네
가을에 떨어지는 잎처럼
우리에게 이별을 가르치네
마른 들판이 비에 젖듯이
우리에게 감사를 가르치네

이런 시들이 늦가을의 비처럼 나직하고 차분한 감동을 주었다. 광활한 벌판 속 원주민 마을이라는 배경과, 두 소녀(아니 세 소녀)라는 인물과, 친구라는 소재와, 인용문들까지 모든 것이 조화롭게 신비한 느낌을 냈다. 이런 직조가 정채봉 문학상으로 당선된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친구 이야기는 많지만 이 작품은 정말 오래오래 기억하며 서로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줄, 멀리서라도 마음을 보내줄, 그래서 힘과 위로가 될 수 있는 진짜 친구를 그려내었다. 인스턴트 관계가 난무하는 세상을 사는 아이들이 이 관계를 인상적으로 보고 이해했으면 좋겠다. 몇 년을 만나도 인스턴트일 수 있고 하룻밤을 만나도 오래일 수 있는, 그런 관계의 깊이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은 대자연의 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용된 노랫말들처럼 말이다. 가진 것이 없어도 자연 안에서 소중한 것을 나누는 친구들의 모습. 별을 함께 보고, 흩날리는 고운 색의 모래를 보여주고, 바람 속에서 친구의 목소리를 느끼고, 오래오래 정성으로 만든 작은 선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그런 것을 오래전에 잊어버린 나의 모습도 보았다. 우린 회복할 수 있을까. 오랜만에 조금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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